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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凰과 碧梧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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鳳凰碧梧桐이야기

 

1. 莊子 17 秋水편에 봉황과 벽오동 관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夫鴛雛 發於南海而 飛於北海 非梧桐不止() 非練實(竹實)不食 非醴泉不飮

* 鴛雛(원추) : 봉황새

대저 봉황은 남해에서 북해로 날 때, 오동나무가 아니면 앉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고, 신선한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도 않는다.

 

2. 천자문 17장에 鳴鳳在樹하고 白駒食場이라

우는 봉황새는 나무에 있고, 흰 망아지는 마당의 풀을 먹는다.

 

詩曰 鳳凰鳴矣梧桐生矣라하니

詩經》 〈大雅 卷阿에 이르기를 봉황새가 우니, 오동나무가 생장한다.” 하였다.

 

蓋 鳳非梧桐이면 不棲하고 非竹實이면 不食하니 喩吉士之得所止也

鳳凰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니, 善人(吉士)이 거주할 곳을 얻음을 비유한 것이다.

* 태평성대의 시절이고 평화로움의 여유가 그려집니다.

 

3. 판소리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사랑 장난을 하는 대목입니다.

 

단산(丹山) 봉황(鳳凰)이 죽실(竹實) 물고

오동(梧桐) 속에 넘노는 듯 ........

구고(九皐) 청학(靑鶴)이 난초를 물고서

오송간(梧松間)에 넘노는 듯.

 

봉황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위의 글에서 봉황은 오동나무 가지가 아니면 앉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으며, 예천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非梧枝不棲 非竹實不食 非醴泉不飮)고 했다. 예천은 태평성대에만 단물이 솟는 샘이다.

 

봉황이 머무는 곳은 오동이다. 이 오동은 오동나무가 아니라 벽오동(碧梧桐)을 가리킨다. 오동나무는 목재가 희기 때문에 백동(白桐)이라 하고, 벽오동은 줄기가 푸르기 때문에 청동(靑桐)이라 한다. 오동나무는 현삼과(), 벽오동은 벽오동과()로 전혀 다른 나무다. 굳이 구분하자면 는 벽오동을 뜻하고, ‘은 오동나무를 뜻한다. 따라서 봉황이 깃드는 오동은 모두 벽오동이라 보면 된다.

 

벽오동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줄기가 푸르고 윤기가 나기 때문에 불로(不老)를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졌다. 자라는 속도도 빠르고 키도 큰 편이다. 한 해에 한 마디씩 자라기 때문에 마디를 세어 보면 나이를 알 수 있다. 크게 자란 벽오동은 과연 봉황이 찾아가 앉을 만큼 위엄이 있다.

이파리도 부채처럼 널찍하다. 잎이 무성하면 봉황이 그 속에 앉아 충분히 쉴 수 있을 것 같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희고 노란빛을 띠는 작은 꽃 무리가 가지 끝에 달린다. 꽃잎도 없고 꽃받침이 뒤로 젖혀져 꽃술만 쑥 나온 모습이 뭔가 어색해 보인다. 가을이 되면 다섯 날개를 아래로 오무린 듯한 팔랑개비 모양 안에 완두콩 같은 열매가 오순도순 달린다.

 

남도 민요 새타령은 남영에 대붕새야 오동잎에 봉황새야 상사병에 기러기야 고국 찾는 접동새야 하며 온갖 새를 불러낸다. 대붕은 남녘에서, 봉황은 벽오동에서 불러낸다. 천자문의 33번째 구절 명봉재수(鳴鳳在樹·우는 봉황새는 나무에 깃든다)의 나무도 벽오동이다. 화투(花鬪) 11월의 패(오동광)에서도 벽오동과 봉황을 볼 수 있다. 봉황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경남 함안은 봉황을 부르기 위해 벽오동을 심은 숲이 있고, 여수 오동도는 봉황을 쫓기 위해 벽오동을 베고 동백을 심었다는 전설이 있다. 조선 후기에 표암 강세황이 그린 벽오청서도(碧梧淸暑圖)는 선비가 벽오동 아래 앉아 마당을 쓰는 아이를 바라보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벽오동 아래서 기다리면 봉황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혹시 벽오동에 깃들어 스스로 봉황이 된 듯한 여유를 누리고 싶지 않았을까?

 

4. 조선 중기의 문인 김성일은

 

千仞鳳凰何處去(천인봉황하처거)

碧梧靑竹自年年(벽오청죽자년년)

천 길 높이 날던 봉황 어디로 날아가고

벽오동과 푸른 대만 해마다 자라는가하며 도산 이퇴계 선생을 그리워했다.

