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화식(昇華式)과 문상(問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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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식(昇華式)과 조문(弔問)
참부모님께서는 '장례식'이란 명칭을 '승화식'으로 바꾸어 주셨다. 승화식은 장례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며칠 전 교회 장노님 한분이 돌아가셔서 승화식을 했다. '하늘공원'이라는 장례예식장에는 1, 2층 합하여 방이 여러개가 있다. 다른 방 앞에는 화환이 하얀국화에 검은색 리본 일색인데 유독 장노님을 모신 승화식장만 울긋불긋 화려하게 꾸민 화환이 길게 진열되어 있어 보기 좋았다. 영정도 검은 리본이 아닌 핑크색 리본을 둘렀다. 그 아래 단도 형형색색의 꽃으로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승화식은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 '애통''비통'의 분위기를 '경건 속의 환송'으로 바꾸어 놓았다. 통일교 식구가 아니라 할찌라도 승화식장과 그 의식의 진행과정을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우리도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승화식은 머지 않아 급속히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장례예식장'은 '승화예식장'으로 이름이 바뀌어야 될 것 같다..
그러나 승화식을 놓고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 원리대로 바르게 살고 선한 일을 많이하고 생령체를 이루고 가는 사람은 당연히 승화식이 마땅하다. 천안함 사건 때처럼 젊은날 돌변적 사고로 영계에 가더라도 사회와 국가와 민족 등을 위해 공의롭게 살다 가는 분에게도 승화식이 마땅하다. 여기에 비하여 온갖 못된 짓을 하다 죽은 사람에게도 과연 승화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하겠는가! 그들에게도 화려한 화환과 핑크색 리본을 달아 줘야 하겠는가! 아니다. 그럴 순 없다. 그럼 승화식과 장례식은 공존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는 '관혼상제(冠婚喪祭)'라고 말해왔는데 앞으로는 '관혼승제(冠婚昇祭)'로 바뀔 수도 있겠다. 아님 종전대로 사용해도 무방할듯도 하다. 육신을 중심으로 보면 두뇌와 사지백체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한 것은 엄연한 죽음이 아닌가! 우리는 상가에 가서 죽은이에게 예를 올리는 것을 조문(弔問)이라고 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을 조상(弔喪)이라고 하며, 이를 합하여 문상(問喪)이라고 한다. 아무튼 '喪'은 '죽을 상'인데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 규정하는 승화식에서 이 '喪'을 그대로 쓸지 아니면 신조어를 만들어야 할지는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근조(謹弔), 조의(弔意), 부의(賻儀) 등의 단어도 검토 대상이 된다. 어떤 승화식장에 가보면 색깔있는 꽃바구니에다 '승화(昇華)'가 아닌 근조(謹弔)'라는 글씨를 써서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근조(謹弔)'란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삼가 슬픈 마음을 나타냄을 뜻하는 글이다. 근조(謹弔), 조의(弔意)의 조(弔)는 '조상할 조'이다. 이것은 상주가 '활(弓)'처럼 마짝 구부린채 지팡이를 짚고 곡을 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조(弔)자를 변형시킨 글자도 있다. '입구(口) 밑에 '수건 건(巾)'을 붙여 놓은 글자이다. 입을 수건으로 틀어 막고 있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다. 상주나 문상객이 모두 죽은자 앞에서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입장이요 심경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승화식은 다르다. 그러므로 승화식에서 조(弔)자를 쓰는 것은 합당치 않다..
우리가 초상집에 문상을 갈 경우 조의금 봉투에 뭐라고 써야 할까 망설여질 때가 있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부의(賻儀)를 가장 많이 써왔고, 조의(弔意), 전의(奠儀)', '향촉대(香燭代)', 향전(香奠) 등으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승화식에서는 이런 단어 대신 승화식(昇華)로 바꿔야 할 것인가! 병용해도 괜찮은 것인가!
커다란 문화의 틀이 바뀔 때에는 전통과 신문화가 혼란기를 거치며 점차 새롭게 정착되기 마련이다. 승화식이 새로운 상례(喪禮)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개념에 대한 정립부터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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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원님의 댓글
조선왕조 2대왕은 세종과 정조이고
2대 명 재상은 세종조의 신숙주, 정조 때의 채제공 정승(수원 화성을 쌓은 총감독)인데 바로 그 채제공이 청양 분이고요. 박정희대통령시절 내각수반을 지낸 송요찬 장군, 김대중대통령시절 이회찬 국무총리가 청양사람 이랍니다. 일제시대 유림의병대장 면암 최익현 선생, 독립기념관장과 성균관장을 지낸 최창규 선생, 충남도지사 이완구, 현 국토해양부 장관 정종환 씨 등 많은 인사가 배출되었답니다.
나와 김도수회장은 고향을 위해 사심없이 봉사를 많이 하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관계를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그 당시에 경남도지부장으로써
창원에서 3년 반 정도 교구에 나가면서 같이 생활을 하였기 때문
그 때에는 참으로 분위기가 좋았던 시절이기도 하였습니다요.
