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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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역사탐방
- 한 해의 절기상 대한도 지나고 민속 설날을 앞둔 따스한 봄 환절기인 오늘, 열린산악회
- 경복궁 역사탐방에 사상 최대 5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영욕이 교차되었던 역사의 장場, 경복궁은『시경』
주아(周雅)에 나오는 “~~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
(君子萬年 介爾景福).”에서 두 자를 따온 명칭이다.
경복궁은 이성계가 왕이 되어 곧 도읍을 옮기기로 하고,
즉위 3년째인 1394년에 궁의 창건을 시작하였으며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정문인데 "왕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 는
의미로 광화문(光化門)이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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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편액(扁額)은 조선 후기 경복궁 중건 시 훈련대장(訓鍊大將)으로 영건도감 제조(營建都監 提調)를 겸하여 서사관(書寫官)으로 광화문 편액을 쓴 임태영 장군의 서체를 원형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조선왕조는 외국 열강들의 세력다툼으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895년에는 궁 안에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고종은 이어(移御)한 지 27년째인 1896년에 러시아공관으로 거처를 옮겨(아관파천- 궁녀로 변복하고 몰래 빠져나감), 경복궁은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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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타령>
에헤, 남문을 열고 파루를 치니 계명산천이 밝아온다
<후렴>에헤 에헤 어랴 얼럴럴거리고 방아로다
을축 사월 갑자일에 경북궁을 이룩일세
우리나라 좋은 나무는 경복궁중건에 다 들어간다
도편수의 거동을 봐라 먹통을 들구선 갈팡질팡한다
조선 여덟도 유명탄 돌은 경북궁 짓는데 주춧돌감이로다
근정전을 드높게 짓고 만조 백관이 조하를 드리네
--경복궁타령(景福宮打令)은 경기민요의 일종으로서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무렵에 생긴 민요이며, 그에 대한 민초들의 원망을 풍자적으로 나타낸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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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관람은 보통 경복궁 9경(1.근정전 2.경회루 3.향원정 4.교태전/강녕전 5.자선덩/ 비현각 6.자경전 7.소주방(燒廚房) 8. 건청궁 9.태원전)을 보는 것이다.
- 회를 거듭할 수록 참여율이 높은 열린산악회에서 정담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고 힐링을 통하여 건강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같이 영원세세토록 우리 모임이 지속되기를 기원하면서
열린산악회를 열정페이로 진행.
수고하신 김태순 산악 팀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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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시(新年 詩)
(조병화·시인, 192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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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 뜨고
바람 부는
맑은 겨울 찬 하늘
그 무한을 우러러보며
서 있는
대지의 나무들처럼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꿈으로 가득하여라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오는
영원한 일월(日月)의 영원한
이 회전 속에서
너와 나, 우리는
약속된 여로를 동행하는
유한한 생명
오는 새해는
너와 나, 우리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더욱더
가까이 이어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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