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명을 살린 황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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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명을 살린 황새 / 문용대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위해 여러 곳을 두루 다니며 보고, 듣고, 느끼고 즐기기를 자주 하였다. 주위에 가까이 지내는 일곱 가정 열네 명은 1년에 두 번 이상은 육지, 바다 할 것 없이 많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좋은 일이나 궂은일을 당할 때면 친 형제처럼 가까이 그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워낙 여행을 많이 하다 보니 우리가 전문가가 되어 상품을 개발해 관광객을 모집하고 버스 한 대 또는 두 대를 동원하기도 한다. 인원이 잘 모여지는 것은 친구 권병곤에 의해 꼼꼼히 짜여 지는 프로그램과 완벽한 준비, 그리고 무엇보다 싼 비용 때문이다. 쓰이는 돈 액수가 얼마이던지 이를 모두 공개하고 비용 부담에서 제외되는 인원 없이 동일하게 분담한다. 관광버스 기사 역시 이런 저런 모임에서 십 수년을 함께 해온 단골이다 보니 다른 관광회사를 이용하는 것보다 싸게 이용할 수 있다.
경기도나 충청도는 물론이고 강원도 해변으로, 전라도 홍도와 흑산도로, 거문도와 백도로, 경상도 고성과 통영, 거제 그리고 안동과 예천으로, 울릉도로 전국을 누비고 다녔다.
2007년 여름에도 일곱 가정 열네 명은 남쪽 바다 돌산 섬이 보이는 내 고향 여수시 화양면 바다로 갔다.
그곳은 내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곳에서 가까운 곳이다. 내 기억 속 최초의 일이다. 일곱 살 때로 기억된다. 빗물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쌓아 놓은 둑의 수문을 통해야 한다. 민물과 바닷물이 합쳐지는 수문 아래에서 형들과 또래 아이들이 신나게 수영을 한다. 나도 모르게 그들처럼 그곳에 들어갔다. 그곳이 얼마나 깊은지, 물결이 센지 어떤지를 생각할 수 있는 나이 때가 아니다.
그들은 바로 그 옆 바닷가에 살고 있으며 부모들도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어부의 아들들이다. 그들의 살갗 색깔만 봐도 나와는 다르다. 늘 바다에서 사는 아이들이라 얼굴은 물론 온 몸이 까맣게 그슬려 있다. 나의 집은 그곳에서 1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고 나는 전형적인 농부의 아들이다.
물속에서 바닥에 발을 세워보려 했다. 두 팔을 올리고 쑥 들어가도 발에 땅이 닿지를 않는다. 그 때부터 겁에 질려 물속에서 허둥대기 시작한다. 그러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나를 꺼내 주는 사람이 없다. 물을 마셔가면서도 죽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나도 모르게 얕은 곳으로 밀려 나오게 됐다. 나중 알고 보니 수문 아래 그곳의 깊이는 어른 키 두 배 이상 되는 곳이란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수영을 할 수가 있게 되어 지금까지 맥주병은 아니다. 어린 일곱 살 나이에 그곳에서 물에 빠져 죽었다면 이미 나는 없는 나다.
오늘 다시 찾은 이곳 바다는 내가 어렸을 때 여름이면 늘 살다시피 했던 곳이다. 소고삐를 소목에다 칭칭 감아 풀 많은 산에다 쫓아 놓고 친구들과 해지는 줄 모르고 텀벙거리던 곳이라 추억이 새롭다. 그 때 위험했던 일이 또 생각난다.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으면 그 배 밑을 가로질러 헤엄쳐 반대편으로 나오기를 반복했다. 어느 정도 깊이까지만 헤엄쳐 들어가 배를 통과해서 물 밖으로 나와야 된다. 그런데 때로는 배를 통과했으리라 생각하고 올라오면 너무 깊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바람에 부력으로 인하여 배 밑바닥에 다리부터 온 몸이 딱 달라붙는다. 그럴 때는 배 밑을 살살 더듬으며 기어 올라와야 된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철없는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숨이 찰 때면 물을 먹기 십상이고 심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다시 여름휴가 여행이야기이다. 배를 빌려 바다로 갔는데 나의 매제가 또 다른 배를 타고 뒤따라왔다. 팔 길이만 한 숭어를 산 채로 메고 칼잡이 한 사람과 같이 왔다. 숭어 한 마리로 열 네 명이 회를 떠 실컷 먹고 다음날 아침 매운탕거리까지 남았다. 그 회 생각을 하니 지금도 입맛이 돈다. 어디를 가나 입이 즐거워야 모든 것이 즐겁다. ‘음식’ 하면 전라도, 그 중에도 청정 한려수도인 여수에는 회뿐만 아니라 어느 식당으로 가든지 ‘맛 집’들이다. 장어구이, 장어탕, 하모, 전어구이, 전어 회, 새조개, 피조개, 게장 거기다 돌산 갓김치까지.
밤에는 지도에도 없는 무인도, 황새가 많기로 이름난 화양면 나진리 앞 대섬이라는 곳에 텐트를 치고 자기로 했다.
일본 사람들이 우리 땅 울릉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하면서 부르는 다케시마와 똑 같은 한자의 대섬(竹島)이다. 이곳은 대나무가 있지만, 대나무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마디마디가 이어져 있는 대나무의 생김새처럼 육지에 가까이 있다고 해서 대섬이다. ‘배를 선착장에 대다’에서처럼 육지 가까이 대져있는 섬이란 뜻으로 많은 섬의 이름이 대섬이라고 한다. 여수 오동도의 옛 이름도 대섬, 돌산읍 평사리 앞의 섬도 대섬이었다고 전해온다.
피곤한 탓에 텐트 속에서 깊은 잠에 빠졌던 우리들을 옆 텐트에 잠자던 홍 씨 큰형님이 다급히 깨운다. 시간은 새벽 한 시. 잠을 깨니 내 다리에는 바닷물이 철석거리고 황새 떼는 ‘끼이억!’, ‘끼이억!’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연장자인 홍 씨 큰형님이 잠을 깼단다. 황새가 영리해서 우리를 깨워 살렸다며 모두 황새들에게 고마워했다. 황새가 떠들어대니 잠을 깨기는 했지만, 영리해서 소리를 질러 깨웠다기보다 밀려들어오는 물과 함께 그들의 먹이인 물고기도 떠밀려왔기 때문에 그걸 잡아먹느라고 소리를 질렀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황새들 때문에 잠을 깬 것은 사실이다. 그 황새 떼가 우리 열네 명을 살렸다.
밀물 때를 생각해서 높은 위치라 생각하고 텐트를 쳤다 생각되는데 같이 갔던 최순동형의 말에 의하면, 텐트 쳤던 곳보다 위에가 물들어왔던 자국이 있었다 한다. 물자국보다 훨씬 높은 곳에 텐트를 쳐야할 것이었는데 말이다. 하마터면 수장(?)이 될 뻔했던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는다.
10년 전 일이니까 그 때 이미 칠순을 넘긴 분, 육십 대 그리고 육십을 곧 맞이하게 되는 나이 때니 젊은 기분 때문에 그러고 다녔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자칫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것이 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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