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역사2. 무함마드의 등장과 이슬람교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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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역사2. 무함마드의 등장과 이슬람교의 성립
이슬람교는 흔히 회교, 회회교 또는 마호메트교 등으로 지칭되고 있다. 回敎, 回回敎는 중국이 이슬람교를 위구르인들을 통해 받아들임으로써 “위구르(回縎, 回鶻)의 종교”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고, 마호메트교는 예수를 믿는 예수교(기독교), 부처를 믿는 불교라는 개념의 연장선에서 마호메트(무함마드)를 믿는 종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유일신 하느님(아랍어로 알라)을 믿는 종교이다. 무함마드는 하느님이 계시를 꾸란(코란)이란 형태로 인류 사회에 전달한 마지막 예언자이고, 한줌 신성도 갖고 있지 않는 완전한 인격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회교나 마호메트교라는 용어는 이슬람교의 본질에 비추어 부적절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슬람에서는 아담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성경상의 많은 선지자들을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하고 추앙한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에 신에 의해 보내진 마지막 예언자로서 앞선 복음의 부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곡해되고 변질된 신의 진리의 말씀을 바로 잡고 완성하는 사명을 가졌다. 따라서 꾸란은 모세오경, 시편, 복음서 등 앞선 경전들의 내용을 순화. 보완해 주거나 확증해 주는 최후의 경전이 되기 때문에, 이 땅의 종교는 이슬람으로 완성되었다고 설명한다.
7세기 초, 아라비아 반도에는 베두인(Bedouin)이라고 불리는 사막 유목민인 꾸라이쉬(Quraish) 부족을 중심으로 한 오아시스 정착민들이 부족 단위의 공동생활을 영위하면서 다신교와 협의체 의사결정 방식을 토대로 독특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메카는 오아시스 대상(隊商)교역의 중심 도시로, 또 각 부족의 우상을 모신 순례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더욱이 비잔틴과 사산조페르시아라는 양대 초강 세력이 대치하고 있었다.
두 제국은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쇠진하였고, 인근 복속 민족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로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었다. 부의 급증으로 인한 빈부의 갈등, 우상숭배의 만연, 도덕과 윤리의 타락이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 팽배한 사회적 분위기였다. 더욱이 지중해와 유프라테스-걸프 해를 연결하는 동서 교역로가 마비되어 역내의 상업활동이 크게 위축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도와 예멘을 연결하여 홍해를 통해 메카로 이어지는 육해상 연계교역이 새로이 각광을 받았는데, 메카와 메디나가 그 교역의 중심지로서 번창하였다. 비잔틴과 사산조페르시아 양 제국이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잇을 때, 이슬람교가 메카의 명문 꾸라이쉬 부족의 무함마드에 의해 완성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슬람교의 예언자 무함마드(570~632)는 이러한 시기에 아라비아반도 메카의 정주 부족인 꾸라이쉬의 하쉼(Hashim)가에서 태어났다. 유복자로 태어나 6세 때 모친마저 잃자, 고아로서 조부와 숙부인 아부 탈립에 의해 양육되었다. 장성한 후 그는 메카와 시리아를 잇는 대상활동에 종사하면서, 당시 혼란한 사회상에 깊이 회의하였고, 기독교와 유대교 사상에도 관심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어려운 형편의 무함마드는 카디자라는 미망인을 주인으로 섬기게 되는데, 후일 연상인 그녀와 결혼 함으로써 새로운 인생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명상을 시작한 그는 40세에 이르러 가브리엘 천사의 인도로 알라(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계급과 우상숭배의 타파와 혈연과 인종, 문화의 차이를 초월한 보편적 종교사상을 설파했다.
이슬람은 절대자이고 유일신인 알라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의미하며, 언어학적으로는 “평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과는 달리 예수와 자신의 신격화를 부정하는 철저한 일원론적 유일신 사상을 확립 하였다.
이슬람에서는 아담에서 아브라함, 모세. 예수로 이어지는 성경상의 많은 선지자들을 시대적 임무를 띤 훌륭한 인간 예언자로 인정하고 추앙한다함은 이미 설명한 바다.
무함마드는 예수 이후에 신에 의해 보내진 마지막 예언자로서 앞선 복음을 완성하는 사명을 가졌다고 본다. 즉, 이슬람교는 신 앞에 만민의 평등과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떤 중재자도 두지 않는 가르침으로 예수 이후의 기독교 사상과 본질적으로 그 궤를 달리 하였다. 또한 현세에서의 선악의 경중에 따라 최후의 날 신의 심판을 받아 천국의 구원과 지옥의 응징으로 나뉜다는 내세관과, 모든 것은 신의 정해진 법칙에 따라 움직이고 예속 된다는 정명사상을 갖고 있다. 그 밖에 도박, 마약, 고리대금, 술과 돼지고기, 이슬람식으로 도살되지 아니한 육류를 금지하며, 특수한 상황에서는 일부다처를 허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슬람의 실천강령과 신앙체계는 흔히 5주6신으로 압축되는데,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의 5대 의무는 신앙의 고백. 하루 5차례의 예배. 자선을 위한 구빈세. 라마단 달에 해 잇는 동안의 단식. 평생에 한번 메카의 순례 등이다.
6신은 하느님인 알라를 믿고, 천사들과 예언자들, 경전 들, 최후의 심판과 내세, 정명사상을 믿고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앞선 유일신 종교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인정함으로써 구약상의 선지자들과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일부 등 앞선 경전들도 기본적으로 받아 들인다. 또한 이슬람의 가르침은 무함마드의 계시 내용을 담은 꾸란에 집대성되어 있으며, 꾸란과 함께 그의 선별된 언행록인 하디스가 경전으로 삶의 구체적 지침이 되고 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설파한 유일신 사상은 당시 우상숭배자들인 메카 상류층의 종교적 권위와 상업적 질서를 위협하였기 때문에 메카에서 극심한 배척을 당하였다. 그의 아내 카디자, 사촌 동생 알리와 해방된 노예및 하층민을 추종자로 맞아들인 무함마드는 결국 622년 생명의 위협에 직면하여 메디나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것이 “히즈라”로 순태음력인 이슬람력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메카와의 3번에 걸친 치열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메디나의 무슬림들이 드디어 630년 메카를 무혈 점령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초기 이슬람 국가의 급속한 발전을 가능케 해 주었다.
무함마드는 메카인에 대한 정치적 보복을 자제하고 주변의 수많은 부족들과 우호조약을 체결하여 그들을 이슬람 사회의 범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하였고, 이러한 방식은 후일 이슬람 정복 시기의 기본 정책으로 기능했다. 신앙공동체적인 이슬람 사회의 골격을 완성한 무함마드가 632년 타계하자 가장 순수한 초기 이슬람 국가 형태를 띤 정통 칼리프시대가 도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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