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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어린 만남의 장, 문경새재 단합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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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감어린 만남의 장, 문경새재 단합대회

 



단풍의 계절, 우수憂愁의 계절 그리고 사랑의 계절인 10월이 성큼 다가왔다. 물들어 가는 나무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더 높고 푸르러 온통 가을로 가득 차 있다.

 

오늘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축복을 인연으로 하여 맺어진 정겨운 일팔형제 자매들!

세상에서는 나이들면 우울해지고 고독해지기 쉽다고 하던데 아마도 우리들은 그런 걱정 않해도 될 것같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그리운 우리들의 인연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들만의 귀한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마음껏 더불어 말할 수있는 누군가를 갖는다는 것만큼 감미로운 일이 또 있겠는가”( 정치가 키케로)

그렇더라도 심원한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심정의 인연을 항상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참아버님께서는 축복해주는 것은 참부모의 권한이지만 그 받은 축복을 잘 이루는 것은 각자 책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른 아침 7시부터 서울을 출발한 3대의 버스(1호차 아차산역, 2호차 구리교회 앞, 3호차 서부역 출발)는 일팔 형제.자매들을 싣고 여주휴게소를 거쳐 중부 내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어디를 가고 있는가?

오늘은 고대하던‘문경새재 성지순례 및 단합대회’가는 날이다. ‘2015일팔가정중앙회 행사’로 치뤄지는 이번 단합대회를 정성껏 준비한 유종소 회장님 이하 모든 임원진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출발에 앞서 중앙회에서 준비한 등산모자, 생수, 간식 등을 버스별로 인솔자들이 나눠줬다.(1호차 김재만 부회장, 조선화 회원/ 2호차 한은희 부인회장, 최명숙 부회장/ 3호차 이긍노 부회장, 박신자 지회장 수고)

출발할 때의 흐린 날씨도 시내를 벗어나니 따사로운 쾌청한 태양으로 바뀌었다.

도중에 여주휴게소를 들른 후 문경새재 주차장에 3대의 버스가 합류했다. 이곳부터는 걸어서 3관문 앞 잔디광장에 도착(10시50분 경)한 후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일행을 기다렸다.

문경새재 길은 조선시대 영남 대로이므로 나라의 출입문이다. 백두대간 마루를 넘는 이 고개는 조선시대 영남과 기호지방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중심으로 사회.경제.문화 등 문물의 교류지이자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은혜속의 야외예배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11시 10분부터 3관문 옆 잔디밭에서 130여명의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된 예배는 개회선언/ 찬송/ 경배/ 가정맹세/ 보고기도/회장인사/축시낭송/ 광고/ 억만세 삼창 순으로 40여분간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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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마친 후 3관문에서 출발했다.(11시 53분)

저마다 개성있게 차려입은 등산복에다 남학생들의 검은 색, 여학생들의 붉은 색 등산모가 “우리는 하나”라는 일체감을 드러내 준다. 그것도 모자라 목에는 견犬줄(?)까지 걸었으니 영락없는 깃발관광의 전형이요 초등학교 소풍 같다.ㅋㅋ 그래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참아버님의 발자취 따라

지금 우리는 참아버님의 발자취 따라. 회상하며 역사적인 길 문경새재를 걷고 있다. 돌이켜 보면 흥남감옥에서 해방되신 참아버님은 1950년 12월 4일 평양을 출발하여 임진강을 건너 서울, 원주를 거쳐 문경으로 남하하셨다. 하반신 골절의 제자를 자전거에 태우고 김원필 선생과 함께 문경새재를 넘으셨다고 하니 그로부터 65년이 지난 오늘 그 길을 다시 걸으니 감회가 새롭다.

 

사실 문경새재 성지순례라 해서 특정지역에 표지가 있는 줄 알고 왔으나 그렇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추측해 보니 첫번째는 문경새재 길이요

                                     

   △ 

            

두번째는 제2관문 휴게소(식당)이다.(이 곳은 단지 필자의 견해이다. 필자가 수안보 와이키키관광호텔에 근무할 당시 대략 1994년도 경 참아버님께서는 전국교구장 회의를 마치신 후에 일행을 대동하시고 3관문부터 걸어내려 오시다가 함께 점심식사를 하신 유명한 식당이다.)

세번째는 식사 후 1관문쪽으로 가시다가 도로 옆 큰 바위에 좌정하시고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찾아보려 하니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그 자취를 찾지 못해서 무척 아쉽게 생각합니다. 참아버님 성화3주기가 지난 오늘 이곳에 와보니 참으로 인생 무상함을 절감하게 되며 참아버님을 향한 그리움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리라.....

그래서 소화/고종우 시인은 이 애닲은 심정을 담은 한 편의 시詩를 낭송했다.

 

(~중략)

연 녹색 잎사귀들 봄에 피었다가 낙엽이 되고

진달래 봄 절기에 피었다 소리 없이 진다해도

해 바뀌면 어김없이 고운 빛 다시 피는데

한번가신 우리 님은 새들이 노래해도

봄꽃이 천지간에 피어도 미소로 아니 오시니

 

임이시여, 사랑하는 임이시여

그리움에 사무칠 때 꿈 중에 오시고

마음 밭에 봄비로 오시어

꽃을 피워 주소서

지친 영혼 가슴속에 오시어

임과 함께 영원히 동고동락 하게하소서.....

