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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식(昇華式)과 문상(問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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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식(昇華式)과 조문(弔問)

참부모님께서는 '장례식'이란 명칭을 '승화식'으로 바꾸어 주셨다. 승화식은 장례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며칠 전 교회 장노님 한분이 돌아가셔서 승화식을 했다. '하늘공원'이라는 장례예식장에는 1, 2층 합하여 방이 여러개가 있다. 다른 방 앞에는 화환이 하얀국화에 검은색 리본 일색인데 유독 장노님을 모신 승화식장만 울긋불긋 화려하게 꾸민 화환이 길게 진열되어 있어 보기 좋았다. 영정도 검은 리본이 아닌 핑크색 리본을 둘렀다. 그 아래 단도 형형색색의 꽃으로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승화식은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 '애통''비통'의 분위기를 '경건 속의 환송'으로 바꾸어 놓았다. 통일교 식구가 아니라 할찌라도 승화식장과 그 의식의 진행과정을 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우리도 저렇게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승화식은 머지 않아 급속히 보편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 '장례예식장'은 '승화예식장'으로 이름이 바뀌어야 될 것 같다..

그러나 승화식을 놓고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지상생활을 하는 동안 원리대로 바르게 살고 선한 일을 많이하고 생령체를 이루고 가는 사람은 당연히 승화식이 마땅하다. 천안함 사건 때처럼 젊은날 돌변적 사고로 영계에 가더라도 사회와 국가와 민족 등을 위해 공의롭게 살다 가는 분에게도 승화식이 마땅하다. 여기에 비하여 온갖 못된 짓을 하다 죽은 사람에게도 과연 승화식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하겠는가! 그들에게도 화려한 화환과 핑크색 리본을 달아 줘야 하겠는가! 아니다. 그럴 순 없다. 그럼 승화식과 장례식은 공존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우리는 '관혼상제(冠婚喪祭)'라고 말해왔는데 앞으로는 '관혼승제(冠婚昇祭)'로 바뀔 수도 있겠다. 아님 종전대로 사용해도 무방할듯도 하다. 육신을 중심으로 보면 두뇌와 사지백체가 완전히 기능을 상실한 것은 엄연한 죽음이 아닌가! 우리는 상가에 가서 죽은이에게 예를 올리는 것을 조문(弔問)이라고 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것을 조상(弔喪)이라고 하며, 이를 합하여 문상(問喪)이라고 한다. 아무튼 '喪'은 '죽을 상'인데 '죽음'을 '새로운 탄생'으로 규정하는 승화식에서 이 '喪'을 그대로 쓸지 아니면 신조어를 만들어야 할지는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근조(謹弔), 조의(弔意), 부의(賻儀) 등의 단어도 검토 대상이 된다. 어떤 승화식장에 가보면 색깔있는 꽃바구니에다 '승화(昇華)'가 아닌 근조(謹弔)'라는 글씨를 써서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근조(謹弔)'란 사람의 죽음에 대하여 삼가 슬픈 마음을 나타냄을 뜻하는 글이다. 근조(謹弔), 조의(弔意)의 조(弔)는 '조상할 조'이다. 이것은 상주가 '활(弓)'처럼 마짝 구부린채 지팡이를 짚고 곡을 하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조(弔)자를 변형시킨 글자도 있다. '입구(口) 밑에 '수건 건(巾)'을 붙여 놓은 글자이다. 입을 수건으로 틀어 막고 있는 것을 형상화 한 것이다. 상주나 문상객이 모두 죽은자 앞에서는 유구무언(有口無言)의 입장이요 심경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승화식은 다르다. 그러므로 승화식에서 조(弔)자를 쓰는 것은 합당치 않다..

우리가 초상집에 문상을 갈 경우 조의금 봉투에 뭐라고 써야 할까 망설여질 때가 있다.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부의(賻儀)를 가장 많이 써왔고, 조의(弔意), 전의(奠儀)', '향촉대(香燭代)', 향전(香奠) 등으로 쓰기도 한다. 그런데 승화식에서는 이런 단어 대신 승화식(昇華)로 바꿔야 할 것인가! 병용해도 괜찮은 것인가!

커다란 문화의 틀이 바뀔 때에는 전통과 신문화가 혼란기를 거치며 점차 새롭게 정착되기 마련이다. 승화식이 새로운 상례(喪禮)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개념에 대한 정립부터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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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9

이승갑님의 댓글

홈피 관리자님 고 필자님께/ 위 본문을 좀더 쉽게 많은 회원들이 볼 수 있도록 자유 계시판 같은데로 다시 옮겨 주시면 원합니다. 승화식이란 계념부터 이토록 귀하게 깨닫게 되는 글입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봄 기운이
새록새록 넘쳐날 것이라는 예감으로
새로운 부활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필
그날이 오기를 앙망하고 소망하오이다.^^

광해 회장님께서 살아오신 경남 목회시절
합천에서의 성실했던 아련한 모습들이 참
그리운 추억으로 떠 오르고 있다는 것에는
우리들이 그 당시 뜨거운 열정때문이지요.

