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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론22. [기독교의 행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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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기독교의 행복론]

1. 가톨릭의 ‘하느님 나라와 행복’

‘하느님이 사람 각각을 만드신 것은 당신 자신의 영광과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리고 또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경배하면서 영원한 행복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는 문답문은 가톨릭 신앙에서 행복의 길이 어디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행복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파악’하고, 그 정신적인 영혼의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현세적인 차원의 행복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천주교는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를 부정하면서도 사람 각각의 행동에 수반하는 감각적 쾌락을 하느님의 창조의 결과로서 긍정한다. 또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올바르게 사는 것과 행복의 관계를 인정하고, 플라톤 처럼 최고의 행복을 ‘테오리아(관조)’, 특히 천주 하느님에 대한 테오리아에서 찾는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사회 생활과 행복의 불가분성에 동의하고, 스토아의 평정한 부동심 ‘아파테이아’에도 동조한다. 물론 그것들은 완전하게 같은 의미는 아니지만, 그리스 사상이 제기하는 이러한 문제들은 서양의 그리스도교 사상에 충분히 흡수되고 있음을 철학사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교의 행복관의 원점은 신학자나 교리학자들의 것이 아니라는 점은 신학 이전에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를 보면, 하느님은 창조된 것들의 ‘좋은 점’을 인정하고 물질의 풍부함 또한 신의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인간은 하느님에 대한 경배와 감사의 마음 속에서 자신들의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고 그것을 이용해 가정생활의 즐거움을 누리고 장수하기를 기원한다. 지상의 행복 또한 가치있는 것으로 참된 신앙인 만이 그것을 신으로부터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자연세계의 가치에 대한 이러한 태도와 더불어 기독교에서는 보다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를 강조 한다. 그것은 ‘지상의 행복’에 대한 ‘천상의 행복’의 강조이다. 이것은 헤브라이 초기에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지만, 후기의 예언자 들이나 ‘지혜의 책’ 속에서 이미 강조되기 시작한 ‘행복’에 대한 생각이다.

인간은 비록 이 세상에서 궁핍하고 힘들어도, 하느님을 믿고 그 가르침에 따라 올바른 길을 걸어가면 그 자체로 최고의 행복, 마음의 평온함을 얻는다. 올바른 길을 걷지 않는 사람이 행복하다는 것은 거짓이며, 종국적으로는 영원히 멸망에 이른다.

신약성경은 이 후기의 구약성서의 사상을 부정하기는 커녕 그러한 사상을 그리스도의 은총을 통해 혁명적인 구원의 역사로 새롭게 이어받고 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가르침을 ‘복음’ 즉 행복과 구원의 길을 알리는 소리로 부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이 복음의 대상이 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당시 너무도 간절히 행복을 구하던 사람들 즉 가난하고, 슬프고, 박해 받는 사람들이다.

마태복음 5장 3~10에 나오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옳은일 하다가 박해 받은 사람 들이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연결되어 구원을 받게 되는 ‘행복한 사람들’인 것이다.

사실 세상에서는 돈, 권력, 쾌락, 명예를 누리는 자들이야말로 행복한 사람들로 생각되어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참된 영혼의 소유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에 의존해 있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가 말하는 행복은 하느님의 나라와 같이 내면적이자 정신적인 것이다. (누가복음 17/21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 물론 기독교는 소유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는 행복은 소유물에 의한 것이 아니고, 소유물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음을 분명히 한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 (마태복음 6/33) 즉 신의 의지에 합당한 세계를 실현하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2. 기독교도와 행복 :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를 한마디로 특징지으라고 한다면 행복의 종교라고 말할 수도 있다. 기독교의 핵심이 되는 복음서가 문자 그대로 행복을 알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음도 결코 우연적인 것이 아니다. 구약성서 속에서 구세주가 올것 이라고 약속되고 있고, 이미 그 속에서부터 그가 행복과 평화를 가져올 것으로 그려지고 있음은 흥미로운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서의 축복과 관련한 하나의 오해가 있다. 기독교가 여러 가지 기쁨을 약속하고 또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해도 그것이 곧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자가 되고 명예를 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크리스천에게 부과되어 있는 제일 어려운 임무 중의 하나는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누가복음 6/35) 는 명령일 것이다. 물론 그런 선행을 행하는 사람에게 큰 상이 약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른바 현세적인 이익과 같은 것이 아니고,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세상 그 어느 것에 비할바 없는 각별한 은총과 사랑인 것이다.

사랑이 깊으신 하느님을 아버지로서 받들고, 하느님의 자식으로서 살 수 있는 바로 그것이 인생 최고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근원적인 행복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의 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독생자 예수를 통해 인간을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려는 전능자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의 언급 속에서 크리스천의 삶의 방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것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6/25)는 언급일 것이다. 자기중심적으로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 만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자기도 구하지 못하고 이웃까지 해를 입히는 경우를 우리들은 종종 목도한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의 하나는 인생의 결말을 의미하는 죽음 조차도 사실은 영원한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문턱에 불과하다는 믿음일 것이다. 말하자면 부활에 대한 믿음을 통해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이야 말로 바울이 강조하고 있듯이 크리스천의 근원적인 행복의 근거를 이루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인 행복은 사람의 힘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인간을 사랑함으로써 독생자 예수를 통해 인간을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려는 전능자 하느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3. 행복에 이르는 지혜 --그리스도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를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라. -시128/2~3.

-지혜가 너로 선한자의 길로 행하게 하며, 또 의인의 길을 지키게 하리니 대저 정직한 자는 땅에 거하며 땅에 남아 있으리라. - 잠 2/20~21.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 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으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언 3/13--

-눈의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 있느니라. 훈계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잠15/30~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잠19/11-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 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19/2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4/27-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라. --요한1서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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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문정현님의 댓글

마지막 요한 1서4/7~8절 말씀으로 된 찬양곡이 있어요.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났도다....

행복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과 화평을 얻고 영생의 복까지 누린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한국 기독교회의 100년 역사에 금자탑을 이루었지요.

정해관님의 댓글

☯ 채근담85. 執着은 苦海요, 解脫은 仙境이다.

淨土를 얻으려거든 마음을 淨하게 하라.
정한 마음이 곧 佛土淨이다.
마음을 순결무구하게 지킬 수 있으면 어디나 인간 선경이 아닌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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