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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호 부회장의 역(易)에 예시된 참 부모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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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역(易)에 예시된 참 부모님을 증거 한다

 

易과 성서의 만남으로 본 참부모님 섭리

 

시작하며

역경(易經)과 기독교의 성경은 동․서양 인류 사상․문화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인 경전이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과거의 역사가 동양 따로 서양 따로, 역경 따로 성경 따로 인 것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동과 서를 넘어 지구촌 전체를 이해하는 시대이다. 경전 역시 두 경전 모두를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역과 성서를 피상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전혀 무관하게 쓰여 진 문서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와 섭리가 지역과 문화, 환경 등 그 특질에 따라 보내신 선지자와 성현의 가르침이 표현 양식을 달리 했을 뿐 구경(究竟)의 자리에서 보면 다 같은 한 뿌리의 가지요 결국 일이관지(一以貫之: 하나로 꿰뚫음), 만법귀일(萬法歸一: 모든 진리가 하나로 돌아 옴)인 것이다.

동방을 근원으로 한 역의 강물은 상호 적극적 교류가 불가능 했던 상고시대를 지나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서양에 흘러들었다. 서양 사상가들 가운데 최초로 동양의 역을 접한 인물은 독일 철학자요 수학자인 라이프니츠(Leibniez, Gottfried Willhelm. 1646~1716)이다. 그는 프랑스 예수회 소속 선교사로 중국 북경에서 선교하던 뷔베(Bouvet, Joachim)신부로부터 역을 서신으로 전해 받았다. 뷔베는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시강(侍講)을 맡는 등 최측근 인물이었다. 라이프니츠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단자론(單子論, Monade)’이 역의 괘 이론에서 유래 했으며, 그의 2진법 역시 역의 음양원리에 기인한다. 1은 형체요 0은 무(無)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늘날 디지털이론의 시작을 라이프니츠에서 찾는다. 그는 서양 수학사 최초로 수에 기호(記號)를 도입한다. 기호의 도입은 독일 수학자 조지 불(1815~1864)의 논리기호화한 수학을 가능케 했고, 서양 탈현대화의 효시가 된 칸토어(1829~1920)의 대각선 정리에 이어 20세기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논리주의를 가능케 했다. 이들 논리주의의 공헌으로 1940년대에 컴퓨터가 탄생했다. 컴퓨터의 탄생이 2진법과 논리주의의 기호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 컴퓨터는 0과 1의 원리이다.

그런데 라이프니츠의 2진법은 송나라 때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이 지은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의 ‘육십사괘수도(六十四卦數圖)’에서 그 논리적 근거를 둔 것으로 밝혀졌다. 소강절도 역의 팔괘를 논리적 근거로 한다.

우리 동이조상들은 이미 서기전 36세기경부터 태호복희(太昊伏羲, 서기전 3528~3413)에 의해 2진법 원리(음양)를 알았던 것이다. 태호복희는 역의 비조(鼻祖)이다. 역이 서양의 사상 뿐 아니라 과학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양의 역과 서양이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해 준다.

이제 동과 서, 서와 동의 세계와 인류가 서로 만나 한 가정 한 가족을 이루고 평화로운 이상세계를 이룩하자면 무엇 보다 먼저 역과 성서 이 두 경전이 해후하고 서로 조화, 순환, 화합 할 때 가능 할 것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동․서의 사상과 문화의 핵심이 경전이기 때문이다. 표현 양식은 각각 다를지라도 그 속에 부호화되고 역사화 된 진리의 근본 뜻은 상통하고 순환하는 혈맥과 같다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서로가 통하는 혈맥과 따스한 온기를 느껴 보자. 그리고 서로 교통하는 오솔길을 열어가 보자.

사실 성서와 역을 관찰해 보면, 역에 의해 부호화(符號化)된 팔괘의 체계는 성서에 역사적 사건으로 전개 되었고, 성서에 역사적 사건으로 전개된 암호와 비유와 상징은 팔괘에 의해 부호화된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서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제시해 나왔고, 역은 이를 부호로 제시 했다. 역에는 음양의 부호가 있을 뿐 역사가 없고, 성서엔 역사는 있으나 부호가 없을 뿐이다. 이는 다시 말해 역의 도형화(圖形化)된 음양의 부호는 성서의 역사적 사건으로 풀이하고, 성서의 역사적 사건은 역의 부호로 읽고 풀어 나갈 때 성서와 역은 해후하고 교감 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결국 두 경전이 같은 말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역과 성서의 만남은 동과 서의 만남이요 남․여의 포옹이다. 우리는 이 둘을 해후 시키고 축복결혼 시켜야 할 것이다.

 

역과 성서와의 관계

창세기 2장19절을 보면 아담이 각종 동물들을 인식하고 이름을 짓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들을 일컫는바가 곧 그 이름이라.”

 

그런데 기원전 6세기쯤에 출현한 동양의 불교나 도가사상에는 오히려 이름 붙이기를 문제 삼는다. 불교의 삼법인과 선불교의 불립문자 사상이 그렇다고 본다. 노자는 도덕경 제1장에서 “도를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참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고 한 것이다.

이와는 달리 사물에 대해 이름 붙이기에 적극적인 사상이 있으니 유가사상, 유대와 기독교사상이다. 논어 ‘자로’ 편에 정명(正名)이 강조 되고 있다. 정명은 ‘명칭, 곧 말의 개념을 바르게 한다’, ‘군신, 부모 등 명칭에 어울리는 윤리․질서’라는 뜻이다. 역의 팔괘에서 각 괘 마다 이름을 지었고 상(象)과 수(數)와 말(辭)을 붙여 놓았다. 사물에 대해 명칭을 부여하는 행위는 인식적이고 논리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아담이 이름을 붙인 후 하나님은 그의 갈빗대로 해와를 짓는다. 역의 관점에서 이는 태극에서 양(남)과 음(여)이 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 다음 짝을 맺게 된다(창세기 2장20절). 이름짓기(Naming)가 있은 다음 짝짓기(Matching)가 이루어졌다. 팔괘에서 각 괘상에 이름이 붙여지고 남과 여(양과 음)가 서로 상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서와 역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다음의 성구를 예로 알아보자.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습이 벽옥(碧玉)과 홍보석(紅寶石) 같고…”(요한 계시록 4장2절~3절).

 

하나님은 무형으로 존재 하시는 분이므로 아무도 육안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성구에서처럼 그 형상을 색채로 나타 낸 것이다. 벽옥과 홍보석은 곧 태극(太極)무늬인 것이다. 벽옥은 투명한 하늘색이고 홍보석은 붉은색이다. 밧모 섬에서 사도 요한이 계시 받아 기록한 이 계시록의 성구에서처럼 그는 역을 모르던 이스라엘 사람이었으므로 하나님을 표상한 태극문양을 벽옥과 홍보석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성서의 다음 구절을 보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장1절).” <난하 주에 ‘말씀’을 ‘혹 도(道)가’라고 했음>

 

역에는 ‘도(道)가 곧 말씀(道也者 言也)’ 또는 ‘간괘(艮卦)에서 말씀을 이룬다’ 했는데, 계사전 하(繫辭傳 下)에 ‘한번 양(陽)하면 한번 음(陰)한다. 이것을 천지자연의 도라고 한다(一陰一陽之謂道)’고 했다. 일음과 일양이 곧 도요, 도가 곧 말씀이요, 말씀이 곧 하나님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역과 성서만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고유경전 내지 동양고전과도 같은 내용이 많음을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 가고자 한다.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에 이를 때에 마치니…”(창세기 2장1절~3절).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 지라”(창세기 2장7절).

 

이 성구에 대해 우리민족의 3대 고유경전의 하나인 참전계경(參佺戒經, 고구려 국상 을파소<乙巴素>, AD191) 총론 편(‘커발한문화사상사’ 권2 하)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여와님이 흙을 이겨 사람 형상을 만들고 혼령을 불어 넣어 7일 만에 이루어 마쳤다(女蝸 鍊土造像而注之魂 七日而成焉).”

 

또 고사변(古史辨. 後漢 말기 應劭의 ‘풍속통의’. 경동업<京東業> 여사면<呂思勉> 편, 고사변 제7책 상편 186쪽)의 기록을 보자.

 

“천지가 개벽하여 아직 사람이 있지 아니 하였는데 여와님이 황토를 다져 사람을 지으시고 힘써 진흙 중에서 건져내다(天地開闢 未有人民 女蝸搏黃土作人 劇務力不暇供 乃引繩於泥中 擧以爲人).”

 

‘흙으로 사람을 지었다’- ‘황토를 다져 사람을 지었다’, ‘생기를 코에 불어 넣었다’- ‘혼령을 불어 넣었다’,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에 마치니’- ‘7일 만에 이루어 마쳤다’는 등의 표현은 매우 유사한 내용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와 ‘여와’도 거의 동음을 일으키며 권능 역시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여와’는 팔괘를 지은 태호복희(太昊伏羲)의 누이동생이다. 모두 우리 동이(東夷) 조상이다. 또한 문왕팔괘를 지은 주(周) 문왕과 폭군 은주(殷紂)를 물리치고 중원천하를 평정한 그의 아들 무왕(武王) 역시 동이족(東夷族)의 한 갈래인 서이인(西夷人)이다. 맹자(孟子)는 “문왕은 기주(岐周)에서 태어나 필영(畢郢)에서 돌아가시니 서이족(西夷族) 사람이다”(‘맹자’ 이루<離婁>하. 文王 生於岐周 卒於畢郢 西夷之人也)고했다.