정광해님의 댓글

여러 선배님들의 덕담 릴레이에 한결 흐믓합니다.
차제에 본문 글에서 언급하신 승화문화등 이런 저런 고유한 통일문화를 하루빨리 확립하고 계승발전시켜아 한다고 봅니다.
옛날에 자주 입었던 예복도 요즘 거의 안입어 청평 조상축복때나 승화할 때 입는 옷으로 될까 걱정입니다.
세상과 조화하면서 조금씩 원리문화로 빠꾸어야 하지 안을까요?
윤 따거님, 고 따거님...

고종원님의 댓글

하나님은 자체 내에 존재하는 주체와 대상이 수수작용하여
영원히 자존하는 절대적인 힘을 창출해 내시죠.
참 아버님도 마찬가지가 아닐런지요.
신앙인은 특히 겸손이 미덕인데, 참아버님은 자화자찬이 대단하신 것은
그런 이유로 밖에 볼 수 없지 않습니까? ㅎㅎㅎ

윤덕명님의 댓글

진정, 진실,진리,진국이라는 말에는 거짓이 없어
부정, 부패와 불의와 불신과 불만과 불평이 없고
오로지 평화, 평등, 평강, 평안 만이 있을 것이라
고시인님의 말이 틀림없는 진리라고 믿습니다.^*^.

아부와 아집이란 자아의 정체는 사이비로 가는 길
진실과 성실과 충실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정도라
참아버님의 자가발전을 위한 자화자찬과 우리들의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 분간이 잘 안 갑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진정한 칭찬에는 과유불급이 없습니다.
아부성 발언은 문제가 되니 과유불급이 적용되겠지만..........
참아버님도 자가발전을 위해 자화자찬도 많이 하시지요.^*^

윤덕명님의 댓글

때로는 과유불급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적정선이라는 것이 善!
불가근불가원이라는 그 말처럼
실감나는 말도 없을 것 같아요^^

윤덕명님의 댓글

ㅎㅎㅎㅎ 고래와 돼지의 매칭!
고래가 춤추는 것은 어렵쟎지만
돼지가 나무에 오른다는 것이란
대단히 어려운 것이 아닐까요?

윤덕명님의 댓글

ㅎㅎㅎㅎ. 덕이 더덕 더덕 더덕처럼 붙었다니
듣던 중 참으로 반갑고 즐거운 소식입니다요.
잘 아시겠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그 책을 보면 가히 그 위력을 알 수 있겠지요.

돈이 전혀 들지 않는 "칭찬, 미소, 박수"라는
그 엄청난 위력의 재산을 잘 활용하지 못해서
오늘의 현실이 메마르고 안타까운 것이라는
우려와 염려와 심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백월산에는 일제시대 일본 사람들이
소나무에 생채기를 내고 송진을 뽑아간 흔적이 있어
가슴을 에이는 아픔을 느끼게 한답니다.

구봉광산은 지금 폐광이 되었으나
구봉산은 나에게 큰바위얼굴 처럼 버티고 있답니다.
윤시인님에게 덕담을 많이 듣다보니
나도 복보다는 덕이 더덕 더덕 붙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윤덕명님의 댓글

칠갑산에는 한 번 갔었지만 백월산과 구봉산은
내게 낮설은 산이기도 합니다만 백구봉산이란
이름으로 개명한다면 백팔보다 한껏 더 많아서
세상의 모든 백팔번뇌 다 잊어버리시란 말이죠.

