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7대 불가사의2 : 페루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Machu Pic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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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7대 불가사의2 : 페루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Machu Picchu)
① 중국 만리장성 (Great Wall of China)
② 페루 잉카 유적지 마추픽추 (Machu Picchu)
③ 브라질 거대 예수상 (Christ the Redeemer statue)
④ 멕시코 치첸 이차의 마야 유적지 (Chichen Itza)
⑤ 로마 콜로세움 (Colosseum)
⑥ 인도 타지마할 (Taj Mahal)
⑦ 요르단 고대도시 페트라 (Petra)
잉카제국은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서 가장 큰 나라였으며 이들은 12세기경 티티카카 호수에서 발원하여 인접한 쿠스코(Cuzco)에 수도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들의 전성기에는 오늘날의 콜롬비아 남부,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북부, 아르헨티나 일부 지역까지 세력을 펼쳤으며 2,500만명의 국민이 있었다고 한다. 잉카는 스페인의 정복으로 16세기 초까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었다.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해발 3400m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은 산들이 주위를 감싸고 있는 계곡으로 세 개의 강줄기가 모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4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중심구역의 큰 궁전에 귀족들이 살았으며 상하수도 시설이 완벽했다. 전성기에는 인구가 20만 명에 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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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성기를 맞은 1532년, 파사로를 대장으로 하는 스페인의 군대가 잉카 제국 북부 해안에 상륙하였다.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의 황제를 초대하였다. 피사로는 잉카 황제에게 스페인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였다. 황제가 이를 거절하자 그들은 기습 공격으로 황제를 사로잡았다. 결국 황제는 처형당하고 스페인 사람들은 잉카의 수도인 쿠스코까지 점령하였다. 그리고는 그의 이복 동생인 망코를 허수아비 황제로 세웠다. 1536년, 망코는 10만의 잉카인을 거느리고 안데스 산맥의 험준한 골짜기로 도망가 새로운 수도를 세웠다. 이곳이 잉카의 마지막 수도 빌카밤바이다. 그 후 망코의 아들 아마루가 새로운 황제가 되어 스페인 군대와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1572년 빌카밤바마저 스페인에 함락되고 황제는 쿠스코로 끌려가 처형되었다. 그리고는 스페인 군대는 잉카의 막대한 금을 약탈하였다. 잉카에는 금이 많다고 전해지는데 그들의 약탈에도 불구하고 많은 금은보화가 숨겨졌다고 알려져 있다. 스페인 군대가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접한 잉카의 귀족들은 극비리에 보물들을 숨겼다고 한다. 스페인 군대는 그 보물을 찾으려고 각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엔 찾지 못했다. 빌카밤바에서 살아남은 일부의 사람들은 또다시 다른 곳으로 도망가 새로운 도시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1911년 7월 24일, 미국의 대학 교수인 하이램 빙엄(Hiram Bingham)은 깊은 산봉우리 위에 건설되어 있던 마추피추(Machu Pichu, 젊은 봉우리)를 발견하였다. 마추피추는 쿠스코에서112km 떨어진 곳에 해발 2300m 높이의 산봉우리에 만들어져 있다. 아마존 강의 원류인 우루밤바 강 위의 절벽에 세워져 있으며 아래에서는 도저히 보이지 않아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접근조차 어렵다. 총 면적은 40만km2이고 약 1만 여명이 거주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정과 가파르고 좁은 경사면에 들어서 있어 스페인 정복자들의 파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유일한 잉카 유적이다. 정확한 건설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측된다. 이 도시로 들어오는 길에는 통나무다리가 있는데 적군이 침입해 오면 이 통나무를 치워 길을 끊었다고 한다. 태양의 신전, 지붕없는 집, 산비탈의 계단식 밭, 농사를 짓는데 이용된 태양시계, 콘돌 모양의 바위, 피라미드 등의 유적이 남아있다.
이 마추피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이다. 커다란 돌을 다듬는 솜씨가 상당히 정교하다. 각 변의 길이나 몇 m나 되고 모양도 제각각인 돌들을 정확하게 잘라 붙여서 성벽과 건물을 세웠다. 종이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히 붙어 있다. 젖은 모래에 비벼서 돌의 표면을 매끄럽게 갈았다고 한다.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만들고 여기에 배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여기서 살던 사람들은 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마추피추의 발견당시 여자들의 미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왜 남자들은 없고 여자들만 남아 있었던 것일까?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가고 여자들만 남아 살다가 전염병으로 인해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확실한 내막은 알 길이 없다. 마추피추가 발견되면서 이곳이 빌카밤바라는 학설이 나왔으나 빌카밤바는 스페인 군대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었는데 여기에는 어떠한 공격 흔적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한편 마추피추가 예전에 금은보화를 숨겼던 "비트코스"라는 곳이라고도 하나 역시 확실한 증거는 없다.
마추피추에 살던 잉카인은 왜 사라졌는지, 이 곳이 예전에 잉카의 수도였는지 알 수는 없다. 오직 마추피추에 살던 그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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