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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산책 -4: 王道의 主唱者, 孟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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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道의 主唱者, 孟子

1. 王道主義-- 누가 천하를 다스려야 하는가

맹자는 당시 대부분의 제후들이 선호했던 富國强兵 (맹자는 제후들 간의 겸병전쟁이 춘추시대 보다 한층 심화된 전국시대 중기에 활동)이라는 국가이익 중심의 통치방식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국가의 구성원들이 仁과 義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서로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하는 仁政의 실현, 곧 王道政治를 구현하는 것이 당시의 급무라고 주장했다. 또 한편으로는 인간은 누구나 사단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지니고 잇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착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성선설을 주장했다.

맹자의 사상은 왕도정치와 혁명론으로 대표되는 정치사상과 개인의 내면적 성찰을 강조하는 성선설로 대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왕도론은 한마디로 누가 천하를 다스려야 하는가를 두고 고민했던 당시의 정치적 담론에 대한 유가 지식인의 응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맹자는 먼저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부국강병책은 국가를 구성하는 하위조직의 분열을 조장하고 그로 인해 이익에 다라 개개인이 이합집산하게 되어 궁극적으로는 국가를 떠받치는 관계의 단절을 가져옴으로써 국가를 붕괴시킨다고 지적하고, 인의를 중심으로 구성원들의 건전한 인간관계가 회복될 때 국가를 구성하는 하위 조직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국가의 번영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아울러 그는 힘의 우위에 의해 유지되는 정치행태를 覇道라고 지칭하고 仁義에 입각한 정치를 왕도라고 규정한 다음 “覇道는 힘으로 인을 가장하고 왕도는 덕으로 인을 실현한다.”는 명제를 제시하여 패도의 한계를 비판하고 王道를 지향하였다.

맹자는 계속해서 당시의 제후들이 선호했던 정치행태인 覇道政治를 격렬하게 비판했는데 “푸줏간에는 살진 고기가 가득하고 마구간에는 살진 말이 가득한데도 백성들의 얼굴에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하고 들판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널려있으니 이것은 짐승을 몰아다 사람을 잡아먹는” 꼴이라면서 생산량이 대폭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구제되지 않고 방치된 민생의 문제를 패도라는 폭력적 정치수단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군주가 자신의 이익을 넘어 백성들과 함께 즐기는 여민동락을 실천해야 함을 힘써 주장했다.

맹자가 말한 王道政治는 德을 지닌 왕자의 정치라는 뜻으로 공자의 德治思想을 계승한 것이며, 주나라 초기 문왕의 정치로 대표되는 인정의 실천을 의미 한다. 그는 항산이 있으면 항심도 있게 되고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따라서 없어지게 된다고 강조하였는데, 이런 주장은 생산조건과 도덕심 유지의 상관관계를 명쾌하게 밝힌 것으로 백성들이 자신이 처한 경제적 조건에 따라 도덕심을 발휘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움직이기도 한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그는 이런 논리에 바탕하여 당시의 군주들에게 백성들의 일을 해치지 않고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적이라고 강조함으로써 인정의 구체적인 내용이 민생의 구제에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

2. 革命論--누가 천하를 다스려서는 안 되는가

맹자는 당시의 군왕들에게 왕도정치를 베풀고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여민동락을 실천하라고 권고하는 한편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군주의 자리를 바꾸는 혁명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그것이 바로 ‘혁명론’이다. 곧 왕도론이 누가 천하를 다스려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라면 혁명론은 누가 천하를 다스려서는 안 되는가를 논의한 것이다.

그는 설사 군왕이라 하더라도 백성들의 신뢰를 잃어버리면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논리를 근거로 당시의 군왕들에게 仁政의 실현을 촉구하는 한편, 역사상 혁명을 일으킨 인물로 기록된 탕왕이나 무왕을 전면적으로 정당화하는 혁명론을 제기했다.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한 것이 타당하냐 라는 제나라 선왕의 질문에 맹자는 탕 임금이 걸왕을 쫓아냈고 무왕이 주왕을 친 것은 신하로서 임금을 해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어진 성군이 지극히 불인한 폭군을 주벌한 것으로 필부를 죽인 것일 뿐 임금을 죽인 것이 아니라고 대답함으로써 혁명의 정당성을 전면적으로 인정 했는데, 이는 공자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뿐만아니라 그는 당시의 군왕들에게 백성들을 사랑하는 인정을 베풀지 않고 폭정을 일삼아 백성들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이 되면 비록 호화로운 누대나 연못이 잇다 하더라도 군왕이 홀로 즐길 수 없다고 지적하며 고대의 폭군이었던 걸왕을 그 예로 들면서 혁명의 가능성을 경고 하였다. 아울러 군왕이 백성들의 근심을 자기 근심으로 삼고 백성들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면 백성들 또한 군왕의 즐거움을 즐기고 군왕의 근심을 근심할 것이라 하면서 仁政을 권고 하였다.

