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부모님, 미국 4대 도시 순회 강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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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사관으로 본 화합 통일 그리고 해방과 안착
이글은 2004년 10월 25일부터 30일까지 뉴욕을 비롯한 워싱턴 D.C,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4대도시에서 개최되는 참부모님 순회강연회에서 연설하실 말씀 전문이다.<편집자 주>
존경하는 미국과 전세계의 종교계, 정치계, 언론계 그리고 학계의 지도자 여러분!
본인은 오늘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일찍이 뜻의 나라인 미국의 기독교를 각성시키고 타종교들을 규합하여 세계구원의 발판으로 삼고자하시는 천명(天命)을 받들고 이 나라를 찾아왔던 것이 벌써 34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본인의 미국 도착 첫 경고 메시지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계실 줄 믿습니다. “레버런 문(Rev. Moon)은 병들어 있는 이 미국을 수술하기 위해, 그리고 불타고 있는 미국의 불을 꺼주기 위해 이 나라에 찾아왔다”고 당당히 천상천하에 선포했습니다.
1970년대 초 뜻의 나라인 미국의 21개 주요도시 ‘희망의 날’ 순회강연을 통해 본인은 2억7천만 미국 국민의 대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미국에서 하나님이 떠나고 계심을 경고했습니다. 백주(白晝)에 자행되고 있는 살인과 강간, 흑백간의 인종분규, 청소년들의 타락, 극도의 이기적인 개인주의의 확산, 공산당 문제, 종교간의 대립과 갈등을 청산하고 거듭나지 않으면 이 나라에 소망이 없음을 확실히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의 해결책은 정부나 학교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깨어있는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하나가 되어 초종교(超宗敎) 초국가(超國家)적으로 힘을 모아야 함을 외쳤습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의 미국은 어떤 모습입니까? 본인이 그동안 미국을 붙들고 세계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쏟아 부었는가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이 바로 본인의 땀과 눈물의 결실로 선택받은 분들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도 험난한 길이 남아있습니다.
레버런 문(Rev. Moon)은 미국 사람이 아닙니다. 본인은 벌써 하늘의 지시를 받고 조국복귀를 위해 한국으로 자리를 옮겨 하늘의 섭리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이 나라의 장래는 여러분과 같은 양심적인 지도자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어느 누가 있어 여러분의 나라를 구해주겠습니까? 어디에서 미국의 장래를 놓고 밤잠을 못 자며 염려하고 희생까지도 감수하겠다고 나서는 정치가나 사상가를 찾을 수 있습니까? 여기 모이신 여러분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떨치고 일어서서 2억7천만 미국민(美國民)을 인도하는 기관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오늘 ‘섭리사관(攝理史觀)으로 본 화합 통일(和合統一) 그리고 해방(解放)과 안착(安着)’이라는 제목으로 하늘이 이 시대에 주신 새로운 말씀의 일단(一端)을 전해주고자 합니다. 모쪼록 이 메시지를 가슴에 깊이 새기고, 이제부터 여러분이 이 나라 미국과 인류를 위해 나아갈 방향과 목적을 설정하는 가치관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메시지는 비단 여러분과 미국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60억 인류 그리고 전 영계(靈界)에게까지 선포하는 소명(召命)적 천명(天命)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 진리의 새 말씀입니다.
상대적 관계로 창조된 세계
여러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겠습니까?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하나님께서도 홀로 독처(獨處)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에 먼저 천주(天宙)는 인간을 위한 환경창조의 일환으로 창조하시고 그 터 위에 당신의 절대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신 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대상된 인간이 하나님 자신보다 더 훌륭하고 큰 존재가 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에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부모는 자식들이 자기들보다 더 잘되고 훌륭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이것이 모두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부모들의 전통적 사랑입니다.
자식으로 지은 인간이 성장하고 완성하여 당신으로부터 축복결혼을 받고 참사랑, 참생명, 참혈통의 열매되는 참된 자녀를 번식하여 참된 가정에서 참되고 영원한 이상천국(理想天國)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고 기쁨을 느끼고 싶었던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이었던 것입니다.