그런데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역은 하도(河圖)와 복희팔괘(伏羲八卦), 낙서(洛書)와 문왕팔괘(文王八卦) 그리고 조선조말 일부 김항(一夫 金恒: 1826~1898)이 작괘(作卦)한 정역팔괘(正易八卦)이다. 이 세 역을 성서를 사경(査經)해 가며 비교 고찰 할 것이다. 아울러 이것이 오늘 참부모님의 섭리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를 말해 보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다.

 

역의 관점에서 복희괘는 창조본연의 도(道)가 출산하는 형국의 생산괘(生産卦)요, 문왕괘는 도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의 아담과 해와가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은 후 즉, 타락 이후에 본래의 도위(道位)를 찾아 성장해가는 역사를 말해 주는 생장괘(生長卦)라고 본다. 정역괘는 제3의 괘요 완성역(完成易)으로서 후천시대 지천태(地天泰)의 운을 말하고 있으며 천지정위(天地定位)된 괘상을 보여 주고 있다.

도적(道的) 의미에서, 아담과 해와가 도(말씀)를 정각(正覺)하여 선과(善果)인 생명과(生命果)를 낳았더라면 인류사는 달리 전개 되었을 것이요 문왕괘는 아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선악과를 생명과로 오각(誤覺)하여 따먹고 타락 했으며 죽음이 있게 됐고(창세기 2장17절,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악과인 사망과를 낳고 말았으며, 하나님의 축복조차 받지 못한 채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다(창세기 3장24절).

아담 역시 완성한 남성을 의미하는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했다. 그리하여 역사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나무는 한 결 같이 타락인간의 소망으로 남아져 내려 왔다. 잠언 13장12절에 기록된바 구약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소망도 생명나무(예수)요, 예수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독성도들의 소망도 역시 생명나무이다(계시록 22장14절). 아담이 타락하여 첫 생명나무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후 생명나무로 오셔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후 아담이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섭리의 목적이 에덴동산에서 잃어버렸던 생명나무(창세기 3장24절)를 요한계시록 22장14절의 생명나무로 복귀하시려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락 후의 인류역사는 떠나왔던 에덴에로의 복귀를 갈망해온 역사였다.

창세기에는 생명나무와 상대적으로 세워져 있는 나무가 있으니 바로 선악나무이다. 이는 창조이상을 완성한 여성 즉, 완성한 해와를 비유한 것이다. 이 해와가 성장과정에서 사탄의 꼬임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하고 말았다. 도과(道果)인 생명과를 깨닫지 못하고 사망과를 낳고 말았던 것이다. 선과는 생명과요 악과는 사망과다. 인간시조의 타락으로 이 세계는 사탄주권의 세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사탄을 이 세상의 임금(요한복음 12장31절), 세상의 신(고린도 후서 4장4절)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사탄은 인간과 피조세계 까지도 주관하게 됐다. 이러한 주관성 전도(顚倒)가 곧 타락인 것이다. 그러니까 종이 주인을 주관하는 패륜과 역도(逆道)의 세상이 되고 만 것이다.

이를 역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도태(道胎) 속의 생명이 순산(順産)하는 것이 아닌 역산(逆産)하는 꼴이다. 이는 곧 사산(死産)이다. 산모와 아기 둘 다 죽은 모습이다. 도(道)적인 안목으로 볼 때는 사도(死道)요 역도(逆道)인 셈이다. 근본이 거꾸로 뒤집힌 모양이다. 복희괘는 아담과 해와에게 주어진 괘다. 도를 순산해야 함을 보여 준 괘였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정각(正覺)하지 못했던 것이다.

 

역의 의미

역은 태극(☯)이 변해서 양(━)과 음(╺ ╸)으로, 양음은 다시 팔괘로 변해서 건(乾☰) 태(兌 ☱) 이(离 ☲) 진(震 ☳) 손(巽 ☴) 감(坎 ☵) 간(艮 ☶) 곤(坤 ☷)이 되었다. 역은 팔괘와 64괘로 되어 있고, 이를 설명한 괘사(卦辭)와 효사(爻辭) 및 역을 통일적으로 해석하고 파악하기 위한 이론인 십익(十翼)으로 구성 되어 있다. 팔괘는 천․지․인 삼재(三才)의 이치와 봄․여름․가을․겨울로 돌아가는 음양오행 사상을 기본원리로 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64괘는 팔괘를 더욱 발전시켜 길․흉․화․복이 돌아가는 이치를 나타낸 것이다. 괘사는 괘의 총체적 뜻을 나타낸 것이고, 6효(爻)를 설명해 놓은 것이 효사(爻辭)다.

역의 저작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두 개의 설이 통용되고 있다. 제1설은 8괘와 64괘를 모두 복희가 저작하였다는 위(魏)나라의 왕필(王弼) 설이고, 제2설로는 8괘는 복희가 저작하고 64괘와 괘사와 효사는 문왕이 저작하였다는 사마천(司馬遷. 서기전 104~91. 전한<前漢>) 설인데, 대체로 제2설이 통설로 되어 있다.

태호복희는 동이 조상으로서 성(姓)이 풍(風)씨이며, 맨 처음 8괘를 그었고 글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규원사화(揆園史話, 북애<北崖> 저. 1675, 조선조 숙종)’에 “복희씨는 풍족(風族)의 사이에서 나서 수에 의해 변하는 것을 보는 도를 익혔고, 하도(河圖)의 상서로움을 얻어 팔괘를 마련하여 중국 땅에 있어서 역리(易理)의 원조가 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청나라 장계종(張繼宗)이 지은 ‘역대신선통감(歷代神仙通鑑, 1692)’에는 “태호복희가 여러 사람들을 거느리고 맹하나루(孟河津)에 갔는데 이때 나타난 용마(龍馬)의 등에 55개의 점들이 찍혀 있었는데 곧 용마의 하수그림(河圖)이다”라고 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부록으로 실린 보사기(補史記)에는 “태호복희가 거룩한 덕(聖德)이 있어 우러러 하늘의 천문을 보고, 또 구부려 땅의 법칙을 알아내었다. 새와 짐승의 무늬와 땅의 형태를 보고, 또 가깝기는 사람의 몸을, 멀리는 만물을 두루 살펴서 비로소 팔괘를 그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한단고기(桓檀古記. 계연수<桂延壽> 편. 1911)’에 의하면 “배달나라 한웅천황(桓雄天皇)으로부터 5대째인 태우의한웅(太虞儀桓雄)에게 열두 아들이 있었는데 막내아들이 태호복희 이다. 어느 날 삼신이 몸에 내리는 꿈을 꾸어 만 가지 이치를 통철하고 곧 삼신산에서 하늘에 제사 드리고 괘도(卦圖)를 천하(天河)에서 얻었다. 그 획이 세 번 끊기고 세 번 이어져 (三絶三連, ☷☰) 자리를 바꾸면 이치를 나타내는 묘(妙)가 있고, 삼극(三極)을 포함하여 변화가 무궁하다”고 했다.

그럼, 역이란 무엇인가. 공자(孔子)는 계사전 상(繫辭傳上)에서 역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역은 천지에 준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고로 천지의 법도를 속에 포함하고 있다. 위로 천체의 현 상을 관찰하고 아래로 땅위의 모든 이치를 살피고 있다. 이러한 고로 어둠과 밝음을 알 수 있고, 사 물의 시초를 미루어 사물의 종말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죽고 사는 것을 알 수 있다.…그런고로 역의 이치는 태극(太極)에 있으니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고, 팔괘는 길흉(吉凶)을 정하고, 길흉이 대업(大業)을 낳는다.”

 

역은 천지에 준하여 만들어 졌고, 인간의 생사를 알 수 있게 하는 원리이며, 천지와 인간의 길흉을 설명하는 원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역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대자연을 관찰하는 원리라 하겠다. 우주의 변화 순환하는 원리를 말한 것이다. 역의 기본 이치는 하도와 낙서에 밝혀져 있다. 복희는 용마의 등에 떠올린 하도를 보고 복희팔괘도를, 문왕은 신령스런 거북(神龜)이 떠올린 낙서(洛書)를 보고 작괘한 것이 문왕팔괘도임을 알고 있다.

하도(河圖)와 복희팔괘

그럼, 태호복희가 팔괘를 지은 경위는 어떠한가.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 下)를 보자.

