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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먹지 마라,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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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 / 한국청소년순결운동 경기남부지부장

1. 마지막 시대의 현상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만물을 주관하라”고 3대 축복을 주신 반면 “따먹으면 정령 죽으리라”라는 계명도 함께 주셨다. 매사 살펴봐도 권리 뒤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당근 뒤에는 채찍이, 축복 뒤에는 시련이 오게 마련인데, 이렇게 짜여진 창조원리를 인간은 거역할 수가 없다.

축복의 권한을 주시고 계명을 지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주셨는데 지금까지 인류 역사이래 어떤 성인이나 학자도 이 계명의 해답을 제시하지 못 하고 엉뚱한 오답을 제시하여 더욱 더 혼란에 빠지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고 경전 자체를 부정하는 풍조까지 나타나게 되었다.

성경에 보면 마지막 시대(끝날)에는 다 보여 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계명의 의혹도 보여주고 있는가? 현 시대는 우리에게 깜짝깜짝 놀랄만한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정보통신이 그렇고, 의학의 발달로 인한 인간의 복제와 수명의 연장이 그렇고, 국경이 없는 글로벌 시대가 되어 온 세계가 하나의 경제 블록으로 형성되는 경제적 측면이 그렇다. 이런 긍정 측면이 있는가 하면 또한 부정적 측면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성적 문란이다. 이는 그 어떤 시대보다도 극치에 달한 것 같다. 특히 청소년들의 무질서한 성 관념을 다 보여 주었다는 듯, 이것이 바로 숨겨진 계명이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현란한 춤을 추고 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하여 밤새는 줄 모르고 청소년 및 기성세대는 즐기고 있다.

2003년 1월 15일 K.B.S 오후 9시 뉴스 보도에 의하면 ‘내버려지는 갓난아이 숫자가 1년에 7천여 건이고 늘어나는 미혼모 숫자가 1년에 2만 명이란 보도가 나왔고, 에이즈 감염자도 이성간의 성 접촉에 의하여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정부당국이 성교육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웃음이 나온다. 학교에서 보건교사를 통하여 실시하는 성교육인 즉 생물학적 신체구조에 초점을 두고 남성과 여성의 신체구조를 비교하며 피임하는 교육만 하고 있으니 오히려 호기심을 유발시켜 시험해 보고 싶은 충동만 낳게 하고 있다.

일찍이 서구 선진국에서는 남학생에게 콘돔을 나눠준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제대로 피임이 되어 사생아나 미혼모가 없고 성적 범죄가 없는가? 그러나 그곳은 여학교에 유아 보호소를 설치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그릇된 성교육이 되고 말았다. 100% 실패한 성교육이다.
우리 나라의 성교육 역시 유학 가서 배웠다고 하는 학자들에 의해서 실패한 성교육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뜯어도 뜯어도 돋아나는 봄동산의 잡초와 같이 만연되는 性적 무질서를 뿌리째 뽑아 버리는 근원적인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해와의 사이에 자행된 불륜의 사랑처럼 오늘날 청소년들 사이에는 자신들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무질서한 성범죄가 계속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문제를 청소년과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하는 한국청소년운동본부가 의혹을 공개하고 고발하면서 원인적 가치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손바닥이 붓도록 박수를 쳐주고 찬사를 보내야 한다.

2. 왜 사는가?

경기남부지부에서만 1년에 교장 200여명, 교사 300여명, 학생 3만여 명, 학부모 2천여 명을 교육하면서 제일 먼저 묻는 말인즉 “왜 사는가?”의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러면 거의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다”가 보편적 대답이다. 그러면 거의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고맙고 감사하지도 않고 목적도 방향도 없이 그저 억지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확실한 목적과 방향이 없으니 장님 밤길 가듯 좌충우돌이고 세상이 혼란스럽고 불행한 것은 어쩌면 자명한 이치라고 하겠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하여 사는 것이다. 자아완성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자아실현은 반드시 행복이 수반되어야 한다. 불행한 자아실현은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가? 돈을 많이 벌면? 명예를 가지면? 지식을 많이 쌓으면? 권력을 손에 거머쥐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것들이 행복의 잣대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이 가져야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따라서 돈도 명예도 지식도 권력도 얼마만큼 가져야 행복해 질 수 있다는 논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무 데도 없다.

