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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뿌리의 세 종교 이야기⑯ 이슬람의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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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뿌리의 세 종교 이야기이슬람의 IS

1. 개요 : 201112월 이라크 전쟁이 끝났다. 미군 전투병력을 이라크에서 철수시키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이 일으킨 '테러와의 전쟁'을 조용히 끝냈다. 당초 부시 전 대통령이 전쟁의 이유로 들었던 대량살상무기는 찾지 못했지만 2003년 사담 후세인 정권은 무너졌고 9.11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은 2011년 사살됐다. 이라크전 종전을 내걸고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의 공약은 그의 전쟁 종료 선언(2011.12.15)으로 지켜지는 듯했다.

하지만 테러는 끊이지 않았다. 오히려 알카에다보다 더 강하고, 더 잔혹한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Islamic State)가 등장했다. IS는 스스로 '국가'를 자칭하며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를 차지하고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한편, 포로를 처형하는 잔혹한 영상을 중계하는 수법으로 세계 여론을 자극했다. 결국 미국의 중동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오바마 대통령은 20149월 군사작전 돌입을 선언했다. 또 다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됐다.



 

2. IS의 배경 : 종파분열의 이라크, 내전 중인 시리아

갑자기 등장한 무장단체 IS가 어떻게 단시간에 시리아 북부 알레포에서 이라크 디얄라주에 이르는 지역을 점령하고 '국가'로 자칭할 수 있게 되었을까. 이들의 자체적인 능력 보다는 이라크 전쟁이후 중동에서 벌어진 극심한 혼란의 영향이 크다. 이라크에서는 시아파-수니파 사이의 갈등이 격렬해졌고 시리아 내전은 주변국의 대리전으로 악화되어 이들 지역은 사실상 '권력의 진공상태'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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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와 수니파

이슬람교의 양대 종파로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로 누구를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갈렸다. 합의로 선출된 후계자 아부 바르크를 후계자로 지지한 이들이 수니파,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를 후계자로 지지한 이들이 시아파다. 인구로 따지면 전세계 16억 이슬람교도의 90%가 수니파로 압도적인 다수파. 시아파는 인구로는 10%지만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의 정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레바논의 헤즈볼라도 시아파다.

이라크에서는 인구상 수니파가 소수(20%)이고 시아파가 다수(60%)이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수니파가 권력을 독점하고 시아파를 탄압해왔다. 그러나 전쟁 이후 선거를 치르면서 다수인 시아파에게 정권이 넘어갔고, 새로 꾸려진 말리키 정부는 한동안 연합 정부의 성격을 갖는 듯했으나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수니파를 배제하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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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IS의 지도자인 아부 바르크 알바그다디는 이러한 수니파의 불만을 적극 활용했다. 2010년 알카에다 이라크지부(AQI)의 수장이 된 그는 사담 후세인 정권의 군 장교 등 수니파 위주로 지도부를 채우고 무장세력을 재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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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시리아에서도 내전이 벌어졌다. 시리아는 인구의 80%가 수니파로 다수이나 소수인 시아파(알라위파)가 권력을 잡고 있다.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시리아 시민들이 2012년 가혹한 독재정치를 펴온 아사드 정권에 대해 평화적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아사드 정권이 과잉진압으로 대응하면서 사태가 악화됐고 주변국들의 개입으로 내전으로 번졌다. 수니파 보수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압박하고, 이란은 시리아에 시아파 정권이 유지되도록 경제, 군사적으로 아사드 정권을 지원한 것이다.

 

시리아 내전은 IS가 급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어느 정도 조직 재건에 성공한 바그다디는 시리아에서 탄압받고 있는 수니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20134월 시리아에서 핵심적인 반군 세력으로 활동하던 누스라 전선과 통합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알카에다 본부가 이에 반대하자 "이라크와 시리아를 구분하는 것은 제국주의 세력의 국경선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며 알카에다로부터의 독립도 선언했다. IS는 시리아내전을 통해 상당한 군수물자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때 이라크와 시리아의 조직을 통합하겠다며 내세운 이름이 ISIS(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 혹은 ISIL(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무슬림을 포괄하는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목표로 내걸고 있다. ISIS20135월 누스라 전선의 본거지 도시인 라카를 점령하자마자 이 도시를 시작으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라카 점령으로 시리아 동북부의 기반을 강화한 ISIS6월 이라크 중부 사마라를 점령하고 이어 인구 180만 명으로 이라크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 모술과 바이지, 티그리트도 점령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이어 629일 바그다디는 자신을 칼리프로 하는 '이슬람국가(IS)'의 창설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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