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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고향 청양 구봉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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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이순희님의 댓글

성주탄광에서 12년간 근무한 경력이 있어서 광산에 대해선 조금 알만합니다.
광부시절 위험했던 순간순간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군요.
그때 그뉴우스도 생각나고요.
종우님 고향이 알고보니 우리 고향에서 멀지않은곳이네요.
보내주신 메일은 잘 읽었는데 답장을 보낼줄몰라(아무리 보낼려고 해도
가질않네요) 죄송합니다. 더 배우고 노력 하겠습니다.

이순희님의 댓글

고종우님. 보내주신 메일 잘 받아보았습니다.
한예씨 잘있습니다. 홈에서 고종우님 댓글보고 무척
반가워 하면서도 홈에나가기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아들 현웅이는 2004년 12월에 일본아가씨와 축복을받고
이듬해 5월 피로연을 했습니다.
공무원 시험준비 한다고 소식을 끊더니 양쪽이다 소식불통이 되어 걱정입니다.
괜히 집안사정 넉두리가 되었네요.
소식 고맙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아, 생각나요. 중학교 때의 뉘우스.
청양에서 (양창선씨 말고) 큰 인물, '남매는 용감하고 뜻 앞에 출중했다' 라고 기록될 (내가 아는 형제,자매만) 고씨 남매가 출생했네요. 그곳 고추와 칠갑산도 유명하다지요? 이대한 고종우 회장님의 고향 청양을 이 기회에 확실히 해 둡시다.

◆1967 : 청양 구봉광산 광부 양창선 16일만에 구출
1967년 8월 22일 낮 12시40분 경 충남 청양군 사영면 구룔리 구봉 광산서 광부 양찬선씨가 수갱을 수리하는 중 갱도가 무너져 매몰당했다. 구조작업을 시작한지 나흘 만에 지하 125m지점에 갇힌 양씨와 지하 250m지점의 제2배수장을 전화로 연결하고 26일 오후1시부터 본격 굴진작업에 나섰다. 양씨는 집에서 가져간 도시락과 지하수로 연명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전국의 신문과 방송이 양씨 매몰사건을 대서특필, 전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매몰 열흘째인 31일에는 민병규 박사 등 의료진의 도움으로 지상에서 지하에 갇혀있는 양씨와 전화진단까지 했다. 이같은 전국민의 관심 속에서 양씨는 매몰당한 지 15일 8시간35분 만인 9월 6일 밤 9시15분에 극적으로 살아나왔으며, 건강은 대체로 양호했다.

[청양군이 걸어온 발자취 ]
삼한시대
마한에 속한 지역으로 부족연맹 사회가 이룩될 때 청양에는 지천 유역의 고라도평 (고리섬들)에 구로국이 무한천 유역의 용천들에는 사로국이 자리하였다.

백제시대
칠갑산 동쪽으로 정산면, 목면, 청남면, 장평면 지역에 열기현이 있었고, 칠갑산 서쪽으로 청양읍 대치면, 운곡면 그리고 남양면 일부 지역을 차지하는 고량 부리현이 있었으며, 비봉, 화성면과 홍성군 장곡면 일대가 속했던 사시량현이 있어서 지금의 청양군이 백제시대에는 3개현의 구역이 있었다.

신라시대
웅진 도독부에 속해서 웅주 29개현 가운데 열기현이 열성현으로 고량부리현이 청정현으로, 사시량현이 신량현으로 명칭이 바뀌어 백제시대와 같이 3개현의 구역이 있었다.

고려시대
청정현이 청양현으로 개칭되었고, 열성현은 정산현으로, 신량현은 려양현으로 개칭 되었으며, 성종때 행정구역을 10도 12주 510현으로 개편할 때 청양군은 하남도의 청양, 정산현으로 감무를 두었으며 려양현에도 감무를 두었다. 8대 현종 9년(1018)에는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청양현은 천안부에 속하였으며 그후 양광도에 속하기도 하였고 공민왕 5년에 양광도를 충청도로 부르게 되었다. 행인들의 왕래가 많아짐에 따라 전국에 22개의 간선 역로가 있었는데 그 중 청양에는 유양(정산)역과 금정(남양)역이 자리했었다.

조선시대
태종 13년(1413)에 청양현, 정산현이 되었으며, 이조 18대 현종 5년(1664)에는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청양현이 정산현에 편입되어 청양현이 되었고, 고종 32년(1895) 행정제도 개편에 따라 청양현과 정산현은 각각 군이되어 청양군과 정산군이 되었으며, 청양군은 동상, 동하, 서상, 서하, 남상, 남하, 북상, 북하, 읍내의 9개면을, 정산군은 대박, 백곡, 복동, 잉화달, 청소 장촌, 관현, 적곡의 8개면을 관할하였다.