참사랑의 주인이 되는 길은 먼저 상대를 위해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며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참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열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먼저 당신이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의 기준을 세워놓고 그 위에 100퍼센트 투입을 했던 것입니다. 절대상대권(絶對相對圈)을 절대가치권(絶對價値圈)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참사랑의 주인은 혼자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대상을 통하여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 절대적 가치권의 참사랑의 원리 앞에서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없으면 영원히 부모가 참사랑의 주인이 될 수 없듯이, 하나님 자신이 절대사랑의 주인자리에 서기 위해서는 그 상대권인 인간을 당신의 참자녀로서 절대사랑의 가치권에 세워야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절대주체와 절대대상의 가치관이 생겨나 완성을 보는 것입니다.
우주의 질서를 보면 크다고 하여 무조건 작은 것을 희생시키고 취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헬레니즘에 바탕을 둔 약육강식(弱肉强食)을 통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위해서 존재하고, 참사랑으로 투입하고 잊어버리는 절대복종의 대상으로서 주체적 참사랑의 주인으로 완성시키려는 절대가치관을 그들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을 배제하고 나면 투쟁개념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원리는 투쟁을 통한 생존과 발전이 아닙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 속에서 상호 수수작용(授受作用)을 하면서 절대가치관을 향해 조화 통일을 추구하는 원리입니다.
소(小)는 대(大)를 위해 희생을 할망정 그것을 투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상호발전을 위한 투입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은 가정을 위해, 가정은 국가를 위해 그리고 국가는 세계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 어찌 투쟁이라고 하겠습니까? 이처럼 절대적 가치권은 먼저 서로 상대를 참사랑의 주인격으로 세워주는 참사랑의 완성을 성사시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기적 개인주의는 사탄의 발악
따라서 우리의 생활 속에서 이기적인 개인주의적 사고나 행위는 철저히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이것은 타락성(墮落性)의 뿌리와 같은 것으로 모든 악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의 이기주의 행동이나 집단개인주의적 행위나 마찬가지입니다.
참사랑의 절대가치관의 정신과는 정반대의 길입니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베푸는 대신 자기를 위해 남을 희생하게 만들고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파렴치한 행위입니다. 타락으로 야기된 인간의 몸과 맘의 싸움 속에 사탄이 교묘히 파고들어 인류에게 심어놓은 독버섯입니다.
일신(一身)의 영달과 안위를 위해 보기에 아름답다고 하여 한번 자유행동을 취하고 나면 중독(中毒)에 빠져 일생을 고생해도 빠져나오기 힘든 악의 함정이요, 덫입니다. 우리의 몸을 살펴보아도 자유롭게 우리 것이라고 주장할만한 부분이 하나도 없습니다.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난 우리는 99.999퍼센트가 어머니의 피와 살과 뼈입니다. 나머지 0.001퍼센트는 아버지의 정자(精子)라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내 것’을 주장할 수 있으며 이기적 개인주의에 대한 명분을 찾아낼 수 있습니까? 우리의 사지백체(四肢百體)는 모두가 어머니의 연장(延長)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우리 몸의 모든 요소는 이미 부모의 정자(精子)와 난자(卵子)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전(前)과 후(後)를 놓고 생각해보십시오. ‘전’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는 그 자체가 벌써 ‘후’를 선유조건(先有條件)으로 인정하고, 또 ‘위’라는 말도 ‘아래’를 먼저 인정해야 성립되는 말이며, ‘좌(左)’라고 할 때는 ‘우(右)’를 전제하고 하는 말입니다.