 

“옛날 포희(包犧: 태호복희의 다른 표현)씨가 천하를 다스릴 때, 우러러 하늘의 상(象)을 관찰하고 굽어 땅의 법칙을 살피어 새와 짐승의 문채와 땅의 마땅한 바를 살펴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천지만물에서 가져다가 처음으로 팔괘를 만드니 신명한 덕에 통달하고 만물의 성정을 유추하여 알게 되었다(古者, 包羲氏之王天下也, 仰則觀象於天, 俯則觀法於地, 觀鳥獸之文 與地之宜, 近取諸身, 遠取諸物, 於是始作八卦, 以通神明之德, 以類 萬物之情).”

 

계사전에는 또 ‘하늘이 신령스러운 물건을 내어 놓았다(天生神物)’, ‘하늘이 상(象)을 드리워 길흉을 보이니 성인이 이것을 형상화 시켰다(天垂象 見吉凶聖人象之)’, ‘성인이 하도와 낙서를 본떠 괘를 만들었다(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고 했다. 복희가 하늘이 내리신 신물인 하도를 보고 작괘 하였는데, 천지의 법상(法象)을 관찰하고 만물의 의리(義理)를 통찰하여 팔괘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럼 어째서 하늘은 신령스런 하도와 낙서를 계시하였고, 왜 복희와 문왕은 각각 하도와 낙서를 얻어 팔괘를 만들었을까.

*하도 그림

 

하도는 음양이 相生 조화, 복희괘는 도의 순산원리 제시

먼저 하도를 살펴보기로 하자. 하도를 보면 십구상(十球象)으로 도상화 하고 있는데 그 상대한 수가 홀수와 짝수로서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본다. 북은 백(白)1 흑(黑)6, 남은 흑2 백7, 동은 백3 흑8, 서는 흑4 백9, 중앙은 백5 흑10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주역 계사전(상)에 “하늘의 수는 1,3,5,7,9요 땅의 수는 2,4,6,8,10(天一地二, 天三地四, 天五地六, 天七地八, 天九地十)”이라고 했다. 천수와 지수가 각각 다섯씩 있는데 천수인 1,3,5,7,9를 합하면 25가 되고, 지수인 2,4,6,8,10을 합하면 30이 된다. 천수와 지수를 합하면 55가 된다. 이 55라는 천지의 수에서 음양의 변화가 생기고 신의 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는 하도는 또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행 상으로도 상생(相生)의 원리를 지니고 있다. 하도는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 화생토의 순으로 상생상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 수 자체로는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없다.

*복희팔괘 그림

이 하도의 10수상을 보고 작괘한 팔괘도에 의해 비로소 역은 윤리와 도덕과 종교적인 암호들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팔괘도를 보고 이런 숨은 뜻을 최초로 밝혀낸 성인이 공자(孔子)다. 공자는 열 날개(十翼)를 달아 주역의 원글을 해석하고 그 이치를 밝혔는데, 익(翼)이란 새의 날개처럼 돕는다는 뜻이다. 그는 십익에서 역을 도의 높은 차원으로 끌어 올렸다. 설괘전(說卦傳)을 보자.

 

“건(乾)은 하늘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칭하여 아버지라 한다. 곤(坤)은 땅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어머니라 칭한다. 진(震)은 맨 아래 양효(陽爻)로서 첫 번째 찾아서 얻은 아들이므로 장남(長男)이라 한다. 손(巽)은 맨 아래 음효(陰爻)로서 첫 번째 찾아서 얻은 딸이므로 장녀(長女)라 한다. 감(坎)은 가운데 양효로서 두 번째 찾아서 얻은 아들이므로 중남(中男)이라 한다. 이(离)는 가운데가 음효로서 두 번째 찾아서 얻은 딸이므로 중녀(中女)라 한다. 간(艮)은 양효로 세 번째 찾아서 얻은 아들로서 소남(小男)이라 한다. 태(兌)는 음효로 세 번째 찾아서 얻은 딸로서 소녀(小女)라고 한다(乾 天也 故稱乎父, 坤 地也 故稱乎母, 震 一索而得男 故謂之長男, 巽 一索而得女 故謂之長女, 坎 再索而得男 故謂之中男, 离 再索而得女 故謂之中女, 艮 三索而得男 故謂之小男, 兌 三索而得女故謂之小女).”

 

이는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여 진손 감리 간태의 여섯 자녀 괘를 각각 음양으로 구분하여 역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역은 단순히 수와 부호와 암호의 차원만이 아님을 본다. 역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즉, 인체구조화, 인륜가족화, 자연상징화가 그렇다. 공자는 팔괘를 인륜화(人倫化) 시켰다. 팔괘의 부호에 부모 장남장녀 중남중녀 소남소녀의 의미를 부여 했다. 이럴 때 역은 비로소 도격을 갖춘 도(道)의 여덟 식구로 탈바꿈 되는 것이다. 공자는 또 팔괘를 자연으로 상징화 했다. 부모는 하늘과 땅(天地)으로, 장남장녀는 우레와 바람(雷風), 중남중녀는 물과 불(水火), 소남과 소녀는 산과 못(山澤)으로 자연화 시킨 것이다.

설괘전을 보면 팔괘를 인체의 각 구조에 맞춰 설명해 놓기도 했다.

 

“건은 머리, 곤은 배, 진은 발, 손은 다리, 감은 귀, 이는 눈, 간은 손, 태는 입이다(乾爲首, 坤爲腹, 震爲足, 巽爲股, 坎爲耳, 离爲目, 艮爲手, 兌爲口).”

 

인체의 각 부분과 관련시킨 공자의 이러한 팔괘의 해석은 실로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우리는 이 해독방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하도를 보고 작괘한 복희는 건을 남에 위치시키고 곤을 북에 위치 시켰다. 왜 그랬을까. 건남곤북(乾南坤北)은 괘상으로 볼 때 즉, 하늘과 땅, 곧 머리와 배가 거꾸로 된 천지비괘(天地否卦)로서 흉괘(兇卦)이다. 그러나 모태(母胎) 속의 아기가 출산 할 때 머리가 먼저 나와야지 팔이나 발이 먼저 나오면 역산(逆産)으로서 사산(死産)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태(道胎) 속의 도가 순산(順産)되는 원리를 나타내기 위하여 공자는 건을 머리로, 곤을 배로 하는 해석을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희가 하도를 보고 건남곤북의 팔괘를 그린 것은 이 같은 도의 순산하는 모습을 깨닫고 작괘한 것이라 본다.

또한 복희팔괘도를 보면 왼쪽으로 건 태 이 진괘는 그 초효가 모두 양괘이고, 곤 간 감 손괘는 그 초효가 다 음괘로서 음양이 즉,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주하며 잘 조화 되어 있음을 본다. 복희괘는 건이 남에 위치하여 머리가 먼저 나오고 다음에 귀 눈 코 입 손 발을 나타내는 감 이 간 태 진 손이 차례로 나온다. 이것도 북에 위치한 곤인 배가 맨 나중에 나오는 순리를 말해 주는 것이다. 괘상으로 보아 복희팔괘는 생산괘(生産卦)로서 도태 속에서 도가 순산 되어 나오는 원리를 부호로 암호화 상징화하여 제시 했다고 본다.(정역팔괘에서 간<艮>은 상효로서 숨쉬는 생명의 괘인 코<鼻>로 바뀐다. 이때는 도의 직립이 이루어진 지천태<地天泰>의 괘상이 되는 것이다.)

 

악과를 먹은 아담 도를 사산(死産)한 꼴, 천지정위(天地定位) 암시

그럼 이제부터 복희팔괘의 이러한 내용들을 성서로 돌아가 살펴보자.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상징적인 두 나무를 두셨으니 생명나무와 선악나무이다(창세기 2장9절). 하나님은 그들이 성장하여 완성할 때 까지 이 나무의 과실을 먹지 말라고 하셨다. 이는 성장기간의 조건이었던 것이다. 또 달리 말하면 도태(道胎)속의 도(道, 로고스)를 역산하지 말라는 암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했다. 에덴동산의 두 나무는 아담에게 보여준 암호였다. 그러나 아담은 이 나무의 암호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선악나무의 과일을 따먹었다는 것은 도태 속의 도를 역산한 꼴이다. 아담이 완성했다면 첫 생명나무요, 도의 머리가 되었을 것이다. 아담이 생명나무로서 완성하면 도태 속에서 머리가 먼저 나오는 격이므로 순산하게 된다. 그러나 도의 지체요 손발인 천사의 거짓도가 머리인 참 도에 앞서 머리인양 먼저 나온 격이므로 도의 역산(逆産)으로서 사산(死産)되고 말았다. 도의 머리격인 아담이 도의 역산으로 참 도가 아닌 거짓 도에 빠졌고 생명의 도가 아닌 죽음의 도로, 광명의 도가 아닌 암흑의 도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아담이 도의 머리가 되지 못한 이후 4000년만인 신약에서의 도의 머리로 오신분이 후 아담인 예수다(에배소서 1장22절과 5장29절, 골로새서 1장18절). 후 아담으로 오신 예수는 교회의 머리, 우주의 머리이고 모든 피조물은 그의 지체임을 알 수 있다. 재림주(메시아, 그리스도)는 다시 도의 머리로 오신 분이다.

