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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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더불어/고종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거짓된자 보다는 진실된 사람이 더 많고
악한자 보다는 선한사람이 더 많다.
이것이 인류역사의 수레바퀴가
과거를 향해 후퇴하지 않고
오로지 앞을 향해 달려가는 이유다.
혹독한 눈보라가 사악한 용이되어
양의 무리를 삼키려 한다.
그러나 감미로운 춘풍이 불어오면
아지랑이 피어 올라 꽃동산을 이루고
메마른 대지는 푸른 초장으로 변한다.
지금은 망나니가 덩더쿵 춤을 추지만
머지않아 일장춘몽으로 막을 내리리라.
시퍼런 작두 위에서 춤을 추는 무당도
영기(靈氣)가 사라지면 금새 풀이 죽어
맥없이 쓰러지지 않는가!
섭리의 열차를 타고
이상향을 향해 달리는이들이여~
좌절하거나 뒤를 바라보지 말자.
곁눈질하며 옆을 바라보지도 말자.
절대로 역사의 낙오자가 돼서는 안 된다.
시베리아 동장군이 질풍같이 달려와
청룡일월도를 마구 휘둘러 대고
연일 쏟아지는 눈폭탄 속에서도
영춘화는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한다.
역사와 더불어 앞을 향해 나가자.
역사와 더불어 앞만 보고 달리자.
우리 앞엔 영원한 유토피아로 인도해 줄
신기원의 한 날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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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명님의 댓글
당신 경남에는 출중한 목회자들께서
기라성처럼 포진해 있었음에도 불구
고성에서 성화학생들이 참 많았지요.
한 6~7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서
무언가에 끌려서 늘상 교회에 오면은
마냥 참새처럼 지저귀고 어울려 되며
밤낮이 따로 없이 웃음꽃을 피웠지요.
그 때 전도된 중심인물들이 10여 가정
지금도 교회의 원로이고 장로들이 돼
어려운 지방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을
흐뭇한 심정으로 바라보게 된답니다.
지금 천일국을 일구어가는 이 시대가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가 할 것인데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 건지
때로는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김시민 장군의 용기와 용맹에 늘 박수를 보냈고
물론 진주 신민들의 생명을 지치기 위해서 목숨
바친 위대한 애국자이며 애향심의 소유자니까요.
진주에 얽힌 사연이 내게도 많습니다만 특별히
66년 고등학교 졸업 후 3월1일부로 진주지역의
미천면 구역장으로 첫 발령 받는 곳이기도 하고
그해 5월8일 진주지역 16명의 구역장이 모였서
남강변에 위치한 지역본부에서 혈서를 썼었지요.
그당시의 우종직(72가정) 지역장께서 이후로는
나를 진주지역 총무로 발령을 하고 지역장님을
6개월간 모시면서 지역살림을 했던 곳이었기에
잊을 수 없는 교회인데 그 때 어린아기로 자랐던
혜인 아기가 자라서 하바드대를 나온 변호사죠.
그 당시 총무시절 지금 천안의 김종문 장로님이
진주고등학교 3학년으로 있었고 차한주 형님의
아내와 작고한 김용관 씨의 아내인 박숙연 선생
그리고 김갑용 교구장의 아내를 비롯한 수많은
아가씨들이 진주교회에 출석을 하기도 하였지요.
아~~~!!! 진주에서 그 당시 내 혼자 특별정성을
드렸었던 가장 추운 겨울의 4~5시 사이의 100일
내가 지금 생각해도 김시민 장군이나 많은 영들의
재림역사인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왜냐하면 남강의 얼음물을 깨고 냉수목욕도 하고...
진주에서 1년간 있다가 당시 유종영 경남지구장이
68년 6월10일 전국의 지역장들의 태풍인사 중에
나를 고성지역장으로 발령을 하여서 430가정 이상
지역장 중에 총각지역장은 최이덕씨와 둘이였지요.
윤덕명님의 댓글
그 분과 나는 같이 발령을 받아
나는 증평으로 그 분은 당진에
배치를 받았지만 곧 폐지됐지요.
모든 제도가 조령모개식이라면
일관성의 결여 때문에 신빙성과
신뢰성 사라지고 마는 것으로
공동체가 견고해지기 힘들지요.
