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名詩12. 燕昭王(연소왕) ---陳子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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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名詩12. 燕昭王(연소왕) ---陳子昻--
燕昭王(연소왕)
南登碣石館(남등갈석관), 遙望黃金臺(요망황금대)
丘陵盡喬木(구릉진교목), 昭王安在哉?(소왕안재재)
覇圖悵已矣(패도창이의), 驅馬復歸來(구마부귀래)
<연소왕>
남쪽 갈석관에 올라
멀리 황금대를 바라본다
구릉엔 교목이 가득한데
연소왕은 어디에 계신가 ?
웅대한 계획 슬프게도 끝났으니
말을 몰아 다시 돌아올 밖에
♣昭王 :연소왕 姬平. 그는 齊나라에 연나라가 격파된 뒤 즉위하였으며,齊나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서 스스로를 낮추고 후한 예물로서 현사를 초빙하였다. 먼저 그의 신하인 곽외(郭隈)를 위해서 궁궐을 개축하고 스승을 받들 듯이 정성으로 모시니 이 소문을 듣고 악의(樂毅), 추연(鄒衍) 등이 그를 찾아와 도왔다. 후에 그는 악의를 기용하여 제나라를 격파하여 원수를 갚고 많은 영토를 획득하였다. 시인은 바로 연소왕이 인재를 예로써 대우한 일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지금 재주를 인정받지 못해 포부를 펼칠 수 없는 것을 탄식한 것이다.
1.感想 : 정유(丁酉)(697)년에 건안왕(建安王) 무유의(武攸宜)가 거란을 토벌할 때 진자앙도 참모로 종군하여 어양(漁陽)에 머무르게 되었다. 거란과의 전투에서 전군(前軍)이 함몰(陷沒)하자 병사들이 무서워 떨고 있었는데, 이 때 진자앙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여 간언했으나 왕은 한갓 서생(書生)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진자앙은 몸을 아끼지 않고 더욱 간절하게 간언했으나 이로 인하여 더욱 왕에게 미움을 받아 군조(軍曹)로 좌천되고 말았다. 이에 진자앙은 북루(北樓)에 올라 옛날 연소왕(燕昭王)과 악의(樂毅)의 군신상우(君臣相遇)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충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 하면서 우인 노장용에게 시를 지어 증정하였는데, 오언고시인 <薊丘覽古贈盧居士藏用詩>는 바로 그 때 지은 것이다.
작자는 바로 연소왕이 인재를 예로써 대우한 일을 회고하면서 자신이 지금 재주를 인정받지 못해 포부를 펼칠 수 없는 것을 탄식하고 있다.
2. 陳子昻(661~702) : 자는 백옥(伯玉). 재주(梓州) 서훙[射洪:지금의 쓰촨 성(四川省)에 있음] 사람이다. 국사에 관한 상소문을 올려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칭찬을 받고 인대정자(麟臺正字)에 임명되었으며, 나중에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 관직에 있을 때 과감히 간언했으며, 거란족 정벌에 나선 군대를 따라가기도 했다. 뒤에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모함을 받아 옥에서 죽었다. 그의 시는 6조시대의 나약하고 화려한 시풍을 일소하고 한(漢)·위(魏) 시대의 힘찬 풍격을 드높였다. 〈감우시 感遇詩〉 38수는 조정의 폐단을 비판하고 변방의 군인과 백성들의 고통을 반영했으며, 재능은 있으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비애감을 나타냈다. 내용이 드넓고 풍격이 호탕하여 당시(唐詩) 혁신의 선구적인 작품이 되었다. 〈등유주대가 登幽州臺歌〉는 고금(古今)을 살펴보고 깊은 울분을 표현했으며 비분강개하는 정조가 드러나 역대로 전송되고 있다. 그의 산문 또한 육조시대 변려체(騈儷體)의 기풍을 개혁했는데, 질박하고 고아한 언어구사는 후대의 고문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진백옥집 陳伯玉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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