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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이기는 축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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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면서 이기는 축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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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으로 경기를 치를 때도 있다. 부상 선수로라도 선발 11명을 채울 수 있으면 다행이다. 대학 진학, 취업 등 진로는 불투명하다. 팀 수는 자꾸 줄어가고 친구들은 하나 둘 팀을 떠난다.

소녀들은 상대와 싸우기 앞서 '여자가 무슨 축구냐'라는 선입견과 싸워야 했다. 미래를 꿈꾸기가 사치처럼 느껴지는 게, 한국 여자축구의 가슴 아픈 현주소다.

이처럼 열악한 환경 속에서 17세 이하 소녀들이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정상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최덕주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6일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2010 FIFA 17세 이하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 동안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4로 이겼다.

이로써 한국은 1882년 축구가 한국 땅에 첫 선을 보인 이후 128년 만에 FIFA 주관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간판 공격수 여민지(함안대산고)는 8골 3어시스트(6경기)로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대회에서 득점왕(골든부트)과 최우수선수(골든볼)를 석권했다.

초등학교 18개, 중학교 17개, 고등학교 16개, 대학교 6개팀에 등록선수는 1450명. 현재 우리나라 여자축구의 전부다. 그중 고등부에 등록된 선수는 고작 345명 뿐. 거기서 뽑힌 21명이 세계 정상을 일군 것이라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팀 수와 등록선수 등 모든 면을 남자축구에 비하면 15분의 1 수준이다. 한국 여자축구가 명맥을 유지하는 사실만으로도 대견하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고교 소녀들이 세계 1위에 오른 비결은 '조기 성인화'였다.

17세 이하의 어린 나이라면 유럽, 미국 등 여자축구 선진국에서는 운동 자체를 즐기면서 재밌게 할 시기다.

그러나 한국 소녀들은 축구를 즐길 나이에 오직 이기기 위해 성인 수준의 강훈련을 소화했다. 팀 수가 적으면 좋은 재목도 부족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딸들은 울면서 이기는 축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소외당해온 여자축구 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도 컸다. 그들은 "여자축구 감독은 해서 뭐해"라는 편견과 끊임없이 싸운 끝에 개천에서 용을 키워냈다.

지도자, 선수가 어쩔 수 없이 택한 '조기 성인화'는 슬픈 현실이다. 현재 한국 소녀들이 세계 정상에 오른 원동력이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독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이 기술을 버리고 승리를 택할 때 다른 나라 소녀들은 더 좋은 기술을 익혔다. 거기에 힘이 붙고 조직력을 아는 성인이 되면 우리가 넘기 힘든 벽이 되기 때문이다.

20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은 세계 3위에 올랐다. 17세 이하 여자는 세계 정상에 섰다. 그래도 여자축구의 현실은 달라질 게 별로 없다. 신생팀 창단은 여전히 어려울테고 월요일마다 열리는 WK리그 관중석은 텅빌 것이다.

여자축구 관계자들은 여자축구 발전을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대학팀 창단이라고 입을 모은다.

여민지의 어머니 임수영씨, 현대정과고 정연삼 감독, 함안대산고 김은정 감독 등은 "명문대에서 축구부를 창단하면 초중고 축구부가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여자축구도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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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박순철님의 댓글

이 아이들의 뜨거운 땀방울이 절대로 헛되이 흐르게 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우리가 세계축구계에 만들어 놓은 축구와의 소중한 인연을 꼭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이들의 땀방울도 소중한 자원이 될 것입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여민지 세계적 스타로 ‘우뚝’>
‘작은 지소연’ 여민지(함안 대산고)가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컵과 득점왕, 최우수선수(MVP)상까지 ‘트리플 크라운(3관왕)’을 달성하며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섰다.

여민지는 26일 막을 내린 FIFA U-17 여자월드컵에서 8골(3도움)을 터트려 최다 득점자에게 주어지는 ‘골든 부트’와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을 수상했다.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사상 첫 FIFA 주관 대회 우승을 이끌고 득점왕에 MVP까지 거머쥐는 새 신화를 창조했다.

1m60의 여민지는 경남 창원 출신으로 명서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살 위인 오빠 상호씨를 따라 유소년축구에 가입해 축구와 인연을 맺었고, 함안 함성중학교 2학년이던 만 14세 때 대표팀에 뽑혔다.

여민지는 이날 일본과 결승전에서는 골을 넣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한국이 치른 6경기에 모두 출전해 막강 화력을 과시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1차전에 교체 출전해 1골 1도움을 올렸고, 멕시코와 2차전에선 2골이나 뽑아냈다. 독일과 3차전에서 잠시 침묵했던 여민지는 나이지리아와 8강전에서 4골을 몰아 넣으며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FIFA 주관대회 한 경기 최다 골 신기록을 세웠다. 스페인과 준결승에선 분위기를 반전시킨 천금 같은 동점골을 넣고 역전 결승골까지 돕는 활약을 펼쳤다.

