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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만에 동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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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 동창회 마지막 참석 한것은 2006년 아들의 피로연때 이다
그때는 워싱턴에 살때이니 매년 참석은 할수가없고 그전엔 90년대에 시작 할때
모였다가 몇번 안가고 나는 90년 중반에 미국 으로 들어 갔다.
이번엔 멀리 대전에서 혼자 떨어져 사는 친구가 오랫동안 참석을 안하므로 모두 대전에 내려가기로 했다고 한다
점심 모임이므로 서둘러 집을 나섰다. 대전 종합 터미널에서 만나니 버스를 타고 갔다
토요일이지만 버스전 용도로가 있어서 막히지 않고 좋았다. 기차를 탈걸 하고 후회 한것은 한시간 앉아 있으니 허라가 아프기시작한다.
버스 타고 장거리 여행 한지가 오래 되어서 그런지.......참 아버님 살아 계실때 여수는 기차고 버스고 뻔질나게 다녔는데 그래도 기분 좋았었는데.......그렇게 먼 여수라 할지라도 버스에서 뒤틀며 갈망정 .....

12시 좀 안되서 대전 종합 터미널에 도착 했다. 우리 고향은 충남 아산이므로 초등학교 친구들은 거의 천안 성환
아니면 서울에 살기 때문에 대전은 먼거리이기도 해서 참석인원은 반정도 밖에 안되었다,
나는 8년만에 동무들을 보니 길거리에선 절대 못알볼 만큼 모두들 늙어 있있었다.
자녀들이 의사고 선생이고 대기업 직원임에도 얼굴이 찡그려 지고 세월의 한파에 시달리고
강물을 역류한것 처럼 무언가 마음을 고양에게 할큄 당한 느낌을 주는 기성 교회 권사님도 있다,
나는 다른 친구들 보다 몸이 뚱뚱한것이 그들을 놀래킨 일이었고 얼굴은 하나도 안늙어었네 소리 들은 것도
나 하나다
네명정도가 구순 팔순의 시어머니가 계시고 그중 둘은 치매라고 한다, 모두 맞며느리이고 시어머를
모시고 사는데 시어머니들이 모시고 사는 큰 며느리를 귀하게 대하지 않고 어쩌다 용돈 들고 오고
물질 들고 찾아 오는 작은 며느리들은 잘해주고 환대 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들은 절대 며느리들 한테 안그러리 한다. 시어머니란 그런 존재일까?
남편을 낳아준 고마운 사람인데 늙어서 병들면 주책을 부려 며느리들의 짐이 된다.
효자 남편 때문에 또는 돈 때문에 요양원에도 못 모시고 간다고 한니,,,,,,,오늘날 장수 고령 시대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다, 건강해서 죽어도 내자식 안되는 남의 자식 며느리 들을 괴롬히지 않으려면 그저 적당한때
떠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는데 그 적당한 때가 몇살이냐 하니 80세 조금 넘어서랜다
그래? 그러면 우리인생 20여년 남았구먼....
정말 얼마 안남았네!
그리고 내게 통일교에 대해 하나만 질문 하더니 .문선명이 죽었지?
문선명이가 죽었는데 신도들이 부활 한다고 15일을 장사 안지내고 기다렸다가 부활 안하니
파묻었다며? 하하하.....
세상에 누가 그러던 ? 교회 가니 사람 들이 그러더리?
순간 피가 머리끝 까지 올리오나 꾹 참고 그게 아니라고 우리 교회는 육신 부활 안믿고
세계적으로 참석 하기때문에 날짜가 길어진 거고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내가 통일교 40년 다녔는데 그안에 있는 내가 통일교를 더잘알겠냐?
그 밖에 있는 목사나 떠도는 말로 소문을 이상하게 확산 시키는 사람들이 더 잘알겠나 하니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까지도 그렇게 우리를 잘못 알고 이단시하고 오해 하는 저들이 가엽기만 하며
한편 씁쓸하기도 하다 .
그래도 예전 처럼 우리교회를 조건 없이 자랑할수는 없었다,
어 째서 메시아 세상에 오신지 100년이 다 돼도록 핍박은 끝이없네 하는 생각이 되서 한숨도 나온다,
나는 곽 회장에 대해서 물어와도 대답을 피했다. 할말도 없고 .
무엇 보다 서글픈 것은 옛날 처럼 원리의 깃발을 들고 당당하게 친구들에게 기성 교회가 기다리는
메시아가 우리에게 있고 나는 너무도 내가 가는 길일 옳고 반듯해서 내 인생이 후회없으며 아버님을 만난 내가 가장 행복하다 라고 떠들던 내 열정이 어디로 갔나 없어져 버린 것이다.

점심 먹고 찻집으로 향했다. 담임 선생님 이야기 그리고 나는 기억에 없는 남학생 누가 어떻고
잘도 안다 . 사진을 놓고 이건 누구 이건 누구 하면 그대서 어렴프시 생각 난다.우리중에 얼굴이 아주 예쁜 친구가 있는데 동창 끼리 결혼 해서 남매낳고 남편이 죽어 버린 친구가 있다,
얼굴이 예뻐서 여러명의 동창 남자들이 구애를 했는데 하필 명 짧은 사람 하고 결혼을 한것이다.
뱍만원 짜리 지갑을 자랑하는 의사 딸둔 친구 앞에 나도 30만원 짜리 지갑을 내놓고 자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뒤에서 팔푼이라고 훙을 들을것이 분명한 태도이다..
저녁이 되어 슬슬 서울로 천안으로 올라 갔고 나도 동탄에 온다는 얼굴 예쁜 과부 친구의 차를 동승 해서
수원 까지 올라왔다, 내가 참석 못했던 자리에서 그들이 내 이야기를 여러번 했는데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얼굴 예쁜 친구가 말한다,,,,
유노슥은 통일교 미쳐서 거기서 문선명이가 중매한 외국 사람 만나 훨훨 세계를 돌아 다니며 산대
우리들 처럼 시어머니 시집 살이도 없고 잘됐지뭐........고생도 안하고 돈도 많대 하더랜다
미국서 일본서 살고 영어 일어도 쏼라 쏠라래 좋것다 유노숙은그런말을 하는 아이도 있었댜나
내가 없었던 지난 30년 몇번은 만났으나 그들이 나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초등학교 5학년때 박 병화 선생이 집에가서 부모님들께 대통령은 박정희 찍으라고 해라
히건 웃기는 그시절의 기억들은 신나게 이야기 하지만 한가지도 거짖 없이 말할수 있는 것은 우리들이
아산에서 초등학교 다니면서 자주 같던 이순신 장군 묘지위에 몰래 올라 가서 뛰었단 이야기
마당 마다 아이들이 그득 했던 그 시절은 집집마다 애들이 대여섯명은 되어서 가난에 시달려도
꽤나 시끌 벅벅 행복 했고.............
나는 오래 같이 못 놀았으니 지금 부터 들어 와서 같이 놀잰다....
참석 안한 어느 친구 흉도 보면서.....아무튼 반갑고 즐겁운 주말을 보내고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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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정해관님의 댓글

내가 깨달은 위대한 사실!

1. NS 님이 다니는 미용실의 卓越한 기술

2. 美人薄命

3. 영계에가면 입과 귀만 떠 다닌다는데, 그 주인공이 한국 기성교지도자와 

    그 허튼 소리를 개념없이 받아 또 퍼뜨리는 무리들.  

4.  덧붙여 여전히 살아있는 글 솜씨의 노숙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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