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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법에 기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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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갈등이 대법원 판결로 종결되는 것은 극히 당연한 법치의 일상 다반사지만 매우 신기한 일이다. 도대체 법이 뭐기에, 재판은 또 어째서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타협을 거부하며 악을 쓰던 그 사납고 성난 사람들이 법정에 걸어 들어온 다음 재판 결과에 승복하게 하는 비결, 아니 마음으로부터 승복하지는 않더라도 축 처진 어깨를 뒤로해 돌아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는 공통된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공정한 심판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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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칼럼] 그래도 법에 기대는 이유

공정한 심판에 대한 기대감 표출
법 지속정비·재판 문호 더 넓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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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갈등이 대법원 판결로 종결되는 것은 극히 당연한 법치의 일상 다반사지만 매우 신기한 일이다. 십 수년을 끌며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 새만금사건이 그랬고, 꼬리치레 도롱뇽을 원고로 내세워 관심을 끈 천성산 고속철사건이 그랬다. 경위야 어떻든 한국사회의 고질병이 된 공공갈등이 법정으로 가기만 하면 종식된다는 이 주목할 경향은 우리 시대 법과 재판의 존재이유를 되묻게 만든다. 도대체 법이 뭐기에, 재판은 또 어째서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타협을 거부하며 악을 쓰던 그 사납고 성난 사람들이 법정에 걸어 들어온 다음 재판 결과에 승복하게 하는 비결, 아니 마음으로부터 승복하지는 않더라도 축 처진 어깨를 뒤로해 돌아가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과 법조인에 대한 신뢰가 예전 같지 않고 재판의 문턱도 높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법과 재판에 기대를 건다. 국책사업이란 미명 아래 삶이 위협받고 파괴됐다고 여기는 사람, 시민단체, 환경단체조차 소송 불사의 결의를 다지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처음엔 그저 문제를 터뜨리기 위한 기획소송 수준이었지만 어떻게든 법을 통해 잘못을 따지고 반격하겠다는 생각, 재판을 본격적인 투쟁수단으로 사용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법을 미워하고 기피하면서도 걸핏하면 법과 헌법을 들먹이며 여야를 막론하고 특히 야당이 헌법재판소를 단골로 찾고 민주노총, 철도노조 등 노동단체가 주요 대목마다 소송을 제기하며 법원에 기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해 주는 공통된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공정한 심판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갈등과 분란을 억제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 나머지 법과 재판제도의 문호를 넓히기를 꺼렸다. 법적 보호와 재판에 대한 접근기회를 넓히면 사회불안을 더 악화시킬지 모른다는 소심증에 걸려 폭주하는 갈등을 법 바깥으로 몰아내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법보다 정치권력이나 행정적 방법에 의한 갈등해결을 선호하는 퇴행적 법문화가 생겨난 배경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그런 퇴행적 자세, 봉쇄전략은 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세상이, 사람이 변했다. 더 많은 사람이 법정을 찾고 더 많은 갈등이 제도권 안에서 해결되도록 만드는 게 사회 전체에 득이 됨을 깨달을 때가 됐다. 이는 법 만능주의 처방이 아니다. 단지 법이 제자리를 찾고 제몫을 다하도록 하자는 극히 당연한 생각일 뿐. 더 많은 사람이 법정을 찾게 하자. 더 많은 갈등이 법제도 안에서 재판을 통해 해결될 수 있도록 하자. 그러려면 재판의 문호를 넓히고 법을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와 가능성이 성립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쓸모 있게 해 나가는 개방적인 실천의지가 필요하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공법학
법의 계급성, 당파성, 야합성은 신뢰를 퍼렇게 변색시키는 독이다. 배후에 잠복한 여야, 이해관계 업계와 관계부처 간의 야합이 드러나면 법에 대한 신뢰와 기대도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법이 불편한 민낯을 가리는 데 성공하더라도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린다.

갈등당사자의 접근을 원천봉쇄하거나 문턱을 높여 막으려는 ‘좁은 문’ 정책, 그도 모자라 법에 호소해 봤자 승산 없는 싸움, 애만 쓰고 끝날 것이라는 비관적 체험을 강화시키는 재판의 ‘불편한 현실’은 사람들을 제도권 바깥, 거리로 몰아내고 실력행사, 비합법 투쟁으로 치닫게 만드는 조건이다. 판사의 막말, 터무니없는 재판실수, 사람들을 질리게 하는 잘못된 법정관행도 고약한 훼방꾼이다. 며칠 전 드러난 1심 재판만 세 번을 받아야 했던 한 40대 남자의 이야기는 그냥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으로 웃어넘기기엔 너무나 심각하다.

확고한 실천의지로 법을 정비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한다. 재판의 문호를 넓히고 더 많은 사람, 더 많은 갈등이 발을 들여 놓을 수 있게 하고 또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가 성립하도록 진취적이고 과감하게 재판제도 그 밖의 분쟁해결수단을 확충, 선진화시켜 나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했던 ‘비정상의 정상화’도 어디 다른 데서 찾을 일이 아니다.

**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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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05 21:47:25
2014-01-05 21: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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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칼럼] 그래도 법에 기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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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이창배님의 댓글

생노병사에서 해탈하기위해 출가한 석가모니

제자를 기르고 설파한 내용은 불법이란 이름으로 전해오고있습니다

스스로도 해탈하지 못하면서 만인을 해탈할수있다고 내놓은 법은 분명한 불법이지요

마지막 열반하면서 대반열반경에서 밝힌 고백은 위대한 양심선언이라고봅니다

 

예수님도 끝날에 불법을 행한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리라 하셨지요

 

불법이 법으로 행해지다가 불법으로 밝혀지는 때가 이때라고봅니다

비정상이 없어지고 정상이 자리잡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좋은 화두라고 봅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성범모 고문님 관심의 귀추가 주목되는 멋진 화두를 올려주셨네요.

법의 잣대란 것이 "이현령비현령"이기가 다반사입니다.

 

만고불변의 천법이 정착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현실적으로 기댈 수 있는 최후의 합리적인 방법은 法 밖에 없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겁니다.

다만, 우리들이 익히 경험해온 바와 같이 세상의 법은 종종 하늘의 섭리에 어깃장을 놓았던 사례가 있고, 이는 인류역사를 배후 조종해온 검은 무리의 집요한 공작으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빌라도 법정이 그랬고 참아버님의 6회의 고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 교단은 또 다시 그 지긋지긋한 법정에서 존폐의 위험이 도사린 세상법정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이며 '화해'를 통해 해결하고 싶지만, '절대복종'으로 따라야할 분에게도 오로지 자기주장만을 굽히지 않았던 전례에 비추어 화해는 '연목구어'가  아닐까 의문시 됩니다.

 결국 시간의 문제이지 결과적으로 하늘섭리는 승리하고 '사필귀정'에 우리 종단만 예외일수는 없을 거라는 믿음 만이 희망일 겁니다. 내외적으로 중차대한 새해 우리 종단의 법적인 문제도 봄날의 순풍 소식이 있기를 학수고대하여 마지 않습니다.

김명렬님의 댓글

어렷을때부터 기초질서를 잘지키며는 법을 잘지키는

우리가 되어지리라 생각되어집니다.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 이것이 우리 내부에서도 이루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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