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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꿈과 이상, 좌절-6 왜 다시 정도전인가-최상용이 본 조선의 풍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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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꿈과 이상, 좌절-6 왜 다시 정도전인가-최상용이 본 조선의 풍운아

 

한국 양극화 고려말 닮아 600년 전 메시지 귀 기울여야

14세기에 시대 앞서간 '재상제도', 현대 입헌군주제의 총리와 비슷

유교 이상국가 위해 군사력 강조, 마키아벨리형 정치인에 가까워

29일 서울 경복궁을 찾은 최상용 교수는 광화문(光化門)도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다. 그를 빼고는 서울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라도 임금도 백성을 위해 존재할 때만이 그 가치가 있다.”(정도전, 삼봉집)

   

 서울 경복궁을 찾은 최상용 교수는 광화문(光化門)도 정도전이 지은 이름이다. 그를 빼고는 서울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패한 정치와 극심한 빈부격차로 가난한 백성들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없었던고려 말, ‘민본(民本)’을 주창하며 새 나라의 설계도를 그렸던 정치가. 삼봉(三峰) 정도전(1342~1398)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KBS1 주말 대하사극 정도전의 인기와 함께 정도전과 그의 시대(옥당), 소설 정도전(책이있는 마을), 정도전과 조선건국사(이북이십사) 등 관련 도서가 연이어 출간됐다.

 

 조선 건국의 주역이었지만 나라를 세운 지 6년 만에 이방원의 칼날에 목숨을 잃은 정도전의 삶은 그동안 승자의 역사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지금 다시 14세기 정치인을 불러내는 이유는 뭘까. 의문을 풀기 위해 정치가 정도전(2007·까치)을 집필한 최상용(72) 고려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서양 정치사상 전공자로, 그동안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정도전이라는 인물에 주목해 온 최 교수는 정도전은 정치사상가인 동시에 확고한 권력의지를 갖고 역성혁명을 이끈, 동시대 세계 어떤 정치인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는 탁월한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정도전은 학자였나 정치가였나.

정도전을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주자학자로 꼽는 데는 반론이 없을 것이다. 호방하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의식이 담긴 문학작품뿐 아니라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경제문감(經濟文鑑)』 『심기리편(心氣理篇)』 『불씨잡변(佛氏雜辨)등 새 나라의 비전을 담은 정치철학서를 다수 남겼다. 군사 관련 저서도 많다. 하지만 그의 삶은 철저하게 현실 정치에 발을 딛고 있었다. 동시대 서양 정치가 중 중세의 붕괴를 예견하며 근대 국가의 미래를 구상한 이탈리아의 시인·정치가 단테(1265~1321)에 비견할 만하다.”

 

 - 고려 말이라는 혼란한 시대가 정도전이라는 영웅을 만들어낸 셈인가.

“14세기 고려는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위기 상황이었다. 전환기에는 흔히 경제의 파탄, 도덕의 부패, 힘의 균형의 파괴 등이 나타난다. 당시 고려는 토지 소유가 편중돼 중농정책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고, 이념적 기반이었던 불교 역시 극도로 타락한 상황이었다. 정도전은 이런 위기 속에서 자기만의 사상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해 나갔다.”

 

 -하지만 정도전의 사상은 상당 부분 맹자에 기대고 있다는데.

 당시 맹자는 사대부의 필독서였다. 정도전도 맹자의 왕도사상과 민본사상, 역성혁명 사상을 받아들인다. 정도전만의 탁월한 점은 주자학의 정치이념을 옹호하기 위해 고려의 이념적 기반이었던 불교에 대한 체계적인 이데올로기 비판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또 유교적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군사력을 강조했다. 주자학이라고 하면 흔히 문약(文弱)’을 연상하지만 정도전은 정치에는 강한 무력이 필요하다고 봤던 리얼리스트였다.”

 

 - 그가 생각하는 좋은 나라란 어떤 것인가.

당시로서는 싱싱한 정치이념이었던 주자학을 정신적 기반으로 삼고, 재상 제도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관료체제를 갖춘 나라다. 이런 체제를 통해 결국 민생(民生)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민본주의에 대한 신념은 일찍부터 있었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지듯 10여 년에 걸친 유배생활에서 피폐한 백성들의 삶을 체험하면서 더욱 확고해진다.”