그런데 성서에는 도태속의 해산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가 여러 번 등장한다. 장자와 차자와의 태내․외 싸움이 그렇다. 여기서 장자란 단순히 육체적 혈대(血代)가 아닌 언약의 도(道)적 장자를 말한다. 도적 장자가 도의 머리가 되고 나머지는 지체요, 차자요, 아들들이요, 손발이다. 이 지체요 차자요 손발인 것들이 제 위치를 떠나 머리가 되려고 전도(顚倒) 되면 죽음이다.

 

“임산하여 보니 쌍태(雙胎)라. 해산 할 때 손이 나오는 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사(紅絲)를 가져 그 손에 매었더니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 형제가 나오는 지라. 산파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터치고 나오느냐 한 고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그 형제 곧 손에 홍사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창세기 38장27절~30절).

 

이 성구에서 처럼 유다의 며느리 다말의 태중에서 출산에 임했을 때 세라가 먼저 손을 내 밀었다는 것은 곧 도의 역산 내지 사산을 의미한다. 머리가 아닌 손이 먼저 나오면 산모나 아기 둘 다 죽게 된다. 그러나 베레스가 태중에서 세라를 잡아당기고 머리가 먼저 나오므로 쌍둥이 형제는 순산되고 산모도 무사하게 됐던 것이다. 이는 도의 순산을 보여 주는 성서의 암호이다. 역의 관점에서 보면 다말의 해산은 건남곤북(乾南坤北)의 괘상(卦象)이다. 도가 태중에서 생산될 때에는 거꾸로 머리가 먼저 나오게 되므로 복희팔괘는 머리인 건(乾)을 남쪽에 위치 시켰다. 괘상으로 보면 천지부(天地否)로서 흉괘라고 하겠으나 도가 탄생하는 근본자리에서 보면 정괘(正卦)인 것이다. 머리가 먼저 나왔던 아기는 태어나 자라서 직립하게 되면 그 괘상은 머리를 위로 처든 지천태(地天泰)로 바뀐다.

또 태외 싸움으로 야곱과 에서의 예를 들 수 있다. 야곱은 태중 싸움에서 실패하고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 밖으로 나온다. 성장 후 그는 떡과 팥죽으로 에서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는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장자권과 함께 에서에게 줄 축복마저 모두 빼앗는다. 어머니의 도움을 통해 축복과 장자권을 빼앗은 것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타락은 해와(여자)가 먼저 했다. 보다 하늘편인 야곱을 협조했다는 조건을 통해 해와를 복귀하려는 숨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도적으로는 지천태(地天泰)의 시운이라야 도가 정상위(正常位)를 회복 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라 본다.

성서에서 보듯이 천사는 그의 머리인 예수를 붙들지 아니하고 지체인 자(천사)가 자기위치를 떠나 도의 머리로 자처한 것을 본다(골로새서 2장18절~19절, 유다서 1장6절). 그런가 하면 예수를 맏아들(히브리서 1장6절, 로마서 8장9절), 땅의 임금들의 머리(요한계시록 1장5절)라고 했다. 예수는 도적 장자라고 성서는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천사들은 아무리 영적 존재라 해도 ‘아들들’ 곧 차자들로 나타난다(욥기 1장6절, 창세기 6장2절). 아담이 도의 장자로 나오지 못하고 거짓도인 차자(천사)가 먼저 나와 장자 격으로 참 도인 양 행세함은 도태속의 도가 손발을 먼저 내밀고 역산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들의 신앙은 거꾸로 나온 도의 위치를 정상위로 회복하려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고행 속에 걷는 구도의 길이 아니겠는가. 차자격인 육체의 소욕과 사심을 버리고 장자격인 영의 소욕을 앞세우려 노력하는 것이 신앙의 정도이다. 그러나 인생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바울의 탄식과 솔직한 고백을 보자.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 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 7장14절~24절).

 

또 모세가 출 애급 할 때 장자들이 죽는 재앙 등 10재앙의 기적을 행했다(출 애급기 7장10절~12장36절). 하지만 사탄 상징인 바로왕은 이스라엘민족을 해방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가 애급인의 장자를 모조리 죽였을 때 바로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한다. 장자와 관련하여 이러한 사건도 깊은 뜻을 시사해 준다.

지체요 차자인 거짓도가 머리요 장자인 참 도에 앞서 나온 것이 사산(死産)이요 타락이라고 볼 때 이러한 예는 성서 속의 역사적 인물에도 나타난다. 진왕(眞王) 다윗이 나오기 전에 위왕(僞王) 사울이 먼저 나오는 것이나, 메시아 예수에 앞서 세례요한이 먼저 나온 것이 그렇다.

아담은 도의 순산을 정각하지 못했다. 때문에 해와가 천사의 꼬임에 빠져 거짓 도과인 선악과를 먹었고 이를 아담에게 주어 아담도 이를 먹고 타락하고 말았다. 역의 관점에서 이는 건(乾)인 머리가 먼저 나오지 못하고 곤(坤)인 배(腹)가 먼저 나온 결과가 타락을 초래한 것이다. 역에서 곤은 배를 상징 하는데 성서에서도 배는 타락한 천사 누시엘(루시퍼. 히브리어로는 헤엘렐, 라틴어로 루시페르. 금성, 계명성이란 뜻)의 거짓 도를 상징한다.

“저희 신은 배(腹)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립보서 3장19절~20절).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工巧)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 하느니라”(로마서 16장18절).

 

해와는 거짓 도인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그 도는 머리가 아닌 배의 도로 전락 되었고, 땅의 일만 생각하고, 배만 섬기는 저차원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뱀이 배를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는 것도 이를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꾸짖을 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마태복음 3장7절, 23장33절),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요한복음 8장44절) 했고 요한 계시록 12장9절에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한 기록은 모두 타락한 천사의 거짓 도를 상징한 것이다. 또 창세기 3장14절에 “하나님이 뱀에게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 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 지니라”고 한 것도 땅으로 떨어진 거짓 도를 저주 한 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들에게 헛된 사심(邪心)의 배를 비우고 빈 심기(心器)에 참 도를 채워 참 배가 되라고 역과 성서는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의 머리를 우선하지 않고 제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인간 군상들이 아닌가. 자기 배를 우선하는 신앙은 거짓 신앙이다. 역산(逆産)이요 사도(死道)이다.

다시 역으로 돌아가 설괘전을 보자.

“하늘(父)과 땅(母)이 그 위치를 정하였다. 산과 못이 서로 기를 통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고, 물과 불이 서로 꺼지지 않아, 팔괘가 서로 교착하니, 지나간 일을 아는 것은 순리이고 앞으로 오는 일을 아는 것은 거슬러 가니, 이러므로 역은 거슬러 셈하여 가는 것이다(天地定位 山澤通氣 雷風相薄 水火不相射 八卦相錯 數往者順 知來者易 是故易逆數也)”.

“신은 만물을 묘하게 한다. 만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우뢰(雷, 震卦) 보다 빠른 것이 없다. 만물을 흔들어 놓는 것은 바람(風, 巽卦) 보다 더한 것이 없다. 만물을 건조하게 하는 것은 불(火, 离卦) 보다 더한 것이 없다. 만물을 즐겁게 하는 것은 못(澤, 兌卦) 보다 더한 것이 없다. 만물을 윤나게 하는 것은 물(水, 坎卦) 보다 더한 것이 없다. 만물의 끝맺음은 간괘(艮卦, 山) 보다 더한 것이 없다. 그러니 물과 불이 서로 침노하지 않지만 그 효용이 서로 미치고, 우레와 바람이 서로 다닥치지만 충돌하지 아니하고, 산과 못이 그 형상은 다르나 서로 기운을 통한다. 그런 연후에 만물을 변화하게 하여 만물을 골고루 성취 할 수 있는 것이다(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 動萬物者 莫疾乎雷 橈萬物者 莫疾乎風 燥萬物者 莫熯乎火 說萬物者 莫說乎澤 潤萬物者 莫潤乎水 終萬物始萬物者 莫盛乎艮 故水火相逮 雷風不相悖 山澤通氣然後 能變化 旣成萬物也)”.

 

설괘전의 두 구절에서 볼 때 ‘천지정위(天地定位)’란 하늘(父)과 땅(母)이 바른 위치를 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만 산과 못이 서로 기운을 통하고, 우레와 바람은 서로 다닥치고, 물과 불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복희팔괘나 문왕팔괘 모두 천지정위를 하지 못한 괘다. 복희괘는 건남곤북(乾南坤北) 문왕괘는 이남감북(离南坎北)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설명될 정역괘(正易卦)에서 다시 밝혀질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천지정위’란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담과 해와의 타락 이후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혼음과 난륜과 무도가 창궐하는 죄악역사가 전개 되어 왔다. 역의 관점에서 패륜괘인 문왕괘(文王卦)가 등장하는 것이다.

