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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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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사랑

후목/소상호

아벨의 눈을 비비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하고

가인을 만나러간다

목사님께 가인을 소개받으러 간다

오늘은 어떤 가인을 만날까하며 기대된다

목사님은 가인이 교회에도 있으며

바로 옆사람이 가인이란다

길가에도 있다한다

가인은 어데에도 있다 한다

모래알처럼 많은 것이 가인이란다

아벨은 누구냐

가인을 사랑하는 자다

가인을 사랑하지못하면 아벨이 아니다

모래에 광채를 내게하는 것이 아벨의 사랑이란다

에덴에서 추방된 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을 때

어쩌면, 아벨이 가인의 제물을 받아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드라면 가인의 제물을 받았을 거라고

그러면 역사의 모습은 훨씬 긍정적으로

화합으로 하나되어

훨씬 에덴으로 가는 것이 당겨지는

하나님 역사가 되었을 것을

돌고 도는 수레바퀴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성사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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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이재홍님의 댓글

말씀속에서 시상을 찾으시는 귀한 시임을 깨닫게 됩니다.
더욱이 분석까지 예리하게 해 주신 박 장로님이 계시니
말씀을 할 때 더욱 긴장이 됩니다. 준비를 잘 하게습니다.

소상호님의 댓글

교장선생님은 서서히 칼을 갈고 계시는것같습니다
글이 날이 서시는 것같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날은 세우지마셔요 하하
웃자고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유노숙님 한번 모시고싶은데 저 사무실이 영등포구청역에서 가깝습니다
시간 내시면 한번 용기내어 모시겠습니다
저는 손님오시면 한강 배위에 레스토랑이나 커피숍에서 접대합니다
분위기가 있습니다
가끔 시인들 찿아오시면 거기서 만나기도 합니다
전화 02)2636-6779 011-728-6779

유노숙님의 댓글

늘 내가 가인인줄 알고 생각하면 사람들을 아벨로 대하니
죄를 덜 짓는것 같습니다. 세상 사는것이 가인아벨이니
그생각들 늘 염두에 두면 원리인이 되겠습니다..

시인님 한번 보고 싶은데 못뵈었네요.언제나 한번 모실수 있으려나요....

박순철님의 댓글

이 이야기에 대하여 보다 자세히 알기 위하여 창세기를 다시 보았습니다.
4장 5절에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8절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아벨을 죽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개신교에서 해석하기는 첫째,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바쳐 정성을 담았지만,
가인은 그냥 땅의 소산을 드렸다고만 기록되어 있어 첫 소산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
따라서 가인의 제물은 정성이 없었다.
둘째, 히브리서 11장 4절로 보아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나은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그래서 가인에게는 정성과 믿음이 없었다라고 결론내립니다.

원리강론(40쇄. 264쪽)에 의하면 아벨의 제물을 받으신 이유는
첫째, 아벨이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상대적인 입장에서 제사를 지냈고,
둘째,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도록 제물을 바쳤기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성과 믿음이 없어서 그랬다는 개신교의 해석도 타당성이 있지만
인류역사는 탕감복귀섭리역사라는 것을 모르는 그들의 한계라고 봅니다.
우리는 아벨이든, 가인이든 하나님이 취하실 수 있는 상대적인 자리에
나 자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원론적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야 한다고 봅니다.

아벨은 "믿음의 기대"의 중심인물 자리를 잘 지키고 있는가.
가인은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워야 하는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는가.

그리고 원리강론(267쪽)에서는 "온유겸손"과 "순종굴복"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아벨이 피살당한 원인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벨의 온유겸손과 가인의 순종굴복이 바로 문제의 관건입니다.
가인이 순종굴복하도록 결정적 역할을 할 사람은 아벨이오, 아벨의 온유겸손입니다.

약간의 공을 세웠다고 자랑하지 말 것이며,
남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내세우지 말며,
좀 이쁘다고 얼굴에 웃음을 너무 크게 띄우지 말고,
조금 안다고 현학적으로 과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침없이 안색이 변해지는 가인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하여
아벨의 온유겸손이 더더욱 아쉬워지는 오늘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래서 꼭 온유겸손해야 합니다.
아이티의 무너진 교회 건물이 어서 빨리 다시 세워지기를 기도하며.......

신동윤님의 댓글

가인의 제물을 받아 달라도 간구한다고 받으신다면
원리를 수정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고 봅니다.
형님, 노여워 섭섭해하시는 것 저도 가슴이 아픔니다.
제물을 가져 오시면 제가 대신 드려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라고 했으면 좋았으리라고 생각 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아담에게 주신 계명이
그렇게 만만한 계명이 아니였을 것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지으신 것을 옆에다 놓으시고, 어쩌란 말입니까?
눈이 있어 보암직하고, 골든키가 있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써보고 싶은 충동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할 진대는 어쩌면 내가 에덴동산의 아담이었다 할지라도,
별수 없었을 것입니다. 알것을 다안 축복가정의 무리가 된것이
다행스러울 뿐이지요. 아담이 걸머진 짐이 결코 가벼운 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내책임 아니라고 심하게 몰아세울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가인과 아벨이야기도 역시 쉽고, 간단한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조심 조심 접근을 해보는 것이 좋으리라고 봅니다.
원리말씀을 의심을 해서는 아니지만
리슨 케어풀리를 요하는 것이 겠지요.

정해관님의 댓글

원리는 분명 타락책임의 반대경로를 따라 가인이 아벨을 사랑하고 중보로 삼고 통해서 하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들은 은연중 우리가 아벨이고 세상사람들은 가인으로 '낙인'을 찍어 정신적 교만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 점을 경계해야 한다는 금언이요 설교로 이해 합니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 하면 더 교훈적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우리는 아벨을 항상 사랑하고 모시고 그런 조건을 통해 하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가인들이다'라고...

이옥용님의 댓글

인류역사가 시작했을때 부터 발생했던 현상이 오늘이 이전이요 오늘에 실상인것임을 새삼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반면에 이면에 우리가 감지 못하고 밝혀지지 못했던 무언가을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이존형님의 댓글

가인은 아벨을 사랑하고,
아벨은 가인을 사랑하고,
양들은 목자를 사랑하고,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고,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고 ,
세상은 우리를 사랑하고,
하늘은 모두를 사랑하사,
천국은 모두의 것인것을,
우리가 몰라서 그렇다는,
겸손의 귀한글 깨우처보면서 마음에 새기고 갑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아침의 심정과 저녁의 심정이 다르듯이 가인과 아벨도
변화무쌍 한가 보다

형제를 이웃을 사랑하면 아벨이 되고 미워하면 가인이
된다.
마음 속 깊이 새기는 성일 밤입니다.

소상호님의 댓글

일요일 에배 때
설교의 제목 "가인의 사랑"에서
식어진 심정의 물을 마시며

황혼에 젖어든 영혼의 숨소리에서
바위에서 쇠를 캐는 마음으로 얻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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