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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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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1987’ / 문용대(수필가)

 

요즘 극장가에는 지난해 12월 27일 개봉한 ‘1987’이라는 영화가 지난 7일 이후 ‘신과 함께-죄와 벌’을 누르고 누적 관객수 1위를 달리며 5백만 명에 가깝다고 한다. 흥행 속도로 보아 곧 1,000만 명을 넘길 것 같다.

1987이라는 영화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을 적에 내 머릿속은 악몽이 살아났다. 그렇지만 내가 겪은 1987과 비교해 보고 싶고 그 당시 상황을 글로 남기고 싶은 생각에 혼자 영화관을 찾았다.


    1. 내가 일한 A사


나는 1987년 당시 경남 창원 어느 회사(이하 A사라 함)에서 중간 관리자로 일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A사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1968년 법인화한 A사는 경기도 구리에서 경남 창원으로 공단 초기인 1974년에 이전을 하였다. 1981년 비상장 A사는 상장 D사와 합병했다. 관리본부와 4개 공장 및 자체 기술개발연구소를 두고 5,400여 명의 종업원이 일하는 곳이다. 그 중 1,200여 명이 병역특례요원이다. 특례요원은 A사의 방위산업분야와 정부기간산업분야 그리고 연구 분야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병역을 면제받는다. 선진 독일, 일본 등 외국인 기술요원도 50여 명이다. 정부로부터 정밀기술도 1급 공장으로 지정받아 4개 공장에서 공작기계와 방위산업제품, 자동차부품을 생산하면서 별도의 열처리 및 착색공장, 단조공장까지를 둔 종합금속제품 제조업체이다.

*공작기계는 선반, 밀링머신, 연삭기 등 범용 공작기계는 물론, 국내 최초로 컴퓨터 수치제어장치(CNC)의 국산화개발에 성공하여 NC머시닝센터, NC선반 등을 양산했으며, 역시 국내 최초로 FMS(부품관리 및 가공 자동화시스템)라인을 개발, 운용했다.

*1973년에 지정된 방위산업분야는 20㎜발칸포를 비롯해 많은 방산제품을 생산했다.

*국내 최대 자동차부품 제조업체로서 완성차업체가 부품을 생산하지 않을 때 코리아스파이서라는 회사와 함께 대부분의 완성차업체 부품생산을 담당했다.


    2. 1987년 당시 사회 분위기


요즘 상영되고 있는 영화 1987에 나오는 것처럼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공안당국의 조사를 받던 중 사망했고, 이로 인해 전국 대학가에서 반정부시위가 벌어졌다. 그 후 이른바 ‘4.13조치’(호헌선언)가 발표된 뒤 대학가에서 일기 시작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6월 초에는 연세대에서 시위를 하던 이한열군이 최루탄 파편에 맞아 결국 사망했다. 드디어 6.29선언으로 국민투표를 거쳐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이 확정되었지만 시위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민주화 욕구가 사회각계에 터지면서 노사분규도 전국으로 번졌다. 노사대립은 농성과 파업, 기물파괴와 방화로 격렬하게 확산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월에는 경남 거제 대우조선 근로자 이석규군이 사망하면서 시위는 더욱 과격해졌다. 12월 대선과 이듬해 개최된 88 서울올림픽으로 분규가 잠잠해진 듯했으나 1989년 3월 문익환목사와 6월 임수경의 방북으로 인하여 사회 분위기는 혼미 상태가 계속되었다.

문목사가 방북했다가 돌아올 때 매고 온 빨간 머플러는 노사분규 때 노조원 전체가 매고 시위를 하기도 했다.


    3. 1980년대의 창원공단 A사 노사분규


1987이라는 영화에는 박종철군이 조사를 받다가 고문에 의해 사망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왜 조사를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1979년 10.26 사태 후 1980년대의 사회 분위기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먼저 알려져야만 공평하고 객관적일 것이다.

A사는 10.26 사태로 어수선하던 그 때부터 이미 많은 분규를 겪었다. 대규모 사업장이 많은 창원, 마산, 부산, 울산, 거제 등지에서는 크고 작은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았다. 임금 등 근로조건 향상을 위한 투쟁이라기보다 학생들까지 합세한 정치투쟁이었다. 창원 마산 지역 뿐 아니라 전국이 그랬다. 그 중에도 A사는 우리나라 노사관계 역사의 중심이었다.

