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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세한도제문 이해(阮堂 歲寒圖 題文 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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歲寒圖 題文 - 金正喜


去年晩學大雲二書寄來하고 今年又以藕耕文編寄來하니 此皆非世之常有

그대가 지난해(1843, 헌종9)에 계복(桂馥1836-1805 )의 만학집(晩學集)과 운경(惲敬 1757-1817 )의 대운산방문고(大雲山房文藁) 두 책을 부쳐주었고, 올해 또 하장령(賀長齡 17851848 )이 편찬한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120권을 보내주니 이는 모두 세상에 흔한 일이 아니다.

 

購之千萬里之遠하여 積有年而得之非一時之事也且世之滔滔惟權利之是趨한데 爲之費心費力如此로되 而不以歸之權利하고 乃歸之海外蕉萃枯槁之人如世之趨權利者

천만리 먼 곳에서 사온 것이고 여러 해에 걸쳐서 얻은 것이니, 일시에 가능했던 일도 아니었다.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아 향하는데 그런 풍조 속에서 서책을 구하는 일에 마음을 쓰고 힘들이기를 그같이 하고서도 그대의 이권을 보살펴줄 사람에게 보내지 않고, 바다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잇속을 좇듯이 하였도다.

 

太史公云 以權利合者權利盡而交疏라한대 君亦世之滔滔中一人이어늘 其有超然自拔於滔滔權利之外하니 不以權利視我耶太史公之言非耶

태사공(사마천)이 말하기를 권세와 이득을 바라고 영합한 자들은 그것이 다하면 교제 또한 멀어진다.”고 하였다. 그대 또한 세상의 도도한 흐름 속에 사는 한 사람으로 세상 풍조 밖으로 초연히 벗어났으니 권리로써 나를 대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태사공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

 

孔子曰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라하니 松柏是貫四時而不凋者歲寒以前一松柏也歲寒以後一松柏也어늘 聖人特稱之於歲寒之後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한겨울 추운 날씨를 견디어낸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하셨다(子罕 27). 소나무, 잣나무는 본래 사계절 없이 잎이 지지 않는 것이다. 추운 계절이 오기 전에도 같은 송백이요, 추위가 닥친 후에도 여전히 같은 송백이거늘 그런데도 성인(공자)께서는 굳이 추위가 닥친 뒤에 그것을 가리켜 말씀하셨다.

 

今君之於我由前而無加焉하고 由後而無損焉이라 然由前之君無可稱이요 由後之君亦可見稱於聖人也耶聖人之特稱非徒爲後凋之貞操勁節而已亦有所感發於歲寒之時者也

이제 그대가 나를 대함에 그 전이라고 더 잘한 것도 아니고 그 후라고 전만큼 못한 일도 없었다. 그러나 예전의 그대에 대해서는 따로 일컬을 것이 없지만, 그 후에 그대가 보여준 태도는 역시 성인에게서도 일컬음을 받을 만한 것이 아닌가? 성인이 특히 추운 계절의 송백을 말씀하신 것은 다만 시들지 않는 나무의 굳센 정절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역시 추운 계절이라는 그 시절에 대하여 따로 마음에 느끼신 점이 있었던 것이다.

 

嗚呼西京淳厚之世以汲鄭之賢으로도 賓客與之盛衰下邽榜門하여는 迫切之極矣悲夫阮堂老人하노라.

아아! 전한(前漢)시대와 같이 풍속이 아름다웠던 시절에도 급암(汲黯)과 정당시(鄭當時)처럼 어질던 사람조차 그들의 형편에 따라 빈객(賓客)이 모였다가는 흩어지곤 하였다. 하물며 하규현(下邽縣)의 적공(翟公)이 대문에 써 붙였다는 글씨 같은 것은 세상인심의 박절함이 극에 다다른 것이리라. 슬프다 완당 노인이 쓰노라.

   

주  [註]  

1)  晩學: 桂馥(계복)晩學集

2) 大雲: 惲敬(휘경)大雲山房文藁(대운산방문고)

3) 藕耕文編(우경문편): 藕耕(우경)皇朝經世文編(황조경세문고). 120

4) 下邽榜門 :  史記 汲鄭傳  太史公曰 夫以汲鄭之賢으로도 有勢則賓客十倍하고 無勢則否하니 況衆人乎下邽翟公有言한데 始翟公爲廷尉賓客闐門하고 及廢門外可設雀羅이라 翟公復爲廷尉하여 賓客欲往이어늘 翟公乃大署其門曰 一死一生 乃知交情하고 一貧一富 乃知交態하며 一貴一賤 交情乃見이라 汲鄭亦云 悲夫

