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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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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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에 비친 달 그림자가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만취한 이태백이 달을 건지러 호수에 뛰어 들었다가
그만, 나오지 못하고 호수에서 죽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이태백이 놀던달 이라고 노래 불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태백이 놀던달이 아니라
이태백이 죽은달이다.
죽은달 보다는 놀던달이 낭만적 이어서
노래도 그렇게 불렀나보다.
너무나 감성적인 사람은 달을 건지러 들어가기가 쉽고
그 반대인 사람은 달 그림자의 아름다움을 느낄수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호수에 뛰어드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달 그림자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살수 있을까?
살면서 판단이 어려울때는 아버님 입장을 생각하면 쉽게 풀리리라고 본다.
이때 아버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항상 그렇게 살아야 겠다고 다짐하며 두서없는 졸필을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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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개
이존형님의 댓글
이태백은 달 그림자의 슬픔을 모르고
이태백은 달 그림자의 희생을 모르고
이태백은 달 그림자의 자태를 모르고
이태백은 달 그림자의 친구로 살다가 친구따라 외롭게 사라졌습니다.
정해관 총장님 아래쪽에 있는 것이 나을듯 하여 내려 왔심더,,,,,
어려서는 진짜로 달나라에 토끼가 살고 있는 줄 알았고
토끼가 방아를 찧어서 배고푼 사람에게 줄려고 그러는 줄 알았고
이제는 하늘과 땅위에 편안과 희망을 주기도 하면서
세상 연인들의 마음속에 사랑의 징표를 보관하는 창고인 듯 하기도 하면서
부모님들의 마음인냥 너그러운 풍요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태백은 달 그림자의 희생을 모르고
이태백은 달 그림자의 자태를 모르고
이태백은 달 그림자의 친구로 살다가 친구따라 외롭게 사라졌습니다.
정해관 총장님 아래쪽에 있는 것이 나을듯 하여 내려 왔심더,,,,,
어려서는 진짜로 달나라에 토끼가 살고 있는 줄 알았고
토끼가 방아를 찧어서 배고푼 사람에게 줄려고 그러는 줄 알았고
이제는 하늘과 땅위에 편안과 희망을 주기도 하면서
세상 연인들의 마음속에 사랑의 징표를 보관하는 창고인 듯 하기도 하면서
부모님들의 마음인냥 너그러운 풍요함을 느끼게 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좋은 글 잘 감상 했습니다. 이 기회에 이태백에 대한 상식을 살펴봄도 무의미한 일은 아니겠지요? 그의 시 한수도 소개 합니다.
1. 이백 (중국 당 [唐] 시인): 자는 태백(太白).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도 한다.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시인으로 꼽힌다
이백은 촉나라 쓰촨 성에서 태어났다. 이백의 아버지가 중앙 아시아에서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東巖子)라는 선인과 쓰촨 성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江南)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45세에 현종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어 장안(長安)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헌종의 측근인 고역사(高力士)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낙양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永王 璘)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랑(夜郞, 지금의 구이저우 성)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2세에 안후이 성 당도(安徽省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조카 이양빙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장강(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2. 古朗月行(고랑월행) - 李白
小時不識月(소시불식월) : 어려서는 달을 잘 몰라,
呼作白玉盤(호작백옥반) : 백옥 쟁반이라 부르기도 하고
又疑瑤臺鏡(우의요대경) : 또 혹 선녀가 화장하던 거울인 듯
飛在青雲端(비재청운단) : 푸른 하늘 끝에 걸려있었지.
仙人垂兩足(선인수양족) : 신선이 두 다리를 쭉 뻗고
桂樹何團團(계수하단단) : 계수나무는 얼마나 둥글던가?
白兔搗藥成(백토도약성) : 하얀 토끼가 약방아를 다 찧으면
問言與誰餐(문언여수찬) : 누구에게 먹이려는지 물어보네.