같은 논리로 남자라는 말도 여자라는 존재가 선유하기에 성립되는 것입니다. 즉, 남자는 여자 때문에 태어난 것이며 여자는 남자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필요 없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여자가 없으면 남자는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때문에 태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상대를 위해 존재하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상대적 관계로 이상향(理想鄕)을 향하게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오관(五官)을 놓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눈이 눈 자체를 보기 위해 생겼습니까? 눈, 코, 귀, 입, 손 모두가 상대를 위해 생겨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관을 총동원하여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을 계속하게 하는 그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참사랑의 가치관을 완성시키려는 힘입니다. 우리의 오관은 참사랑의 실천을 위해 생겨난 필요한 도구일 뿐입니다.
이처럼 자기를 위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위해서 베풀고 사랑으로 희생하고 복종으로 사랑의 주인을 완성시키는 생(生)이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이상에 부응하는 삶인 것입니다.
상대를 위해 창조함을 받았으니 마땅히 상대를 위해 살아주어야 하는 것이 천리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사랑의 절대가치가 창출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프리섹스의 뿌리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인류의 조상되는 아담과 해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생식기(生殖器)를 함께 허락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이었겠습니까? 그들이 성장하여 완성하면 그들을 결혼시켜 죄 없는 참자녀를 번식케 하고 당신의 창조이상(創造理想)인 지상천국(地上天國)을 아담 당대에 이 땅 위에 완성하려 하셨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의 타락에 있습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거짓 사랑, 거짓 생명, 거짓 혈통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과 혈통을 보전하고 전수해야할 그들이 반대로 사탄의 혈통을 받고 사탄혈통의 전수자(傳受者)로 전락하고 만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무가치적 존재가 된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본래 아담은 지상세계에서 하나님의 몸이 되고, 해와는 신부가 되었어야 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몸과 마음과 이상(理想)을 병들게 만들어 원수가 되었으니, 그 비참상(悲慘狀)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이 오죽 비통했겠습니까?
타락은 스스로를 매장하는 무덤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가는 도적행위입니다. 타락은 프리섹스의 뿌리가 되었고 이기적 개인주의의 조상(祖上)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십시오. 극도의 이기적인 개인주의, 분수에 넘치는 사생활의 추구, 그리고 청소년들의 프리섹스 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정의 존엄함과 가치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모두들 육신의 향락을 쫓다가 급기야는 마약 중독자가 되거나 에이즈 환자가 되어 비참하게 생을 마치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의 본심(本心)은 극도의 개인주의나 육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방탕의 길을 원치 않습니다. 우주와 국가, 동네와 이웃, 그리고 가정에서 부모 형제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어하는 것이 하늘이 부여한 본심이 지향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정반대의 길로 치닫다보니 양심은 불타버리고, 본심과의 상충을 느끼게 되어 차라리 약을 먹던가 자살하는 길을 택하고 있는 사건이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아닙니까? ‘심은 대로 거둔다’는 역사적 교훈이 맞아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는 오늘입니다.
아담과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무슨 씨를 심었습니까? 프리섹스의 씨 즉, 불륜의 성관계(性關係) 씨를 심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타락 직후 하체를 가렸던 것입니다.
따라서 추수기인 끝날에는 반드시 세계적으로 청소년들의 프리섹스 풍조가 만연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탄은 무질서한 성관계를 통해 단 한사람도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발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전인류를 망가뜨려 지상지옥(地上地獄)을 만드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들도 부모가 숨겨놓은 과자를 훔쳐먹다가 들키면 손을 가리고 입을 가리는 것이 본능의 작용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었다면 범죄한 손이나 입을 가려야지 왜 하체를 가렸느냐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아도 타락은 음란(淫亂)으로 저질러졌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혈통관계 때문에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이 어디에서 갈라지는지 아십니까? 공중(空中)입니까? 교회당(敎會堂)입니까? 국가(國家)입니까?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의 생식기(生殖器)가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는 분계선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천지를 뒤집어 놓는 인류역사상 최대의 비극을 저지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생식기를 눈먼 장님처럼 방향을 잃은 채 마구 사용하게 되면 지옥행이요, 반대로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사랑의 가치기준에 맞추어 쓰게 되면 자동적으로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어느 누가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의심이 가면 본인이 천리(天理)를 발표해놓은 원리강론(原理講論)을 숙독(熟讀)해 보시고, 그래도 의심이 풀리지 않으면 하늘 앞에 매달려 기도해 보십시오. 기필코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레버런 문(Rev. Moon)의 가르침을 받고 이제는 세계의 수천 수만 젊은이들이 프리섹스를 철폐하고 ‘앱설루트 섹스’ 즉, 절대사랑을 주창하는 순결운동(純潔運動)이 산불처럼 번져가고 있습니다. 프리섹스가 자기의 욕망과 사탄을 중심삼은 거짓사랑인 반면, 절대사랑은 하나님을 중심삼은 참된 사랑인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문학작품과 언론매체가 역사적으로 프리섹스를 자극하고 부추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정치인, 경제인, 문인, 언론인, 종교인, 철인 등 모든 분야의 지도자들이 한목소리로 앞장서서 인류의 망국병(亡國病) 프리섹스를 몰아내야 할 것입니다.
