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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1. <詩 人>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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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1. 詩 人

金珖燮

꽃은 피는 대로 보고

사랑은 주신 대로 부르다가

세상에 가득한 물건조차

한 아름 팍 안아보지 못해서

전신을 다 담아도

한 편에 2천원 아니면 3천원

가치와 값이 다르건만

더 손을 내밀지 못하는 천직.

늙어서까지 아껴서

어릿궂은 눈물의 사랑을 노래하는

젊음에서 늙음까지 장거리의 고독!

컬컬하면 술 한 잔 더 마시고

터덜터덜 가는 사람

신이 안 나면 보는 척도 안 하다가

쌀알만한 빛이라도 영원처럼 품고

나무와 같이 서면 나무가 되고

돌과 같이 앉으면 돌이 되고

흐르는 냇물에 흘러서

자국은 있는데

타는 놀에 가고 없다.

<동아일보> 1969.5.3.

50년 가까운 세월을 두고 시를 써온 노경의 시인이, 시인에 대하여 노래 하였다.

시인의 세계와 그 일생을 진지하게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시인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에 산다. 정신문명을 담당한 ‘정신의 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고고한 정신적 구도를 추구하여 시라는 과실을 따낸다. 어렵고도 험난한 시인의 길이 여기 있다.

[金珖燮 1905~‘77] 호는 이산. 함북 경성출생. 중동학교 졸업후 와세다대학 영문과 졸업. 중동학교 교사 근무중 창씨개명에 반대, 3년8월 옥고 치름. 광복 후 좌익 계열과 투쟁. 문학활동은 <해외문학> <문예월간> 동인으로부터 시작. 시집에 <憧憬>1938. <마음>1949. <해바라기>1957. <성북동비둘기>1969. <反應>1971.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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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정해관님의 댓글

김광섭(金珖燮, 1905년 ~ 1977년)은 한국의 시인이다. 호는 이산(怡山)이라 했다. 그의 정신과 문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에 이산문학상이 만들어져 〈문학과지성사〉주관으로 시행되고 있다.
1905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했으며, 1917년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 1920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중동학교로 옮겨 1924년에 졸업했다. 1925년에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고 졸업했다.

귀국 후 중동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인 1927년에 동창회지에 시 〈모기장〉을 발표하면서 창작활동과 문단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1933년 극예술연구회에 참가했고, 여기서 서항석, 함대훈, 모윤숙, 노천명 등과 사귀었다. 1938년에 첫 집인 《동경》을 냈다. 1941년에는 학생들에게 민족 사상을 고취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중앙 문화 협회라는 문인단체를 결성하기도 했고, 경희대 교수와 대통령 공보실장을 역임했다.

1965년 야구 경기 관람 도중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에도 계속 창작활동을 하여 그의 대표작인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했다. 이 시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렸다.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휙 돈다.

성북동 메마른 골짜기에는
조용히 앉아 콩알 하나 찍어 먹을
널찍한 마당은커녕 가는 데마다
채석장 포성이 메아리쳐서
피난하듯 지붕에 올라앉아
아침 구공탄 굴뚝 연기에서 향수를 느끼다가
산1번지 채석장에 도로 가서
금방 따낸 돌 온기에 입을 닦는다.

예전에는 사람을 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라오가 평화의 새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쫒기는 새가 되었다.

1968년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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