전국에서 제일 금광이 구봉산이었다고 한다면
고시인님께서는 그 봉우리를 뛰어 껑충 넘어서
십봉산에 오르신 것이나 다를 바가 없는 까닭에
틀림없이 신묘년엔 신묘한 일 벌어질 것입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난 사실 칠갑산 정기 받아 태어난 것이 아니라
백월산과 구봉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 났오이다.
백월산은 칠갑산 이상 아름다운 산인데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구봉산은 전국제일 금광이 있었던 산이랍니다.
윤시인이 운수대통, 만사형통을 빌어 주시니
올해는 뭔가 확실히 될 것 같소이다. 감사 합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하늘도 푸르고,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른 청양.
난 여기에서 청운의 푸른꿈을 키우며 자랐답니다.
푸른색은 전진, 건강, 안정을 의미 하지요.
늘 푸른 마음 갖고 살겠습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청양에서 위인들이 많이 나온 것도
알고 보면 칠갑산의 산신령님께서
북두칠성의 천신님께서 역사하시어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고향을 위해 사심없이 희생봉사하는
두 분의 업적이 만 천하에 나타날 것
믿어 의심치 않고 하늘편에서의 승리
그날이 멀지 않아 오기를 소망합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청양은 인물이 많이 배출되는 고장 입니다.
조선왕조 2대왕은 세종과 정조이고
2대 명 재상은 세종조의 신숙주, 정조 때의 채제공 정승(수원 화성을 쌓은 총감독)인데 바로 그 채제공이 청양 분이고요. 박정희대통령시절 내각수반을 지낸 송요찬 장군, 김대중대통령시절 이회찬 국무총리가 청양사람 이랍니다. 일제시대 유림의병대장 면암 최익현 선생, 독립기념관장과 성균관장을 지낸 최창규 선생, 충남도지사 이완구, 현 국토해양부 장관 정종환 씨 등 많은 인사가 배출되었답니다.
나와 김도수회장은 고향을 위해 사심없이 봉사를 많이 하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답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김태호씨 외모로는 참 잘 생긴 미남이지만
그 사람의 내면의 인격과 인품과 인성이란
진정한 그 사람을 가늠하는 지랫대이기에
내공이 튼튼한 사람이 진정한 알짜배기죠.

고시인님이야말로 신언서판이 두루 갖춰진
이 시대의 호걸이며 매력을 지닌 출중인사!
청양하면 이재석 전 협회장님과 고종원교수
그리고 김도수 회장이 머리에 떠 오른답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수승대, 요수정, 함양재와 그 주변경관들..........
아름드리 노송(김강송), 거석 바위, 맑은 시냇물, 넓은 시냇가의 돌들.
환상적인 풍경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지요.
나는 김태호씨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등장하는가 했어요.
경남에서 평도 아주 좋았고 해서...........
내공이 부족하여 청문회를 통해 워낙 상처를 많이 입어
재기가 가능할런지요. 아까운 사람인데.

윤덕명님의 댓글

수승대는 내가 어릴 적에 자주 찾아갔던 곳
그곳에서 멱을 감기도 하고 물장꾸도 치고
성장한 후에도 종종 들리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태어난 고향인 거창에 대해서 나 보다
훨씬 많이 알고 계십니다. 연극제에 대하여
거창고등학교에 대하여도 많이 아시겠지요.

거창 군수를 하였고 경남 도지사를 거쳤었던
김태호 씨의 고향이 바로 거창이기도 하지요.
총리후보에서 탈락은 하였지만 인물감이지요.

고종원님의 댓글

퇴계 이황선생이 암행어사 시절에
절세의 명승지를 찾아 가던 중 왕의 명령을 받고 한양으로 가면서 붙인 이름이
수색, 탐색의 의미를 담은 '찾을 수(搜 )'에 명승지의 승(勝)을 붙여
수승대라 명명 했지요.
거창은 알고보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승경지지요.
여름이면 대구뿐만 아니라 세계 많은 나라에서 국제적인 연극제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고요.
이쯤하면 가창군수가 나에게 '거창 홍보대사'로 위촉할만 하지 않아요? ㅎㅎㅎ

윤덕명님의 댓글

고시인님은 전국의 명산대첩을
두루 꽤고 계시니 뉘가 그 열정
능가 할 이가 있을 것인가 지금
생각해 보면 한문에 능하십니다.

거창에는 신씨들이 많이 살아
우리가 축복을 받았을 그 당시
통일부장군이었던 신도성 의원
축사를 하기도 한 것을 압니다.

거창은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
산세가 좋은 곳에 이웃하고 있어
산고수려한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름이면 가까운 대구서 많이 오죠.


고종원님의 댓글

지금 설 명절을 맞이하여 거창에 가계시죠?
거창이라고 하면 구연서원(龜淵書院), 수승대(搜勝臺),
요수정(樂水亭), 함양재(涵養齋) 등이 떠오릅니다.
안분낙도(安分樂道)의 길을 걸어온 처사(處士),
요수(樂水) 신권(愼權)선생의 삶이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과거는 역사이고
현재는 선물이며
미래는 미스테리!

고시인님의 입담
그리고 그 재치와
야사 기대 됩니다.

