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가을 한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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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오래 있으면 별 쓸데 없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얼마전 만 해도 옛날에 있었던 웃었던 일이 생각나서
혼자 실실 웃기도 하고~~~~그랬었는데.....
그러니까.....아이들이 어린 시절.....시골집에 부모님 뵈러 갔었는데
우리집 자동차가 <1992년?>마크 화이브란 중형차였지요
많이 낡고 흠집도 있던 그 자동차는 우리 친정 아버지가 아주 싫어 했고
너무 똥차라 챙피하다네...
그래서 어느날은 그냥 버스타고 가고~~~
노랑 머리 미국애들 주욱 데리고 까만 머리 조카들도 주욱 데리고.
여동생네 가족과 자가용이 없던 시절 ~~~~
그러면 아버지는 우리가 챙피 하다고도 하고< 자가용 안가고 왔다고>
며칠 놀고 서울로 올라 갈때는 학교 앞에 가서 버스를 타는데
버스 타는데 까지는 걸어서 30 분 넘게 걸리니~~~~
아버지왈~~저기저기 저수지 둑 넘어 가서 기다려라 경운기 태워 줄테니
하하하하. 동네 부터 타고 가면 챙피 해서리~`
미국애들<우리애들 셋> 이 자가용도 없이 버스 타고 온것이 영 가난해 보여서 싫댄다.
미국인은 돈많다는 고정관념이다.
그런데 실은 우린 자가용 새로 살돈도 있고 경제가 괜찮은 편인데
그냥 마크 화이브가 잘 구르니 사용한 것이다.남편은 늘 보통 한국 사람들 보다
수입이 많았다. 1988 년에 세계일보 국제부에 있을대는 월급이 130 만원이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편이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번역이나 통역 같은 알바를
해서 가져 오는 수입이 월급 보다 많을 때도 있었고
명절엔 갈비 박스가 몇박스 들어오면 너무 많아서 귀찮기까지 했다. 계속~~~
돈이 없어서 당당 거리고 아주 가난 하게 산적은 기억에 별로없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부자란 소리는 아니다.
남편도 나도 돈을 많이 모아서 빌딩 사야 한다는 관념이 없다
나는 가난한 충청도 농가에서 태어났어도 중학교 때 부자 이모댁에 가서
잘살고 잘먹고 있었으니 ...그래서 그런지 ..돈에 대한 욕심이 남들보단
적었다.
아버지는 성격이 충청도 사람치고 서두르고 부지런 하시다.
경운기를 운전 하실때도 1단을 놓고 막 달린다 .시골 논길을 그렇게 달리면
안된다고 농사짓던 언니가 그러던데....우리 아이 조카들 그리고 저수지 넘어 까지
걸어간 나와 동생 가족들을 태우고는 경운기가 흔들릴 정도로 밟아 댄것이다.
아이들은 경운기 타는 것이 재미있어서 아하하하하 깔깔깔~~거리고
할아버지 더 빨랑 가~~요 한다.
그러더니~~~~~~~~~~~~~~~~~~~~~~~~~~~~~~아니나 다를까?
내 그럴줄 알았지...논길 옆으로 크다당 경운기 바퀴가 빠져 버린 것이다.
아이들은 그것도 신나서 웃고 야단이다.
어른들이 내려 가서 경운기를 밀어 길위로 올렸다.
그리고 그후로는 마크 화이브라도 자동차를 가지고 갔다.
그 경운기의 추억은 오랫동안 아이들이 이야기 하면 웃어 대는 대사건이었다.
아이들이 골을 부리고 말을 안하면 할아버지 경운기 하면 까르르 웃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고향엔 가봐야 그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고
그저 나하곤 상관 없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나는 유일 하게 통일교 신자가 되어 그들의 이야기 수다 대상이 되어
가지고 그 아이가 통일교에 미쳐서 있대~~하면서~~
~~~~~~~~~~~~~~~~~~~~~~~~~~~~~~~~~~~~~~~~~
가을이 되니 그 생각이 난다. 추수때가 되면 논에 벼를 베고
볏단을 묶던 아버지 아저씨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없이 많은 사람 들이 살다간 고향 마을에 새겨진 옛추억 하나를
떠올리며 이젠 내가 그 부모님의 입장에 서서 세상을 바라본다.
옛날은 아름답다.정말 아름답다 ,그렇게 그리워 하면서 살다보면
젊은날 맑은 피부 싱싱하던 웃음을 되찾을 수 없더라도
우리들의 중년은 추억으로 아름답고 그리고 얼마를 더 갈지 모를
남은 시간들을 값지게 값지게 쓰면서 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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