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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전 한 맹호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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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2월4일

06시에 기상하여 침구를 W-백에 담아가지고 차에 실었다.

차에서 간단히 C 레이션으로 아침식사를 때우고 06시40분에 연대를 벗어나

1번 도로를 달려 큐논으로 향했다. 도로를 달리는 기분은 모든 것을 잊고

맞부딪쳐 오는 바람을 가르는 시원함 ! 그리고 상쾌함이 참좋았다.

서로 마주치는 미국 병사들은 지나가면서 V자를 손가락으로 표시하면서

서로가 우군임을 확인 한다.

아오자이 옷을 입은 귀여운 꽁가이(월남아가씨)들을 볼때는 우리모두는

큰소리로 애인이라도 되는 듯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들을 해댄다.

어느듯 작전지역 Tac의 위치까지 오게 됐다.

휴식할수 있는 칼바이트(두꺼운양철)방카를 상호와 함께 몇시간 동안

만들고는 큐논시가가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서 항구에 정착하고 있는

무역선들에서 비추는 불빛과 가끔타오르는 조명탄의 불빛은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 그대로이다.

얼마후 우리 작전지역 옆에선 주위를 낮과 같이 밝게하는 조명탄이

오르면서 건쉽(집중포격)을 하는데 굉장한 포화와 더불어 폭격소리는

바로 전쟁터임을 알려준다.

2월 11일

이날부터 맹호사단 3개연대가 동시에 예비기동을 하여 집결지로

이동하였다. 우리대대는 하몬드베이스로 갔다.

김학원사단장이 방문하였고 우리들에겐 사단Poi 친구가 따랐다.

소총중대에 들어가 전투하는 모습들을 쓰고 사진찍기 위해서란다.

2월12일

렌딩지점에 안개가 걷치질안아 예정시간보다 3시간 늦게

공수이동이 시작되었다.

우리 대대는 렌딩 지점이 개척되지를 않아 26R.3BN Tac 자리로 임시

렌딩하였다.

오래전에 전술기지 였다고 하는데 크지막한 호들이 여러군데 파져

있었다. 냄새는나지만 모두 호(방카)속으로 들어가라는 명령으로

호 속을 정리하엿다.

오후늦게 어디서 모여온 안개인지 시계 50m 밖에 되지를 않는다.

비는 보슬 보슬내린다.참호속이기에 상황실도 좁고 취침호도 몹시

비좁다. 할수 없지않는가

그래도 이러한곳이 현재 우리에겐 가장좋은 집이 아닌가

2월13일

우리는 이동을 하려고 했지만 안개는걷치질 않고 렌딩지점도

개척을 하지 못해서 그대로 머무른다. 오후늦게 보급오뚜기(헬리곱터)

에서 파랑새(편지) 3마리가 날아왔다 몹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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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문정현님의 댓글

역시나 배경음악이 중요합니다.
맹호부대 용사들아!~~
.
.
마음은 청춘시대로 사뿐히 날아가셨습니다.
건강하이소 !~

유노숙님의 댓글

이노래를 들으니 광화문 시청앞에서
맹호부대 전송하며 시민들이 줄을 주욱~~~서서 울고 글고 태극기 흔들고 있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제가 아는 분들도 여러분 맹호부대에 갔습니다.
그시절이 언제 다아 갔습니다..박대통령시절이지요..

안상선님의 댓글

젊음을 불태웠던 맹호부대 용사였군요.
월남 참전 용사들 중엔 부상. 병균. 고엽재로인한 피해가 많았던 것을 압니다.
나의친구도 세명이나 월남에서 전사했지요.
이렇게 같은 길을가며 사랑방손님으로 정을 나눌 수 있으니 하늘의 보호하심이 큰 것 같습니다.
행복한 나날 되시길...

김명렬님의 댓글

배경음악을 007에서 -맹호로 바꾸니 역시 분위기가 달라지는군요.
호랑이처럼 용맹스럽게 살라고 나를 단련 시키 셨는데
노력은 꽤하는데도 그렇게 살지를 못한것 같네요.

정해관님의 댓글

☯ 채근담88. 영화. 권력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영화부귀를 바라지 않으면,
재물의 유혹으로 인한 근심이 있겠는가?
내가 남들과 명예나 권력을 다투지 아니하면,
어찌 관직으로 인한 위기에 떨 필요가 있겠는가?

박순철님의 댓글

사진의 제일 왼쪽이 명렬맹호같습니다.
솔직이 말해서 군대라고는 민방위대만 거친 저로서는
소설 속의 꿈 같은,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흥미롭습니다.

유노숙님의 댓글

노래는 맹호부대 노래로 바꾸면 조컷네요
자유통일 위해서 조국을 지키시다
~~~~~그으 이르음..맹호부우대 맹호부우대 용사들이
가시는곳 월남암땅 ~~~~

유노숙님의 댓글

아이구우 이렇게 귀한 사진을 ....
그리고 귀한 글을...쬐금 옆에 김동운 회장님도 거기 계셨다지요..

시사엥 시상에 맨 왼쪽 금방 김명렬 위원장님인걸 알아 보것네요
이사진좀 지가 가지것쓰요...1970 년이라 저는 고3 이였네여....
아마 혹시 내가 팬팔한 군인 아자씨도 조기 있을껴....

문정현님의 댓글

저도 한눈에 명렬맹호님을 알아 봤습니다.
저는 민방위대도 통과해서 더욱 모르는 세계지만
파월장병으로 숨막히는 시간속에서 일기를 남길 수
있었다니 참 대단하셔요.

기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꿰어 가는듯 합니다.
우와!~ 시계바늘이 40년을 휘리릭 돌려놓았네요.

이존형님의 댓글

참으로 자알 생기시고 늠름하십니다.
고기서 쬐끔만 옆으로 가시면 김동운 왕회장님도 계셨다그랬지예~~~

님들의 수고와 희생덕분에 우리나라가 근대화 발전에 큰 공로자이심을
모두가 알아주어야 하는데.

그 발전에 힘입어서 박정희대통령께서 국력의 대동맥인
424키로미터의 경부고속도를 70년 7월7일에 개통을 보게되었고,
고속도로 공사기간에 70명의 사망자가 생겼지만

우리나라의 발전상에는 70년대가 가장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오나가나 7이라는 숫자는 어디에서나 좋은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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