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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수장로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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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아버님은 신인일체의 삶을 사셨다.
  

       [ 김택수장로의  간증] 

지난 10월12일 주일예배 설교시간에 간증한 내용임.


1968년 7월 27일 오전 8시, 7명의 성화학생들이 전남 장성 통일교회에서 출발하여 8월 6일 서울 청파동 협회본부까지 10박 11일 동안 걸어서 전국 성화학생총회에 참석한 여정을 회상하며 기록한 간증이다. 그러나 2일째에 두명이 포기하였고, 3일째에 두명이 탈락하였고, 4일째 부안에서 다시 두명이 포기하고, 결국 혼자만 남게 되었다. 혼자가 되니까 시험이 큰 파도처럼 닥쳤다. “과연 나 혼자서 끝까지 갈 수 있을까?”라는 두려운 마음이 엄습했다. 하지만 새로운 결심으로 스스로 다짐하였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끝까지 도보 정성을 다해 총회에 참석하리라.”
  5일째, 공주에서는 간첩으로 오해를 받았다. 공주 차령산맥 국도변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 중에 “손들어 나와라!”는 외침이 들렸다.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가보니, 공주경찰서 순찰 기동대가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 해에 ‘청와대를 공격한 김신조 사건(1968.1.21.)’으로 전국이 긴장된 시기였다. 그들은 내가 입은 얼룩무늬 교련복을 보고 북한 무장공비로 오인하였다. 두 시간의 조사를 받고 풀려났고, 허탈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다섯 번째 밤을 보냈다.
  6일째, 천안 김관해 목사님께서는 정성껏 식사와 잠자리를 마련해주셨다. 모처럼 평안히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그날의 은혜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0일째, 영등포에서  짐을 정리하고 목욕을 하고 몸단장을 하였다. 그 다음날, 11일째, 드디어 청파동 본부교회에 도착하였다. 햇살이 작열(灼熱)하기 시작하는 따가운 8월 6일이었다. 총 345km, 약 541,357걸음을 걸었다.
  전체 노정은 <장성 –26km- 고창 –28km- 정읍 –25km- 부안 –28km- 강경 –44km- 공주 –42km- 천안 –48km- 오산 –42km- 기흥 –28lm- 안양 –26km- 영등포(목욕) –8km-청파동 본부교회 도착>이었다.  
  승리의 기쁨을 안고 협회본부 성전에 들어섰다. 기도 중에 11일간 걸어온 고난의 길이 떠올라 참회와 감사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총회 중에 참아버님께서 말씀하시다가 갑자기 “여기 도보로 걸어서 온 사람 있느냐? 그런 사람은 손을 들으라.” 하셨다. 부산, 목포, 대구에서 온 사람들이 일어섰고, 나도 망설이다가 일어섰다. 참아버님께서는 “도중에 한 구간이라도 버스나 우마차를 탔으면 앉아라.”고 하셨다. 나는 온전히 걸어서 왔기에 서 있었고, 결국 나만 남았다. 아버님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지갑을 꺼내시며 말씀하셨다. “너하고 나하고 이 돈을 나누어 쓰자.” 지갑 속 돈을 전부 꺼내시며 “하나님께서 너에게 다 주라 하신다. 뜻깊게 쓰거라.” 하시며 건네주셨다. 그리고 “돌아갈 때는 꼭 차를 타고 가라. 알았지? 고얀 놈!” 하시며 웃으셨다.
  나는 끝까지 두 발로 걸어 완주했다. 발은 물집으로 불어터졌고 따가웠지만, 그때의 기쁨과 감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경험은 나의 신앙과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고, 지금도 그 은혜를 감사히 간직하고 있다. 참아버님은 신인일체의 삶을 살고 계신 분임을 깨달았고, 참아버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지금까지 신앙의 등대가 되어서 나를 뜻길을 따라가게 인도하고 있다. 다시 한번 참아버님께 영광과 감사를 올린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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