 

 -군주제 아래에서 재상의 권한은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군주제는 주어진 여건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군주가 성현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단 재상은 어느 때라도 출중한 능력을 가져야 한다. 정도전이 구상한 재상 제도는 근대 입헌군주제의 총리 제도를 방불케 한다. 재상에 대한 군주의 인사권과 주체성을 지닌 재상의 권한이 제 기능을 발휘할 때 군주와 재상의 상호보완적인 지배체제가 존립할 수 있다고 봤다. 훌륭한 재상의 행동규범으로는 정기(正己·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 격군(格君·군주를 바르게 하는 것), 지인(知人·인재를 잘 가려 쓰는 것), 처사(處事·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를 들었다. 특히 정치의 아름다움(政治之美)은 인사에 있다고 보고, 재상의 가장 큰 직분을 사람의 임용에 뒀다.”

 

 -정도전의 비전은 이상적이었지만 현실적으론 권력투쟁에서 패해 이방원에게 죽는다.

 정치인의 자질에 대한 서양철학자들의 견해를 참고할 만하다. 플라톤은 철학을 갖춘 철인을 정치인의 이상형으로 봤고, 마키아벨리는 비르투(virtu)’를 강조했다. 비르투는 흔히 덕성으로 풀이되지만 덕()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출할 수 있는 비범한 힘을 뜻한다. 막스 베버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책임윤리를 이야기한다. 정도전은 이 모든 자질을 갖춘 정치인이었다. 고려 말의 3대 영웅이었던 정몽주와 정도전·이방원의 관계에서 이방원은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의 최후 승리자다. ‘권력의 화신이었던 이방원의 승리를 보며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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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정해관님의 댓글

삼봉과 관련하여 두분의 견해에도 공감합니다.

제가 삼봉에 대한 관심이 큰 점은, 누가 뭐래도 조선의 하드웨어적(한양도성 및 왕궁 설계), 소프트웨어적(조선경국전 중심) 설계자였으며,  그의 주장에 대하여 어떤이는 영국에서 1688년에 이루어진 <권리장전>의 가치와 동일하다고할 정도라는 평가가 지나치게 과장되지 않았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그리고 그의 견해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시대적 상황은 내적으로는 천일국의 출범과 천일국 헌법문제, 외적으로는 민족통일 시대를 대비하고 남쪽에서도 '87년 체제를 지양한 개헌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가의 견해에 의하면 비록 현실적 힘을 가졌던 이방원과 다른 길을 가다가 그 의지가 꺾이기는 했지만, 그의 뜻은 상당 부분 후임 왕들과 그가 설계한 시스템에 의하여 구현되었다고 합니다.

 이 때에 공영방송에서 그를 재평가하게 될 드라마를 방영한다는 점도 그 의미와 영향이 유의미하다고 생각 합니다.

성범모님의 댓글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였지만 권력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비운의 개혁 정치인이다. 왕권과 신권의 분리는 이상론이지 애당초부터 현실에서는 받아드리기 어려웠다. 필자가 작금의 시대를 고려말과 비유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하겠다. 오히려 구한말 상황과 유사하다고 할 수있다. 고려말의 문란한 토지제도의 과감한 개혁을 통해 민심을 얻으면서 친원파와 친명파가 대립하는 국제관계와 허약한 왕권을 두고 벌이는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비록 삼봉의 개혁은 미완으로 끝났지만 그가 집대성한 경국대전은 조선 뿐만아니라 오늘날 까지도 국가운영의 경전같은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결국 삼봉도 인간인지라 권력분점에서 오는 암투 속에서 강비와 손잡은데서부터 치명적 비극이 잉태되었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에 방원과 손 잡았다면 부귀영화를 누렸겠지만....

역성혁명을 거쳐 조선건국의 설계를 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비명횡사한 삼봉이었지만 그가 이루고자 했던 시대정신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더불어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인규님의 댓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고한 철학과 전략을 갖고....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 너무 추상적이다.

확고한 철학이란 무슨 철학을 말함인가 그리고 전략이란 어떤 정책을 말함인가에 대해 너무 추상적으로 흐른 것 같다.

모두가 확고한 철학을 갖고 한다고 난리인데 여기에 또 확고한 철학과 전략을 주문하고 또 강력한 리더십을 강조한 것은

현실 진단과 처방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차라리 자질론을 강조했다면 좋을 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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