웃음이란 수많은
재산의 가치보다
더 값짐을 압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인생 히스ㅡ토리 잘 읽었습니다.
인생력정이 다 하나님 섭리가운데 이루어 지더라구요.
양사장과 이상림 장노님의 이야기는 나중에 만나 직접이야기 하지요.
아주 재미있는 야사가 있습니다. ㅎㅎㅎ

윤덕명님의 댓글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양사장과 당시 정판기 교구장과의 돈독한
관계를 내가 잘 알고 있는 것은 그 당시에 경남도지부장으로써
창원에서 3년 반 정도 교구에 나가면서 같이 생활을 하였기 때문
그 때에는 참으로 분위기가 좋았던 시절이기도 하였습니다요.

내가 서울 연합본부로 오고 내 후임에 장영권 도지부장이 왔었고
정판기 교구장 후임에는 문팽래 교주장이 경남교구장으로 오셔서
내 이취임식 때 격려사를 하시면서 내가 68년 총각으로 경남의
고성교역장 시절을 기억하면서 덕담을 해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나도 경남에서 12년 간의 목회를 하다가 내자의 건강 상의 문제로
그만 둘 때 기업체로 나가지 아니하고 중간 쯤 되는 승공연합으로
왔었기 때문에 구국운동을 한 셈이지요. 연합에서 9년 동안이나
활동을 하였으니 도합 21년 야곱노정을 끝내고 선문대로 왔지요.

89년 6월20일 당시 경남의 진주에 있는 대아고등학교를 인수하여
그 쪽으로 내가 책임다로 갈려다가 우리교회가 인수한다는 것을
알아서 반대가 심하여 중도금을 주고서 해약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선문대로 온 것이고 그 때 이상림 사장께서 적극 추천을 하였지요.

당시 나는 윤 세원 총장님과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장로님과의
고교 동창생이고 막역한 사이라 장로님의 말씀과 그리고 더욱더
김관해 당시 학감님은 내가 군 제대후 진주교역장으로 발령한
장본인으로써 나를 잘 아는 사이라 적극 추천을 한 것이랍니다.^^

어느듯 세월이 지나서 내가 선문대에 온지가 벌써 만 21년이 지나
또 다시 선문대에서 2차 21년 노정을 끝났으니 충남의 천안과
아산은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을 살았으니 제2의 고향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고 그런 가운데 고시인님을 만나서 천연이가 합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윤태림 총장의 축사, 그 사모님의 쇼크사
뜻있는 제물이었군요.
이거야말로 비사 중의 비사네요.
윤시인님 하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습니다.
바로 양사장인데........지금 어디서 뭘하며 사시는지 궁금하네요.
윤덕명씨같은 인재가 선문대에 가서 일을 하면
학교발전을 위해 큰 일을 많이 할거라고 입이 닳토록 이야기를 했는데...........

윤덕명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그 당시 나는 국제승공연합 경남도지부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누구 보다도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까닭은 그 때 참부모님께서 한국의\\
위태로움을 아시고 채 10일도 남겨 좋지 아니하시고 갑짜기 전국의 8대
도시에서 국민승공안보궐기대회를 하시라고 하셔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그 때 제일 먼저 경남의 마산 실내 채육관에서 행사를 내가 도지부장으로써
가슴 조이면서 주관을 하였었는데 경남결찰국에 가서 협조를 요청하였다니
이 추운 12울 중순에 이런 행사를 한다니 비웃기도 하고 2000명도 안 온다고
\\하여 참으로 당황을 하기도 했는데 결론 적으로 차고 넘치는 대회가 되었지요.

못 들어간 5천 명은 부곡으로 보내서 목욕을 하기로 하기도 하였는데 그 때
전국의 도지부장들도 의기소침하여 그 행사에 대한 걱정이 참으로 많았지만
경남의 파격적인 승리의 장면을 보고 용기를 얻어 전국적인 그 대회가 잘
마무리 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 70개 국에서 의장단들이 둘러리가 되었지요.

그런데 알파와 같은 경남대회가 끝나고 난 뒤에 그 때 축사를 하였다고 해서
안기부에 불려간 전 경남대 윤태림 총장의 문제로 걱정하던 사모님께서 그만
쇼크를 당해서 그 다음 날 돌아가셨고 하는 편에서는 전남의 광주대회가 끝나고\\
그 다음 날 흥진님께서 승화를 하시고 애승일이 선포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아무튼 하늘이 볼 때 가인편과 아벨편에서 나라의 안보와 국가의 위기를
넘기 위한 하나의 뜻이 있는 제물이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만 우리가\\
모르는 하늘의 섭리적인 뜻이 있을 것으로 헤라려 보기도 하였답니다.
그 대회가 끝나고 연합본부로 발령, 서울시부지부장을 하다 선문대로...89년에.