 

낙서(洛書)와 문왕팔괘

중국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9년 동안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영묘(靈妙)한 거북의 등에 쓰인 글을 얻었는데 이를 낙서(洛書)라 한다. 이 낙서의 구궁도(九宮圖)를 보고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작괘한 것이 문왕팔괘(文王八卦)이다. 천하난세(天下亂世)에 나온 괘다. 은(殷)나라 말기 나라가 혼란한 때에 거미와 도마뱀과 지내가 우글거리는 토굴에서 7년 동안 옥살이 하던 문왕(성은 희<熙> 이름은 창<昌>)은 앞날의 어지러운 세상을 예측하고 주왕(紂王)의 눈을 피해 팔괘를 지었던 것이다.

*낙서 그림

먼저 낙서를 분석해 보기로 하자. 이미 관찰 했듯이 하도는 1 6, 2 7, 3 8, 4 9, 5 10의 우수와 기수 즉, 음양이 조화 되어 있고 금 목 수 화 토가 상생상을 이루고 있다. 이에 반해 낙서는 1 9, 2 8, 3 7, 4 6과 같이 전혀 조화 되어 있지 않다. 하도는 중앙의 5수와 10수가 조화 되어 있는데 비해 낙서는 하나님 수인 10수를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10수는 곧 0수로서 역의 관점에서 무극(無極)인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버린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셈이다.

낙서는 상극수요 실향도(失鄕圖), 문왕괘는 타락이후의 죄악사

하도는 남방에 화(火)가 있고 서방에 금(金)이 있어 방위가 정위(定位) 된 데 비해 낙서는 서로 위치가 전위(轉位) 되어 있다. 따라서 화‧금이 서로 고향을 상실한 실향도(失鄕圖)임을 보여 주고 있다. 인간이 본래 살았어야 할 이상적 본향 땅을 잃어버린 것이다. 또 낙서는 토극수,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 목극토의 상극상(相剋相)을 나타내는 등 혼란스럽다. 이처럼 문왕은 상극, 부조화의 모습에서 타락된 인류역사를 내다보고 패륜괘인 문왕팔괘를 작괘 한다.

이 낙서를 보고 문왕은 건곤(乾坤)의 자리에 이남감북(离南坎北)의 괘를 긋고 어머니와 아들(坤母와 艮), 오라비와 누이(震과 兌), 아버지와 딸(乾父와 巽)이 상대하는 패륜괘를 그린다. 문왕은 왜 이처럼 패륜괘를 작괘 하였을까. 이를 성서와 비교하며 살펴보기로 하자.

*문왕팔괘 그림

이미 살핀 것처럼 복희팔괘를 보면 건을 중심으로 왼쪽으로 돌아 태 이 진괘는 초효가 모두 양괘이고, 이어서 곤 간 감 손괘는 초효가 모두 음괘로서 남녀가 서로 마주 보며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생산을 전제로 한 괘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왕팔괘에 와서는 전혀 다르다. 이괘(离卦) 즉, 중녀가 건괘(乾卦)인 아버지의 자리를 밀어내 차지하고 있고, 감괘(坎卦)인 중남이 곤괘(坤卦)인 어머니의 자리에 앉아 있다. 장남인 진괘(震卦)가 중녀인 이괘(离卦)의 자리를, 간괘(艮卦)인 소남이 장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아버지인 건괘는 소남의 자리로 내몰리는 형국이다. 매우 불안정하고 패륜적이고 부도덕한 모습이다.

문왕괘에서 왜 건곤 부모의 자리를 중남중녀인 감이(坎离)가 차지해 있는 것일까. 아담은 타락으로 부모의 자리를 잃었다. 출 애급 노정에서 하나님은 대신 낮에는 구름기둥(北坎水), 밤에는 불기둥(南离火)으로 나타나 모세를 통해 바로왕의 압제에서 벗어나 이스라엘민족을 인도한다(출 애급기 13장21절~22절, 14장19절). 이스라엘 진(陣) 앞에서 행하던 사자(使者)는 곧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서 나타나는데 이는 천사들의 상징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남중녀인 감과 이가 장남장녀인 진손(震巽)을 제치고 남북부모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이미 복희괘에서 언급한 것처럼 차남이 장남 격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진과 손인 장남장녀가 남북부모의 자리에 앉을 수 없는 것이다. 대신 동과 동남에서 우레(雷)와 바람(風)으로 용사(用事) 하고 있다(출 애급기 19장16절~18절).

모세의 출 애급 노정은 이스라엘민족이 가나안 복지를 찾아 가는 노정이다. 곧 실향민들이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가는 노정인 것이다. 낙서는 이미 살핀바 금(金)과 화(火)가 뒤바뀐 실향도이다. 모세의 출 애급은 금화정역(金火正易)을 깨닫고 고향을 찾아가는 괘 상의 노정이라 하겠다. 그 고향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 아내들인 사라, 리브가, 레아의 뼈가 막벨라 굴에 묻힌 곳이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이 3대 조상의 선영이 있는 곳이 가나안 땅이다. 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노정에서 문왕괘는 부모의 자리에 감(구름기둥)과 이(불기둥)를 대신 세워두고 있다.

아담이 타락하여 상실한 천지부모의 자리는 문왕괘에서 천경서북(天傾西北) 지위서남(地危西南) 즉, 서남과 서북으로 각각 기울어져 있다. 또 중남중녀가 부모의 자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패륜 괘 상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천지부모가 정위(定位)치 못한 가운데 구약의 섭리는 그 자리에 대신 천사를 방편으로 세운다. 때문에 우레와 번개와 바람 속에 공포와 저주와 질투의 신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레와 번개와 폭풍 속에는 허상의 신이었을 뿐 참사랑의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세미(細微)한 바람 속에 현현(顯現)한 것이 참 하나님의 모습이었다(열왕기 상 19장11절~12절).

다시 문왕괘를 살펴보자. 죄악으로 점철된 고난과 패륜의 역사 속에 밀려나 있는 부모가 그래도 서남과 서북에서 그리스도의 신부격인 태(兌, 小女)를 품어 보호 양육하고 있지 않은가. 역의 관점에서 도의 유아를 품은 격이다. 또한 신부격인 인간이 신랑격인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암호화 되어 있음을 본다. 아기를 품고 있는 형국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인격과 심정,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자식은 부모에게 패륜을 저지를 지언 정 부모는 그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다. 따라서 역에도 윤리와 도덕은 물론 심정과 사랑, 인격을 괘 상으로 상징화 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 낙서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타락이후 죄악의 역사 속에서도 도의 사위기대(四位基臺)의 싹이 자라고 있음을 본다. 우수와 기수가 서로 맞지 않는 혼탁한 상황 속에서도 도적 4위의 유아(乳兒)가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장차 도의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 즉, 참부모가 현현하기 위한 도적인 비의가 숨겨져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잃어버린 창조본연의 4위를 찾아가는 비의, 암호가 숨어 있음을 알게 된다.

타락이후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복귀된 창조본연의 사위기대를 이루시려고 그 기대를 조성해 나오신 사실을 역에서도 발견 된다. 낙서가 보여주는 2 4 6 8의 지수(地數)가 네 발로 자라나는 모습이 그렇다. 머리를 거꾸로 하여 태어난 아기가 일정기간이 지나면 몸을 앞뒤로 뒤척이고, 좀 더 지나면 네 발(두 팔 두 다리)로 기어 다닌다. 그 후 서서 머리를 직립할 때 정상 위 된 모습이다. 낙서는 도의 유아가 거슬러 자라는 형국이다. 하도는 네 귀가 없으나 낙서가 네 귀에 발이 있는 것은 이 같은 암호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실로 여기에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가 있는 것이다. 창조본연의 사위기대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이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을 중심한 창조본연의 사위기대(四位基臺)를 이루지 못했다. 낙서의 네 귀는 이를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천부경(天符經)의 ‘3이 움직여 4를 이룬다(運三四成)’와 ‘4를 터로 하여 3이 능동(能動)하는(四基三動)’ 형국이다.

실향은 이 사위기대를 잃어버린 것이다. 아담의 본향은 창조본연의 에덴이었다. 그러나 타락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도의 고향을 잃은 것이다. 낙서를 실향도 라고 했다. 남방 2 7화와 서방 4 9금이 그 위치가 뒤바뀐 것이 낙서이다. 그러므로 낙서는 잃어버린 창조본연의 고향, 도의 고향을 되찾으라고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3대 조상의 뼈가 묻힌 가나안을 향해 가는 피어린 고난의 모세 노정도 모든 구도자들의 노정이라 할 것이다. 애급은 낡은 세상 선천의 상징이고, 가나안복지는 새 세상 후천의 상징인 것이다. 가나안의 새로운 세상은 반드시 광야의 구도과정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죄를 벗지 못한 죄악속의 인간들에게 광야를 거치지 않은 가나안이란 상상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광야에 나온 60만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불신하고 낡은 애급을 동경하다 다 죽고 광야노정에서 출생한 새로운 세대(2세)가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하게 된다.

 

구약과 문왕괘는 본향(本鄕)을 찾아가는 피어린 노정

본향(本鄕)을 찾아가는 노정에서 낡은 종교, 낡은 생각, 낡은 가치관, 낡은 관념의 소유자는 선천과 후천이 뒤바뀌는 광야에서 모두 사멸되고 새로 거듭난 새 세대, 새 무리 만이 개벽 개문된 후천의 새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성서와 역은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本鄕)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 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思慕)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城)을 예비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1장13절~16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居)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장1절~3절).