세계평화를 위한 초석(礎石)을 놓는 것도 참사랑의 절대가치관을 창출해내는 아담가정이요, 세계평화로의 길을 파괴할 수 있는 것도 아담가정입니다. 그래서 조상된 아담가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본인이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의 간판을 내리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간판을 내건 것도 이제 때가 다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옥이 되어버린 이 세계를 과연 무슨 수로 바꿀 수 있겠습니까? 참된 사랑을 중심한 화합 통일의 실천만이 유일한 절대가치관을 찾는 길입니다. 참사랑의 주인인 하나님의 속성은 영원, 불변, 유일, 절대적인 기준에 서 있기 때문에 우리도 이를 본받아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왜 좋은가
여러분, 가정(家庭)은 왜 좋은 것입니까? 그것은 부모의 참사랑을 중심삼고 본연의 자유활동의 기지(基地)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기에는 아무리 초라해도 빛나는 참사랑의 핵(核)을 지닌 심정으로 맺어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본연의 가정이 되었을 때, 인간은 물론 하나님까지도 자유롭게 느끼신다는 것입니다. 참사랑이 결여된 자유는 결코 참된 자유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집에 손님으로 갔을 때, 부자유스러움을 느끼는 것은 아직 그 집과 깊은 참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참사랑의 인연이 사방성(四方性)을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어색하고 부자유스러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연의 가정에서 최고 최상의 가치는 무엇이겠습니까? 본연(本然)의 부모(父母)입니다. 본연의 부모는 왜 좋은 것입니까? 영원한 참사랑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참사랑을 중심으로 한평생을 관계 맺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 계신 분이 바로 본연의 부모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기쁨을 주고받는 상대가 본연의 부모입니다. 따라서 본연의 부모는 우리의 기쁨의 주체(主體)이자 또 대상(對象)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가 기쁠 때 가장 먼저 기뻐해 주시고, 우리가 슬플 때도 누구보다 먼저 슬픔의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본연의 부모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부모 없는 자식을 고아라고 부르며 고아는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가 본연의 가정에서 가장 귀한 가치적 존재가 될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는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본연의 참사랑을 주고받는 부부여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처음부터 하늘이 준 절대적이고 영원한 차원의 참사랑 관계를 갖고 시작된 사랑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부부라는 절대적 차원의 인연을 바탕으로 한 상대관계에서 맺어진 본연의 참사랑이 되면 그 참사랑이야말로 가정에 행복과 기쁨을 안겨주는 근간(根幹)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 본연의 부부관계가 부부관계 그 자체로서만 끝나게 되면 절대적 가치를 내포한 영원한 행복과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부부 앞에는 반드시 본연의 자녀가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부부끼리만 둘이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자식을 낳지 않아 보십시오. 인류는 이대(二代)를 넘기지 못하고 멸종당하고 말 것입니다. 본연의 자식으로부터 돌아오는 참사랑을 받고 살 수 있어야 참된 부부로서 본연의 부모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귀하고 중요한 것이 본연의 부모를 위한 자식의 참사랑입니다. 절망(絶望)이 아니고 내일의 소망(所望)으로 싹틀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을 그리워하면서 밝고 긍정적인 자세로 자식이 본연의 부모를 위해 희생하고 참된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 사랑은 가정의 행복을 위한 순수하고 진실한 가치로서의 본연의 참사랑이 될 것입니다.
