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13. 안중근 장군과 <東洋平和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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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13. 안중근 장군과 <東洋平和論>
안중근 장군
① 개요 :
안중근(安重根, 1879년 9월 2일 ~ 1910년 3월 26일)은 대한제국의 의병장, 정치 사상가이다. 어려서 안응칠(安應七)이라는 아명으로 불렸으며,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도마; 多默)이다. 본관은 순흥(順興), 고려조의 유학자 안향(安珦)의 26대손이다. 우덕순과 소수의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주의 하얼빈 역, 지야이지스고 역 근처에서 초대 한국통감 이토 히로부미 등의 하차 시 암살을 준비하였다.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역전에서 러시아군의 군례를 받는 이토를 사살하였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궁내대신 비서관 모리 다이지로(森泰二郞), 남만주 철도 이사인 다나카 세이타로(田中淸太郞) 등에게 중상을 입히고 현장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에 살인의 죄형으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아버지 안태훈이 동학군을 정벌하는 데 함께 참여하였고, 대한제국 말기에는 학교 설립과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하였으며 한때 복권 사업과 비슷한 채표회사(彩票會社) 활동을 하기도 했다. 1905년 대한제국을 사실상 일본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저항해, 독립 운동에 투신한 그는 사상적 측면으로는 <동양 평화론>을 집필하였다. 직위는 대한의군 참모중장에 이르렀다.
②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 15가지.
1. 한국의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고종황제를 폐위시킨 죄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
4. 무고한 한국인들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한 죄
8.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뜨린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 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동양 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천황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토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韓日 간이 멀어지기 때문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죄인을 처단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일 양국이 더 친밀해지고, 또 평화롭게 다스려지면 나아가서 오대주에도 모범이 돼 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결코 나는 오해하고 죽인 것은 아니다.
③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 :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르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④ 어머니의 편지 : ‘시모시자’=그 어머니에 그 아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은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 항소하면 시간을 벌어 목숨은 연명이 가능했으나, 어머니의 당부에 따라 항소 포기.
나라가 위기일 때 모든 아내와 어머니들이 저랬다. 私를 버리고 公을 앞세웠던 당시 유행가 가사 가운데 "님께서 가신 길이 영광의 길이었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전쟁터로 가는 아들과 남편 입영부두나 역에서 차마 울지 않고 눈물을 감추었다. 그들이 맘 약해질 것 걱정해서 그리고 그들이 떠난 후 돌아서 울었다. 이 어머니와 아내들의 조국사랑이 오늘 이 나라가 있게 했다.
2. <동양평화론>
안중근의 동양평화를 위한 방법론은 유럽통합의 역사보다 무려 40년이나 앞선 것으로 동북아의 평화를 통해 초국가적 지역통합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사실 유럽통합과 그 속에서 내재된 독일통일의 과정은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역사적 교훈이다.
그러나 유럽의 경험을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다른 한반도와 동북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역사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한중일 3국의 수평적 연대와 초국가적 통합을 주창한 우리의 역사적 담론이며, 비록 미완성의 저서로 남겨졌지만 그의 주장은 이후 유럽통합과 독일통일의 과정에서 대부분 현실화됨으로써 이미 방법론적 완결성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내포하고 있는 통합의 방법론은 무엇인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안중근은 적극적인 긴장완화를 통한 '세력균형'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3국의 정치적 독립을 전제로 한중일 3국의 수평적 연대를 제안하였고, 이를 통해 서양(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안중근은 3국이 세 발로 서 있는 솥과 같아서 3국 중 어느 한 나라라도 독립을 상실하면 균형이 무너져 3국 제휴는 불가능하다고 인식하였다. 그 당시 황성신문은 "3국은 같은 대륙, 인종, 같은 문자로써 연대가 가능하다"며 "힘을 합치면 황인종은 백인종을 대적할 수 있다"며 3국 제휴를 동서양의 세력균형을 위한 논리로 제안하였다.
둘째, 안중근은 보다 항구적인 3국의 연대를 위해 '다자간 통합'이라는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안중근이 '동양평화론'에서 제안했던 주요 단어들을 살펴보면, 동양평화회의, 공동은행, 공용화폐, 공동군대, 공동언어 등 매우 높은 수준의 정치 및 경제 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안중근은 이러한 공동체를 한중일 3국을 넘어 인도, 태국, 베트남까지 확대하여 동아시아 전 지역을 초국가적 '다자간 통합'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었다.
안중근은 한중일 3국의 국력차이가 명확하고,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이라는 현실적 위협 앞에서 조선의 독립을 보장받고, 동양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서 한중일 3국의 수평적 연대를 통한 세력균형과 이를 보다 항구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구조로서 3국의 정치경제적 다자간 통합을 제안했다. 또한 안중근은 3국의 연대와 다자간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현실적 공간으로서 여순을 국제사회에 개방할 것을 주장했다. 당시 동북아 국제분쟁의 발생지였던 여순에 상설 '평화회의'를 설치하여 한중일 3국의 수평적 연대와 '다자간 통합'을 위한 현실적 공간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혁신적인 발상이었다. 따라서 안중근의 주장이 제국주의라는 힘의 정치가 지배하는 당시 국제정치의 현실에서 매우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일본이 그 당시 안중근의 주장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태평양전쟁과 원자탄 투하, 위안부, 한반도 분단이라는 20세기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 문명의 시대에서 지역의 분쟁 해결을 위해 끊임없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하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안중근의 주장은 보다 더 현실적인 대안제시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럽통합의 역사에서 분쟁의 상징을 평화의 상징으로 바꾼 사례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통합의 필요성을 주장한 윈스턴 처칠은 1949년 17세기 이후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민족분쟁의 발원지였던 알자스-로렌지역에 서유럽 통합의 모태가 된 '유럽평의회'를 설립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처칠의 이러한 노력은 매우 이상적인 제안이었지만 유럽통합론자들은 이와 같은 발상의 전환 없이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는 매우 절박한 심정에서 '유럽평의회'를 설립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림>은 안중근 '동양평화론'의 두 가지 전개방향인 '세력균형'과 '다자간 통합'이 여순의 '평화회의'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 사형선고 받은 후, 법정에 그 집행의 연기를 요청하여 그 기간에 <안응칠 역사><동양평화론>을 저술했는데, 동양평화론은 위와 같은 요지의 총론만 써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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