여민지는 또 FIFA 등록 기자단 투표를 통해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 볼’까지 수상하며 한국 축구사에 또 다른 이정표를 세웠다. 지난 8월 U-20 여자월드컵에서 지소연이 최우수 선수 부문 2위 ‘실버볼’을 수상했고, 남자 대표팀에서는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2002 한일 월드컵 때 브론즈볼을 받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선수가 FIFA 주관 대회에서 ‘골든볼’이나 ‘골든 부트’를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

특히 여민지의 ‘트리플 크라운’은 무릎 부상으로 몸 상태가 온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거둔 것이어서 더욱 빛났다. 그는 최근 훈련 중 중학교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를 또다시 다쳐 전지훈련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여민지는 경기가 끝난 뒤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동료들이 잘해줘서 제가 대신(상을) 받았다”며 상을 동료들에게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민지의 부모는 현재 경남 김해시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버지 여창국(45)씨는 LG전자 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문준식 기자 mjsik@segye.com

<명장’ 반열오른 최덕주 감독>
한국축구 사상 처음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린 17세 이하(U-17) 여자 월드컵 대표팀 태극소녀들에게 최덕주(50·사진) 감독은 늘 푸근한 아버지와 같았다. 그라운드에서 선수끼리 손발이 맞지 않아 실수로 골을 내주거나 패스 미스를 연발할 때에도 최 감독은 ‘덕장’이라는 별명답게 고함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어린 선수들에게 윽박지르고 체벌을 가하면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수 없다는 게 최 감독의 지론이다. 17살의 소녀들이 기죽지 않고 당당히 기량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최 감독의 온화한 ‘아버지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그는 어린 선수들에게 “축구는 이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즐기려고 하는 것”이라고 주입시켰다.

최 감독은 마침내 세계 정상을 밟은 뒤 “선수들이 훌륭했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감독이었더라도 이들과 함께했더라면 우승을 했을 것이다. 나는 운 좋은 감독인 것 같다”며 선수들의 노력에 감사를 표시했다. 그는 “한·일전을 앞두고 부상 선수도 많았고, 선수들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했다. 끝까지 포기 않고 열심히 뛰어준 어린 선수들이 자랑스럽다”며 다시 한번 공로를 선수들에게 돌렸다. 최 감독은 “승부차기 때에도 승부에 연연하지 말고 평소처럼 자신 있게 공을 차라고 주문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독려했을 뿐”이라고 당시의 어려움을 밝혔다.

최 감독이 한국 유소년팀을 본격적으로 맡은 건 불과 10개월 전. 최 감독은 지난해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16세 이하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라이벌 일본과 강호 북한을 연달아 꺾고 우승을 안았다. 이번 월드컵에서 활약한 여민지 등이 당시 우승 멤버인 만큼 최 감독은 지난해부터 이미 대표팀을 세계 최정상급으로 조련해 놓았던 것이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부산 동래고, 중앙대를 졸업한 최 감독은 실업팀 한일은행, 프로축구 포항제철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마쓰시타전기에서 2년간 뛰다 선수생활을 마쳤다. 선수시절 이렇다할 명성을 날리지 못했던 그는 지도자로서 뒤늦게 꽃을 활짝 피우게 된 셈이다.

독일을 거쳐 일본에 둥지를 튼 최 감독은 1990년부터 2004년까지 일본 고교, 대학, 성인 팀을 두루 거치며 지도자 경험을 쌓았고 2007년엔 브라질에서 6개월간 선진축구를 공부했다. 최 감독은 주로 일본에서 지낸 시간이 많았지만 유럽과 남미 축구도 경험하며 안목을 넓혀온 국제통 지도자다.

박병헌 기자 bonanza7@segye.com


정해관님의 댓글

한국 여자축구에는 메시(지소연)도 있고, 루니(여민지)도 있다.

 '황금 세대' 출현에 고무된 한국 여자축구가 '큰 물' 접수를 노린다.
 더 멀리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면 2011년 독일여자월드컵, 4년 뒤 2015년 여자월드컵(장소 미정)이 눈에 들어온다. 2015년 대회 때는 지소연(19)과 여민지(17)이 함께 뛸 수 있다.

 최근 몇 달간 한국 여자축구는 꿈길을 걸었다. 연이은 승전보에 여자축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기대가 급상승했다. 17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이 세계를 제패하고, 지난달에는 20세 이하 대표팀 선수들이 세계 3위에 올랐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것은 지소연과 여민지로 대표되는 월드클래스 선수들의 등장이다. 지소연은 20세 이하 월드컵을 통해 국제적인 골잡이로 발돋움했고, 여민지는 한국축구 사상 첫 FIFA 주관대회 득점왕에 MVP-우승까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향후 이들은 침체된 여자 A대표팀도 바꿔놓을 것이 확실하다. 한국은 여자축구 세계랭킹 21위로, 일본(5위), 북한(6위), 중국(14위)에 이어 아시아 4번째다. 2003년부터 아시아 지역예선을 통과하지 못해 성인월드컵 본선에 못 나갔다.

 지소연, 여민지와 함께 뛰고 있는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기대감은 더 커진다. 특히 17세 이하 대표팀에는 김아름 김다혜 주수진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선배들처럼 중학교 시절까지 축구가 아닌 다른 스포츠(육상이나 수영, 역도 등)를 하다가 전향하지 않았다. 축구로 잔뼈가 굵었다. 선진화된 훈련시스템과 여자축구 전문 지도자에게 교육 받았다.

 이번 세계 무대 성과들이 여자축구 인프라 확대와 인기도 상승에 따른 선수자원 증가로 이어진다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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