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名詩14. 새하곡2(塞下曲2)-왕창령(王昌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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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名詩14. 새하곡2(塞下曲2)-왕창령(王昌齡)
塞下曲(새하곡)---변방의 노래--
飮馬渡秋水(음마도추수), ; 말에게 물 먹이려 가을 강을 건너니
水寒風似刀(수한풍사도). ; 물은 차갑고 바람은 칼날 같네
平沙日未沒(평사일미몰), ; 평평한 사막에 아직 해는 지지 않았는데
黯黯見臨洮(암암견림조). ; 흐릿하게 임조관이 보이네
昔日長城戰(석일장성전), ; 그 옛날 장성관 싸움에
咸言意氣高(함언의기고). ; 의기도 높았다고 모두둘 말하네
黃塵足今古(황진족금고), ; 누런 모래 속에 세월은 가고
白骨亂蓬蒿(백골난봉호). ; 백골은 어지러이 풀 속에 흩어져 있네
1. 感想 : 차가운 바람, 칼날같이 센 바람, 한없이 펼쳐있는 긴 사막 등은 서역지방의 전형적인 풍광을 노래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은 이국적인 풍광이지만, 종군하는 병사들에게는 한없는 괴로움으로 다가온다. 작자는 이러한 황량한 분위기를 강조하면서 역대로 이곳에서 이름도 없이 숨져간 병사들에 대한 연민으로 몰아가고 있다. 쑥대 풀처럼 널려있는 하얀 백골을 묘사함으로써 연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정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암시하고 있다.
2. 왕창령(王昌齡) : 칠언절구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은 중국 당나라의 시인. 여인의 사랑의 비탄을 노래한 《장신추시(長信秋詩)》,《규원(閨怨)》 변경의 풍물과 군인의 향수를 노래한《출새(出塞)》,《종군기(從軍記)》가 유명하다.
자 소백(少伯). 강령(江寧:江蘇省 南京) 출신. 727년 진사에 급제하여 비서성 교서랑(秘書省校書郞)이 되었고, 734년 박학굉사(博學宏詞)의 시험에 합격하여 범수(氾水:河南省 成皐縣)의 위(尉)가 되었다. 그러나 소행이 좋지 못하다 하여 강령의 승(丞), 다시 용표(龍標:湖南省 黔陽)의 위(尉)로 좌천되었다. 왕강령 ·왕용표로 불리기도 하는 것은 그 임지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난으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자사(刺史)인 여구효(閭丘曉)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그의 시는 구성이 긴밀하고 착상이 청신하며, 특히 칠언절구에서 뛰어난 작품이 많다. 여인의 사랑의 비탄을 노래한 《장신추시(長信秋詩)》 《규원(閨怨)》, 변경의 풍물과 군인의 향수를 노래한 《출새(出塞)》 《종군기(從軍記)》가 유명하다. 시집 《왕창령 전집》(5권)과 그의 저술로 전하여지는 시론서 《시격(詩格)》 《시중밀지(詩中密旨)》 각 1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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