퇴계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鶴峯 金誠一은 이퇴계 선생을 봉황으로 비유하였다.

 

조선시대 문장가 松江 鄭澈은 식어버린 선조 임금의 사랑을 다시 찾아오기를 기원하면서 飜曲題霞堂碧梧(번곡제하당벽오·하당의 벽오동을 번곡하여 적다)라는 시를 썼다.

 

樓外碧梧樹(누외벽오수)

鳳兮何不來(봉혜하불래)

無心一片月(무심일편월)

中夜獨徘徊(중야독배회)

 

다락 밖에 벽오동나무 있건만

봉황은 어찌 안 오는가

무심한 한 조각달만이

한밤에 홀로 서성이는구나

 

봉황이 벽오동에 내려앉기를 갈망하는 이유는 벼슬에서 쫓겨나 변방에 떠도는 자신을 임금이 다시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나라와 임금을 동일시하던 왕조시대에 '성은이 망극'할 정도로 임금을 사랑했거나 사랑하는 척이라도 했던 선비들은 그들의 공간인 서원이나 향교에 벽오동을 한 두 그루 심고 가꿨다.

 

도대체 왜 봉황은 오지 않는 걸까?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터니

내가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一片明月)

빈 가지에 걸렸에라.(작자 미상)

 

벽오동에 빠지면 헛것을 보게 되나 보다. 전통가곡 언락’(言樂)에서는 봉황의 그림자를 봤다고 주장한다.

 

벽사창(碧紗窓)이 어룬어룬커늘

임만 여겨 펄떡 뛰어 나가보니

임은 아니옵고 명월이 만정(滿庭)헌데

벽오동 젖은 잎에 봉황이 와서

긴 목을 후여다가 깃 다듬는 그림자로다.(작자 미상)

5. 벽오동은 우리의 노래로 많이 회자되었다.

 

작자 미상의 옛 시조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잣더니

내가 심는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만 일편명월(一片明月)

빈 가지에 걸려있네

 

6. 이러한 주제는 1970년대에 김도향이나 나훈아의 노래에서도 나온다.

 

벽오동 심은 뜻은 (작사, 작곡, 노래 / 김도향/ 1970)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잤더니

어이타 봉황은 꿈이었다 안 오시뇨

달맞이 가잔 뜻은 님을 모셔 가잠인제

어이타 우리 님은 가고 아니 오시느뇨

하늘아 무너져라 와뜨뜨뜨뜨뜨

잔별아 쏟아져라 가뜨뜨뜨뜨뜨

 

벽오동 심은 뜻은 (작사 /반야월, 작곡 /박시춘, 노래/나훈아/1971)

 

님 계신 서울 길이 왜 이다지 멀고 먼가

어린 것을 등에 업고 눈물로 헤매이네

정 없는 이 세월에 인심마저 박절한데

벽오동 심은 뜻은 벽오동 심은 뜻은

님은 진정 모르리라.

 

님 찾아 사랑 찾아 천리 길을 왜 왔던가

매정해진 님의 손길 눈물이 앞을 서네

미천한 몸이라고 사랑마저 없을소냐

벽오동 빈 가지에 벽오동 빈 가지에

조각달만 서러워라.

 

벽오동나무는 봉황새와 관계있다. 봉황은 기린, 거북, 용과 함께 영물로 꼽히며 덕망 있는 군자가 천자의 지위에 오르면 출현한다는 새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 밖에 뛰어나게 재주가 있는 사람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이며 고귀하고 품위 있고 빼어난 것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봉황이 벽오동나무에 서식하며 대나무 열매를 먹고 신령한 샘물을 마신다고 전해집니다.

 

봉황을 기다리는 이 나라 이 민족 그리고 인류 벽오동 숲이 아직 미흡한듯한가요?

죽실(練實)은 어드메요. 醴泉은 어디 준비되었나요?

 

위에서 봉황과 벽오동관계의 연유를 전제로 한국 대통령의 文樣은 봉황이다.

한편 일본총리의 문양은 오동잎과 열매이다. 봉황과 오동, 한국 문양과 일본 문양은 어떤 관계인가 선조들의 지혜가 함축된 문양일진대 한일관계를 풀어가는데 깊이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2023817

최종만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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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댓글 2

김태순님의 댓글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봉황은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새이며.

봉황새가 둥지 짓는 상서로운 벽오동 나무

에 얽힌 깊은 뜻, 

상징적인 오묘한 비유를 다양한 문헌자료를 

열거하여 선조들의 지혜를 감칠맛나게 

묘사하셨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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