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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5. 歷史의 記錄과 解釋에 대한 關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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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5. 歷史記錄解釋에 대한 關心

<歷史란 무엇인가?>의 저자 에드워드 카歷史에 대한 定義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져 있느냐라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이다.”(p.30)

“(역사를 연구하고 싶다면)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p.31)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p.42)

 

역사가는 임시로 선택된 사실과, 그러한 사실선택을 이끌어 준 임시적인 해석 - 그것이 타인의 것이건 자신의 것이건 - 과의 양자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일이 진행됨에 따라서 해석이나 사실의 선택 및 정리는 다 같이 쌍방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미묘한 반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울러 내포되는 것이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p.42)

 

"위인이란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使役人)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한다.“

 

2. 토인비의 정의 挑戰應戰

청어를 잡아 먼 거리로 수송하면 대부분이 죽는다. 그러나 청어 통 안에 큰 메기(도전)를 넣으면, 청어는 살아남으려고 계속 도망(응전)친다. 그러면 어선이 항구에 도착해도 청어는 싱싱하게 살아있다. 토인비가 자주 든 예이다. 도전응전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재해나 외세침략(도전:불안)을 받았던 중국, 인도 문명은 아직도 건재하지만 마야처럼 도전 받지 않았던 문명은 사라졌다.

불안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불안은 나쁘다. 하지만 불안은 문명창달의 원동력이기도 하였다. 인간이 불안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현재의 과학과 문명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다.

우리 인간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하나님이나 자연에게 맡길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전쟁은 모든 문명을 파괴시키는 주된 원인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현대 문명의 위기는 기술 문명이 토끼처럼 달려가는 데 비해서 정신 문명이 거북이같이 뒤를 쫓는 데 있다.

한 민족과 한 국가가 성숙하기까지는 숱한 시련과 반성, 그리고 성찰(省察)의 교훈이 퇴적(堆積)되어야 한다.

윤리와 도덕의식을 갖지 못한 민족은 멸망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문명이란 하나의 상태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며, 항구가 아니라 항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떠한 문명도 아직 문명의 목적지에 도달해 본 적이 없다.

한국이 인류사회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부모를 공경하는 효자상(孝子像)일 것이다.

현대인은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다. 다만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역사는 그 자체를 되풀이한다.

 

토인비의 종교관

문명은 그 기반으로 삼고 있는 종교의 질(;quality)에 의해 결정 난다는 관점을 견지해온 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그의 말년에 문명과 종교에 관한 매우 의미 있는 발언을 남겼다.

현대인이 가져야 하는 궁극적인 종교는 ()’을 근본으로 하는 종교이다.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종교, 인류가 꼭 버려야 할 종교는 유대계의 미신적 일신교이고, 마지막 붙잡아야 할 종교는 불교 같은 탈그리스도교적인 무신론에 선 과학적. 보편적 진보에 대한 신앙이다...........중략...................

야훼 같은 구속적 유일신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생명의 법체계 쪽이 궁극의 정신적 실재를 보다 그르침이 없이 나타내고 있다.”

-<21세기와의 대화> ‘종교의 역할’ -

 

3. 歷史本質的으로 하나가 아니라 여럿

우리 사회 대부분의 논쟁이 그렇듯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역시 예의 진보 대 보수의 논리에 따라 뚜렷이 편이 갈리는 양상이. 그러나 이러한 진영논리를 잠시 괄호 쳐놓고 바라본다면 단일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을 이른바 올바른 역사라고 규정하는 태도는 근본적인 측면에 있어 오류를 범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적인 측면이란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하는 역사학의 고전적인 물음에 대한 입장을 가리킨다.

 

역사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아마 과거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것이 역사라고 보는 실증주의적인 역사관일 것이다. 그러나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이 견해는 사실 따지고 보면 문제투성이다. 핵심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고, 둘째는 설사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확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들을 연결하는 작업은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는 그대로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있는 그대로란 통상 사료(史料)’에 대한 객관적인 기술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역사 기술의 원천인 이 사료는 출발점에서부터 주관에 물들어 있다. 모든 기록은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장소 그리고 이로부터 파생되는 특정한 삶의 조건 속에 살던 특정한 기록자가 남긴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날것 그대로의 기록이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설령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피하게 기록자의 주관이라는 필터에 걸러진 상태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정들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 논의와 밀접하게 관계에 있는 단군신화가 똑같이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역사서이지만 삼국사기에서는 배제되고 있으나, 삼국유사에서는 선택되고 있는 상황이 잘 말해준다.

 

多樣解釋의 성찬으로 批判省察可能

두 번째 문제는 날것 그대로의 사실을 담고 있는 사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역사는 아니라는 점과 연관된다. 사실의 나열이 역사는 아니다. 사실들을 엮어 그것들이 놓여있는 시대적 맥락을 드러내주는 것이 역사이다.

 

1950625일 남한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가 아니다. 그 전쟁이 왜 발생했는지를 해석을 통하여 설명하는 것이 역사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쪽도 그날의 사건에 대한 이른바 좌편향된 교과서들의 해석을 문제 삼는 것이지, 전쟁발발이라는 사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요컨대, 사료가 서 말이라도 꿰어야 역사인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모든 해석사실을 엮는작업은 어디까지나 객관이 아니라 주관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역사는 본질적으로 하나가 아니라 여럿일 수밖에 없다. 역사해석의 주체인 주관은 당연히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역사는 동시대를 사는 다양한 주관들이 각자가 선택한 사실이라는 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선보이는 쿡방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1980년 광주라는 재료는 사태’, ‘의거’, ‘폭동’, ‘운동’, ‘항쟁등 다양한 이름의 음식으로 조리되어 시청자에게 선을 보인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우리의 미각은 한층 풍성해진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주장은 시청자들에게 이 음식들 중 하나만 올바른 음식으로 규정하고 그것만 먹을 것을 강요하는 것과 같다.

 

그것이 비록 천하일미라 하더라도 한 가지 음식에만 길들게 하는 것보다 미각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식생활 자체의 질을 높인다는 점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태도이다. 백보천보 양보하여 설령 그것이 올바른 음식이라 하더라도 단언컨대 시청자들은 이내 질리고 말 것이며, 그에 따라 다시 새로운 음식을 찾아 나설 것이다.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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