이것들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공기와 물처럼 필수적으로 적당히만 가지면 되는 것이지, 적당량 이상으로 많이 있을 필요는 없다. 권력을 제일 많이 가진 최고의 통치자야만 행복하다면 서민은 다 불행한가? 개인이 하루에 섭취할 수 있는 물의 량이 약 2리터 정도라면 매일 매일 그 정도의 물만 있으면 만족한 것이지 굳이 호수나 땜에 저장된 만큼의 물은 필요치 않은 것이다. 돈, 명예, 지식, 권력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되는 필요조건인 것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돈을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 같아 억만장자가 되었다면 100% 행복할까? 아마도 관리하기에 복잡하고 피곤할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돈, 명예, 지식, 권력 같은 것은 아주 없으면 사는데 매우 불편하기에 필요한 만큼 적당히만 있으면 되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의 열쇠인 충분조건은 무엇이란 말인가? 대개의 가문 있고 유식한 집에 걸어 놓은 족자를 볼 것 같으면 “재물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목숨)을 잃은 것은 다 잃은 것이다”라고 쓰여져 있다.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요지는 돈의 가치보다는 명예가 명예의 가치보다는 건강(목숨)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는 말이다. 그런데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이 있다”는 데 그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에는 국경도 철망도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기차가 달려오는 철길 위에서 놀고 있는 어린 자식을 보고 구경만 하고 있을 부모가 없듯이 사랑은 최고의 가치라는데 이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런 최고의 가치인 사랑을 완성 시켰을 때 인간은 행복한 것이다.

사랑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부모의 사랑. 둘째 자녀의 사랑. 셋째 형제자매의 사랑. 넷째 부부의 사랑인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부모의 사랑이 없으면 불행하고, 노년기에는 자녀의 사랑이 없으면 불행하며, 대소사에 형제의 사랑이 없으면 외로우며, 부부의 사랑이 없으면 평생 불행하다. 그래서 이 네 종류의 사랑 중에서 어느 하나만이라도 완성하지 못하면 절대로 100%의 행복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랑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둘째, 셋째까지의 사랑은 여럿이 주고받는 다자간에 나누는 열린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을 영어로 표현하면 Agape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네 번째의 부부의 사랑은 아주 중요하다. 부부의 사랑은 부부 자신만이 독자적으로 주고받는 1:1적이고 타인과 나눠서는 안 되는 보수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랑을 영어로 표현하면 Erose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첫 번째에서 세 번째까지의 사랑은 나눌수록 좋고, 네 번째 사랑은 지킬수록 좋은 것이다. 부부의 사랑 가운데 필수적으로 첨가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성 관계이다. 성 관계가 빠진 부부사랑은 있을 수 없다. 성 관계가 안되면 자녀를 낳을 수 없으니 부모가 될 수 없고 가정 자체가 형성이 되지 않는다.

이 네 가지 사랑을 묶으면 가정이 되는데, 이 네 가지의 사랑 완성은 곧 가정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정의 완성만이 행복의 열쇠가 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 性을 동양에서는 心+生=性으로 표시하였다. 마음의 전부요, 몸의 전부가 합치된 아주 귀중한 가치로 보고 있다. 性이란 남자와 여자 가운데 성립되는 것이며, 男子와 女子가 만나면 좋은 것이다. 男女가 합치된 字가 好(좋을 호)가 아닌가? 男女가 만났는데도 좋지 않다면 그것은 크게 문제 있는 것이다. 이것을 영어로 표시하면 Like인데 이런 관계에 머무는 것이 우정이라 하고, 이것이 발전하면 Love가 되는데 이 시기를 애정 관계라 해야 할 것이다.

청소년이나 기성세대까지도 자제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선의 부분이 바로 이곳인 것이다. 이 선을 넘게 되면 생명이 태어나고 혈통이 이어지는 것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을 하였다면 아름답고 고귀한 생명과 혈통이 태어날 것인데, 불륜의 선을 넘어 사랑하게 되면 불륜의 생명과 혈통이 태어나게 되어 청소년기에는 책임질 수 없는 엄청난 과오가 되어 사생아 양산과 다량의 미혼모가 배출되므로 사회적으로 혼란을 야기 시키고 기성세대는 가정이 파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칫하면 넘어 가기 쉬운 이 선 앞에서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파멸이 오니 “자제하고 인내하라”라고 정신 차리도록 외치는 것이 우리의 책무임을 통감해야 한다. 특정종교의 교리를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교육할 수 없으므로 창조원리와 타락론을 물 한 동이에 멀겋고 흐리게 타서 퍼 먹이는 인류에게 타락의 한을 푸는 순결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들이여/ 선을 넘지 마라/ 때가 이를 때까지 고이 간직하고 순결을 지키며 기다려라/ 그러면 사랑이 완성되고 자아가 실현되고 탐스럽고 먹음직한 행복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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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박운세님의 댓글

마지막 때에 화두는 사랑 이리니
苦海 세상에서 꾸정물(거짓사랑)은
가라앉고 맑은물(참사랑) 은 淸海 섭리
속에 영원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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