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면 생각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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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11월이면 잊히지 않는 일 두 가지가 있다. 유서 깊은 수택리 통일산업에서의 일이다. 1969년 11월 1일은 통일산업 기숙사가 생긴 날이며, 같은 날 공장 내에 통일인쇄소가 생긴 날이다.
통일산업은 1966년 4월 당시 주소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수택리 505번지에 공장을 신축하고 청파동에 있던 예화산탄공기총 시설을 이전, 5월 통일기계제작소로 출발하여 1968년 12월 통일산업주식회사로 법인이 설립되었다. 나는 1969년 2월에 입사했다. 공장 건물과 붙어 있는 공동 합숙소(내무반이라 부름) 생활을 끝내고 훗날 중앙수련소가 된 건물 위쪽에 기숙사를 지어 역사적인 입주를 한 날이 1969년 그해 11월 1일이다.
내무반은 1층과 2층으로 돼 있는데 1층은 가운데 복도, 좌우 마루 침상, 양 벽 쪽에 사물함, 마루 밑에 신발을 놓는 등 군인 내무반과 흡사하다. 2층은 전체가 마루로 돼 있다. 아래층에서 잠을 자고 나면 위층에서 먼지가 떨어져 얼굴에 수북하다. 이부자리 색깔도 국방색이다. 그러니 내무반이라는 이름이 딱 맞다. 아마 군대 내무반을 그대로 벤치마킹했을 것이다.
햇볕도 들지 않고 공기순환도 안 되는 곳에, 이불 세탁을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니 세탁하는 것을 본 적이 없고, 밖에서 터는 것만도 부지런한 사람이나 한다. 그러다 보니 벼룩과 이가 득실거리는, 피난민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오죽하면 여러 명이 법정전염병인 장티 부스에 걸려 공장과 분리된 당시 발전실과 이발소 사이에 환자를 격리시켰다. 그러니 1969년 11월 1일, 기숙사 입주는 그야말로 역사적이라 하기에 충분하다.
누구나 머릿속에 오래토록 기억되는 일이 있다. 청파동에서부터 일찍 온 사람은 3년 6개월 만에, 나는 9개월 만에 내무반 생활을 마감했다.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작업시간이 아침 6시부터 밤 10시 반까지였다. 저녁밥을 먹고 일을 하면 왜 그렇게 시간이 안 가는지, 작업 종료 벨소리만 기다려진다. 산탄공기총 제작용 원자재 환봉이나 총신용 자재를 선반 기계에 장착하여 가공하기 위해서는 끝 모서리를 제거해야 하는 첫 공정이 있다. 손으로 탁상용 그라인더에 대고 끝 모서리를 제거하는 소리가 작업 종료 벨 소리와 흡사하여 여러 번 일손을 놓았다가 다시 일을 계속했던 것이 생각난다. 1972년까지 그렇게 긴 시간 일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식사시간 벨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항상 다름질 쳐 공장아래 식당으로 가서 가장 먼저 밥을 먹던 신동만 사우가 눈에 선하다. 우리와 함께 만나는 친구들과는 달리 오랫동안 보지 못한 조승용(일명 용해), 이세기, 이경찬, 옥덕호 등 친구들과 양정옥, 김순희 자매 그리고 양재실 한명자 누나와 김만순, 고순자 누나도 그립다. 식당 시멘트 블록 옆으로 배식 순서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 선 우리에게 배식구 앞에 앉아 식권을 받던 처녀식구와 훗날 그 자리에 계시던 조권사님도 그립다. 날씨가 추워지니 밥을 굶어 장갑을 사 쓰던 일도 생각난다. 차가운 기계와 쇳덩어리 일을 도저히 맨손으로 할 수가 없으니 밥을 굶고라도 장갑을 사서 끼고 일을 할 수밖에…….
같은 1969년 11월 1일에 잊히지 않는 일 한 가지가 더 있다. 공장 내에 통일인쇄소가 생긴 날이다. 나는 같은 해 2월 통일산업에 입사하였다. 그 이전 을지로 조그마한 인쇄소에서 일한 적이 있다. 오프셋 인쇄를 하는 곳으로 자동 소형 기계와 4절 인쇄기, 종이 절단기 등을 갖춘 곳이다. 그 경력 때문에 1969년 11월 1일부 공장 내에 생긴 통일인쇄소로 가서 일하게 되었다. 인쇄소장으로 문승용 당시 통일산업 공장장께서 겸직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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