내가 서울 연합본부로 오고 내 후임에 장영권 도지부장이 왔었고
정판기 교구장 후임에는 문팽래 교주장이 경남교구장으로 오셔서
내 이취임식 때 격려사를 하시면서 내가 68년 총각으로 경남의
고성교역장 시절을 기억하면서 덕담을 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나도 경남에서 12년 간의 목회를 하다가 내자의 건강 상의 문제로
그만 둘 때 기업체로 나가지 아니하고 중간 쯤 되는 승공연합으로
왔었기 때문에 구국운동을 한 셈이지요. 연합에서 9년 동안이나
활동을 하였으니 도합 21년 야곱노정을 끝내고 선문대로 왔지요.
89년 6월20일 당시 경남의 진주에 있는 대아고등학교를 인수하여
그 쪽으로 내가 책임다로 갈려다가 우리교회가 인수한다는 것을
알아서 반대가 심하여 중도금을 주고서 해약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선문대로 온 것이고 그 때 이상림 사장께서 적극 추천을 하였지요.
당시 나는 윤 세원 총장님과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장로님과의
고교 동창생이고 막역한 사이라 장로님의 말씀과 그리고 더욱더
김관해 당시 학감님은 내가 군 제대후 진주교역장으로 발령한
장본인으로써 나를 잘 아는 사이라 적극 추천을 한 것이랍니다.^^
어느듯 세월이 지나서 내가 선문대에 온지가 벌써 만 21년이 지나
또 다시 선문대에서 2차 21년 노정을 끝났으니 충남의 천안과
아산은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을 살았으니 제2의 고향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고 그런 가운데 고시인님을 만나서 천연이가 합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누구 보다도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은 그 때 참부모님께서 한국의\\
위태로움을 아시고 채 10일도 남겨 좋지 아니하시고 갑짜기 전국의 8대
도시에서 국민승공안보궐기대회를 하시라고 하셔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 때 제일 먼저 경남의 마산 실내 채육관에서 행사를 내가 도지부장으로써
가슴 조이면서 주관을 하였었는데 경남결찰국에 가서 협조를 요청하였다니
이 추운 12울 중순에 이런 행사를 한다니 비웃기도 하고 2000명도 안 온다고
\\하여 참으로 당황을 하기도 했는데 결론 적으로 차고 넘치는 대회가 되었지요.
못 들어간 5천 명은 부곡으로 보내서 목욕을 하기로 하기도 하였는데 그 때
전국의 도지부장들도 의기소침하여 그 행사에 대한 걱정이 참으로 많았지만
경남의 파격적인 승리의 장면을 보고 용기를 얻어 전국적인 그 대회가 잘
마무리 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 70개 국에서 의장단들이 둘러리가 되었지요.
그런데 알파와 같은 경남대회가 끝나고 난 뒤에 그 때 축사를 하였다고 해서
안기부에 불려간 전 경남대 윤태림 총장의 문제로 걱정하던 사모님께서 그만
쇼크를 당해서 그 다음 날 돌아가셨고 하는 편에서는 전남의 광주대회가 끝나고\\
그 다음 날 흥진님께서 승화를 하시고 애승일이 선포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아무튼 하늘이 볼 때 가인편과 아벨편에서 나라의 안보와 국가의 위기를
넘기 위한 하나의 뜻이 있는 제물이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하늘의 섭리적인 뜻이 있을 것으로 헤라려 보기도 하였답니다.
그 대회가 끝나고 연합본부로 발령, 서울시부지부장을 하다 선문대로...89년에.
고종원님의 댓글
내가 협회문화부장 시절이야기 입니다.
한남동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 위해 가서 밤새 작업을 하고 있는데
새벽녘에 이재석 회장님께서 조용히 흥진님의 교통사고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참부모님이 방에서 나오셨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무거운 분위기가 계속 됐습니다.
결국 흥진님께서 타계하셨다는 비보가 날아들었고 미국에서 시신을 모셔왔지요.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 안치한 후 승화식이란 명칭을 주셨지요.
그리고 장례문화의 혁명적 안을 내려주셨습니다.
참아버님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고 어머님과 모든 식구들에게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독한 분이죠. 위대한 분이죠. 아버님께서 그토록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다면 어머님도 혼절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애승일'이란 말이 실감이 납니다. '슬픔으로 부터 승리한 날'이란 뜻이니 세상에 이토록 위대한 도인을 어디에서 또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참부모님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그 말이 늘 가슴에 와 머뭇거리기도 하였는데 죽음이란 말이
승화라는 언어로 중생 되었다는 것은 영생의 의미가 돈독해
천부경에서 말하는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임을 느낍니다요.
그런 면에서 삶과 죽음이란 둘아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으로
죽음은 새로운 영생에로의 출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
죽음이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환희와 축복의 순간임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그가 진정한 행복의 소유자겠지요.
삶과 죽음은 어떤 면에서 이란성 쌍둥이 일 것이라는 생각에
순간 순간의 삶에 충실, 성실, 착실, 진실이라는 4實로 사는
열매가 맺는 생활이라는 것을 실감, 체감, 통감, 촉감하오매
승화식과 문상이란 발제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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