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뒤 아침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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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아주 적당한 북한산 둘레길이었습니다.
북한산 을 휘감은 둘레길......영어로 하면 북한산 벨트웨이
히히히 ~~sple 이야 맞던지 안맞던지 무슨말인지
알기만 하면 되지요?계속 속으로 그 생각을 했지요.
작은 언덕길 올라갔다 내려 왔다. 하면서 어느땐 그래도 오르막길이ㅡ
길기도 하고......다리가 안아프다 아프다가 심장이 아주 뛰다
말다가 걷다 앉다 하면서 정릉에서 수유동 까지 아마 다 합해서
2시간은 넉끈히 걸었겠지요?
이런분 저런 분 점점 숫자가 많아지고 우리 등산 객이 우르르
몰리기도 하고 사람 많은것 싫어 하는 사람은 이제 이만 하면
딱 좋다. 버스를 타도 반은 우리 편이 승객 이고`~~~
날씨는 바람이 안불어도 겨울은 겨울 인지라 아침 부터 겁을 집어 먹고
옷을 잔득 입었지요. 언덕길엔 어찌나 더운지 잡바를 벗어 팔에 걸고
잠간 쉴때는 또 슬슬 추워 지고 다시 잡바를 입고 ~~~힘들땐
물병 하나도 부담 스러우서 아침엔 쇼~를 합니다.
가방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서 식탁의에 보관 하고~~~
아무튼 북한산 둘레길은 아주 산책 하기에 적당한 길이었습니다.
원래 부터 있던 길인데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하더군요
식사를 하면서 황회장님의 원고 부탁은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만일 나 같으면 그냥 사는 이야기 일기 처럼 주욱 써서 누군가 조금 편집을
해주면 될텐데......그게~~~글을 안쓰던 사람에겐 정말 힘든일이랍니다.
내 친구 하나는 글을 읽는것은 좋아 하는데 댓글 한줄 쓰는데도 식은땀이 난다네요
한줄 애써 써놓고는 누가 뭐라면 어쩌나 눈치보인다고`~~
누구도 뭐라고 안하는데~~~그렇지만 나보고 못하고 재주 없고 용기없는
그무엇을 시키면 저도 이해는 갑니다.
원고를 받아야 할분과 내야할분의 고충이 참으로 안타 깝습니다.
언젠가 우리 친구들 모임 에도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세사람 정도의 간증을 듣고
제가 원고를 대필해 준일이 있습니다.
글이란 쓰는 사람은 술술 쓰지만 안쓰던 사람들은 역시 성격문제도 그렇고
망살이게 된다고 합니다.
그래도 회고록을 내야 하니 정총장님의 의견 처럼 그냥 사는 이야기
오손 도손 일기장 쓰듯 아웃드 라인을 그려 놓고 한번 용기들을 내 보시면 어떨까요?
남들은 술술 잘만 쓰는데 나는 안된다 그런생각은 일단 접으시고
이홈을 통하여 아주 조금씩 조금씩 한줄 한줄 써보면 공부가 되긴 합니다만
선배집에 와서 뭘 떠들고 있습니다.지나 잘하지~~~~2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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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관님의 댓글
병자호란 때 청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세 학자인 홍익한(洪翼漢),윤집(尹集),오달제(吳達濟) 등을 말함.
"삼학사"란 이름은 1674년 (현종 15) 송시열이 [삼학사전]을 편찬하면서부터 불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청 태종의 12만 군대가 처들어와 남한산성에서 인조와 함께 47일간 항쟁하면서 끝까지 싸울 것(척화) 주장하였다.
청에 끌려간 삼학사는 청태종의 온갖 회유에도 불구하고 뜻을 굽히지 않아 심양에서 참형을 받게 된다.
남한산성에는 삼학사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기리기 위한 *현절사(顯節祠)가 있다.
현절사는 숙종 때 세운 사당이다.
지금은 대대적인 보수공사 중이며 내년 봄에 개장할 예정이라고 한다.
안창호의 <거국가(去國歌)>
"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너를 두고 나는 간다 / 잠시 뜻을 얻었노라 까불대는 이 시운이
나의 등을 내밀어서 너를 떠나가게 하니 / 일로부터 여러 해를 너를 보지 못할지나
그 동안에 나는 오직 너를 위해 일하리니 / 나 간다고 슬퍼 마라 나의 사랑 한반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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