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이야기-4. 흔들리는 歷史的 眞實과 因緣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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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4. 흔들리는 歷史的 眞實과 因緣들
-동학농민혁명, 전봉준 관련--
1. 전봉준과 東學
최근에 전봉준이 동학교도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 전봉준이 동학교도라는 주장을 “전봉준 동학 교도론”(줄여서 “교도론”)이라 하며, 아니었다는 주장을 “전봉준 동학 비교도론”(줄여서 “비교도론”)이라 한다. 비교도론에 따르면, 전봉준이 동학교도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 교도론
전봉준이 문초를 받을 때 “동학을 좋아한다.”라는 답변하였다.
→ 반론 : “동학을 좋아한다.”라는 말과 “동학을 믿는다.”라는 서로 같지 않으며, 전봉준이 동학교도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비교도론자 들은 주장한다.[신복룡의 <한국사 새로보기>]
공초(供招)의 제목이 〈동도(東徒)의 죄인 전봉준 공초〉이다.
→ 반론 : 비교도론자들은 〈동도(東徒)의 죄인 전봉준 공초〉에서 전봉준은 “교도는 적었고 원한에 찬 농민이 많았다”라고 답하였기 때문에 전봉준이 꼭 동학교도라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반박하며, 당시에는 동학 농민 운동을 동학난이라 불렀고, 그 참여자가 동학교도이든 아니든 구별하지 않고 동학교도라고 불렀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법정 진술에서 “네가 접주가 된 것도 역시 최시형이 차출한 것인가?”라고 묻자 전봉준이 “그렇다.”라고 대답하였으므로 전봉준은 동학교도라고 주장한다.
→ 반론 : 전봉준은 동학 교주 최시형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또한 동학은 國賊과 斯文亂賊(사문난적)에게도 명첩과 접주 임명장을 주는가?
♣ 비교도론 [신복룡의 <한국사 새로보기>] 참조
전봉준이 문초를 받으면서 “나는 서당의 선생으로서 아동을 가르쳤을 뿐 동학의 교리를 따르거나 가르친 바가 없다.”라고 답하였다.
전봉준이 문초를 받으면서, 직업을 물었을 때, 동학의 “접주”라 하지 않고 “선비”라고 대답하였다. 비교도론자 들은 그가 동학 접주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답했다고 주장한다.
동학 농민 운동 제1차 봉기 당시 동학교주 최시형이 “이들은 國賊이요 斯文亂賊이며, 아비의 원수를 갚으려면 효도로써 할 일이지 서두르지 말라.”라고 밝혔다. 비교도론자들은 이것이 교도론과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전봉준이 작성한 격문에는 동학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2. 박정희. 윤보선. 김구와 東學革命의 因緣
박성빈, 동학농민군의 고령, 성주지역 접주였다. 동학농민군 고령, 성주 지역의 접주로 활동하다 체포, 사형을 모면한 박성빈은 대한민국의 5~9대 대통령을 지낸 군인 출신 정치인 박정희의 아버지이자 총리 김종필의 처조부가 된다.
1894년 10월 토포사 윤영렬은 아산(牙山)에 사는 조중석(趙重錫)과 함께 장정 300명을 모아 천안군 목천면에 출몰한 도적을 토벌하였다. 이후 동학 농민 운동의 토벌에 참여한다. 윤영렬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조중양과 함께 토벌군에 별군관으로 차출되었다. 별군관으로 차출된 그는 관군 외에도 격문을 돌려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어 관군과 의병 병력을 이끌고 충청남도 아산과 천안 일대의 동학 농민군토벌에 참여하였다. 윤영렬은 윤보선 대통령의 할아버지였다. 그런데 상하이에 망명 중이던 윤치호는 동학 농민운동을 적극 지지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윤치소(尹致昭, 일본식 이름: 伊東致昭)는 윤보선(尹潽善)의 아버지이며 제1대 내무부 장관 윤치영의 형이다. 구한말의 개화기 정치인 윤치호의 사촌동생이었다. 역사학자 두계 이병도와는 겹사돈이었다. 또한 셋째 아들 윤원선이 흥선대원군의 증손녀와 결혼하여 고종과 황실의 인척이 되었다.
박정희는 동학군의 움직임을 일종의 혁명으로 간주하고 동학 농민 혁명 또는 동학 혁명이라 지칭하였다. 그러나 동학 혁명이라는 칭호는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피살당하면서, 농민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교정되었다.
김구는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동학군을 지휘했다. 지도자 최시형의 지시를 받고 황해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해주성을 습격하였으나 끝내는 관군에게 패퇴하고 몸을 숨겼다.
1983년 대통령 전두환의 유시로 전봉준 장군 유적화 사업이 시작되었다. 황토현에 건립된 기념관의 중심시설은 전봉준 장군의 동상이다. 한편, <사>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를 비롯한 지역 시민단체들은 "황토현 기념관 중심에 친일미술가가가 조각한 전봉준 동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철거하거나 재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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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요즈음 한창 전 국민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계기로,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실의 규명과 그 평가가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지금까지 거개의 우리 세대는 '동학접주 전봉준'으로 알아왔고, 그런 전봉준에 대하여 동학의 최고 책임자가 한때 '그는 亂臣賊子'라고 극단적인 저주의 말을 했다는 사실이 놀라우며, 근세 한국의 최고 지도자들도 직.간접으로 동학과 밀접한 인연들이 있음에 매우 흥미롭습니다. '작용과 반작용의 역사'라는 말이 있거니와 어떤 역사적 사실에 대하여 한쪽으로 치우친 해석과 이해는 실체적 진실에 거리가 있음을 교훈으로 실감하게 됩니다.
사랑방 이야기는 우리들이 사실 그대로를 균형감각 있게 이해할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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