1900년 이후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청양군과 정산군이 합치되어 청양군이 되었으며 홍주군의 화성, 여구향, 얼방, 상전 등 4개면과 공주군 성동면의 반곡리, 평동, 건천리 일부와 공주군 반탄면 진두리 그리고 부여군 도성면 구룡리와 공동면 금강리 일부 및 대흥군 이남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읍내면, 운곡면, 대치면, 정산면, 목면, 청장면, 적곡면, 사양면, 화성면, 비봉면 등 10면 115개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1942년 청장면을 청남면으로 개칭하고 읍내면을 청양면으로 고쳐부르게 되었다.

해방이후
1973년 비봉면의 청수, 학당 2개리가 청양면에 편입되었다.
1979년 청양면이 청양읍으로 승격
1987년 1월 적곡면이 장평면으로, 사양면이 남양면으로 면명이 개칭
1991년 12월 31일 장평면의 적곡 2리가 도림리로 개칭
1992년 11월 2일 청양읍의 읍내 5리, 적누 2리 송방 3리로 분구되어 1읍 9면 182개 행정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09-03

[정해관]
청량고추의 청량은 무엇인가요? ('청양의 고추'인줄 알았는데,,)

'청량고추'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알칼로이드의 일종으로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인 캅사이신이 다른 고추에 비해 월등히 많이 함유되어 있고, 미네랄 등 각종 영양소가 풍부하다. 또 향기가 강하고 과피가 두꺼워 오래 저장해도 맛이 변하지 않는 장점이 있으나, 온도가 낮고 빛이 적으면 수확이 줄어드는 단점도 있다.

청양고추의 원산지와 명칭 유래에 대한 주장과 학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전국적으로 청양고추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각지에서 그와 관련된 상표를 사용하는 경우가 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원산지와 명칭 유래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역에 따라 지적재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어 지역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유래에 대한 주장을 살펴보면, 우선 충청남도는 1968년 중앙종묘(주)에서 청양농업기술센터를 찾아와 종자선발을 위해 청양고추를 요구했고, 청양농업기술센터는 30여 종의 고추를 주면서 신품종으로 선발되면 청양고추로 명명할 것을 약속받았다고 한다. 이에 반해 경상북도 영양군 지역에서는 1980년 중앙종묘(주)에서 경상북도를 방문하여 당시 맵기로 유명한 '땡초'라는 고추를 채취하고 이를 개량하여 오늘날 단맛이 가미된 청양고추가 탄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앙종묘(주)의 홈페이지에는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에, 소과종이 대과종보다 가격이 높고 특히 국내 최대 주산지인 경상북도 북부 지방의 청송, 영양지역에서 소과종이 주로 재배되어 이 지역에 적합한 품종을 육성하고자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육성목적에 비교적 근접한 품종을 육성하여 청송의 '청(靑)'과 영양의 '양(陽)'자를 따서 '청양고추'로 명명하여 품종등록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밖의 주장으로는, 경상북도 청송군과 강원도 양양군에서 이 품종의 고추 재배를 많이 했고 그때부터 유명세를 타다 보니 두 지역의 앞글자를 딴 '청량'이 나왔다는 주장이 있고, 비싸고 고귀한 고추라는 뜻을 가진 `천냥고추'에서 변화되었다는 설도 있다.

각 지역의 분분한 주장 속에서, 충청남도와 청양군은 청양고추를 향토지적재산으로 내세우고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고, 2000년부터 청양고추축제를 개최하는 동시에 2001년에는 청양고추와 관련된 상표권 등록에 나서 '청양고춧가루 푸르미'라는 상표권 등록을 마쳤다. 또한 2003년에는 '청양고추' 관련 상표명에 대한 지적재산 등록을 추진하고 있는데, 충청남도의 지적재산 등록이 인정되면 다른 지역에서는 상표 사용이 제약받을 것으로 추정된다.

생산량은 경상남도 밀양과 진주가 제일 많아서, 밀양에서만 320ha의 면적에서 한 해에 1만 4000톤을 재배하여 전국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09-03

[문정현]
칠갑산 노래 확실히 배우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와서 부르고 갈께요.
야호 !!~~

종우 사모님 !~
어떤 말씀을 하시는 중일까요?
가정회 총회때 모습 같기도 한데 이 장을
못 보신듯 ...
저도 이제야 발품 챙깁니다.





고종우님의 댓글

나 어렸을적 면내 구봉광산(당시 동양 최대의 금광) 에서의 기적을 올립니다.
당시 광산 덕분에 면내 초등학교는 네개나 되었고 내가 다닌 사양국민학교는 2000명
이 넘는 학생수를 과시 했으며 덕분에 면민들은 이래 저래 삶에 덕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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