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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몰락, 不仁의 정치와 신하의 침묵...<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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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몰락, 不仁의 정치와 신하의 침묵

"대장부라면 진짜 저래야 한다.”(유방) “내가 너를 대신하겠다.” (항우)

 진시황의 순행(巡行)을 보면서 뇌까린 한고조(漢高祖)의 탄식이자 초패왕(楚覇王)의 다짐이다. 말하자면 진시황은 권력을 추구하는 사나이들의 로망이자 ‘큰 바위 얼굴’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존재로서 유일한 ‘자유인’ 말이다. 하지만 진시황 스스로는 만족했을까. 무한권력을 바닷물처럼 들이키면서 과연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을까.

 중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콘텐트는 진시황일 것이다. 각종 역사서에서 최신 영화까지 단골 주역이다. ‘출생의 비밀’로 시작해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 건립, 만리장성과 아방궁 축조, 영원한 제국의 허무한 종말, 병마용의 위용으로 이어지는 굴곡진 삶은 그 자체로 고사성어(故事成語)의 보고이기도 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여불위, 지록위마(指鹿爲馬)의 조고, 분서갱유(焚書坑儒)의 이사, 토사구팽(兎死狗烹)의 한신, 해하성에서 운명이 엇갈린 항우·유방도 모두 동시대 인물이었고, 이들에게 역사적 생명력을 부여한 이가 진시황이었다. 사마천의 『사기(史記)』도 진시황이 없었다면 드라마틱한 역동성이 없는 진부한 역사기술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런데 콘텐트로서 진시황의 흡인력은 무엇일까. 천하통일의 의지인가, 만리장성의 스케일인가, 영생불사의 집념인가. 아마도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가 가장 극대화된 상태가 아닐까. 돈이든, 제도든, 명예든 권력의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나이들은 진시황에게서 남성성의 뜨거운 분출을 만끽하는 것 아닐까. 반대로 이를 견제하는 입장에선 그의 허무한 몰락을 들어 차가운 경계를 새기는 것이 아닐까.

진시황은 중국 문화의 영원한 콘텐트다. 그는 뛰어난 선견지명과 과감한 결단으로 천하를 얻는 법은 알았으나 이를 지키는 법은 알지 못했다. 그에 대한 역사가들의 관심이 식지 않는 이유다. [중앙포토]
 

 

<진시황 강의>

왕리췬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김영사, 748, 22000

 

허난대 왕리췬(王立群) 교수의 『진시황 강의』는 그의 출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의미를 촘촘하게 정리하고 있다. 40편에 걸쳐 강의 형태로 정리한 책은 형가(荊軻)의 ‘암살 프로젝트’로 시작한다. 실패한 암살 기도는 필연인가. 역사에 가정(假定)은 무의미하겠지만, 만일 암살이 성공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대답은 ‘역사발전의 기회를 잃었을 것’이란다. 이 점은 장이머우의 영화 ‘영웅’과 흐름을 같이 한다. ‘영웅’에서 주인공인 자객 리롄제(李連杰)는 결정적 순간에 ‘십보일살(十步一殺)’의 검을 포기하고 스스로 화살세례를 받는다. 천하를 위해서다.

 진시황이 전국시대를 끝내면서 전란에 휩싸인 민초들의 고통을 덜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우와 유방의 ‘축록(逐鹿)’으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은 계속되지 않았나. 문제는 천하통일이 목표였을 뿐, 천하안민(天下安民)의 방법론은 아니었던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집권에만 매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은 공부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물론 진시황의 천하통일은 역사적 위업이고,그의 중앙집권제는 2000년을 지속한 정치체제이다. 하지만 이 또한 뉴턴의 말마따나 ‘거인의 어깨’ 덕분일 터이다. 앞선 35명의 진나라 왕들이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河海不擇細流)’ 정책으로 부국강병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반면 몰락은 순식간이다.불만의 들녘을 태우는 데는 ‘왕후장상이 씨가 따로 있느냐(王侯將相 寧有種乎)’는 횃불 하나면 족했다.

 역시 공성(攻城)보다 수성(守城)이 어렵다. 저자는 진시황이 치국에 실패한 이유로 차디찬 법가사상에 몰입한 불인(不仁)의 정치와 신하들의 침묵을 든다. 특히 천하통일 후 자신감이 넘쳐 쓴소리에 귀를 닫은 것을 몰락의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한다. 현대의 국가와 기업도 마찬가지다. 조고(趙高) 같은 간신과 이사(李斯)같은 기회주의자가 설치는 것은 결국 군주와 CEO의 책임 아니겠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도 “갈등은 아름답다. 설득과 대화로 민중의 자유를 지켜주지 않으면 군주도, 공화정의 지도자도 죽음을 당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점에서 일사불란함으로 영원한 제국을 꿈꿨던 진시황의 전제적 리더십과 경영전략, 그 성공과 실패는 후세의 영원한 반면교사다.

박종권 기자 (중앙일보) <책과 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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