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국화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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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국화꽃 한 송이
경상북도 문경군 점촌시 흥덕동 555번지
위의 주소가 점촌에 통일교회에서 최초 간판을 내걸은 주소입니다.
김갑규 권사님 댁이랍니다.
1960년 10월 1일 입회원서를 내시고 점촌에 통일교회의 대모로 출발하신 날입니다.
600평 대지위에 고래 등 같은 집 전체를 교회로 다 쓰게 하시고,
통일교 초창기 수련회면 하루가 멀다 않고 찾아오는 전도대원 사업대원 식구님들
그 누구든 모두 버선발로 맞아들이시고 먹이고 재우시며 점촌 교회를
키워 오신 김갑규 권사님 입교한 그날부터 헌신생활 그 자체 였답니다.
5남매 모두를 축복시켰습니다.
세상에 단 한 분뿐인 아드님(1800가정 서기홍 목사님),
아드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 하시는 아드님께서
대구에 그 큰 교회에 목사님으로 영광된 자리에 계신 것을 보시니 안심이 되셨을까
이승에 생을 조용히 접으신 권사님…….
며느님이신 백명재 사모님께서 십년도 넘게 병수발을 지극정성으로 하셨기에
시어머니(권사님)께서 사람들이 오면 며느님을 자랑해 달라고 부탁하셨다고합니다.
백명재 사모님 정말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2009년 11월 22일 천상의 멀고 먼 길 떠나 신날, 배웅하려 나온 자식들과
수많은 지인들이 추우면 어찌하나 권사님께서 빌고 또 비셨는지,
초겨울 매섭던 날씨도 잠시 빗겨가 주시고, 한낮에는 바람 한 점 없고
화사하고 따스한 햇볕이 비추어주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날씨 였답니다.
권사님께서는 꽃다운 26세에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시고,
하루아침에 홀로 다섯 남매를 거느리게 되셨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생이별을 하시고,
육십 년 만에 천상에서 마중 나온 젊디젊은 낭군님을 알이 보시기나 하셨을까,
그토록 애절한 해후는 어찌 하셨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렸답니다.
우리 통일교회가 이토록 클 수 있었던 것은
김갑규 권사님 같으신 전국의 몇몇 분이 고생하시면서
기꺼이 밑거름이 되어 주셨기에 우리 통일가가 세계 속에 우뚝 설 수 있었다는 걸…….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시기에
그 분들 한분 한분들을 하나님 오른 편에 영접하시어
영광된 자리에 모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래도 그 어린나이에 혼자되어 모질고 한 많은 세월을 보내셨을
권사님을 생각하니 너무도 가여워 두 눈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습니다.
86세로 천수를 다하시고 멀고 먼 천상세계로 길 떠나시는
권사님 영전에 국화 한 송이를 바치고 잘 가시라고 배웅해 드리고 왔답니다.
※ 내 짧은 글로 권사님께서 통일교회를 위해 수고하신
그 많은 내용과 이승에서 보낸 한 많은 사연을 어찌 다 표현 해드리겠습니까?
행여 권사님께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사연을 여러 형제님들께 알려드리고 싶어서 글을 올립니다.
2009년 11월 25일 정해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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