A사가 1981년 D사와 합병하기 전 D사에는 우리나라 최초 위장취업자 M이라는 이가 있었다. 그는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영등포에서 직업훈련과정을 마치고 선반공으로 입사해 노조 결성에 관여했고 그 후 A사 노동운동을 좌지우지했다. 노조 사무장으로 일하다가 1985년 위장취업 사실이 드러난 뒤 노조위원장 자리에 오르고 분규는 끊임없이 계속됐다. A사에서 방위산업체 최초로 파업이 시작됐다. M이 불법파업 주동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부산의 N이라는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고, 후에 해고자 복직을 위한 변호는 M이라는 변호사가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 노조위원장 M이 4.6배판 크기의 ‘러시아혁명사’라는 책을 보란 듯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것이 생각난다.

그들 중 누가 쓴 720쪽 짜리 ‘끝나지 않은 저항’(1985~2015년 사이 A사 노조운동의 30년사)이라는 책에서도 “A사 노조는 민주노조운동의 뿌리다, 방위산업체 최초로 파업을 벌였다,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를 탄생시켰다, 1985년 임금인상투쟁에서 파업 농성을 전개해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인상투쟁과 구로동맹 파업과 더불어 9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전주곡으로 평가된다.”고 적었다.


    4. A사 노사분규 양상


노사분규란 임금 등 근로조건을 향상하려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의견의 불일치로 인하여 생기는 갈등관계인 것이 상식이다. 학생들이 민주화를 내세우며 정치투쟁 하는 것과는 직접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없다.

A사는 방위산업체이며 연구실을 갖춘 정부 주요 기간산업체이다. 병역의무의 특혜를 받고 군대생활을 대신하는 인원이 1,200여 명이다. 현행법상 방위산업체에서의 파업은 불법이다. 특히 군대생활을 대신하는 병역특례자의 파업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불법이다. 그런데 병역특례자 등 비교적 순진하고 젊은 20~30대 연령의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분규에 가담하게 된다. 그들은 하지도 않은 말,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 사실을 왜곡, 거짓 선동으로 분규에 가담하게 하는 것을 수도 없이 보았다. 나는 그런 일로 몇 차례 그들 대자보에 올랐다.

그들 집행부는 현수막, 리본, 머리띠 등에 적힌 구호 문구, 바탕색이나 글자색, 민첩한 행동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누군가의 지령을 받고 있음이 확실해 보였다. 공안당국의 지침대로 따라야하는 회사는 속수무책일 뿐 노조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내가 직접 전국 기계공고, 공고, 직업훈련원을 다니며 선발해서 기숙사에 입주시키고 일정기간 교육을 거쳐 현업부서에 배치된 그들이, 내가 일하는 본관 사무실을 휘젓고 다니며 쓰레기통을 발로 차고, 내 책상 유리를 우산으로 깨부수는 일을 당할 때는 비애를 느끼기까지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는 과격해져 회사 정문과 후문을 노동자들에게 뺏겨 나갈 수도, 들어올 수도 없었다. 그들은 본관을 점거한 채 관리직 근로자들과 충돌하여 많은 인원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는 처참한 일이 수차례 벌어졌다. 문 밖에는 경찰과 노동자들이 대치하면서 화염병과 최루탄 가스가 난무했다. 차들이 달려야할 창원대로에는 불붙은 폐유 드럼통이 수도 없이 뒹굴며 경찰과 노동자들이 전진과 후퇴를 거듭하는 전쟁을 수년간 치렀다.

관리직 사원인 것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처럼 나와 우리는 그렇게 노동자들과의 전쟁터에서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나는 이십년 가까이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도 하던 그 일터를 미련도 남기지 않고 떠났다.

1987이라는 영화를 본 사람 대다수는 그 시대 경찰 등 공안당국, 그와 싸운 젊은 대학생, 기자들, 그곳에 가담한 시민들만을 떠 올리겠지만 나의 1987은 그랬다. 나는 A사 노사분규 현장에 갇혀 그 일을 겪고 있는 듯한 악몽 속에서 1987 영화를 관람하였다.


    5. 그 후의 A사


A사의 계속되는 노사분규로 제때 부품을 공급받지 못하던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업체는 부품을 자체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현대모비스가 그런 회사이다.

A사는 내가 떠나온 뒤 1998년 부도처리 되어 2003년 결국 타 업체로 넘어가 회사명도 바뀌었다. 5천4백여 명이던 종업원이 1천명에도 훨씬 못 미친다고 하니 4천 4백여 명 이상이 일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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