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국 종교계가 배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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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상처 입은 사람들과 국가적 난제(難題)로 가득 찬 한국 사회를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종교와 인종의 장벽을 넘어 사랑과 존경을 받는다. 교황이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을 삶으로 증명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의 교황은 처음이다. 그 이전 역대 교황 265명이 프란치스코라는 칭호를 쓰지 않았던 이유는 자명하다. 교황청 자체가 막강한 거대 권력인 데다 한없이 높은 자리가 되어버린 교황에게 '빈자(貧者)들의 성인(聖人)'인 아시시의 성(聖) 프란치스코(1182~1226)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로 거기서 출발한다. 사랑과 청빈(淸貧)을 합친 영성(靈性)을 실천한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이 부활해야 교회가 살 수 있다는 통절한 인식이다. 벼랑에 선 오늘의 한국 종교 전체를 통타(痛打)하는 벼락같은 말씀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말씀만이 다가 아니다. 종교의 역사에서 결단의 약속과 좋은 말은 넘치도록 많았다. 다만 실천이 없었을 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힘은 소박한 일상의 실천에서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되기 전의 베르고글리오 신부는 조국 아르헨티나에서 빈자와 약자의 편이었다. 교황이 된 그는 부패의 온상이던 바티칸 은행을 개혁하고 마피아를 파문했다. 그러나 교황은 정의 실현을 앞세워 폭력을 정당화하는 해방신학과는 거리를 둔다. 영성을 결여한 사회 개혁 시도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 투쟁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다. 교황은 정의와 공평을 중시하지만 그것을 사랑과 온유함의 그릇에 담는다. 성난 얼굴과 강퍅한 목소리로 정의를 독점하면서 정치 투쟁을 일삼는 한국의 성직자들은 사랑 없는 정의가 진짜 정의인지 성찰해야 마땅하다.
성 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믿음의 본질은 사랑과 평화다. 그리하여 교황은 종교·인종·계층 간 화해에 누구보다 앞장선다.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과 믿지 않는 자들의 삶의 방식까지 존중한다. 바티칸의 화려한 관저 대신 방 한 칸짜리 방문자 숙소에 묵고 간소한 공동 식사를 한다. 방한한 교황이 소형 국산차를 이용하고, 경호 최소화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황제와 왕들의 세속 권력과 겨루다가 또 다른 권력의 탑을 쌓아 세상 위에 군림했던 바티칸의 역사에 대한 처절한 자기반성의 산물이다. 낮은 데로 임하기는커녕 높다란 종교 권력의 성(城)을 쌓아 왕 노릇 하는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과 대조된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이끈 것은 '무너진 나의 나라를 다시 세우라'는 예수의 계시(啓示)였다. 정점에 이른 중세의 교회 권력 안에서 사랑과 평화를 실행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기실 붕괴하고 있었다. 팽창 일로였던 한국 종교계도 안에서부터 무너져가고 있다. 종교가 세상을 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이 종교의 부패와 종교인들의 타락을 걱정하는 지경이다. 오직 종교 지도자들만이 그 사실을 외면한다. 오늘의 한국 종교가 쇠락(衰落)하는 것은 성직자와 신자(信者)들의 삶이 자신의 종교를 증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황에게 열광하는 한국의 종교인들은 '무너진 예수(부처·알라)의 나라'를 자신의 삶으로 일으켜 세울 것인지 응답해야 한다. 여기서 성 프란치스코의 일화가 중요하다. 거상(巨商)의 아들이었다가 회심(回心)한 청년 성 프란치스코가 집안의 귀한 물건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자 근심에 잠긴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상속권을 박탈해달라고 아시시 시청에 제소한다. 시청 정문 앞에서 성 프란치스코는 팬티를 포함한 모든 옷을 벗어 아버지에게 돌려준다. 육신의 아버지를 떠나 하늘의 아버지께로 나아가겠다는 언약이었다. 그는 무소유와 사랑을 온몸으로 구현해 빈자들의 친구로 살았다. 44세 나이에 죽는 순간에도 허례허식을 거부한 채 맨 땅바닥에서 임종했다. 한없이 낮은 데로 나아간 사람이었다.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세상을 가르치려 하기 전에 먼저 소득세부터 내야 한다. 궁궐 같은 성전(聖殿) 건축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자기 종파에 쌓아놓은 재산을 소외된 사람들과 사회로 돌려보내야 한다. 성직자들은 자신들의 호의호식(好衣好食)을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민중이 그토록 사랑하는 까닭은 그가 민중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무릇 모든 믿음은 믿는 자의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윤평중 | 한신대 교수·정치철학 -- (Premium Choosun 기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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