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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수기] 분류

용안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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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휘 / 광주 교구장

외길 인생! 뜻 대한 나의 삶을 감히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무던히 노력해온 것만은 틀림없는가 보다.

내 나이 49세 되던 해(1998년도 입교 30돌) 돌이켜보니 아홉 고개를 넘으려고 그랬던지 가장 큰 시련과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 IMF가 터져 금 모으기가 시작될 무렵 지난 1997년 12월 말 YEMEN 국가 메시아인 나는 신년(참하나님의 날)을 임지에서 맞이하고픈 충동에 중동본부가 있는 터키(이스탄불)로 갔다.


비자문제로 약 3개월 이스탄불에서 체류하다가 3월 1일 그렇게도 그리던 YEMEN의 수도 사나 (SANA)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는데 1년 전 회교원리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추방되다시피 귀국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더욱 감회가 새로웠다. 인도양과 홍해로 둘러싸인 중동의 맨 끝 옛 시바왕국인 아름다운 반도국가 YEMEN은 그저 사랑스러울 뿐이었다.


생에 최고의 정성을 들여 승리의 기반을 닦아보려고 내간에는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 선교본부로부터 9월 1일부터 제 1차 국가메시아 40일 판타날 낚시수련회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8월 중순 귀국, 28일 수련생 2진에 합류하여 파라과이 수도 아센숀행 KAL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다음날 29일 오후 6시경 아센숀 공항에 도착하여 짐을 찾아 한 손에는 큰 가방을, 또 한 손으로는 낚시가방을 들고, 어깨에는 귀중품(여권, 수련회비가 든 지갑, 카메라 등...)이 들어있는 소형가방을 매고 맨 나중 공항 대합실로 나오자 3∼4명의 소년들이 가방을 들어다 주겠다고 에워싸는 것이 아닌가... 뿌리치다시피 사양을 하고 버스에 짐을 싣고 출발하려는데 어깨에 있어야 할 소형 가방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공항 불량소년들의 소행이 분명하다싶어 쫓아가 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시간에 쫓긴 일행은 모두 안타까워하면서도 참부모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자르딘 수련원(브라질) 까지 가야만 되었기에 서둘러 출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타국에서 초행길에 여권을 분실한 채 수중에는 돈 한 푼 없고 보니 얼마나 허탈하고 막연했던지 그저 답답하기만 했다. 그때 파라과이 해와(일본) 국가 메시아인 오다 선생이 참담한 상황을 목격하고 정말 친절하고도 헌신적으로 도와 주셨는데, 사람의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이라 생각된다.

4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우연히 광주에 오신 오다 선생을 우리 집에 초대하여 모실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당시 당황해하던 나를 파라과이 선교본부로 안내하고 다음날 30일 관할 경찰서장의 여권 분실 확인서를 발부 받아 주 파라과이 한국 대사관으로 가서 여권을 재 발급하여 겨우 오후 7시경에야 자르딘 수련소로 가기 위해 오다 선생이 특별히 준비한 고급 승용차에 승차하게 되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잠시 후 깊은 잠에 취해버렸는데 약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몸이 진동을 하며 “쿵 콰다당..!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대형 트럭을 추월하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승용차와 충돌사고가 일어난 것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속도로 난간에 쳐 박힌 차는 반파되 쓸모 없이 되어 버렸지만 하나님이 보우하사 다행히 인명피해가 없는 것을 우리는 서로 위로하고 감사하면서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고처리는 운전하던 청년식구에게 일임한 후 지나가던 트럭을 잡아타고 다음날 새벽 브라질 국경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자르딘 이상가정 수련원에 도착하고 보니 오후 1시경이 되었다. 마침 오찬을 마치신 부모님께서는 공관 앞 식탁에서 대륙회장들에게 말씀을 하고 계셨다.


몰골이 말이 아닌 나는 멀리서나마 부모님의 옆모습을 향하여 경배를 드리고 일어서서 다시 바라보는 순간 부모님께서 고개를 돌려 잠시 나를 주시하시더니 “국가 메시아지? 고생 많았겠구만... 배고플 텐데 안으로 들어가 무엇을 좀 먹지” 진지하면서도 인자하신 모습으로 나를 위로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 감동이 된 나는 어느 새 두 눈에 고인 눈물이 범벅이 되어 “아버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그 동안 철없던 내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평소에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이따금, 나는 오매불망 참부모님 밖에 모르는데 부모님께서는 나 같은 존재를 기억이나 해 주실까 하는 생각이 문뜩 들곤 하였었다. 그러나 내가 기뻐할 때나 슬퍼할 때나 시련과 고통, 불신의 늪에 빠져있을 때도 언제나 불꽃같은 심정으로 함께 동행하시며 위로와 권면으로 채찍질해주신 참사랑의 부모님을 30년이 지난 이제야 알아 뵙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불효 불충한 모습인가!


남미 특유의 찌는 듯한 뙤약볕 아래서 낚시 섭리의 의의와 묘미를 깨달아갈 무렵 판다날 낚시수련회가 종료되기 며칠 전 올림포 수련원 공관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만찬을 같이 할 수 있는 기회의 은사를 입게 되었다.(당시 5명씩 돌아가면서 식사를 하게 되었음) 만찬 후 시간가는 줄 모르시고 우리들의 보고를 들어주시던 부모님께서 “이제 그만 들어가 볼까?” 하시며 방문을 잡으시려는 찰나 나는 조금 큰 소리로 “아버님, 감사합니다” 하고 직접 드리고 싶었던 인사를 올리니 기다리셨다는 듯 “그래 ” 하고 눈을 지그시 감으신 채 자비로우신 용안의 미소로 응답해 주셨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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