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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4. [現代詩史3. 현대시의 다양한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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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4. [現代詩의 多樣한 發展]

1. 현대시의 제1기 (1930~1945)

[근대시와 현대시의 구분]

우리의 신시가 일본을 거쳐서 들어온 서구 문학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던 만큼 그 모방적 활동기의 과도적 시기가 대체로 근대시이며, 그것은 계몽적인 성격의 애매한 문학의식을 나타냈다. 현대시는 현대적 특성을 나타낸 시, 즉 현대성(modernity)이 무엇이냐에 따라 현대시의 기점이 달라진다.

정지용을 ‘우리의 시 속에 현대의 호흡과 맥박을 불어넣은 최초의 시인’이라고 못박은 것은 김기림 이었다. (1933년 시단의 회고. 시론 83쪽) 그 뒤 조연현은 우리의 신문학이 근대적 성격과 현대적 성격이 혼합된 혼성문학적 성격이라고 전제하고, ‘반세기에 긍한 우리의 신문학적 역사는 1920년대 이전을 중시하면 근대문학적 개념에 가까운 것이며, 1930년대 이후를 중시하면 현대문학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라고 보았다.(조연현. <신문학사 방법론 서설>. 관동출판사.)

自然主義. 浪漫主義. 寫實主義가 근대적 文藝思潮라면, 모더니즘. 超現實主義. 新心理主義. 實存主義 등은 현대적 文藝思潮에 속한다.

[순수문학의 모태. <시문학. 문예월간. 문학>]

1930.3 창간된 <詩文學>은 시의 정신과 방법에 있어 20년대의 근대시와 30년대 현대시의 경계선을 그어놓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박용철. 김영랑. 정지용. 정인보. 이하윤. 2호 부터의 변영로. 3호 부터의 신석정 등 동인들은 ‘시는 언어다’는 예술의식을 자각한 시인들이었다.

경향문학의 목적성에 반대하여 일어난 이들은 이 땅의 문학주류를 순수문학으로 굳히는데 공헌 한다. 그들은 시어에 대한 자각, 신선한 비유, 선명하고도 회화적 이미지의 조형으로 완미의 미학을 추구 하였다.

남도의 소월로 불리는 김영랑은 ‘미는 영원한 기쁨’이라는 키이츠의 신조를 지켰다. 그는 유미주의를 추구, 좁은 뜻의 서정주의의 극치를 이룬다. 그에게서 시문학파의 성격과 특징을 집약적으로 살필 수 있다.

<문예월간>(1931)은 박용철이 발행한 문예종합지였는데, ‘해외문학연구회’(1926)의 기관지 <해외문학>을 2호 까지 내고 귀국한 이들과 합류하여 발행하였다.

박용철 개인의 출자로 다시 <문학>(1933)이 창간되기 직전 반경향파 그룹으로 ‘구인회’가 결성 되었다. 이는 중견급 신진 9사람이 결성한 친목단체였는데, 프로문학의 계급주의 및 공리주의를 반대하고 순수 문학을 옹호하는 데는 시문학파와 일치하고 있었다.

[모더니즘 詩運動]

‘구인회’를 통하여 이상이 나타나고, 1934년에 창간하였다하여 <삼사문학>이라한 동인지를 통하여 장서언. 이시우. 신백수. 등 첨단적인 모더니즘이 일어났다.

모더니즘은 T.E. 흄, 에즈라 파운드, T.S.엘리어트 등 영.미 주지주의 이론 이었다. 이를 도입한 것이 김기림. 최재서. 이양하. 등이라면, 이 영향을 받고 시를 쓴 이는 김기림. 정지용. 김광균. 장만영. 장서언 등이다. 그들은 백조파 이후 우리의 시를 자연발생적이었고 센티멘털리즘의 시였다고 비판하면서, 과거의 ‘청각의 시’에서 시각적 회화성으로 새 시대의 시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도시와 문명적인 풍경에서 시의 주제를 찾기에 힘썼으며, 기계문명과 도시생활의 영향 속에서 사물과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과 방법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현대시의 확장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정지용. 김기림. 김광균 등의 시에서 가장 성공적인 표현을 볼 수가 있다.

시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모더니즘의 시운동과 함께 종래의 시 개념을 아예 뒤엎어 버린 이상의 존재도 중요하다. 이상은 시 <오감도>(중앙일보,1934)를 연재하다가 물의를 일으켜 중단 했다. 그의 문단 데뷔는 정지용이 문예란을 담당하고 있는 <가톨릭청년>(1933)에서 였다. 그는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된 자의식 문학 시대에 이 땅의 대표적 초현실주의 시인이었으며, 자의식 작가 였다.

