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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원초적 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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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만족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그것은 상대를 위하고, 아끼고, 정성으로 보살피며,

참사랑을 진심으로 베풀고 실천궁행할때에,,,,,

이 세상의 모든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나를 앞세우고 나만을 고집하고 나만 위할려고,,

개별 개인주의의 온상에서 이기주의와 소인배처럼 살아갈때,,,

영원한 행복은 원초적 행복의 근원이요 축복의 중심이신

천주,천지인 참부모님의 심정의 핵심 보금자리에서 님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효도와 효성의 대들보가 되어 1등 공로적

사명을 성취해 나아가면서 3대 주체사상의 터전위에 제4차

아담 심정권의 연속적 상속과 함께 창조 본성의 지향성을 따라

해야할일, 하고 싶은일을 만들면서 정상을 향하여 합장 축원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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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이무환님의 댓글

행복=순진무구=순도100%=순심!00%= 순性=순혈+완성 축복=진정한 행복의 본체!!!천복궁 중심섭리의 원초적 사연들,,그리고 천상병의 글월중깨끗한 빈손;현재의 심경표현들 그리고 하늘을 믿는데들고 달고, 품고 다닐리없다의 깊은 묘미와 의미심장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또한번 웃음이 나오든군요 표현이 얼마나 멋진지요 감사 감축 합장 축원 아주,,,

정해관님의 댓글

'행복'에 대한 화두에 참여해 주시는 님께 감사드립니다. 전에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디지탈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양방향커뮤니케이션'이라는데 있음은 주지의 사실 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개성'이 다르듯이 사상과 주장이 다를수도 있음을 전제하면서 그 상대를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추구해 가는 것이 '시대적인 순리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원초적 행복론'은 지당하고 이곳의 형제들은 공감할 줄로 압니다.
그런데 방금 형진님께서 '천복궁 중심섭리'에서 밝히신 바와 같이, 앞으로는 모든 종교의 예배를 같은 공간(천복궁)에서 드릴수 있는 날이 오는 것처럼, 사해동포가 고루 이해하고 자기나름대로 해석하며 추구하는 '행복론'도 일리있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정해관님의 댓글

귀천 / 천 상 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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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감상: 정끝별·시인]

영화 '박하사탕'에서,
돌아갈 곳 없는 설경구는 철교 위에서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러나,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빽'이 있는 사람이다.
그 '빽'이 하늘이라면 그는 천하무적으로 세상을 주유하는 사람이다.
하늘을 믿으니 이 땅에서는 깨끗한 빈손일 것이다.
하늘을 믿는데 들고 달고 품고 다닐 리 없다.
그러니 새벽빛에 스러지는 이슬이나, 저물녘 한때의 노을이나,
흘러가고 흘러가는 구름의 손짓 등속과 한패일밖에.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라며
스스로를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나이'(시 '행복')라 일컬었던,
왼쪽 얼굴로는 늘 울고 있던 시인, 천상병!(1930~1993) '귀천'은
1970년 발표 당시에는 '주일(主日)'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그의 시는 생(生)의 바닥을 쳐본 사람들이 갖는 순도 높은 미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언어는 힘주지 않고, 장식하지 않고, 다듬지 않는다.
'단순성으로 하여 더 성숙한 시'라 했던가.
이 시에서도 그는 인생이니 삶이니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도 무욕이니 초월이니 달관이니 관조니 하는 말로 설명하지 말자.
이슬이랑 노을이랑 구름이랑 손잡고 가는
잠깐 동안의 소풍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소풍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가볍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니 소풍처럼 살다갈 뿐.

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전도유망한 젊은이였으나
'동백림 사건'(1967)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고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은 음주벽과 영양실조로 나타났으며
급기야 행려병자로 쓰러져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그가 죽었다고 판단한 친지들에 의해 유고시집 '새'(1968)가 발간되었는데,
그 후로도 천진난만하게 25년을 더 살다 갔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
내가 죽는 날/
그 다음날" 이라고 노래했던 그는 분명 새가 되었을 것이다.
가난하고 외롭게 살다 갔으니,
자유롭고 가벼운 새의 영혼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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