 

이 성구들은 더 나은 본향이 하늘 아버지의 집(나라)에 있음을 말하고 있다. 구약의 역사는 도의 고향, 하나님의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동경 하면서 그곳으로 회귀하려 고뇌하고 모색 해 온 역사였던 것이다. 창조→타락→복귀의 원리로 전개 되어 나온 섭리사라 본다.

그럼, 이제부터는 타락이후 전개되는 패륜의 역사적 사건을 성서의 역사와 문왕팔괘를 비교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낙서를 보고 문왕은 패도와 난륜의 괘 상을 작괘 했다. 곤모(坤母, 어머니)와 간남(艮男, 삼남), 건부(乾父, 아버지)와 손녀(巽女, 장녀), 진(震, 오라비)과 태(兌, 누이동생)의 남매가 상대하는 패륜괘를 알아보자.

먼저 노아가정에서 발생한 곤모와 간남 즉, 친모상간(親母相姦)에 관한 사건이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지라. 가나안의 함이 그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창세기 9장20절~25절).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보았다는 것은 아비의 생식기를 보았다는 것이다. 생식기를 본 것이 무슨 큰 죄가 되 길래 가나안이 저토록 대대손손 저주받을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엔 무슨 곡절이 있지 않을까. 이 역시 어떤 암호와 상징이 아닐까. 물론 함이 아비의 생식기를 보고 부끄러워 한 것은 원죄를 벗지 못한 인간으로서 타락성 본성을 드러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함은 부끄럼을 탈 짓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그런 상황을 무사히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 했어야 했다. 아담과 해와가 범죄하고 부끄러워 무화과 잎으로 하체를 가렸던 것처럼 함도 그와 같은 조건의 부끄러운 사건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사탄의 혈통을 벗지 못한 채 지내온 4000년 만에 원죄 없는 하나님의 독생자요 메시아로 오신분이 예수였다. 그러나 그는 원죄 없는 혈대를 이을 가정을 갖지 못했다.

가나안은 함의 네 번째 아들이고 가나안 7족의 조상이 된다. 함이 불륜의 열매로 얻은 가나안이기에 노아가 저토록 저주 했다고 본다. 다음의 성구를 통해 생각해 보자.

 

“네 어미의 하체는 곧 네 아비의 하체니 너는 범(犯)치 말라. 그는 네 어미인 즉 너는 그의 하체를 범치 말지니라”(레위기 18장7절).

“네 가운데 자기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는 자도 있었으며…”(에스겔 22장10절).

 

이 성구에서 ‘아비의 하체’는 곧 어미의 하체이고, ‘아비의 하체를 드러낸 자’는 제 어미와의 상간(相姦)한 자에 대한 간접 표현임을 알 수 있다.

성서 속에는 제 어미와 불륜을 저지른 사건이 이밖에도 여러 곳에 보인다. 이스라엘(야곱)의 장자 루우벤이 친모 레아에게 합환채(合歡菜: 만드라크<Mandrakes>, 일종의 최음제)를 주고 통간(通姦) 하려 했으나 라헬의 슬기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끝내 라헬의 시녀이자 서모(庶母)인 빌하와 통간하고 만다. 이로 인해 그는 장자의 명분을 잃게 된다(창세기 30장14절~15절, 35장22절, 49장3절~4절).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다. 누가 아비의 아내를 취(取)하였다 하는 도다”(고린도 전서 5장1절).

 

신약에서도 드러난 친모상간 사건이다. 사도바울은 친모상간의 부끄러운 죄를 직접화법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완곡하게 ‘아비의 아내’라고 말했다. ‘아비의 아내’는 곧 어머니 이다.

다음은 친부상간으로 건부(乾父)와 손녀(巽女)가 상대하는 즉, 아비와 딸과의 통간 사건이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동굴 속에서 그의 두 딸과 혼음상간(混淫相姦)한 사건을 들 수 있다. 두 딸이 아비 롯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 한다(창세기 19장32절~38절). 큰딸은 아들을 낳아 모압이라 했는데 모압 족속의 조상이 되고, 작은딸이 낳은 아들 이름은 벤암미라 하고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 7족을 모두 멸망시키라고 명했다. 거기에는 이밖에도 모압족과 암몬족이라는 불륜의 열매들이 먼저 차지해 거주하고 있었다. 그들은 친모상간과 친부상간 등 죄악의 열매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들을 아낌없이 멸하라고 명했던 것이다.

또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이 동침하는 불륜을 저지른다(창세기 38장18절). 이 시부와 자부 사이에 베레스와 세라가 태어난 것이다.

오늘 우리가 후천시대를 개문하고 잃어버린 도의 본향을 찾아 들어 갈 때 지금까지 쌓였던 육욕의 악취를 제거하고, 선천의 낡은 관습과 창궐하는 사교(邪敎)와 혹세무민, 패륜과 무도를 먼저 정화(淨化)해야 함을 교훈하는 것이겠다.

그럼 진(震)과 태(兌)가 상대한 남매간의 불륜의 사건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왕 다윗가정에서부터 전개된다. 다윗이 목욕하는 밧세바의 모습에 욕정을 품고 간통한 것이다(사무엘 하 11장2절~4절). 그리고 다윗은 또 부하 장수이자 그의 남편인 우리아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한다(사무엘 하 11장15절~17절). 이로 인해 이 다윗가에 사탄이 침입하여 다윗의 장남 암논이 이복누이 다말을 강간한다. 이에 복수심을 품은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게 되고, 골육상쟁이 벌어지게 된다(사무엘 하 13장1절~15절, 20절~39절).

아담의 타락으로 본향을 잃어버린 이후 사망의 권세 즉, 사탄이 지배하는 인류사로서 패륜과 혼음, 패역이 난무하는 죄악으로 점철된 역사였다. 레위기를 보면 이런 상황을 더욱 알 수 있을 것이다.

 

“골육지친을 가까이 하여 그 하체를 범죄치 말라. 네 어미의 하체는 곧 아비의 하체니 범죄치 말라. 계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이는 네 아비의 하체니라. 네 자매 곧 네 아비의 딸이나 네 어미의 딸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손녀나 외손녀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네 계모의 딸의 하체를 범치 말라. 고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이모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네 아비 형제의 아내(백숙모)를 가까이 하여 그 하체를 범치 말라. 자부의 하체를 범치 말라. 형제의 아내의 하체를 범치 말라. 너는 여인과 그 여인의 딸의 하체를 아울러 범치 말며, 그 여인의 손녀나 외손녀를 아울러 취하여 범치 말라. 이는 악행이니라”(레위기 18장6절~17절).

 

또 “타인의 아내와 통간하지 말라”(레위기 18장20절) 했고, 더 나아가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라”(레위기 18장23절)고 했다. 이어 24절~28절을 보면 “너희의 전에 있던 그 땅 거민이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고, 그 땅도 더러워 졌느니라. 너희도 더럽히면 그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 같이 너희도 토할까 하노라” 하여 위의 사실들을 증거하고 있다.

곤모와 간남, 건부와 손녀, 진태의 남매가 불륜 하는 문왕괘는 인간 타락역사에서 보여주는 세 가지 흔적이라고 할 것이다. 이를 문왕은 괘 상으로 부호화 시켰고, 성서는 역사적 사건으로 전개 시켰던 것이다.

성서의 4000년 구약사는 성서(聖書)가 아닌 性書(성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갖 성적 스캔들이 난무한 기록이다. 구약은 하도와 복희팔괘, 낙서와 문왕팔괘가 보여주듯 창조본연의 에덴동산을 잃은 실향민이 본향(本鄕)을 찾아가는 피어린 기록이고, 참 신랑을 고대해온 인류사요, 참 신부를 찾기 까지 온갖 난륜과 무도를 헤치고나온 눈물겨운 참절(慘絶)한 역사인 것이다.

 

정역팔괘와 천지부모(天地父母) 정착 완성시대

앞에서 언급했듯이 복희괘나 문왕괘 모두 천지정위(天地定位)가 되어 있지 않다. 모태 속 태아가 출산 시엔 거꾸로 머리가 먼저 나오고, 태어나 자라면서부터는 머리를 위로하는 정상위가 되는 것이다. 이는 지천태괘(地天泰卦)를 말한다. 마찬가지로 정상위된 제3의 괘가 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역팔괘도

복희괘와 문왕괘에 이어 출현한 괘가 바로 김일부(金一夫. 1826-1898)의 정역팔괘(正易八卦)이다. 충청남도 논산 양촌면 남산리에서 출생한 일부는 36세 되던 1861년 당시 형조참판을 지낸 연담 이운규(蓮潭 李雲圭)의 문하에서 배웠고, 역학을 연구한지 18년만인 1879년 정역괘를 그었다. 60세 되던 1885년 정역을 완성 했다고 한다.