연합회장을 하면서 겸입교수를
몇 년간 하며 고통 당하기도 해
어려운 고비를 몇 고비 넘겼지만
원대복귀가 된 것에 감사하지요.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그 말이
얼마나 실감이 나는 것이라는 것
절정하게 느끼면서 사람의 길은
하늘이 결정함도 실감을 했지요.^^
고교수님께서는 안 가본 곳 없이
진주의 정문에 위치한 그 시비를
직접 가 보시고 기억을 하신다니
암튼 그 정성, 지성에 탄성합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더욱 거창 수승대의 함양재 주인이시라니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넓기도 하고 참 좁기도 한 것이지요.
진주하면 잘 아시는 논개의 얼이 덤북 깃든
그곳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데 고시인님께서
풍부한 사료를 지니고 계실 것으로 압니다.
변영로 사백의 "논개"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 강하다.
아 강낭콩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르라."
군 제대 후 74년 3월1일에 진주교역장
발령을 받아 전국에서 두 번째 A타입의
성전을 짓고 3년 간 목회를 하였다가
내 후임에 이병규 교수가 부임을 했지요.
이래저래 이교수와도 앞서고 뒷서고 해
아주 깊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으로 하여
지금도 선문대에서 매우 흡사한 가운데
뜻길을 가고 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죠.
윤덕명님의 댓글
다 알고 보면 우연이 아니고 필연인 것이고
고시인님과 인연 맺은 것도 운명적인 것을
열거한 곳을 거의 다 가 보았지만 아직까지
박 보희 총재님의 생가를 못 가 보았습니다.
1,27일 출간한 내 시집 "해와 달의 숨바꼭질"
이곳에 박 총재님의 축하의 말이 담겨 있어서
특별히 은혜를 입기도 하였음으로 박 총재님
내게 있어서 특별한 인연인 것 같기도 합니다.
동혼 가정인 미래문화사의 임종대 회장님과
상의를 하여 "미래시선 152번으로 출간하여
전국 서점에 입점을 하였고 곧 개학을 하면은
3월 중순 경 학교서 조촐하게 기념할 겁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가는 곳마다 겨레의 정기가 어리고 서린 곳이기도 한 것은
중심을 잘 잡아야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고 성인과 성자가
되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성역에 산다는 느낌입니다.
선문대를 중심으로 동에는 유관순 열사라는 선나무가 있고
서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모신 현충사가 있다는 것에는
깊은 의미를 부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이 되어서
온양 시청 뒷편 경남아너스빌에 사는 나는 행복한 것 같아요.
등교 길에는 동에서 떠는 태양을 가슴에 안고 학교를 가고
하교 길에서는 서쪽으로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가는 것이라
늘 태양을 가슴에 안고 품고 살아가기 때문에 늘 운이 오고
하늘이 같이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감도 행복한 것이랍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장시 가운데 한 소절을 인용하였지요
내가 애국심에 호소하는 강의를 할 때
자주 인용하는 싯구이기도 한 것입니다.
고시인님의 예언이 적중할 것이지 혹은
빗나갈 것인지는 <역사와 더불어>란 시
그 시향의 향방이 가늠할 것이라고 믿고
거창과 고창은 발음이 비슷해 햇갈리지요.
고창하면 서정주 시인이 떠 오르기도 하고
복분자 생각이 절로 나오는데 미당 사백의
고향하면 뜻 가운데 성호갑 미얀마 회장
한 때는 승공의 동지였기도 한 것입니다.
고시인님께서도 천력 첫 하나님의 날에는
만사형통, 운수대통, 신통방통 하시기를
빌어 염원드리면서 가내 두루 화평하여
토끼처럼 깡충깡충 뛸 환희가 넘치소서!
윤덕명님의 댓글
심장의 붉은 피가 식을 때까지
즐거이 이 강산을 노래 부르자
동포여! 우리에겐 역사가 있다.
애간장 쓰라린 통한의 섭리역사
피끓는 가슴속 절규를 들으시라
일희일비 쌍곡선 외줄타는 역정
아무리 잔인한 동장군 불어와도
자연의 순리 누가 막을 수 있으랴
역사와 더불어 고시인과 더불어
정의의 깃발든 18의 용사와 함께
춘색을 부르는 봄노래 찬양하자.
친애하는 고시인님~~~!!!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무르익는
시심의 향기로운 언어들을 엮어
메마른 심령에 단비를 주시오니
마냥 고맙고 감사 또 감사합니다.
거창한 내 고향 거창에 도착하여
좋은 글 읽고 구정의 설 명절에는
고시인님의 운수대통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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