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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에서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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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서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인사드립니다
한참 되었지요 ^&^
자주 찿지 못해 죄송 합니다 그렇지만 눈팅은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번명 같지만 열악한 환경이라 어쩔수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8월에 우연히 MBC 에서 라이베리아를 취제하는데 도와달라는 멜을 받고
망설이다가
한국의 핏줄을 받고 태어난 아이들을 찿아 취제하는 것이라해 승락해 돕기로 했습니다
피디와 카메라감독을 맞이하여 취재 하게 되었는데
프로그램 이름이 “김혜수 W” 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작가가 이야기 하기를 세계적으로 많은 혼혈아들이 있지만
한국만이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면서
이들을 국가적으로 돕는 방법을 찿기위한 시사 프로그램이라하여
현지 코디를 맏게 되었습니다

80년대 대우 에서 라이베리아와 시래 라이온 을 잇는 도로건설 사업을 하는데
대우 사람들이 이곳에 와 뿌려 놓은 아이들 입니다

이렇게 한국의 피를 받고 태어난 아이들이 한 20여명 되는 데
그중 여자는 한명 이더군요 물론 다른 경로로 해서 낳은 여자 아이가 있지만
우선은 버려진 대우 도로 건설 직원들이 낳은 아이들만 취재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취제를 하는 중에 ‘김혜수의 W ’가 방송 프로그램 개편으로 취소가 되었고
배우 김혜수가 라이베리아에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취소가 되기는 했습니다

그때 프로그램 에 라이베리아, 말라위, 그리고 자이레 (지금은 콩고 공화국) 이 세나라를 취제하여 방송에 나간 줄 알고 있습니다

그중 이 나피라는 여자는 아마도 나비를 나피로 발음 한 것 같습니다
아빠는 자기가 태어나자 얼마 안되어 라이베리아를 떠났고, 전쟁이 일어나서 떠났다고는 했지만
엄마는 13살 먹었을 때 죽어 어려서 엄마가 아무말도 안해 주워 한국인지 중국인지도 모르고 단지 대우에서 와서 일할 때
아빠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아버지 이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자라면서 많이 서럽게 자랐습니다
얼굴도 못 생겨 항시 놀림을 받고 또래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자기는 머리에
땅콩볶은 것이나 플란텐 튀긴 것을 이고 다니며 팔아 연명을 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나마 엄마가 일찍 죽어 자기가 연명하고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생활이였으니 몸관리는 제대로 했겠어요
지금 한국나이로 24살인데 여섯번의 출산으로 맨끝에 난 아이가 쌍둥이라 일곱명의
아이들중 지금 살아 있는 아이는 세명 남자 아이만 살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취제하여 방송에 나갔는데
이 방송을 보고 여자분이 이나피를 돕고 싶다고 어떻게 도우면 되겠느냐
하면서 ‘김혜수 W ’의 프로그램을 담당한 피디에게 전화가 왔다고 하면서

MBC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었습니다
피디가 많은 돈이 아니드라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해
걱정말고 일단 얼마가 됐든 돈을 보내라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크리스마스 즈음하여 돈을 500블 보내와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간난하게 살다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내가 걱정이 되었었습니다
다 먹어 버리고 맨손으로 또 도와 달라 하면 어떻게 하나 했는데

사개월이 지나 지난 토요일에 그녀 가 살고 있는 곳을 다녀 오게 되었습니다
가끔 전화로 연락만 하고 이곳 아프리카도 핸드폰이 보급이 되어
시골에서도 모두 사용하거든요 물론 전파가 닿지 않아 마을의 높은 곳에서 올라가서 전화를 하던지 그렇지 않으면 이곳 저곳 전파가
잘 닿는 곳에서 전화들을 합니다

충전은 자가 발전기가 아주 작은 것이 많이 보급되어 충전들을 돈을 주고 하지요
그러한 곳은 전기들이 없으니 살아 가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녀 오게 된던 이유가 4월 둘째 주일요일에 MBC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
후원자가 심장이 아팠던 것을 알고 있었느냐고
심장이 아주 좋지 않아 자기 생애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생각 했는데
마침 방송을 보고 돕기로 한 것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피를 돕고 나서
이 후원자가에게 우연찮게 누가 심장을 기증해
수술이 성공적으로 되어 지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이 나피를 도와서 그렇게 된 것 같다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고하는 문의 전화 였습니다

이러한 사연으로4개월만에 내가 다시 그녀 나피를 찿게 되었습니다
몬로비아 시에서부터 국경 도시 까지 한 150마일 떨어져 있고 이곳 까지는 포장된
도로인데 대우가 놓았던 길입니다
그 도시에서 다시 비 포장도로를 한시간쯤 달려 더 들어 가야 하는 마을이었습니다

내가 피디와 나피를 찿아 갔을때는 쌀이 없어 밥도 못먹고 살았는데
팜넛의 속에 있는 씨를 깨어 그것을 기름을 내어 팔아 겨우 연명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개월후에 내가 찿았을 때는 나피의 방앞에 수북이 상점이 차려 져 있고
내가 방문 하던날 새로이 물건을 해서 왔더군요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지만 악착 같이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렇게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구나 생각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든 이 여자를 돕고 심장을 기증받아 수술에 새로이 삻을 살게 되고
또한 이 여자 나피도 자기가 더 노력하면 살 수 있는 방법이 생기고

나는 중간에서 돕기는 했지만 너무 흐뭇하고 가난하지만 서로 살 수 있는 길을 보아너무 감사한 나머지

홈지기 님들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이글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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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이존형님의 댓글

지구촌 한 가족이란 말이 실감납니다요.
사람사는 세상이 어디를 가나 어려운 사람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모두 손잡고 상생하는 그러한 나라가 빨리 왔으면 참 좋겠습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아프리카를 가보면, 경제만 믿받침이 되면 복귀가 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오늘 아침에는 엄홍길 산악인(교수)이 네팔에서 오지에 학교를 세우는 얘기를 접하고 또 이 소식을 들으니,
세계에는 아직도 할일도 많고 관심가져야 할 분야도 많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유노숙님의 댓글

이글은 서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김정자님>에서 온 6천가정의 편지입니다.
홈에 올려 달라고 보내와서 대신 올립니다. 어제 글을 쓰고 오늘 또 습니다만 이건 제글이 아니니
그냥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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