정역은 곤남건북(坤南乾北)이므로 천지가 정위된 괘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천지부모(天地父母)가 제 위치에 정착 해야만 자녀들이 제자리를 찾게 된다. 천지정위 함으로 산택통기하고 뇌풍상박하고 수화불상사 함을 알 수 있다. 정역팔괘는 천지정위한 참부모를 모시고 도(道)적인 언약의 자녀들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다.

이제 정역을 통해 건곤(乾坤)이 제 위치에 바로 세워져 천상천하의 윤리가 바로서고, 음양이 조화 되어 남과 여가 평등하고, 곤남건북으로 지천태의 운을 조성하여 영원한 화평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을 완성하는 성약(成約)시대를 예시한 천지정위 된 성역(成易)인 정역팔괘의 출현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애당초 복희괘에서 제시된 천지정위 산택통기 뇌풍상박 수화불상사의 괘도(卦圖)를 계승, 완성한 역이 정역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복희괘는 창조본연의 도판을 제시한 것이다.

그런데 설괘전에서 “하나님이 동방에서 나온다(帝出乎震)”고 했고, “간(艮)에서 말씀을 이룬다(成言乎艮)”고 했다. 이어서 “동북의 괘인 간방에서 만물이 시작 되고 간에서 마친다. 그러므로 간에서 말씀이 완성 된다(艮 東北之卦也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 故曰成言乎艮)”고 말했다. 간방은 동북방으로서 우리 대한민국을 가리킨다. 이 설괘전의 주된 사상은 “만물이 진에서 나온다(萬物出乎震)”에서 시작하여 “간에서 말씀을 이룬다(成言乎艮)”로 끝맺고 있는 것이다. 이로 보아 역은 만물이 출생한 후부터 생장(生長: 복희역) 내지 성장(成長: 문왕역)의 과정을 거쳐 완성(정역) 되기까지의 자라는 과정을 표상한 것이라 본다. 그러므로 복희괘와 문왕괘의 괘도(卦圖) 역시 각 괘가 바깥쪽으로 머리를 두고 외적 외향성으로 성장해 가는 원리를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정역괘는 이와 달리 각 괘의 머리를 밖으로부터 괘도의 중심점인 안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귀일시켜 놓았는데 이는 생장원리의 방향으로부터 성수원리(成遂原理)의 내적 내향성으로의 방향전환을 의미한다.

동북의 괘인 간괘에서 ‘말씀’이 완성된다고 했고, 이 말씀이 완성된 역리(易理)는 “신은 말씀으로 만물을 묘하게 한다(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의 말씀을 가지고 오신 분으로 계승되어 넘어 가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동북의 간괘에서 만물의 시작과 마침이 이루어지고, 또 간괘에서 말씀을 이룬다고 하여 ‘말씀의 시원과 결실이 진(동방), 간(동북방)에서 이루어진다.’ 했다. 성서에서는 ‘처음과 나중’이요, ‘알파요 오메가’라 했다. 그런데 우리민족의 고유 뿌리경전인 천부경은 “하나(一)에서 비롯되나 비롯이 없는 하나요, 하나가 셋으로 갈라져도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하나로 마치되 마침이 없는 하나다(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 …一終無終一)”라고 했다. 여타의 경전들이 시작도 있고 끝도 있다고 했으나 천부경은 ‘하나(한, 一)’를 말하면서 그것은 시작도 마침도 없는(無始無終) ‘하나(한)’라고 하여 일원(一圓)의 원리를 제시 하고 있다. 설괘전을 보면 역괘(易卦)의 상징으로 진(震)은 ‘씨’요 간(艮)은 ‘열매(果)’를 뜻한다(其於稼也 爲反生<震卦條>, 爲果<艮卦條>). 다시 말해 진괘는 봄에 땅속의 씨가 싹터 나오는 것을 상징하고, 간괘는 초목에 열매가 열린 것을 상징한다. 모든 문명이 동북간방인 한반도에서 시작해서 한반도에서 꽃피고 열매 맺는다는 말이다. 또 이 씨앗은 세계로 뿌려지고 다시 한반도로 돌아와 열매 맺는다는 원리이다. 이 씨가 곧 하나님의 진리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성서에서도 씨는 곧 말씀이라고 했다. 다시 성서를 관찰해 보자.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누가복음 8장11절).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베드로전서 1장23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있으리니”(예레미야 31장27절).

 

이 성구는 씨가 곧 말씀이요, 하나님이 씨 뿌릴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이밖에 누가복음 8장5절~8절, 마태복음 13장3절~32절과 37절, 마가복음 4장14절~20절, 시편 126편5절~6절 등 성서의 여러 곳에 언급 되어 있다. 또 ‘사람의 씨는 좋은 씨요 인자(예수)가 심은 것이며’(마태복음 13장24절), ‘짐승의 씨는 가라지 씨로(마태복음 13장39절) 원수 마귀가 심은 것’이다. 이처럼 씨는 바로 말씀을 의미하고 있다.

그런데 말씀의 근원은 곧 만교(萬敎)의 근원이기도 하다. 이러한 진리의 근원성과 포함성에 대해 신라 말 고운(孤雲)최치원(崔致遠)은 ‘난랑비서(鸞郞碑序)’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한다. 이는 종교를 창설한 근원이다. 그 가르침의 내용이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다. 이는 실로 3교(유교 도교 불교)의 가르침을 이미 제 속에 포함한 것으로 모든 생명을 맞아 교화 하였다…(國有玄妙之道 曰 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三國史記, 金富軾)”

 

이상의 내용을 근거로 보아 현묘한 도, 즉 ‘풍류도(風流道)’가 유교 불교 도교의 진리를 후천적으로 받아들여 3교를 포함했다는 뜻이 아니고, 그 보다는 원천적으로 한민족의 고유의 도(진리) 속에는 이미 모든 종교의 원리가 내재해 있었다는 것이다. 풍류도는 배달도(단군도)에 대한 이두 식 표기이다. 그렇다면 모든 종교의 근원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한민족의 고유의 도를 진리의 원천적 씨로 하여 퍼져 나간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 된다. ‘난랑비서’의 이러한 글은 세계사상사를 뒤엎을 만한 일대 혁명적 선언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정사로 취급되고 있는 ‘삼국사기’에 저자 김부식이 분명히 기록해 놓은 만큼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모든 종교는 현묘한 대도(大道)인 풍류도 이후에 출현한 것들이다. 우리민족의 고유경전인 신사기(神事記)의 ‘교화기(敎化紀)’편에 “하나님의 아들 한웅(桓雄)이 인간세상에 오시어 대도(大道)를 세우시고, 큰 가르침을 베푸시어 어리석은 백성들을 감화시켰다(桓雄 以神化人 立大道 設大敎 感化蠢蠢民)”고 했다. 노자(老子)가 도덕경 제18장에서 “대도가 폐한 이후에 인의의 종교가 나왔다(大道廢 有仁義)”고 설파한 것도 이를 암시 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정도(正道)인 대도가 출현해 말씀 즉, 언약을 완성하는 성약(成約)의 대도시대가 도래하면 하나의 진리로 도의 완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다시 역으로 돌아가자. 정역괘의 원리는 그 근간이 음양조화(陰陽調和)의 원리라 할 것이다. 정역에서 음양이 합덕(合德)된 도리를 신(神)이라 하고 이 신이 만물성도(萬物成道)의 진리로서 ‘말씀’ 즉, 도(logos)라고 한다. 그러니까 건곤합덕의 도인 신이 만물을 통해 나타내는 것이 말씀이라고 보는 것이다.

정역은 종래의 선천개념인 생성, 장생의 단계를 지난 완성의 단계인 정역팔괘도를 제시한다. 정역은 하도 즉, 복희팔괘의 구도를 다시 완성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창조본연의 세계를 복귀하는 도판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아담 해와가 이루지 못했고 예수가 이루려 했고, 참부모에 의해 완성된 창조본연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역괘에서는 문왕괘에서 주축을 이루었던 감(중남)과 이(중녀), 진(장남)과 손(장녀)이 후천에는 좌우에서 건(부)과 곤(모)을 보좌하고, 서북과 서남으로 기울어졌던 건 곤의 위치가 바르게 되었으며, 태와 간이 주축을 이루게 된다. 따라서 간태음양(艮兌陰陽)의 합일은 동서의 합일과 평화를 상징한다. 이러한 정역괘상은 곧 복희팔괘가 지향했던 창조본연의 완성을 말해 주는 것이다. 주역의 천지정위, 산택통기, 뇌풍상박, 수화불상사는 지금까지 복희팔괘의 설명으로 이해되었으나 알고 보면 정역팔괘를 예시한 것으로 추리하게 된다. 곧 하도의 이상 즉, 창조본연의 새로운 우주질서가 완성된 괘가 정역팔괘도라는 것이다. 김일부는 이 정역팔괘도를 금화정역도(金火正易圖)로 나타내었다. 이는 일월운행(日月運行)의 정상화를 뜻하는 괘도이다.

정역은 대부분 일월(日月)에 대한 논의로 구성되어 있다. 정역에서 ‘역(易)은 력(曆)’이라 했다. 이는 일월의 운행질서를 말한다. (정역은 후천의 력<曆>을 1년 360일 도수로 한다. 정력<正曆>에 대한 언급은 지면 사정상 생략한다.)

