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두렁 밭두렁의 추억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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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다아 느끼는 일이지만 푸른 벼가 자라는
모습은 정말로 싱그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바람이 불면 파르르 떨리는 파란 벼풀들이 살랑 살랑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고 마치 춤을 추는 것 처럼 아름다운 파란 벼 바다를
이룹니다.
초등 학교때 어머니가 논에 계신 아버지께 새참을 내다
드리라고 광주리에 고추장 풋고추 깐 마늘을 담아서
나는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동생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논두렁을길을 걷던일이 생각 납니다.
등에 땀이 배여 런닝샤스가 푹 젖어도 그 논두렁이 너무 정겨워서
이 다음에 자라서 고향을 떠나도 언젠가 다시 돌아와서 이 논두렁을
걸어야지~~~~~그때 에도 논에서 아버지가 그 연세로 늙지 않고
일을 하고 계시리라 생각을 했지요
고향은 늘 그렇게 변하지 않고 나를 기다려 준다고 생각 했지요
어리섞게도 ~~~
시골의 정취는 공기가 한없이 맑고 콩밭에서 들리는 새소리며
논두렁 사이에 흐르는 물소리 그리고 갑자기 확~~~~
달겨드는 개구리 다리의 모습들 하며 ~~~
평화롭고 또 평화로운 시골의 모습이 늘 기억 저편에 서성이는데
어느덧 나는 그때의 아버지의 나이보다 더 되었고 늘 베잠벵이 걸치고
맥고자 쓰시고 논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이미 머언 옛적 부터
그 논에는 보이지 않고 ..지상에선 어디서도 그 아버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나도 모르게 아련히 그리워 지는 우리집 논배미가
오늘 나를 쓸쓸하게 합니다.
동구밖 미루 나무는 오늘도 바람에 흔들리고 동네앞 우리집 논은
지금 누군가의 손에 피를 뽑고 가꾸어지고 있을까?
갑자기 한번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충청남도 아산군 음봉면 신휴리
라고 저수지가 있고 낚싯터가 있고 그 저수지에 내친구 상완이가 빠져죽었고
밤엔 빠져죽은 귀신 들이 나와서 운다는 내 고향 신휴리 저수지....
그 저수지 아래 에는 아주 큰 논들이 좌악~~~~펼쳐져 있고
전쟁이 끝난 후의 가난은 집집마다 보릿고개를 넘었다는데~~
내 기억엔 나는 보릿고개를 넘은 것은 기억에 없고~~~~~
배는 부르지 않았으나 그리 배가 고프지도 않았던 것이 나의 유년은
행복했던것 같기도 합니다.
지난번 청평 같다 오면서 푸른 논배미를 지나 면서 갑자기 어린시절
우리집 논두렁이 그리워 지더군요...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어머니 날 키우시고 나를 보내시고 멀리 헤여져서
평생을 살았으나....
오늘 가만히 논두렁을 바라 보니 역시 자연의 섭리는 거역 할 수 없고
언젠가는 나도 먼길을 떠날것은 자명하니.....그러나 이말은 늘
땅을 보며 마음속 구구 절절 외워진다...
성경에 나온 그 문구~~~~인간은 원래 흙으로 빗었으니 그흙 으로
돌아가나......땅은 영원 하리 세상에 인간이 가진것 중에 재물도
권력도 미모도 모두 가고 마는데 영원히 가지 않는 땅~~~~
영원한 땅 ..그 땅속에 우리집 논두렁도 포함 된다.조만간 형제들 에게
고향에 가보자고 할까?
우리집 논배미는 누가 가꾸고 있는지 저수지 아래 일곱마지기 논............
논이 주욱 붙어 있어서 바다 같이 넓은 논이었다..
인간은 가나 땅은 영원하리~~~리리리리리리....
우리 아버지가 일하시던 그 논도 땅이니 영원 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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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노숙님의 댓글
저는 총생축 못했습니다. 조상해원식을 할때도 짜증나서리....
조상들 한테 막야단도 쳤답니다..내 신앙은 좀 진지하지 못할때가 있어서 하느님도
웃을때가 있지요..우리조상님들은 나를 잘못 찍었습니다.
돈많은 형제들을 찍었으면 다아 복귀되었을텐데........나같은 능력없는
후손을 택해서 고생들이십니다.
그래도 그 논베미가 참 그립습니다. 대출금 갚을 일도 아이 대학 학비도
걱정할일없고 전깃세 개스세 물세 그무엇하나 근심걱정없던 시절이었으니.....
내겐 책임질 일들이 없었으니 ..오로지ㅡ내가 부모님의 짐이었으니......
이태곤님의 댓글
자식들 대학 보낸다고(조부모가 손자손녀를 대학보내 준 것으로 명분을 세우고)
한둘 팔아치우고
그 덕분에 총생축헌금도 해서 조건 세우고.
이젠 고향가도 잠 잘곳도 없고 나그네 신세~
고향집 팔아 마련한 선산 3000평에 솟은 소나무숲에 푸념하다 옵니다.
그래도 흐뭇한 것은
우리논베미가 있는 주위에 심청전 기념공원이 들어서
기차마을과 함께 관광지로 날로날로 날개를 달고 있는 것입니다.
대숲의 논배미는 철로가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일할 때마다 지나가는 기차 객실 창안에 앉아 흘러가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일이 힘들수록 더욱 그들이 부러웠습니다. 나도 떠나고 싶다!
이제 고향을 영영 떠나 타향살이에 괭이가 박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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