이렇듯 본연의 가정에서 삼대권(三代圈)을 이루고 본연의 부모의 자식을 위한 희생적인 본연의 참사랑과 본연의 부부간의 참된 사랑, 그리고 본연의 자식의 본연의 부모를 위한 참된 사랑이 완벽하게 구비된 본연의 가정이 있다면 그 본연의 가정은 인간세계에서 가장 이상적인 참가정이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두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까? 행복의 기준을 무엇으로 삼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외적으로 남들이 소유하지 못한 능력이나 권세를 가졌다고 하여 행복한 사람입니까? 모두가 부러워할 만큼 많은 돈을 갖고 있어서 행복한 것입니까? 세계적인 석학이 되어 만인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다고 해서 행복한 것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그 어떤 외적인 조건도 인간의 행복을 영원을 두고 보장해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 그 자체는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참사랑으로 하나된 본연의 부모가 있고, 참사랑으로 맺어진 본연의 부부가 있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본연의 참자녀가 있을 때, 그 가정에서 참된 행복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천국완성의 기본 단위
여러분, 천국은 어떤 곳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원리에 의하면 천국은 먼저 이 지상세계에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본래 인간은 육신을 쓰고 지상에서 천국생활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육신을 벗으면 영계(靈界)의 천국으로 자리를 옮겨 영생하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창건해야할 지상천국은 어떤 모습이어야겠습니까? 그 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연의 가정과 천국은 그 유형이 같은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가정에는 본연의 부모가 있고, 본연의 부부가 있고, 본연의 자녀가 있고, 본연의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그 가정이 참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되면 화합과 통일은 자동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 터전 위에 참사랑과 참생명과 참혈통이 연결되고 이상(理想)의 목적도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본연의 조부모(祖父母)는 본연의 부모에게 참사랑의 전통을 상속해줄 수 있어야 하고, 본연의 부모는 본연의 자식에게 똑같은 참사랑의 삶을 물려줄 수 있어야만 참된 본연의 가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본연의 형제자매간에도 조부모와 부모를 닮아 서로 서로 ‘위하는 삶’을 실천하는 참사랑의 본연적 관계가 형성될 때, 그 가정은 천국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어느 한가지만 빠져도 본연의 가정단위 천국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부부끼리 서로 사랑하는 이상(以上) 부모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하며, 부모를 사랑하는 이상 조부모를 사랑해야 참사랑 가치관의 전통이 서는 것입니다.
본연의 가정이 천국의 전형(典型)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본연의 부모는 국가의 주인과 같은 입장에 서게 되고, 본연의 자녀는 백성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게 되며, 만물은 국토를 대신하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개인완성은 몸 맘의 통일로
이처럼 천국의 기점(起點)은 개인이 아니고 국가도 아니며 가정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가정이 그렇듯 천국은 한번 가보면 다시 나오고싶지 않고, 수백 수천 번을 만나도 또 만나고 싶어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만인이 공통으로 가고싶어하는 본연의 고향입니다.
