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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뒤 아침햇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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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나오기 시작하면 끝이없는 키보드 병이 도지는것 같습니다.

글은 그 사람의 성품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므로 창조원리에 나오는 것

처럼 작품을 보면 작가의 성품을 알수 있듯 ~~~

우주를 보고 창조주가 어떤분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글이란 자기 자신을 까발리는 일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의 어떤

좋은 성품을 남에게 각인 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론은 그냥 무엇이든 어렵게 생각하면 점점더 어려워지니 오손 도손

살아가는 내용을 조금씩 담아 보면 어떨까 ..용기를 내자 그것입니다.

그나 저나 다음달은 수유리 부터 다시 북한산 뒷쪽으로 걸어갈 것인지요?

그러면 참 좋긴 하겠습니다

이런 산행이 아니면 평생 가도 그길을 못갈것 입니다. 제경우는요,

외국에 있으면 이런 등산 모임이 참 부럽습니다.

수도권안에 이렇게 좋은 산들이 많은 우리나라 같은 도시는 세계어디에도

없습니다

여기서 살고 있는분들이 그런 천국의 혜택을 누리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것이 안타깝니다. 많은 사람 들이 우리나라가 얼마나 좋은 조건을 갖추고

사는지 그런건 모르고 그저 이런 저런 정치인들 보기 싫고

교육 정책 못믿는다고 선진국으로 갈것을 선호 하나 ~~결국 나이들면

돌아와서 살수 있는곳으로 최고의 천국은 한국일수 밖에 없다는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열심히 일하고 인생의 중간 길목에서 저물어 가는

석양을 보면 노후를 대비 하고 준비 하고 몸을 단련 하여 산위에서

세상을 바라 볼수 있는 우리는 정말 행복한 천일국의 선민임을

저는 자부 합니다. 안팍 어려운 일은 좀 있으나 천지인 참부모님을

중심하고 앞을 보고 잘 걸어 가다 보면 언젠가는 어려운 일 들도

매듭이 지어질 것입니다.

북한산은 정말 좋은 산입니다.......고양 까지 걸어가면 제가 다니던

학교도 나온답니다<저는 충남 아산에서 초딩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를 경기도 고양군에서 다녔습니다>

.......북한산뒤 아침 햇살 떠오르고~~~그건 제 고등학교시절의

교가 첫줄이랍니다. 제 12차 홈사랑 등산 모임 저는 3차부터 참여 해서 지난달

결석 하고 8번 참석 했습니다.....지금 부터 계속 참여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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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2

김명렬님의 댓글

어느 요일이 좋으실까 ? 하두 바쁘시고 하는 일들이 많아
UPF 활동하시는 몇분과 더불어 연락하기가 망서려 지더라구요
일에 방해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_^

유노숙님의 댓글

고종우 시인님 .나이들어도 공부하는것은 좋습니다
그냥 본인이 사는것이 즐거우면 무엇을 하던 괜찮습니다.
산행은 첫째 몸의 체력을 단련 하는일이니 혼자서는 힘들고 여럿이 같이 하면서
즐기니 좋습니다. 천복궁 여성 회장도 거기서 필요하다면 해야지요..

고종우님의 댓글

홈사랑 산악 이야기를 접할때 마다 본인은 갈등에 빠집니다.
부럽기도 하고 샘도 나서, 홈짱님과 정총장님 옆구리 찔르며
요일을 좀 수정 하든가 한팀을 더 만들든가 해도 대답이 없고
하긴 제가 그런 건의 해놓고 100%로 실천 한다고 장담을 못할것이지만
더구나 高산 長산 뒤따를 자신도 점점 없어지고
무엇보다도 동참 하려면 천복궁 여성 회장을 명퇴부터 해야 하는데
여러분들 정답있으면 카운셀러 좀 해 주세요.
침흘리는 여자가~~~

성호갑님의 댓글

정회관 총장님 금년이 저물어 갑니다. 오늘따라 정담을 나누고 싶습니다. 박순철 교장선생님
언제나 감사드림니다. 소상호 시인님의 글속에 오늘 강의를 출발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청나라는 1636년 전면적 침략을 단행했다. 적군이 서울을 장악하고 횡행하는데도 인조는 남한산성에 갇혀 꼼짝도 못했다. 서울 주변의 모든 백성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철저히 항전하여 죽느냐, 항복하여 사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이럴 때 김상헌이 주도하는 항전파와 최명길이 주도하는 화의파로 갈라졌다.
다시 말해 화의하는 문제를 두고 서로 이견을 노출하며 갈등을 빚고 있었다. 화의를 하여 백성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계열을 주화파, 죽어도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화의를 할 수 없다는 계열을 척화파라 부른다.

김상헌은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를 찢으면서 유교적 대의명분을 살리려 했고, 최명길은 일단 화의를 하여 항복을 하고 후일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척화파는 철저한 명분론자, 주화파는 실리논자였던 셈이다. 일단 화의는 성립되었다.
그리하여 인조는 삼전도로 나와 청의 태종 앞에서 항복식을 치렀다. 조선 최초의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이제 조선은 명을 대신하여 청을 임금으로 받들겠다고 서약했다.
항복을 한 뒤 김상헌과 최명길은 함께 전범으로 몰려 볼모로 잡혀갔다.

<가노라 삼각산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만은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1635년 대사헌으로 재기용되자 군비의 확보와 북방 군사 시설의 확충을 주장하였다. 이듬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예조판서로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펴다가 인조가 항복하자 안동으로 은퇴하였다.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후 풀려 귀국하였다. 1645년 특별히 좌의정에 제수되고, 기로사에 들어갔다.

박순철님의 댓글

북한산은 도회지 가까이 있어서 그 가치를 알아 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정말로 좋은 산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아차산을 샅샅이 다닌 것처럼
이제는 북한산 둘레길을 몇 차례에 걸쳐 모두다 제대로 걸어 보기를 제안합니다.

김태순님의 댓글

북한산뒤 아침 햇살 떠오르고........
모교의 교가까지 생각할 수 있는 북한산 산행을 하여
너무 좋아 1월달에 한턱 내신다고 했군요..~~
함께 산행하여 즐거웠습니다.^^

성호갑님의 댓글

이제는 산행보다는 걷는 열풍이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저는 매월 오육백명과 더불어 한국의 명산과 영산을 찿아 산행을
합니다. 그 산 정상에 흐르는 지기와 천기를 연결 새 힘을 이끌어내
자연의 힘을 얻어 천일국 왕권을 만들어낼 2세 3세를 잉태 양육한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어떤 말이든 일만번만 외치면 이루어 진답니다
노숙님 미국 일본 세계 어디를 가든 영산의 정상에 올라 기를 받아
노숙님 자녀를 생각하며 자녀를 위한 비전을 매일 기도하고
한국에 돌아와선 만 천하에 기적과 축복의 문을 열어보소서........................

소상호님의 댓글

북한산 뒤 아침햇살
가시관을 쓰고

어젯밤 먹었던 술 거뜬히 깨어
나 인양 우리에게 교만을 떨지만
다정한 입맞춤으로 다가설 자신을 심어주는
그 해맑은 얼굴
나는 기어코 너에게 달려가고 싶어
오늘도 북한산을 향해간다

년말의 신을 신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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