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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잠 없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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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가 친정 아버지 하고 많이 닮은 체질인데

아버지는 초저녁이 되면 일찌 감치 주무시고는

새벽 4시면 일어 나셔서 쇠죽 쑤고 마당 쓸고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시는데.........시골에 사실때 그러하셨고

어머니가 돌아 가시고 아들집인 부천에서 사실 때는

그 시간에 일어나셔서 자전거를 타시고 이집 저집 상자 버린것 모아다가

하루 평균 2만원씩 축협에 저금 하셔서 축협 직원들에게

인기 있었던 아버지를 늘 자랑 스럽게 생각하지요.

부지런함과 근면이 지나쳐 어머니에게 구두쇠 라고 늘 지청구도 받으셨지만

제가 꼭 아침 잠 못자는 습관을 닮았습니다 .

한번 눈을 뜨면 그 시간이 밤 12시건 새벽 2시건 간에 다시는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는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처저녁에 좀 늦게 자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은 아침 3시반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니 편의점 옆에서

아저씨 들이 술을 마시고 있네요

맥주를 파는 호프집도 24시간 7-11 도 24시간 . 패밀리 마트도 24시간

그렇게 꼬박 24시간 눈뜨고 있는 가게 들은 종업원들이 교대 근무를

하것지요?

동네를 한바퀴 걸어 보는데 4시 조금 넘으니 신문 배달 아줌마가

조그만 신문 손수레를 끌고 이집 저집 신문을 배달 하네요

아차~~나도 저런 직업을 가지면 건강해 지겠구나

우유배달은 안보이나 전에 누군가 그런농담도 곧잘 했지요

우유 같다 주는 사람하고 받아 먹는 사람중 누가 건강하아~~게~~

당근 우유 배달 하는 사람이 훨~~건강 하다네요.

5시 10 분전 잠못자는 나이많은 할머니 권사님 두어명이

기성 교회로 새벽기도 가더라구요

허리는 꾸부정해 가지고 무거워 보이는 성경 가방을 들고서요.

저렇게 정성을 들이시는데 왜 그곳에 재림 메시아가 못오시는지

심히 안타갑기도 하구요.

옆에 와도 모르는 그분들이 참 답답 하기도 하구요.

아무튼 그래서 오늘은 한시간 새벽을 돌다가 집에 돌아와서

한줄 또 일기를 써봅니다...

덥네요. 그래도 잘 견디십시요.

살아 있는 일팔홈. 늘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좋은 분들이 모여 있고 축복가정의 도리를 지키시는 분들이 계신곳

여기는 홈의 천국입니다. 새벽거리를 산책 하며 박스, 수거하러 다니시던

영계에 계신 친정 부친 생각도 났습니다.

심심한데 나도 우유고 신문이고 새벽에 배달을 해볼까?
쉬운일은 아니나 내가 바보는 아니라고 생각하니 기운만 있으면 무엇인들 못하리//

> 노래들으시죠
천화님 건강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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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문정현님의 댓글

새벽잠은 없는 편이고
낮잠은 가끔 때리구...
다행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컨디션은 좋지요.
10시 만나면 퍽 가는 사람... ㅋㅋ

박순철님의 댓글

나는 고백하건데 평생 새벽 정성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축복 전에는 그런데로 할만했는데 직장 생활하면서
일찍 출근하기 위하여 서둘다보니
너무 이른 새벽에는 일어날 수가 없더라구요.

한참 고3 담임할 때는 아침 7시에 첫 강의를 해야하니
일어나기 무섭게 씻고 먹고 달려야 했습니다.

그 대신 늦은 시간까지 졸지 않고 밤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지요.
우리 부부가 다 그래요.

성호갑님의 댓글

새벽형 인간이 성공의 주인공 이지요. 노숙님 즐기시는 새벽정성 따라 이시대 축복 물결의
주인공이 되소서..........

유노숙님의 댓글

고회장님 . 참 신앙은 어렵습니다.
저도 매일 120배 하는데 오늘부터는 40일 하계 전도기간이라
성전을 강의실로 쓰니 기도실에서 <덥습니다> 새벽 5시 기도회 참석하려고
합니다...그래도 열심히 정성들이십시다.

유노숙님의 댓글

노래 하나 가지고 와서 보니 어느새 부지런하신 세분이 다녀가셨네요
제 남편이름은 .Tim Elder <팀앨더> 라고 합니다..
어느새 매일 한편식 올려서 공해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고종우님의 댓글

형진 회장님께서 새벽 세시 정성을 드리시려면 두시부터 일어나시기를 10여년
그 수행을 전수 받고 있는 훈사님들 훈녀님들 훈인들 ,
잠과의 전쟁을 하고 계시는데 여성회장들도 당번제로 그 정성에 합류 하는데
모처럼 한번 참석 하면 3 일간 리듬이 깨져서 비실 거리는데 노숙님이 부럽다.

신앙인 하면 잠을 기여갸 하고 먹는식사도(금식) 이겨야 하고 돈(공금) 시험도 이겨야 하고
사랑도(성별) 이겨야 하고, 어려운게 수행의 길 이지요.

이존형님의 댓글

옛날부터 일찍 일어나는 강아지 ?하나 더 주워 먹는다라는
농촌에서의 이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우리 집에선 그럴 때면 귀를 후벼라. 등을 긁어라
난리를 치다가 잠이 드는데

노숙님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을 하시는지요.
?이면 딤 엘드님께서 낭군님의 성함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많이 피곤하실 것 같아서 그 때는
무조건 글을 쓰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 대추 볼 붉은 골에 - 황 희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듣드리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황 희 (1363-1452) ; 조선초의 훌륭한 재상, 청렴한 관리였음

이조판서로 재직하던 1413년(태종 13년) 세자 제(禔 : 양녕대군)의 폐립(廢立) 문제에 반대 의견을 내어 태종의 노여움을 사서 좌천(左遷)되었다가, 1418년(태종 18년)에 충녕대군이 세자로 책봉되자 이에 반대하다가 결국 폐서인되어, 교하(파주) 지방에 유배된다. 이 해에 태종은 세자에게 양위하고 물러나는데, 이때 교하가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남원으로 옮겨서 5년을 더 머물러야 했다.

황희는 남원에서 도교의 이치를 따라 《춘향전》의 무대가 되는 광한루를 만들었다.
[복직]
1422년(세종 4년) 태종은 그를 소환하여 직첩(職牒)을 주며 세종에게 부탁하여 곧 등용토록 하였다. 비로소 의정부 참찬에 등용되는데, 이때 황희의 나이는 60세였다. 세종은 황희가 자신이 세자에 책봉되는 것을 반대했고 외숙부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그의 사람됨이 바르다는 것을 알고 과감히 유배에서 불러들었다.

그 후 황희는 이조판서와 우의정에 임명되었고, 69세 되던 1431년(세종 13)에는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18년 동안 황희는 명재상으로서 세종을 잘 보필하여 태평성대로 이끌다가 1449년(세종 31) 87세로서 은퇴하였다.

그가 죽은 뒤 세종묘(世宗廟)에 배향(配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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