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광장
회원논단

일본역사5. 소가씨. 아스카 문화

컨텐츠 정보

  • 0댓글

본문

일본역사5. 소가씨. 아스카 문화

1] 시대개관

불교의 수용에서 645년 다이카(大化)개신에 이르는 100여년간은 일보에서 고대국가가 왕성하게 형성. 발전해 나가는 시기로서, 아스카시대의 전반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소가씨(蘇我氏)라는 호족이 오오미(大臣)의 지위를 갖고 왕실의 외척으로써 실질적으로 정국을 이끌어 갔다. 특히 그 중심이 되는 7세기 초의 스이코조(推古朝)는 소가씨와 섭정으로서의 쇼토쿠(聖德)태자가 정치를 주도해 나갔다. 대외적으로는 한반도 제국을 비롯한 중국의 수. 당 제국과의 활발한 교섭을 통해서 선진문물을 수용하여 국가체제를 새롭게 정비해 나갔다.

2] 내정의 정비와 대외수교

내정에서는 관위 12계를 정하고, 쇼토쿠태자가 헌법17조를 제정하였다. 대륙으로부터 학문. 사상의 유입과 한자에 의한 기록법의 발달에 따라 이제까지 구전되어 오던 여러 호족의 계보와 전승을 사서로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는 왕조의 신성성과 정통성을 강조하고, 대외관계를 포함한 국가발전의 역사적 흔적을 확인하려는 의식이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628년에는 <천황기> <국기> 등의 역사서를 편찬하였다.

중국에 많은 유학생. 유학승을 파견하여 율령제를 비롯한 중국의 제도. 문물의 섭취를 통해서 왜국의 후진성을 극복하고 지배체제를 강화하였다. 특히 백제와는 4세기 말 이래 친연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백제 측에서는 왕족을 비롯한 관인층. 승려와 지속적인 외교관계를 가졌고, 지식인. 기술자의 파견을 통해 군사 파트너로서 왜국을 중시하였으며, 왜국 역시 이에 부응하여 선진문물의 수용이라는 국가적 목표 하에 적극적으로 친백제 정책을 취했다. 특히 백제로부터의 불교 수용을 게기로 백제의 불교문화가 왜국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아스카문화의 성립과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3] 아스카 문화

아스카문화는 5세기 이래 고분문화 발전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기본적으로는 백제. 고구려 등의 한반도 제국의 문화를 섭취하고 중국 육조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문화의 특징은 불교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불교흥륭책에 의해 조정과 호족들은 사원과 불상 등을 조영하기 시작했다. 사찰은 주로 야마토를 중심으로 기나이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아스카시대에는 고분문화 이래의 기술의 축적과 한반도. 중국으로부터 새로 섭취한 지식을 바탕으로 조형미술의 비약적인 발전을 보였다. 그 중심은 당탑의 건축과 불상조각, 회화 등이다. 불교는 그 발전의 과정에서 조형미술과 의식행사를 통해서 종교활동을 중시하기 때문에 많은 예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불교의 성격이 당시의 지배층의 종교의식과 결합하여 불교 조형물을 출현 시켰다.

※쇼토쿠 태자(聖德太子)

6세기말에서 7세기 초의 인물로, 요메이 천황의 왕자이다. 요메이 천황의 사후, 차기 왕위계승을 둘러싼 분쟁에서 소가씨와 모노노베씨가 격돌하게 되었을 때, 소가씨가 궁지에 몰리자 사천왕상을 조각하여 사기를 고무함으로써 분쟁을 소가씨의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스이코 여제의 즉위 후에는 황태자의 지위에 올랐다. 태자는 20대에 고구려 승 혜자로부터 불교를 배우며 정치. 외교의 자문을 받고, 역시 고구려 승 각가(覺哿)로부터는 유교를 배워 학문의 연마에 힘썼다. 30세 전후에는 스이코 천황을 대신하여 왕실을 대표하는 국정의 책임자로서 섭정을 행하게 되었다. 태자는 그 지위에 어울리는 家政 기관을 갖고 이카루가궁을 조영하여 그 서쪽에 호류지(法隆寺)를 창건했다. 태자의 업적으로서는 관위 12계와 헌법 17조의 제정, <천황기>. <국기> 등 국사의 편찬을 들 수 있다.

태자는 일찍부터 이상적인 정치가이자 종교가로 전설화되어, 헤이안 시대 말기 이후가 되면 구세관음의 화신으로서 존숭되어 그에 대한 신앙이 일반 서민에 까지 퍼지게 되었다. 그의 사후 그의 왕생을 그린 그림인 <천수국만다라수장>이 남아있고, 그에 대한 신앙이 깊어져 수많은 전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관련자료

댓글 1

가정회 은행계좌

신한은행

100-036-411854

한국1800축복가정회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