정역에서 “일월(日月)이 바르지 않으면 역(易)은 역이 될 수 없다(日月不正 易匪易, ‘正易’ 20장)”고 했고, “천지도 일월이 아니면 빈 껍질이다(天地日月 非日月 空殼, ‘正易’ 8장)”는 등의 언급이 그렇다. 여기서 일(日, Sun)과 월(月, Moon)의 설명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역은 정력(正曆)이요, 이는 곧 정도(正道)를 말한다. 그런데 역은 일(해) 월(달)이요, 일월은 양과 음, 남과 여, 천지(天地)이다. 천지는 건곤(乾坤)이요, 건곤은 부모이다. 그러므로 천지부모는 해(日)와 달(月)이요, 해와 달은 정역이자 정력(正曆)이다. 다시 말해 해(Sun)와 달(Moon)의 바른 운행이 정역(正易‐正曆)이요, 정역은 정도요, 이 건곤합덕(乾坤合德)의 도는 말씀 곧 하나님이요, 로고스(Logos)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도 우리는 ‘Sun ‐日(明)月‐ Moon’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이제는 성서를 고찰해 보자.

구약 예레미야 예언서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패역(悖逆)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 하겠느냐. 하나님이 새 일을 세상에 창조 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예레미야 31장22절).

 

하나님이 새 일을 세상에 창조 하셨다는 것이 여자가 남자를 안는 일이라고 했다. 이는 무슨 뜻인가. 선천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해와로 인해 타락된 세상이다. 해와가 정과(正果)요 선과(善果)인 생명과(生命果)를 깨닫지 못하고 사망과(死亡果)인 악과(惡果)를 따 먹음으로써 타락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선천은 남자가 여자를 안던 시대였다. 동양적 역의 관점으로 말하면 억음존양(抑陰尊陽)하던 시대이다. 도적(道的)으로는 해와가 성도(成道)하지 못한 시대다. 선천은 복희팔괘에서 보는 천지비(天地否 ☰☷)괘로 암호화된 시대였다.

그러나 여자가 남자를 안는 것이 새 일이란 곧 지천태(地天泰 ☷☰)의 시운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낡고 타락으로 점철된 선천시대가 물러가고 새로운 신부 같은 지천태 운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후천은 곤운(坤運)시대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예레미야 역시 동양의 역을 모르던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지천태의 운을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고 표현 했던 것이다.

성서에는 맷돌의 사건이 나온다. 구약 사사기를 보자.

 

“한 여인이 맷돌 윗 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던져 그 두골(頭骨)을 깨뜨리니”(사사기 9장53절).

 

지천태운이 오면 적그리스도 형 거짓 왕 아비멜렉 같은 거짓 진리를 심판 할 것을 암시 한 것이다. 맷돌의 이야기는 신약에도 발견 된다.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태복음 24장41절).

 

맷돌을 갈고 있는 여인 중에서 지천태운을 깨친 여자는 데려가게 되고, 새 시대를 깨치지 못하고 낡은 시대에 매여 있는 여인은 버림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예수는 ‘남방 여왕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역의 남방 이칠화(二七火)다.

 

“심판 때에 남방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마태복음 12장42절).

 

이 역시 지천태운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후천개벽은 지천태(地天泰)의 시운, 맷돌로 비유

이처럼 성서에 비유 되고 있는 맷돌의 시운은 곧 지천태운을 말해 주고 있다. 맷돌은 이중으로 된 돌로서 숫돌이 밑에 놓이고 암돌이 위에서 돌며 곡물을 가는 것이다. 자연계의 모든 이치가 수컷이 능동적인 운동을 하는데 비해 맷돌만은 암돌이 위에서 움직인다. 이 맷돌의 비유는 곧 ‘여자가 남자를 안는 지천태의 운’을 말하는 것이다. 참고로, 강증산(姜甑山)은 도시(道詩)에서 “어느 먼 산에서 맷돌의 운이 오리오(運來重石何山遠), 아름드리 기둥에 분단장을 시키니 가을이도다(粧得尺椎古木秋)”라고 읊었다. ‘중석(重石)’은 이중으로 된 돌이다. 즉, 맷돌의 운이 도래함을 예언한 것이다.

후천은 여자가 남자를 안는 시대이다. 이는 여성시대요 물의시대 곧 해양섭리의 시운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억음존양하고 낡고 타락한 선천은 물러가고 정역(正易)에서 말하는 조양율음(調陽律陰) 정음정양(正陰正陽)으로 바뀌는 시대를 말해준다. 지천태 시대엔 정역의 예언처럼 천지정위(天地定位)된 참부모에 의한 참자녀가 탄생 된다.

홍수 심판 후 현존하는 인류의 조상은 노아의 여덟 식구다. 그러나 함의 실수로 노아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역은 여덟 식구를 팔괘로 부호화 하여 이를 말해 주고 있다. 정역이 천지정위 된 완성역이라면 구약과 신약의 약속을 이루는 성약의 원리 말씀과 만나야 한다. 후천 지천태 시대엔 오신 성약의 참부모와 참자녀의 도적(道的) 여덟 식구가 제자리를 찾고, 따라서 잃어버린 참가정이 완성될 것이고, 참부모에 의한 천일국이 창건될 것이다. 그리하여 인류가 소망하던 창조본연의 동산 에덴으로의 복귀가 이루어지고 이상적 본향은 실현될 것이다.

마치며

이상의 언급한 내용들을 통해서 역과 성서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가를 대강이나마 알아보았다. 이글은 성서와 역의 만남을 이루는 첫 시도에 불과 하다. 참부모님 섭리와의 연관성을 말해 보려 했다. 그러니만큼 독자제현의 질정을 바라며 특히 후학들의 더 깊은 연구가 있길 기대한다. 그래서 이 분야를 통해서도 참부모님을 증거 하자.

역과 성서의 예언대로 건(乾)과 곤(坤)이 천지정위(天地定位)된 참부모가 오시어 이 둘을 해후 시키고 축복결혼 시킴으로써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이 아닌 참사랑, 참생명, 참혈통을 잇는 후천 새 시대의 새로운 언약의 참 자녀, 도맥의 3남3녀인 참 자녀가 탄생될 것이다.

제3의 역이라 일컫는 정역팔괘는 천지인 참부모가 제자리에 정착하는 시운을 암시한 괘이다. 지구촌 인류를 향해 펼치신 ‘천지인 참부모 정착 실체 말씀 선포대회’는 곧 이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역은 이러한 참부모의 축복을 통한 참부부, 참자녀를 찾아 이상적인 완성된 참가정의 세상을 예시한 것이라 본다. 이를 성서는 역사를 통해 섭리 했고, 역은 이를 부호로 제시했다. 성서는 역사는 있되 부호가 없고, 역은 부호는 있되 역사가 없다는 것 뿐 결국 이 둘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역과 성서의 만남은 간동태서(艮東兌西)의 만남이요, 음과 양, 남과 여의 포옹이다. 이 둘을 해후시키고 축복결혼 시키자. 그리하여 하나의 지구가족을 이루자. 세계와 인류는 한 하나님 아래 한 가정 한 가족이 될 것이다.

 

참부모가 제 위치에 천지정위 된 정착시대를 맞는다. 하늘과 땅, 동과 서, 남과 여의 막혔던 기를 산택통기 함으로써 정음정양(正陰正陽) 하고, 뇌풍상박, 수화불상사하여 천기(天基)가 바로 잡히고 일월과 우주가 바른 질서로 운행 된다. 역력(易曆)의 차원을 넘어 천운 천도의 천력(天曆) 운수가 열려 가는 시대가 되었다.

흰옷 입은 오색인종 천일국 백성들이 어린양 잔치에 참예하려 구름떼 같이 몰려든다. 간태(艮兌)의 신랑신부들이 천일국가(天一國歌)의 합창축가에 맞추어 축복대열에 입장하고 있다. 금수강산엔 천일국화(天一國花)가 만개하고, 청풍에 휘날리는 천일국 깃발이 자랑스럽다. 천 지 인 삼계(三界)가 환호하고 박수소리 또한 요란하다.

참부모로부터 축복받은 참자녀들, 천일국 식구들은 이제 생명의 만나(말씀)를 도식(道食)하며, 생명과(生命果)를 먹고, 생명수(生命水)를 마음껏 마시며 기식영생(氣食永生) 하리라. 참자녀 된 오색인종은 지구위에 핀 조화로운 한 꽃이 되었다.

하늘부모님 참부모님과 인류의 소망인 천일국 창건, 창조본연의 하나님의 동산 에덴 복귀가 성취되는 감격의 그날이 온 것이다.

드디어 생명수 흐르는 저 천일국 에덴낙토엔 어느새 하늘로부터 성령의 꽃비가 내리고 있다.

-金 周 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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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이무환님의 댓글

천주적인 청운 천복의 새기원 천기의 새날들
축복결혼의 함성이 지구촌을 휘몰아치는
 그날을 위하여 합장축원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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