맹자의 혁명론은 혁명의 주체세력을 백성으로 본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지배자에 의한 권력의 이동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백성들을 정치의 주체로 보는데 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전까지 거의 무시되어 왔던 백성들에 대한 정치적 고려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대단히 진보적인 사상이었다.

3. 仁義의 政治--利益을 물리치고 仁義를 세우다.

<孟子>의 첫 대목은 맹자가 양나라 혜왕을 만나 대화를 나눈 일에서 시작한다. 당시 양 혜왕은 서쪽 진나라의 공격을 받아 수도였던 안읍을 빼앗기고 도읍지를 대량으로 옮긴 직후 였다. 그 때문에 그는 맹자에게 어떻게 자신의 나라를 이롭게 해 주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맹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왕이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우리 집안을 이롭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것이며, 일반인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다. 이처럼 윗 사람들이나 아랫 사람들이 모두 利益 만을 추구하면 국가는 위기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이익을 앞세우고 의리를 뒤로 돌린다면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仁하면서도 그 어버이를 뒤로 돌리는 경우는 아직 없으며, 義로우면서도 그 임금을 뒤로 돌리는 경우는 아직 없다.”

맹자의 대화 상대인 양혜왕이 추구하는 것은 말할것도 없이 利益이다. 구체적으로는 일국의 군주로서 富國强兵, 곧 국가의 경제적 풍요를 확보하고 물리적 강제력을 강화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천하를 통일하는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이에 반대한다. 利益을 추구하게 되면 인간관계가 모두 파괴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견고하게 유지시켜 주는 ‘仁義’의 가치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의의 가치를 중심에 두고 국가를 운영하면 이익은 저절로 확보된다는 것이 맹자의 입장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약자를 소외시키는 비정한 사회에 지나지 않는다. 맹자는 옛날 선왕들이 정치를 펼칠 때 홀아비와 과부, 고아와 독거노인, 장애인 등을 우선시 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삼아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면서 백성들의 빈곤문제 해결을 王道政治의 出發點으로 제시하였다.

4. 性善說--인간의 本性은 善하다.

맹자는 당시의 군주들을 만날 때마다 왕도정치 이념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반드시 실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제나라 선왕을 만났을 때 맹자는 선왕처럼 소 한 마리를 사랑하는 마음이면 충분히 백성들을 사랑하여 사해를 보존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은 모든 인간은 남을 사랑하는 마음, 곧 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性善說’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4가지 마음, 곧 불쌍히 여기고, 부끄러워 하고,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인의예지를 구현할 수 있는 4가지 실마리, 곧 사단으로 규정하고 사단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은 인간의 현실적인 악행 여부를 떠나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규정한 것으로 사실상 왕도로 표현되는 덕치주의의 현실적 가능성을 주장하기 위한 형이상학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성을 악의적으로 파악할 경우 왕도나 덕치의 근거가 사라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 인간의 본성을 악한 것으로 파악한 순자나 법가의 사상가들에게서는 더 이상 덕치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이 점은 확인 된다. 맹자의 성선설은 인간의 도덕성에 대한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공자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告子와의 논쟁을 통해 당시 인간 본성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를 모두 물리치고 성선설을 확립했는데, 이를테면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주장, 인간에게는 선성과 악성이 혼재한다는 주장,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주장 등을 모두 비판하고 인간의 본성은 오로지 선하다는 입장을 긑까지 견지하여 낙관적 인간관을 수립하였다. 이후 대부분의 유가 학자들은 맹자의 이 견해를 따라 성선설을 인간관의 기본으로 삼았다.

性善說을 중심으로 한 맹자의 이 같은 인간관은 인간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바람직한 인간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토대로 德治를 근간으로 한 王道政治를 주장함으로써 물리적인 강제력에 의존한 覇道政治의 한계를 비판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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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정해관님의 댓글

암요. [우리광장]은 목사님들, 전직 회장님들께서 맡아 주시기를 열망하면서 場을 열었답니다.
특히 '양성 李氏 두분' 목사님들께서 선도자가 되어주시기를 부탁 올립니다.
이판대감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판기님의 댓글

토요일 아침 짬이 있어 잠깐 들렸다 진수성찬을 얻어 먹고 나갑니다.
채근담의 유유자적을 반찬으로 해서리....
염치없는 부탁이나 朱子 莊子 등 중요 인물들의 사상 이력등 계속해서 올려 주세용
좀 한가해지면 우공도 列傳을 중심으로 사람이야기를 올려보겠습니다.^^

kmryel님의 댓글

외로운 구름이 산골에서 피어남이여! 가고 머무는 것이 하나도
거리낌이 없구나. 밝은 달이 하늘에 걸림이여! 고요하고 시끄러움을
둘 다 相關치 안 누나. <인용-채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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