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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8. 事大主義史觀이 歪曲한 箕子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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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8. 事大主義史觀歪曲箕子朝鮮


왜곡된 역사事大主義史觀歪曲箕子朝鮮

우리는 은나라 사람 기자가 조선으로 건너와 B.C 1122년 기자조선을 세웠다고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워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기자조선은 있지도 않았던 허구의 국가라는 것을 아는 국민들이 많지가 않다. 이토록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기자조선은 조선왕조가 지어낸 허구의 국가로, 분명한 것은 기자는 조선에 와서 기자조선을 세운 적이 없다.

 

기자에 대해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25세 솔나단군 37년 정미(B.C1114) 기자가 서화(西華)에 옮겨가 있었고 인사를 사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자가 살던 시절 단군조선은 25세 솔나단군에 의해 통치되던 시절이며, 솔나단군은 88년간 조선을 다스렸는데, 어떻게 기자가 조선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기자가 살던 땅인 서화는 하남성(河南省)으로 은나라와 단군조선의 경계로 보아야 하며, 기자의 무덤이 있는 곳은 안휘성(安徽省) 몽현이다. 하남성에서 살다 안휘성에서 죽은 기자가 대동강 평양에 와서 기자조선을 세우고 평양에서 죽었다고 조선왕조와 식민사학계는 태연하게 말하고 있다.

 

중화 事大主義가 극치를 이룬 조선왕조 때, 평양에 오지도 않았던 기자의 무덤까지 대동강 평양에 만들어 놓고는, 기자조선을 만들어 위대한 단군조선의 역사를 두 동강이 내는 엄청난 패륜을 저지른다. 여하튼 조선왕조에 의해 저질러진 이런 역사왜곡 행위는 마땅히 지탄받아야 할 것이다.

    



사진1 대륙 동부는 번조선, 만주와 한반도는 막조선, 그리고 하북성과 내몽고 일대는 진조선





사진2 기자가 살던 땅 하남성 서화, 묻힌 곳 안휘성 몽현. 이곳이 은나라와 조선의 경계이다

 

이성계의 쿠데타로부터 시작된 民族史 歪曲

위화도회군으로 고려조정의 권력을 한손에 장악한 이성계는 결국 스스로 왕위에 올라 나라를 세우는 이른바 역성혁명(逆姓革命)을 이룩한다. 새 국가를 세우기는 했으나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고 또 역성혁명의 대의명분까지 없자 이성계는 강력한 외부의 힘을 끌어들인다.

그것이 바로 명나라의 속국임을 스스로 자청하는 것이었다. 명나라는 조선(朝鮮)이라는 국호를 내리고는 과거 비실비실했던 한족(명나라)의 조상들이 강력했던 동이족(조선)에게 당했던 피맺힌 한을 풀기 시작한다. 한풀이인 역사보복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조선왕조 때에는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으로 대변되는 쿠데타가 몇 차례 있었다. 나중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 의한 왕자의 난과 수양대군(후에 세조)에 의해 일어난 계유정난 등도 쿠데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정변이 있을 때마다 조선왕조는 사후재가를 위해 명나라의 고명을 필요로 했고, 명나라는 승낙의 조건으로 역사왜곡을 지시한다.

 

왕자의 난(쿠데타)으로 집권하는 태종, 두 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는 세종, 계유정난(쿠데타)으로 단종을 폐위시키고 등극하는 세조, 형이 있음에도 왕이 되는 성종, 반정으로 왕으로 올려진 중종 등의 고명을 명나라로부터 받아내기 위해서는 조선왕조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해야 했다. 뇌물과 접대는 기본으로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명나라는 조선왕조의 이러한 정변(政變)과 부정(不正)을 허락하는 대신 조상들의 역사왜곡을 요구한다. 그래서 허구인 기자조선이 창조되는 것이며, 古代史書가 수거되어 불살라지고, 삼국사기가 조작되는 것이며, 반도사관이 생겨나는 것이다. 게다가 공자를 정신적 지주로 모시게 되고 나중에는 치우 대신 군신으로 관우를 모시게 되는 것이다.

 

기자조선은 鮮初 정도전과 권근 등이 만들어 선조 때 율곡 이이의 <기자실기>에 의해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이렇게 조선조의 유학자들에 의해 허리가 잘려 반 토막이 된 단군조선은 급기야 일제가 이 땅을 식민지배하면서부터는 신화로 둔갑하는데, 그것이 해방 70년이 지나도 회복이 안 되고 있는 현실이다.

 

사진3 정도전이 지은 "조선경국전 " 조선이란 국호와 기자조선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차 있다. 기자를 조선후로 봉한다는 주 무왕의 명을 받는다로 시작한다.


조선왕조는 기자조선이란 B.C 1122년부터 1대 문성대왕(기자)로부터 41대를 내려와 929년간 존재했었다고 왕계를 허위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공의 이야기일 뿐이다. 기자조선의 실체란 단지 기자의 후손인 기후가 단군조선의 한 축인 번조선 말대에 쿠데타를 일으켜 번조선의 왕이 되어 6대를 내려가는 것이다. 그들은 기후--> 기욱--> 기석--> 기윤--> 기비--> 기준(마지막 왕)으로 선조인 기자를 문성대왕으로 추존하고 기준은 자기네 조상을 전부 왕으로 추존하게 된다.

 

이것이 기자조선의 실체이다. 따라서 단군조선 다음에 기자가 기자조선을 세웠다는 것은 유명조선(有明朝鮮)으로 명나라의 충견(忠犬)이 되겠다고 작정한 조선왕조에 의해 저질러진 어불성설의 거짓이며 허구의 이야기일 뿐이다. 당시에 기자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자조선은 실제로 존재했던 국가가 아니며, 후손인 기후가 번조선의 왕으로 집권한 것도 국가적 차원에서의 쿠데타가 아니라, 지방 정부(제후)에서 정변을 일으켜 왕위를 빼앗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단군조선의 주축인 진조선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

 

현행 국사교과서의 이론을 보면, 단군조선은 --> 기자조선 --> 위만조선 --> 한사군으로 넘어가면서 이어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즉 기자가 단군조선을 접수해 기자조선을 세웠고, 또 연나라 정치 망명객 위만이 기자조선을 무너뜨리고 위만조선을 세웠다고 되어있다. 그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그 지역에 한나라가 4군을 설치했다고 하며 한4군의 핵심인 낙랑군의 위치가 평양 일대라는 것이다.



대륙동부에 있었던 한사군을 북한 지역으로 끌고 온 매국 식민사학계. 이들의 매국 행위 때문에 언젠가는 북한 땅은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한사군이 있던 위치는 옛 조선의 강역의 일부이다.

 

이 이론은 일제가 우리의 민족정기를 말살하고 이 땅을 영원히 식민지배하기 위해 허위로 지어낸 엉터리 이론일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론이 해방 후 식민사학자 이병도와 그 후학들에 의해 더욱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병도의 후학들은 일제사학을 신봉하면서 강단을 점령해서는 엉터리 이론으로 자라나는 학생들의 얼(,정신)을 빼고 있으며, 아직도 엉터리 이론을 가지고 온갖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는 일제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오히려 친일파들을 자신의 정치적 세력으로 포용하여 중용함으로서, 이 땅에 불의(不義)와 부정(不正)이 뿌리내리게 한 이승만대통령의 크나큰 잘못으로 보아야 한다.

<http://blog.daum.net/grandcorea/668101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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