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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의 성장과 변화 --<김대중 칼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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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의 성장과 변화

'남·북, 미·중 곤란하지 않게 해야'
美 정책 기조 담긴 72년 닉슨 발언… 한반도쯤은 乙로 보는 대국주의
한·미는 동맹이라도 利害 어긋나면 양보 않는 실무적 관계로 변화
강대국 외교의 교차로에 선 한국

김대중 고문
김대중 고문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미국 방문을 통해 새삼 '사무적(business-like)인 미국'을 느꼈을 것이다. 아니, 느꼈기를 바란다. 지난 반세기 넘게 한국의 우방이었고, 동맹국이었고, 원조자였고, 친구였던 미국이 더 이상 맹목적 지원자이고 무조건적 시혜자(施惠者)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의 경제적 능력과 정치적 위상이 과거와 다르게 성장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은 미국에 '특별한 나라'였다. 2차대전 이후 미군이 진출했고 미국이 원조했던 130여 나라 중에서 미국이 심어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실현해 '미국의 보람'으로 성장한 나라는 오로지 한국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는 지났다. 우리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와도 일방적 시혜가 아닌 쌍방적 거래와 호혜(互惠)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끔 됐다. 미국이 박 대통령에게 보여준 환대와 배려 깊은 의전과는 별개로 줄 것과 안 줄 것을 가렸던 것도 이제는 '일상적 외교'로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동맹의 굳건함을 과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것은 당연하다. 만약 한국 방어와 대북 기조에 공동보조가 없다면 그것은 큰일이다. 그것이 비정상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과 오바마는 대북 기조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오바마는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나의 접근 방식과 유사하다"면서도 "북한에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북한의 행동을 봐야 한다"고 했다. '유사'와 '지지'는 다르다. 뉴욕타임스는 박 대통령의 방점이 '북한과 대화'에 있다면 오바마는 선(先)비핵화에 방점을 두는, 이른바 손을 떼는 불간섭(hands-off) 정책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방사성폐기물 재처리권 확보를 위한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에서도 현 협정의 2년 연장에 합의했을 뿐 우리에게 재처리권을 주는 문제에 미국은 완강했다. 전시작전권의 한국군 이양 시기 문제에서도 오바마는 2015년을 시한으로 못 박았고, 박 대통령은 시기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 문제에 진척이 없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미국이 요구하는 주한 미군의 주둔비 증액 문제, 미국 미사일방어체제(MD)의 한국 참여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도 한·미 정상은 합의에 도달할 수 없었다.

성숙한 외교에서는 일방적 승리나 전면적 패배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서로 필요성의 강도와 우선순위의 차이를 감안한 주고받음이 있을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박 대통령의 대미 협상에 성과, 성공 운운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성과가 있다면 박 대통령의 개인적 외교 능력, 의사 전달, 통치 철학 등을 상대방에게 주지시키는 퍼포먼스가 아주 잘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의 성실한 존재감이 상대방의 신뢰를 얻었고, 그의 안정감이 우리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줬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좋은 성과라고 말할 수 있다.

한·미 동맹 60주년을 넘기면서 한·미 관계는 서로 입지를 인식하고 자국의 이해와 이익에 어긋나거나 자국민의 정서에 맞지 않는 일은 아무리 우방이고 동맹이라도 양보하지 않는 실무적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한·미, 북·중 모두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1972년 미·중 국교 정상화 비밀 교섭 때 닉슨 미 대통령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의 대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자리에서 닉슨은 1953년 부통령이던 자신이 아이젠하워 대통령 특사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 한국이 38선을 넘어 북진(北進)을 강행하면 미국은 발을 빼겠다고 위협했었다는 비사를 밝히고 "코리안은 북이건 남이건 감성적으로 충동적(impulsive)이다. 그 충동성과 호전성이 우리 두 나라(미국과 중국)를 곤란하게 만드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도록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그런 일은 한 번(6·25를 의미함)으로 족하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닉슨의 그 발언이 이후 40여년간 미국의 동북아시아 정책의 기조를 이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그 점에서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 내용을 좋게 해석하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중은 한반도에서 '충동적인 충돌'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는 핑계로 북한의 국지적 도발, 빈번한 약속 위반과 대남 테러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한국의 분노를 덮어 누르는 따위의 소극적 자세를 취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갑(甲)의 존재인 미국과 중국은 자신들이 개입하게 되는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면 '한반도'쯤은 언제든 을(乙)의 처지로 내몰 수 있다는 대국주의를 읽게 한다. 박 대통령은 이 강대국 외교의 교차로에서 엊그제 미국을 찍고 이제 중국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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