蟾蜍蝕圓影(섬서식원영) : 두꺼비가 둥근달의 형상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大明夜已殘(대명야이잔) : 휘영청 밝은 밤도 이미 기울어지고
羿昔落九烏(예석낙구오) : 그 옛날 羿가 아홉 마리 홍곡을 떨어트려,
天人清且安(천인청차안) : 하늘과 사람이 모두 편안했다네.
陰精此淪惑(음정차윤혹) : 저 달은 이처럼 야금야금 이지러져,
去去不足觀(거거부족관) : 갈수록 볼품이 없어지리니
憂來其如何(우래기여하) : 근심이 어떠하겠는가?
凄愴摧心肝(처창최심간) : 슬퍼서 가슴이 찢어지누나.
1. 이백 (중국 당 [唐] 시인): 자는 태백(太白).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도 한다.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 최고의 고전시인으로 꼽힌다
이백은 촉나라 쓰촨 성에서 태어났다. 이백의 아버지가 중앙 아시아에서 장사를 하던 무역상이었기 때문에 이백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나 26세까지 고향인 촉나라에서 살면서 동암자(東巖子)라는 선인과 쓰촨 성의 산들을 오르며 도교를 수양하였다. 25세나 26세에 고향을 떠나 강남(江南)을 여행하였으며, 아버지의 유산을 소비하며 몰락한 귀족의 자제들과 어울렸다. 45세에 현종의 칙령을 받아 한림공봉(翰林供奉)이 되어 장안(長安)에 머물렀으나 관리의 따분한 생활을 견디지 못하여 44세에 헌종의 측근인 고역사(高力士)와 다투고 사직하였다. 사직 후에 낙양에서 산둥까지 두보와 함께 여행하였다. 54세에 다시 강남으로 돌아와 56세에 현종의 열여섯 번째 아들인 영왕 인(永王 璘)의 군대에 참여하였으나 영왕의 군대가 숙종에 의해 반란군으로 지목되어 이백도 야랑(夜郞, 지금의 구이저우 성)에 유배되었다. 다행히 삼협(三峽) 부근까지 왔을 때에 은사(恩赦)를 받아 다시 강남으로 돌아왔다. 만년에는 강남의 각지를 유람하였고, 62세에 안후이 성 당도(安徽省當塗)의 현령(縣令)이었던 조카 이양빙의 집에서 사망하였다. 이백이 장강(長江)에 비치는 달 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전설도 있다.
2. 古朗月行(고랑월행) - 李白
小時不識月(소시불식월) : 어려서는 달을 잘 몰라,
呼作白玉盤(호작백옥반) : 백옥 쟁반이라 부르기도 하고
又疑瑤臺鏡(우의요대경) : 또 혹 선녀가 화장하던 거울인 듯
飛在青雲端(비재청운단) : 푸른 하늘 끝에 걸려있었지.
仙人垂兩足(선인수양족) : 신선이 두 다리를 쭉 뻗고
桂樹何團團(계수하단단) : 계수나무는 얼마나 둥글던가?
白兔搗藥成(백토도약성) : 하얀 토끼가 약방아를 다 찧으면
問言與誰餐(문언여수찬) : 누구에게 먹이려는지 물어보네.
蟾蜍蝕圓影(섬서식원영) : 두꺼비가 둥근달의 형상을 야금야금 갉아먹어,
大明夜已殘(대명야이잔) : 휘영청 밝은 밤도 이미 기울어지고
羿昔落九烏(예석낙구오) : 그 옛날 羿가 아홉 마리 홍곡을 떨어트려,
天人清且安(천인청차안) : 하늘과 사람이 모두 편안했다네.
陰精此淪惑(음정차윤혹) : 저 달은 이처럼 야금야금 이지러져,
去去不足觀(거거부족관) : 갈수록 볼품이 없어지리니
憂來其如何(우래기여하) : 근심이 어떠하겠는가?
凄愴摧心肝(처창최심간) : 슬퍼서 가슴이 찢어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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