그러나 이런 천국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가 바뀌고 천운이 함께 한다고 해서 공중에서 뚝 떨어지듯 천국이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먼저 천국가정을 이룰 수 있는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완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인완성을 통해 참된 인격자가 되는 길은 몸과 마음의 조화 통일을 완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몸과 마음이 일체가 되어 아무런 상충이나 불화가 없이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주체되는 마음 앞에 대상되는 몸이 절대복종하며 혼연일체를 이루어 살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모두 타락의 후예로 태어나 타락성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과 마음의 상충 속에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역사상 어느 누구도 몸과 마음의 일체를 완성하고 살다간 사람이 없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섭리(救援攝理)는 꾸준히 계속되어 왔지만 개인완성을 이루어 몸과 마음의 싸움에서 해방 받은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깊은 산 속에 움막을 짓고 일생을 기도와 고행으로 사투를 해도 그 싸움에서 자유로워진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역사상 그 어느 누구도 아직까지 그 방법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도인(道人)이나 철학인(哲學人)도 이 몸과 마음의 싸움만은 말리지를 못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뜻을 세워 수행의 길을 걷는다고 하여 얻어지는 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섭리를 이해하고 소명을 받아 하나님께서 수천년 간 진행시켜온 복귀섭리를 완성시킬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 하늘과 땅이 공히 인정하는 자리에서 승리하지 않고는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구세주로서, 그리고 메시아와 참부모의 자격을 갖고 이 땅에 강림하신 분이 바로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섭리를 완성시켜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신 메시아 예수님도 끝내는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불신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의 형틀에서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호소하다시피 외치시던 예수님의 가르침도 우리의 몸과 마음간의 투쟁을 종식시켜주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레버런 문(Rev. Moon)의 승리적 기반 위에 모든 천비(天秘)를 밝히고 계십니다. 인류구원의 최종단계의 섭리를 마감짓는 재림메시아로서, 구세주로서, 그리고 인류의 참부모로서의 사명을 승리적으로 완수한 레버런 문(Rev. Moon)을 통해 인류가 개성완성을 성취하고 인격혁명을 완성하여 이 땅 위에 이상천국을 창건할 수 있는 참사랑의 절대가치관적 진리를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몸과 마음을 화합 통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위하여 살고, 참사랑으로 투입하고 잊어버리고, 절대복종을 통해 대상의 위치에서 주체적 사랑의 주인을 완성시키는 절대가치관의 실천 밖에는 없습니다. 타락성 본성의 뿌리와 같은 이기주의를 벗어 던지고 철저하게 남을 위해 베풀고 사는 절대가치관적 삶,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공생, 공영, 공의적 삶을 지켜내지 못하면 몸과 맘의 화합 통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몸과 맘의 화합 통일을 이룬 개인 완성자들이 모여 형성된 본연의 참된 가정들이 나타나지 않는 한 지상천국 실현은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뿌리와 같은 삼대주체사상(三大主體思想), 즉 부모, 스승, 주인보다 앞에 있는 양심(良心)의 소리에 절대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음의 작용을 통해 전해지는 양심의 소리를 듣고, 언제 어디서라도 궤도수정을 할 줄 아는 수정(水晶)처럼 맑은 마음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몸의 욕망이 강하다고 할지라도 원리의 가르침을 따라 의도적으로 양심 쪽에 더 큰 힘을 주게 되면 육신도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안되면 금식(禁食)이나 금욕(禁慾) 등을 통해 몸을 쳐야합니다.