고종원님의 댓글

오늘은 비사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협회문화부장 시절이야기 입니다.
한남동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 위해 가서 밤새 작업을 하고 있는데
새벽녘에 이재석 회장님께서 조용히 흥진님의 교통사고에 대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참부모님이 방에서 나오셨는데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무거운 분위기가 계속 됐습니다.
결국 흥진님께서 타계하셨다는 비보가 날아들었고 미국에서 시신을 모셔왔지요.
리틀엔젤스예술회관에 안치한 후 승화식이란 명칭을 주셨지요.
그리고 장례문화의 혁명적 안을 내려주셨습니다.
참아버님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고 어머님과 모든 식구들에게 눈물을 흘려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독한 분이죠. 위대한 분이죠. 아버님께서 그토록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다면 어머님도 혼절하셨을지도 모릅니다. '애승일'이란 말이 실감이 납니다. '슬픔으로 부터 승리한 날'이란 뜻이니 세상에 이토록 위대한 도인을 어디에서 또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참부모님을 직접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윤덕명님의 댓글

공자님의 말씀처럼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떻게 알겠느냐"
그 말이 늘 가슴에 와 머뭇거리기도 하였는데 죽음이란 말이
승화라는 언어로 중생 되었다는 것은 영생의 의미가 돈독해
천부경에서 말하는 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임을 느낍니다요.

그런 면에서 삶과 죽음이란 둘아 아니고 하나이기 때문으로
죽음은 새로운 영생에로의 출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어
죽음이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아닌 환희와 축복의 순간임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가는 그가 진정한 행복의 소유자겠지요.

삶과 죽음은 어떤 면에서 이란성 쌍둥이 일 것이라는 생각에
순간 순간의 삶에 충실, 성실, 착실, 진실이라는 4實로 사는
열매가 맺는 생활이라는 것을 실감, 체감, 통감, 촉감하오매
승화식과 문상이란 발제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며 감사합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죄를 모두다 청산 짓고 생령체를 이뤘다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도 박순철님의 의견에 절대적으로 찬성 합니다. 더구나 통일식구라면 누구나 승화식 대상자가 되지요.
허나 흉악범을 비롯하여 죄질이 무거운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 게 천리법도에 맞는가가 관건 입니다.
승화식을 전 국민적, 세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좋은 의견 주시어 감사 합니다.

박순철님의 댓글

하나님의 창조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인간들이 천상천국에서 죄와 관계없이 사는 것이라고 봅니디. 그렇다면 죄를 모두다 청산 짓지 못하여 생령체를 이루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단 승화과정을 거치고, 미진한 부분은 재림역사로 마무리 짓는 것은 어떻습니가?

고종원님의 댓글

향촉대(香燭臺)란 글자 중 臺가 오자가 난 것을
정총장님이 직접 거론하지 않고 <香燭代> 의 의미를 풀어 주는척 하면서
代로 교정토록 배려해주시는 자상함에 감사드립니다.
정총장님의 인격의 단면을 보는듯 하여 흐뭇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香燭代>
상에 켜는 촛값 정도의 약소한 성의를 뜻하는 말로, 근조, 부의, 조의, 전의 등(等)과 함께 초상(初喪) 때 부의금의 겉봉투봉투(-封套)에 쓰이는 말
유의어 : 부의(賻儀), 향전(香奠)

***가없이 베풀어 주시는 <통일승화 축복>을 감사드리며, 승화의 의미와 가치를 일깨워 주시는 고박사 님께도 고마운 말씀 올립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김명렬님~~~
요즘 교회와 UPF 지부별로 승화축제를 하고 있지요.
참부모님은 천리법도에 따른 큰 틀을 가르쳐 주시지만
우리는 그 말씀을 중심으로 세부적인 것들을 개발 정리하여
새로운 문화로 정착시켜야 합니다.
제 의견에 동의해 주시니 더욱 감사 합니다.

고종원님의 댓글

조항삼님~~~
우리 어렸을 때 유교식 상례와 제례는 지금 그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식이 훨씬 간편하고 시대적 흐름에 부합되기 때문 입니다.
이제 기독교식 보다 통일교식이 더 좋다는 소문이 날 겁니다.
생활 속의 전도가 중요한데
승화식은 그런 면에서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 입니다. 신의 계시 입니다.

김명렬님의 댓글

요즘 교회, UPF 지부별 승화축제를 곳곳에서 하고 있씁니다.
때를 맞추어 고견을 주셨군요 얘기하신대로 자리를 잡아가야
되리라 생각되어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논리 전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한 눈에 들어오네요.

기원절을 기점으로 바람직한 새로운 문화가
자리잡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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