 

 

애환서린 문경새재

조선시대 영남에서 한양으로 갈 때 넘게 되는 고개는 문경새재만이 아니라 충북 단양과 경북 풍기를 잇는 죽령(696M)과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잇는 추풍령(221M)도 있었다. 그러나 과거길 선비들은 반드시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을 오갔다. 죽령을 넘으면 죽죽 미끄러지고.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일찍이 조선중기의 실학자 정약용도 이 길을 걸으면서

새재의 험한 길 끝이 없는 길/ 벼랑길 오솔길로 겨우겨우 지나가네

 /차거운 바람은 솔숲을 흔드는데 /길손들 종일토록 돌길을 오가네~~ ”

 

라고 읊었다. 그 당시 다산선생은 험한 길, 벼랑 길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러나 지금은 잘 다듬어진 넓은 황토 길이어서 걷기에 아주 좋았다.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나라의 시대적 문화 혜택이라고나 할까?

 

흥겨운 문경아리랑

“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 홍두깨방망이 팔자 좋아∼♪ 큰 애기 솔질에 놀아난다∼♪

 문경새재 넘어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라는 노래가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흘러 나온다. 선진 IT강국의 면모이다.


 

황토길 우측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시원함을 더 해주고 죽죽 뻗은 울창한 수목 사이로 초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이 눈부시게 비춰주니 가히 단풍구경의 절정이다.

삼삼오오 담소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2관문을 지나고(2시35분경 통과) 1관문에 당도했다. 1관문을 나서니 넓은 광장에서는 요란하게 사과축제가 한창이다. 벌써 시간은 1시30분, 출출한 시장기에 주마간산식으로 지나치면서 예약한 식당에 도착했다.(1시 40분 경)

 

푸짐하게 차려진 전골과 생선구이로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식사 중에 충북 괴산 군의원을 지낸 김병준 형제가 방문하여 인사 소개하고 자기 농장에서 생산하는‘미선나무 한방비누’를 모두에게 선물했다. 감사드립니다.

 

초 가을의 일몰시간이 짧은 관계로 서둘러 서울로 출발(2시 47분경)했다. 도중에 문경읍에 있는 박정희 선생님시절 하숙하던 청운각을 둘러봤다. 박정희는 대구사범을 졸업한 후 1937년 초 문경공립보통학교 교사로 발령받았다. 3년간 학교 앞에서 하숙생활을 했는데 그 하숙집이 청운각이란 이름의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기념관에서 상영되는 비디오도 시청했다. 5.16군사혁명과 경부고속도로 건설. 울산공단조성 등 조국근대화에 기여한 공적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러고 보니 필자는 문경과 인연이 깊다. 과거 수안보와이키키에 근무할 당시 문경대학 겸임교수로 초빙받아서 3년간 강의를 했었다. 감회가 새롭다.)

 

 

아름다운 인연이여 영원하라

세상에는 잘못 알려진 상식이 많다. 나이 들면 관대해지고 겸손해 진다고 하는데, 실상은 정반대 현상이다. 고집불통에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남의 말은 듣지 않으려 하고.....

중국 당 나라 시성(詩聖) 두보는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고 해서 사람은 70을 살기가 어렵다고 했으나 지금은 100세시대를 넘보고 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IT강국의 스피드시대에 살고 있다. 때로는 발상의 전환도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세상은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일찍이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늙기는 쉽지만,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 고 했습니다. 아무리 평균수명이 늘어나 100세시대라고 하지만 늙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보편적인 자연현상이지만, 아름답게 늙는다는 건 선택적이다. 아름답게 늙는다는 것은 결국 '품위 있는 노인이 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않는 우정과 화동으로

만나면 반갑고 헤어지면

그리운 1800형제 자매들 40여년전 그날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랑들과

화사하게 치장한 신부들

언제나 아련하게 스치는 그 날의 감격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문경새재에서 만났다.

그 동안 참부모님 가호하에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살아 온 날보다 살아 갈 날이 촉박한

우리들이지만

팔팔하게 건강하게 100세시대 참여마당으로

진군합시다.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축복이 가정에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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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집필: 성범모상임고문/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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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9

박신자님의 댓글

이제와  뒤늦게 읽으며 그날을 되새깁니다

세밀하게 역사적 자료를 남기셨네요. 18가정의 보배십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순님의 댓글

너무나도 감명깊게 잘 읽은 글을

저는

소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부족 합니다

역사 공부까지 잘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종우님의 댓글

마무리 정리를 성 고문님께서 기행문적 역사 자료로 만드셨네요.

이렇게 우리 가정회에서는 각자 달란트를 가지고 맘껏 정성을 다해

하나되는 역사적 행사를 은혜롭게 매듭지게 되었군요.

수고 하셨습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행사 뒤의 문경세제의 감회를 새삼 소중히 여깁니다.




 


 

조항삼님의 댓글




성범모 고문님 !

역시 명칼럼니스트의 필치로 간결하고 아름답게 묘사해

주셨군요.


유서 깊은 성지순례길 !

축복당시 꽃다운 이팔청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칩니다.


참아버님의 회한이 묻어나는 문경새재

정처 없는 인생길 만감이 교차하는 오늘 !


옛 선비들의 멋진 풍류를 연상하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며 일장춘몽의 꿈 속에 풍덩 빠져 보고 싶습니다.


길고도 험난했던 고난의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가?


무심한 세월의 파도에 떠밀려 그 무거운 짐을 차마 못버리고

여기까지 왔노라.


이제는 얽매인 삶 다 풀어 놓고 남은 세월 후회 없이

살다 갑시다. 

김명렬님의 댓글



이 나이가 어때서 .... 처럼 화사한 등산복에 아직도 팔팔한 젊음이
솟는 형형색색의  등산복  입고 썬그라스걸치고 멋들을 부린 모습들!!!
한결 돋보이게하는 정이넘치는 글 잘 읽었습니다. 
 http://m.blog.naver.com/kgb815/80206735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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