흙탕물이 되어버린 연못에도 계속해서 맑은 물을 흐르게 만들면 결국 맑은 연못이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여러분의 마음을 슬프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양심의 쓴 소리를 거역하고 마음을 슬프게 만들면 여러분의 부모는 물론 스승과 하나님까지도 슬프게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마음과 더불어 즐기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외롭고 쓸쓸한 자리가 될지라도 마음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화합 통일은 물론 새로운 천하가 훤히 내다보이는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심신일체(心身一體)의 경지에 나아가면 양심(良心)과 육신(肉身)이 공명권(共鳴圈)에 서게 됩니다. 석가모니의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외침도 이런 차원의 마음 세계에서라야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게 물어보면 하나님이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와 계신지 안 계신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마음을 통해 만물(萬物) 만상(萬象)과 자유롭게 대화를 하고 화동(和同)하게 되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영계와도 자유자재로 교통하며 여러분의 영생(永生) 문제를 놓고 철저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
그렇다면 타락의 후예된 인류가 과연 무슨 방법으로 타락성을 벗고 상대를 통해 절대 가치관을 찾아 세우고, 개인, 가정, 국가, 세계적 차원에서 하나님이 소원하신 평화천국을 이 지상에 창건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만상을 창조하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 스스로 세워놓은 창조의 원칙과 질서를 절대적 기준에서 믿고 복종하시지 않았습니까? 그 위에 또 절대적 기준의 참사랑을 심어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삶도 이제 이 절대신앙, 절대사랑, 절대복종의 3대 원칙만 따라 실천하면 천상의 오대(五大) 성현(聖賢)은 물론 여러분의 선한 조상들이 총동원되어 여러분의 행복을 보장해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모를 위해, 부부간은 서로를 위해, 형제자매들이 서로 서로를 위해 이와 같은 절대적 기준의 믿음과 사랑과 복종을 베풀어보십시오. 거기에 어떻게 이기적인 개인주의나 향락만을 추구하는 비원리적인 뿌리가 뻗어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절대적 기준에만 서면 하늘도 절대적 기준에서 여러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둘째로, 인류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타락성을 전수받고 태어난 타락의 후예이기 때문에 여러분 개인의 삶을 놓고 볼 때, 삼대혁명(三大革命)을 완수해야할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탕감혁명(蕩減革命), 양심혁명(良心革命), 심정혁명(心情革命)을 말하는 것입니다.
탕감혁명이란 여러분의 모든 내적 외적 소유권을 완전 탕감받고 승리하여 그 탕감권을 초월하는 기준을 세우라는 뜻입니다. 과거 사탄지배권시대였던 선천시대(先天時代)에서 습득한 모든 습관과 사고까지도 과감히 떨쳐버리는 혁명을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완수하라는 뜻입니다.
그 터전 위에 새로운 후천시대(後天時代) 삶의 좌표인 절대가치관적 참사랑을 실천하며 영원히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 살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여러분의 모든 재산이나 외적 소유권도 일단 하늘 것으로 귀속시켜서 사탄세계와 절연시키고 성별(聖別)한 뒤 다시 하늘의 축복으로 전수받아야 하는 혁명적 실천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즉, 다시는 사탄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성별된 재산으로 하늘의 부(富)를 쌓아가라는 뜻입니다.
양심혁명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양심의 소리 앞에 절대복종해야 되는 내적 혁명(內的革命)입니다. 여러분 속에서 아직도 선(善)을 지향하는 양심의 명령과 육신의 욕망을 쫓는 육심(肉心)의 유혹이 끊임없는 갈등을 계속하고 있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내면의 싸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양심의 위치와 작용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양심은 여러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생각까지도 일점 일획 가감 없이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스승보다 먼저 압니다. 여러분의 부모보다도 먼저 압니다. 하나님보다도 먼저 압니다. 이러한 양심의 명령을 거역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합니까? 여러분 스스로 가책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먼지가 끼고 때가 묻고 상처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 상처는 영원히 지울 수 없이 고스란히 영계로 지고 가야 하는 무서운 짐입니다. 따라서 혁명적 차원에서 자신의 육심을 누르고 양심의 안내를 받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날까지 티없이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간직하라는 지상명령입니다.
심정혁명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자식으로 창조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여러분을 묶어주는 줄은 무슨 줄이겠습니까?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이요, 심정입니다. 부자(父子)지간에 심정이 통하지 않으면 어떻게 부모와 자식이 사랑과 존경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수천년간 타락권의 영향 속에서 살아온 인류는 아직도 거짓 부모, 거짓 사랑, 거짓 혈통의 심정적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이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용서하고 베푸는 참사랑의 삶을 꾸준히 계속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정적 소유권에 귀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심정(心情)줄이 아직도 사탄세계의 허영을 쫓는 이기적 개인주의에 묶여있다면 여러분의 장래는 어둡고 암담한 절망과 탄식의 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위하는 삶’, 즉 남을 위해 먼저 양보하고 베푸는 생산적인 삶을 살면 여러분의 심정줄은 하나님의 심정과 영원히 하나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거짓 부모와의 심정적 인연을 완전히 끊고 무형의 하나님의 실체로 현현(顯現)하신 참부모님으로부터 결혼축복을 받아 참된 하늘의 혈통을 확보하라는 뜻입니다.