[반모더니즘. <詩苑. 詩人部落. 子午線. 맥>]

시단의 혁신적인 열풍에 관계없이 오희병이 발행한 <詩苑>(1935)에서는 김상용. 노천명. 모윤숙. 김광섭. 김오남. 김달진. 이희승. 정인섭 등 신진들이 새로 등장하고 잇었다.

1930년대 말엽부터 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이 일기 시작한다. 서정주. 오장환. 김동리. 함형수. 김달진 등의 <詩人部落>(1936)이 그것이다. 이들은 시문학파의 예술지상주의를 인간주의의 인생론으로 심화시켰고, 모더니즘의 비생명적인 요소에 반발, 인간의 생명적 절실성과 그 究竟的 경지로 나아갔다. 시문학파 및 모더니즘의 삭막한 문학적 건조성에 인생파(생명파)의 정면 도전이었는데, 부산에서 <생리>(1937)를 주재한 유치환과 함께 시단의 주류가 급선회하는 계기가 되었다.

<子午線>(1937) 동인은 시인부락파와 이육사. 박재륜. 김광균. 윤곤강. 신석초. 이상. 이병각 등 신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어 <貘>(1938)에서는 김용호. 박남수. 등이 등장하고 있었다.

[靑鹿派의 등장]

1939년에 이르러 <子午線>의 일부 동인들이 간행한 <詩學>을 마지막으로 <문장>(1939~41)과 최재서 주재의 <人文評論>이 각각 등장, 동인지 시대의 막을 내린다. <문장>이 창작중심인데 비하여 <인문평론>은 평론 중심의 문예지였다. 이 두 잡지의 공헌은 컸다. 특히 <文章>은 추천제도를 마련 많은 신인을 발굴함으로써 문학의 계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남겼다.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김종한. 이한직. 김수돈. 박남수. 김상옥. 이호우 등은 모두 이의 시인들이었다.

이 가운데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등 세칭 청록파의 등장은 전통적인 시정신과 새로운 자연, 그리고 생명의 리듬을 제시, 시간을 초월한 생명의 고향을 추구하였다. 그들의 출현은 한국시의 주류를 다시 한 번 순수문학으로 산맥을 형성, 만해와 소월로부터의 연면한 정통성을 자랑할 수 있게 하였다.

30년대에 동인지와 문예지 못지않게 문예의 발표무대가 된 것은 일간지의 문화면이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신춘문예에 의한 신인발굴의 공헌은 무시할 수 없으며, <조광>(1935~49). <삼천리>(929~42) 등 월간지의 지위도 간과할 수 없다. 김현승은 동아일보에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때 당신들’(1934)을 발표함으로써 등단한 시인이었다.

[일제말 암흑기 최후의 빛]

일제말 암흑기에 저들은 창씨개명이라는 유래가 없는 야만정책을 실시하고, 조선어 말살의 마수를 뻗쳐 <문장>과 <인문평론> 및 양대 민족지를 폐간시키기에 이른다.

이 치욕의 시대에 민족문학은 침묵에 빠지고, 皇道文學이 등장 했다. 그러나 우리의 저항시인들은 결코 절망하지 않았다. 그들의 언어는 피보다 짙게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그 도래를 노래 하였다.

沈熏의 <그날이 오면>은 활자화되지 못하고 있었으며, 李陸史와 尹東柱는 이역만리에서 獄死로써 그들의 志節을 지켰다.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피를 흘릴지언정 시정신과 민족의 얼은 포기하지 않은 그들의 언어였다. 그들의 시집은 해방 이후에야 유고집으로 출간되어 각광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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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문정현님의 댓글

중학교 2학년 딸애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요.

-엄마!~ 이 사람 알아요?-
알고 말고지......

-엄마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 -
내 눈치를 살펴요.

그러더만 한다는 말이 왜 일본을 천하통일 했으면 되지
욕심내서 한국까지 달려가서 병들고 죽었냐고...
어쭈~ 난 그 부분은 모르는데 이랬습니다.

욕심내지 마세요. 열두번도 더 멍들었습니당.

정해관님의 댓글

사실, 기회가 된다면 일제 당시의 적나라한 역사적 사실들을, 더 나아가 과거 임진왜란 당시의 일 까지도 가감없이 일본의 형제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 입니다. 그런 내용을 알면 알수록 왜 천일국 건설에 어머니의 나라에서 크게 기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의 명분을 실감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이지요.

그야말로 '역지사지'의 교훈을 터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기도 하지요. 앞으로 이른바 '저항시'가 나오면 일본의 형제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너무 큰 욕심 인가요???

문정현님의 댓글

일제시대가 거론되면
그냥 가슴이 답답합니다.

우리 애들은 일본사 시간에
어떤 마음일까요?

저항시인들의 민족얼과 정신이 그들의 언어로 해방이후
빛을 보았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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