   태사공이 말하기를 대저 급암과 정당시의 현신으로도 권세를 누릴 때에는 빈객들이 열배로 많았고, 권세가 없을 때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물며 보통사람들에겐 어떠하겠는가? 하규 현에 적공이 한말이 있는데 처음에 적공이 정위가 되었을 때 빈객들이 문 앞에 가득했으나 그만둠에 미쳐서는 문밖에 참새그물을 칠 형편이었다. 적공이 정위에 다시 복직됨에 빈객들이 다시 찾아오고자하거늘 적공이 이내 대문에 크게 써 붙이기를

  “한 번 죽었다가 한 번 살아옴에 비로소 교제하는 마음을

   알았고, 한 번 가난하였다가 한 번 부유해짐에 비로소 교제하는 태도를 알았으며, 한 번 귀하였다가 한 번 천해짐에 사귀는 마음이 이내 드러나도다.”라고 하였는데

  급암과 정당시를 다시 말하자니 슬프도다  

5) 太史公: 司馬遷(사마천), *西京: 前漢의 수도인 長安

6) 汲黯(급암:閔思平): 漢武帝때의 忠諫(충간)을 잘하던 신하

7) 鄭當時: 漢武帝 때 의 의로운 신하

8) 下邽(하규): 陜西省(섬서성)의 한

9) 翟公(적공): 漢 武帝때의 관리

 

생애[生涯]

 

   조선조의 훈척 가문(勳戚家門)의 하나인 경주 김문(慶州金門)에서 병조판서노경(魯敬)과 기계 유씨(杞溪兪氏)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노영(魯永) 앞으로 출계(出系: 양자로 들어가서 그 집의 대를 이음)하였다. 그의 가문은 안팎이 종척(宗戚: 왕의 종친과 외척을 아울러 이르던 말)으로 그가 문과에 급제하자 조정에서 축하를 할 정도로 권세가 있었다.

 

    1819(순조 19) 문과에 급제하여 암행어사·예조 참의·설서·검교·대교·시강원 보덕을 지냈다. 1830년 생부 노경이 윤상도(尹商度)의 옥사에 배후 조종 혐의로 고금도(古今島)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순조의 특별 배려로 귀양에서 풀려나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복직되고, 그도 1836년에 병조참판·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834년 순조의 뒤를 이어 헌종이 즉위하고, 순원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이때 그는 다시 10년 전 윤상도의 옥에 연루되어 1840년부터 1848년까지 9년간 제주도로 유배되었고 헌종 말년에 귀양이 풀려 돌아왔다. 그러나 1851년 친구인 영의정권돈인(權敦仁)의 일에 연루되어 또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풀려 돌아왔다. 이 시기는 안동 김씨가 득세하던 때라서 정계에는 복귀하지 못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학예(學藝)와 선리(禪理)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완당세한도 [阮堂歲寒圖]

 

   조선 후기의 서화가 김정희(金正喜)1844(헌종 10)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수묵으로만 간략하게 그린 가로 69.2cm 세로23cm의 크기 문인화로 19741231일 국보 제 180호로 지정되었고, 서울종로구청운동 52-109 손창근(2014.11.27.별세)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다.

 

    1840년 윤상도 사건에 연루되어 지위와 권력을 박탈당하고 제주도로 귀양 온 김정희에게 사제 간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두 차례나 북경으로부터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역관인 藕船 李尙迪(1804~1865)의 인품을 날씨가 추워진 뒤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여 그려 준 것이다.

 

   세한도는 이씨 문중에게서 떠난 후 130여 년 동안 유전을 거듭하다가 1930년대 중엽에 일본인 경성제대 교수 후지쓰카 지카시(藤塚鄰, 1879 ~ 1948)[1]에게 들어갔다. 세한도는 일제 말에 후지쓰카와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서예가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1902~1981)의 노력과 재력에 힘입어 국내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림은 수묵과 마른 붓질 및 필획의 감각만으로 그려졌으며, 옆으로 긴 화면에는 집 한 채와 주위에 송백 두 그루씩이 대칭을 이루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여백으로 되었다. 오른편 상단에는 '세한도(歲寒圖)'라는 화제와 "우선시상완당(藕船是賞阮堂)"이라는 글과 관지(款識)를 적었다  

 

 

   이처럼 극도로 생략 절제된 요소들은 모두 문인화의 특징으로, 작가는 직업 화가들의 인위적이며 허식적인 기교주의에 반발,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수법을 쓴 것 같다. 작가의 농축된 내면세계에서 비롯된 필선과 먹빛이 풍기는 담백 아담한 분위기는 문인화가 지향한 사의(寫意)와 문기(文氣)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한도제문 이해를 위해 편집해 올립니다. 晩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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