셋째로, 여러분은 매일 매순간 자신의 삶을 점검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여러분 모두 학창시절에 시험문제를 앞에 놓고 그 답이 ‘O’인지 ‘X’인지를 몰라 쩔쩔매본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일상생활 속에서 매순간 여러분 스스로 자신의 삶을 ‘O’와 ‘X’의 개념으로 분석하고 점검하여 채점을 하는 생활을 해보시라는 뜻입니다. 모양으로나 성격적으로 볼 때 ‘O’는 ‘X’를 포용하고 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X’는 ‘O’를 포용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답이 ‘O’일 때는 여러분의 삶이 긍정적이고 소망적이며 종적으로 하늘에 축을 세우고 그림자 없는 정오정착(正午定着)적 삶을 살아갈 때일 것입니다. 위하는 참사랑의 정신으로 원수까지도 용서하고 포용하는 깊고 넓은 삶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답이 ‘X’일 때는 불안과 초조, 원망이나 시기심 등의 부정적인 요소들로 마음이 가득 찬 부끄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이 좁고 편협해서 주위의 그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선택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리라 믿습니다. 매시 매순간 ‘O’를 받을 수 있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어느 한군데도 쭈그러지거나 모가 나지 않은 완전무결한 ‘O’를 받아야 합니다. 언제 어떤 곳에 던져져도 중심과 90도인 직각을 형성하는 ‘O’의 모습이 되어야할 것입니다.
밝게 불타는 태양을 쳐다봐도 부끄럽지 않고, 광대무변(廣大無邊)의 우주를 대해서도 떳떳하고, 삼라만상 앞에서도 한 점 감출 것이 없는 참된 ‘O’를 찾아 세우는 삶을 살으십시오. ‘O’는 화합과 통일과 평화의 상징입니다. ‘X’가 사망을 상징한다면 ‘O’는 사랑과 생명을 뜻합니다. 몸과 마음이 완전일체가 되었을 때, 여러분의 모습은 ‘O’로 현현할 것이며, 몸과 마음이 갈등으로 혼선을 빚을 때, 여러분의 모습은 ‘X’로 나타날 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인류는 하나님과 참부모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시대를 열어주시고, 참 해방(解放)-석방권(釋放圈)을 정착시켜주신 참부모님께 영원을 두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할 것입니다.
태초에 아담 해와의 실수로 인해 죄악과 피로 얼룩졌던 타락의 에덴동산을 과감히 탈출하고, 하늘의 귀한 소명 앞에 비장한 각오로 일어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 왜 오시게 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주최측의 초청을 받고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까? 자의 건 타의 건 여러분은 이제 하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자리에 선 레버런 문(Rev. Moon)이 16세 청년의 몸으로 갑자기 천명을 받고 하나님을 해방-석방시켜드리고, 인류를 사탄의 굴레에서 구해내기 위해 80생애를 피와 땀과 눈물의 노정으로 걸어왔듯이, 여러분도 이제는 ‘초종교 초국가권 해방과 안착’의 숭고한 뜻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바치는 각오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저 동녘 하늘에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이제 천운이 온 누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수천 수만년간 덮였던 어둠의 장막이 마침내 걷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는 벌써 천명(天命)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의 길입니다.
용기를 내서 일어서십시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을 뜻하는지 확실히 체험할 수 있는 때가 왔습니다. 레버런 문(Rev. Moon)이나 여러분이나 예외가 없이, 언젠가는 영계(靈界)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받으신 하늘의 말씀을 깊이 새기시어 이제부터는 부디 후회 없는 생을 살으셔야 합니다.
이것이 본인이 마지막으로 미국을 떠나면서 여러분께 전해드리는 하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그리고 이 뜻의 나라 미국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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