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23. <슬픈 構圖> --辛夕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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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3. 슬픈 構圖
辛夕汀
나와
하늘과
하늘 아래 푸른 산 뿐이로다.
꽃 한 송이 피어낼 지구도 없고
새 한 마리 울어줄 지구도 없고
노루새끼 한 마리 뛰어다닐 지구도 없다.
나와
밤과
무수한 별 뿐이로다.
밀리고 흐르는 게 밤뿐이오.
흘러도 흘러도 검은 밤 뿐이로다.
내 마음 둘 곳은 어느 밤 하늘 별이드뇨.
<朝光> 1939. 10.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있는 민족사의 시대적 상황은 이 목가 시인에게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그는 <촛불>의 세계에서 즐겨 부르던 ‘어머니’도 잃어버리고 암울한 절망 속에 빠져야 했다. 그의 같은 시기의 작품인 <地圖>에서도 그는 ‘오늘 펴 보는 이 지도에는/ 조선과 인도가 왜 이리 많으냐?’는 싯구가 보인다. 김영랑 같은 유미주의 시인이 <毒을 차고>란 시에서 ‘내 가슴에 독을 찬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이라고 노래하는 것도 같은 무렵이다. 질식할 듯한 민족적 현실이 시인들의 예리한 안테나에 와서 신음하고 통곡하는 계절이었던 것이다.
[辛夕汀 1907~‘74] 본명은 석정. 전북 부안 출생. 중앙불교 전문강원에서 수학. 광복 후 전주고. 전주상고에서 교편 잡았고, 영생대. 전북대 등에 출강. 전원적. 목가적 시를 발표하며, 김동명. 김상용 등과 함께 3대 전원 시인이 됨. 시집에 <촛불>1939. <슬픈 목가>1947. <빙하>1956. <산의 서곡>1967. <대바람 소리>1970.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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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와 활동
부안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한문을 공부했다. 1930년 서울로 올라와 중앙불교전문강원에서 박한영의 가르침을 받아 1년 동안 불전(佛典)을 배웠으며, 이때 회람지 〈원선 圓線〉을 편집했다. 6·25전쟁 뒤 태백신문사 고문을 지냈고, 1954년 전주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1955년 전북대학교에서 시론을 가르쳤다. 1961년 김제고등학교 교사, 1963년부터 정년퇴직할 때까지 전주상업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67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라북도 지부장을 역임했다.
문학세계
1924년 〈조선일보〉에 '소적'이라는 필명으로 시 〈기우는 해〉를 발표한 뒤, 〈선물〉(시문학, 1931.3)·〈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문예월간, 1932.1)·〈봄의 유혹〉(동방평론, 1932.7~8) 등 초기에는 목가적인 전원에 귀의하여 생(生)의 경건한 기쁨과 순수함을 노래했다. 그뒤 잡지 〈시원〉·〈조광〉 등에 시를 계속 발표하여 시인으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1939년 첫 시집 〈촛불〉을 펴냈고, 1947년 2번째 시집 〈슬픈 목가〉를 펴냈다. 시집 〈슬픈 목가〉는 1935~43년에 쓴 시 33편으로 꾸며졌다. 6·25전쟁 이후 현실 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그밖에 시집으로 〈빙하 氷河〉(1956)·〈산의 서곡〉(1967)·〈대바람 소리〉(1970) 등을 펴냈는데, 이중 〈산의 서곡〉은 이전의 시풍과 달리 현실과의 갈등을 노래한 시들로 꾸며졌다. 저서로 〈중국시집〉(1954)·〈매창시집〉(1958)과, 이병기(李秉岐)와 함께 펴낸 〈명시조감상〉(1958) 등이 있다. 1958년 전라북도문화상, 1968년 한국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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