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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37. 왕위 자리를 빼앗긴 발기(發岐)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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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이야기-37. 왕위 자리를 빼앗긴 발기(發岐)의 반란

왕위 자리를 빼앗긴 고구려 발기의 반란

발기는 고국천왕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왕이 죽으면 당연히 둘째인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리라 믿었다. 그런데 동생 연우가 우씨 왕후와 결탁하여 고구려 제10대 왕위(산상왕)에 오르자, 그는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형이 죽으면 그 다음 아우에게 왕위가 돌아가는 것이 예인데, 너는 그 순차를 뛰어넘어 왕위를 찬탈하였다. 너의 죄가 크니, 어서 나와 이 형의 칼을 받아라.”

 

발기가 자기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궁궐의 성문 앞에 나타나 이렇게 외쳤으나, 동생 연우는 3일 동안 성문을 걸어 잠근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미 연우는 왕위에 올랐으며, 우씨 왕후와 결혼한 사이였다. 고구려 초기에는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형사취수(兄死娶嫂)’의 풍습이 있었다. 이를 취수혼이라고 하는데, 이 풍습은 삼국 중 고구려에만 있었던 특이한 혼속이었다. 형이 죽고 나서 둘째 동생이 미혼일 경우 형수와 결혼하는 것이 순서이지만, 만약 둘째 동생이 결혼한 상태라면 미혼인 셋째 동생이 그 형수를 취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고국천왕 사후 우씨 왕후가 둘째인 발기가 아닌 셋째인 연우와 맺어진 것은 당시 고구려의 취수혼 풍습으로 볼 때 크게 어긋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당시 고구려 조정에서는 말이 없었다. 더구나 우씨 왕후가 선왕(先王)인 고국천왕의 유언이라며 연우에게 왕위를 물려주게 되자, 신하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말에 따랐을 뿐이었다.

 

그러나 우씨 왕후는 그때 거짓으로 고국천왕이 연우에게 왕위를 계승케 하라고 유언했다고 말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우씨 왕후를 둘러싼 연나부 세력의 음모도 가담이 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고국천왕 당시 우씨왕후의 친족 세력인 좌가려가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면서 연나부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다. 연나부 출신이었던 왕후 역시 좌가려의 반란으로 인하여 운신의 폭이 그만큼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침 고국천왕이 죽자 연나부 세력들은 왕후 우씨를 부추겨 세력 강화의 기회로 삼았을 것이고, 그것이 취수혼이라는 풍습에 의거한 음모로 가시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우씨 왕후 혼자서 꾸민 일이 아니라, 그 뒤에 호시탐탐 권력의 헤게모니를 움켜쥐려고 기회를 엿보던 연나부의 세력이 있었던 것이다.

 

고국천왕은 갑자기 죽은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병상에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죽음이 예고되어 있는 상태였으므로 연나부 세력들은 몰래 우씨왕후와 결탁하여 취수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우씨에게 왕위를 이를 자식이 없다는 데 있었다. 만약 우씨 소생의 아들이 있으면 다음 왕위는 그 아들이 계승하게 될 것이므로, 연나부가 권력의 표면으로 재등장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우씨에게 아들이 없기 때문에, 연나부 출신들은 당시 고구려 사회에 관행처럼 이어져 오던 취수혼 풍습을 음모로 이용하게 된 것이다.

 

고국천왕이 죽게 되면 다음 왕위는 바로 밑의 왕제인 발기가 이어받게 되어 있다. 그런데 발기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으므로, 그가 왕이 되면 자연히 그의 아내가 다음 왕비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우씨왕후의 운명은 비참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원래 합작된 음모는 서로의 이득을 전제로 해서 꾸며지는 것이다. 연나부 세력들은 권력을 잡기 위해, 우씨는 계속해서 왕후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합의점을 찾은 것이 바로 취수혼 음모였다.

 

고국천왕이 죽었을 때 우씨왕후가 상사(喪事)도 알리기 전에 밤길을 이용해 급히 발기를 찾아간 것은 이미 연나부 세력과의 음모에 의한 수순 밟기에 다름 아니었다. 그 음모의 단서가 바로 삼국사기기록에 나타나 있다.

<처음 고국천왕이 돌아갔을 때 왕후 우씨는 (喪事) 비밀리에 붙여 발상(發喪)치 않고 밤에 왕제(王弟) 발기(發岐)의 집에 가서 말하기를, “왕이 후사(後嗣)가 없으니 그대가 계승하라고 하였다.>

이 기사 속에 우씨 왕후와 연나부 세력의 음모가 숨어 있는 것이다. 우씨왕후는 발기에게 고국천왕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다만 왕위를 계승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만약 그 죽음을 알렸다면 발기는 당장 궁궐로 달려가 왕위를 계승하고, 고구려 제10대 왕의 자격으로 고국천왕의 장례를 모셨을 것이다.

 

그런데 우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발기에게 질책만 듣고 그의 집에서 나온 우씨는 미리 짜여 있는 계획에 따라 그날 밤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곧바로 셋째 연우의 집을 찾아간 우씨의 행동 속에 또 음모의 씨앗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기록을 다시 인용해본다.

<()가 말하기를 대왕이 돌아가시고 아들이 없으니 발기가 장(:어른)이 되어 의당 뒤를 이어야 할 터인데 도리어 (나더러) 이심(異心)이 있다 하고 포만무례(暴慢無禮)하므로 (지금) (:아제)을 보러 온 것이오.” 하였다.>

 

이 대목을 보면 아주 노골적으로 고국천왕의 죽음을 알리고 발기 대신 연우에게 왕위에 오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유혹이다. 연우는 그 유혹을 금세 알아차리고 왕비의 청을 받아들여 고구려 제10대 산상왕이 된 것이다.

 

산상왕이 된 연우는 형 발기가 군사를 몰고 궁궐 앞에 나타나자 3일 동안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반란을 평정할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때 물론 우씨왕후와 연나부 세력이 권력 전면에 재등장하여, 음모의 다음 수순으로 발기를 제거할 계책을 세웠을 것이다.

 

이때 발기는 격전을 벌인지 3일이 지났으나 발기를 돕는 자가 없어 패하여, 3만명을 거느리고 의 요동 태수 공손도에게 투항하여 구원을 청하였다. 요동에서 왕이 되기를 꿈꾸던 공손도는 싸우지도 않고 발기의 항복을 받게 되자 크게 기뻐하면서 정예병 3만을 동원하여 발기의 투항한 군사들을 선봉으로 삼아 고구려로 침입하였다.

연우왕은 동생 계수를 전군 총사령으로 삼아 항전하여 한나라 군사들을 대파하였다.

다급해진 발기가 계수를 돌아보며, “계수야. 네가 차마 너의 장형을 죽이려느냐? 불의한 연우를 위하여 너의 장형을 죽이려느냐”?

계수가 대답하기를 연우가 비록 불의하다고 하나, 너는 외국에 항복하여 외국의 군사들을 끌여들여 조상과 부모의 강토를 유린하였으니, 연우보다도 네가 더 불의하지 않느냐?”라고 하니, 발기가 크게 부끄러워하여 후회하고 비류강에 이르러 자살하였다.


다음에 소개되는 大帝國沒落 原因指鹿爲馬. 狐假虎威. 狗尾續貂에서의 내용 중, 후계구도 진행 과정의 줄거리가 흡사하여 흥미롭다.

[출처] 왕위 자리를 빼앗긴 발기의 반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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