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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론20. 알랭의 [행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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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어 산책-20 [알랭의 幸福論]

1. 알랭 (Alain) ; 1868. 3. 3. 노르망디 지방 모르타뉴시에서 출생. 본명은 에밀 오귀스트 샤르티에이고, 알랭은 필명으로 중세 시인 알랭 샤르티에로부터 따온것이라 함. 아버지는 수의사. 1892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남브르타뉴 지방의 폰티비 고등중학교 교수가 됨. 1894 드레퓌스 사건이 일어나자 그는 드레퓌스파 신문에 기사 집필하고 민중대학에도 참가. 1951 국가문학 대상 수상. 그해 6.2 요양지 베네에서 향년 83세로 서거.

주요저서는 <정신과 정념에 관한 81장> <알랭의 어록><행복론><사상><문학론><스탕달><발자끄><정신의 계절> 등이 있다.

2. <幸福論> 요약

그의 <행복론>은 1906--1926까지 20년간에 걸친 행복에 관한 알랭의 어록을 편찬한 책이다. 그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광경들을 섬세한 감각과 예리한 통찰로 그려가면서 행복에 이르는 참된 지혜를 하나하나 찬찬히 일러주고 있다.

이 작품에는 [행복은 미덕] [행복은 관대한 것] [행복한 법] [행복해야 할 의무] 등 행복이란 이름이 직접 들어간 4개의 단편을 비롯하여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콩트 등의 사상을 원용하여 쓴 행복에 관한 철학적 수상 등 많은 단편들이 담겨있다.

특히 ‘노기, 신경쇠약, 울화, 가정의 평화, 부부, 의식’ 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우리 일상의 주제들은 그야말로 인생이나 사회 전반에 걸쳐 우리들이 앓고 있는 병들에 대한 일종의 처방전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이다.

알랭은 은사 라뇨나 플라톤, 데카르트, 헤겔 등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데카르트의 영향은 심대하며, 데카르트 사상 가운데서 ‘정신과 신체의 합일’ ‘상상. 오성. 의지’와 관련한 부분은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알랭은 말한다.

★“행복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행동을 의미한다.” 그가 말하는 행복의 지름길은 한 마디로 자유로운 행동 가운데 존재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되 자기 안에서 그 무엇을 찾아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행복은 구해질 수 없다.”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 행복을 얻은 사람들 만이 타인들도 행복하게 하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행복을 간취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우리 자신의 내적인 행복은 결코 덕에 반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이미 행복 그 자체가 미덕인 것이다.” 요컨대 행복은 덕 혹은 힘 그 자체를 의미 한다.

그 외에 행복의 방법으로서 현재의 것이든 과거의 것이든 자신의 불행한 이야기를 타인에게 말하지 말것 등을 권하고 있다.

그의 행복론을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와 행동을 떠나서는 행복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정념에 사로 잡히지 말것’ ‘정확한 판단이 서면 반드시 실천 할 것’ 이것이 그 요체라고 할 수 있다.

3. 행복에 이르는 지혜 ;알랭

-산 자만이 죽음을 당하며, 행복한 사람들만이 불행이라는 무거운 짐을 주체스럽게 해석한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불행보다는 남의 불행을 더 절실히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위선이 아니다.

-종교적인 태도는 의사가 주의해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왜냐하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면, 신체의 기관이 편안해 지고 생명의 기능이 더욱 활발해 지기 때문이다.

-화롯가에서 개가 하품을 하는 것은 사냥꾼들에게 걱정은 내일로 미루라는 표시이다. 주저없이 하품을 하는 이 생명력은 보기만 하여도 아름다운 것으로, 이 본보기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행복의 근원인 理性을 마비시키는 정욕들인 재물, 권력, 쾌락은 지성의 빛을 흐리게 하고 결국은 이것을 없애 버린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외관상 아름다운 그 부대를 조심스럽게 뒤져 본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평화를 잃어버리지 않고 애써서 획득하고 간직한 정의감을 헛된 운명 속에서 조금이라도 빼앗기고 싶지 않다고 언제나 명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평범한 운명을 짊어지고 가려고 할 것이다.

-인간은 의욕하고 창조하는 데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은 남의 손을 통해 그냥 얻은 쾌락에서는 권태를 느끼기 쉽고, 자기 손으로 얻은 쾌락에서 훨씬 더 즐거움을 느끼는 법이다. 그러므로 행동이 따르지 않는 쾌락보다는 차라리 행동이 따르는 고통을 택한다. 역설가인 디오게네스는 고통이 쾌락보다 낫다는 말을 즐겨 했다. 그러나 이 경우 고통이란 스스로 택하고 스스로 구한 고통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이 자기를 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서 얻은 행복에 대한 말이라면 사실이다. 얻은 행복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가 손수 만든 행복은 절대로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그것은 배우는 일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배워야 한다. 알면 알수록 더욱더 많이 배우게 된다.

-종교는 우리에게 해악을 끼치기도 한다. 인간의 약점이나 고뇌를 노리고 있다가 사람들을 생각에 잠기게 하는 설교로 빈사상태에 처한 사람의 덜미를 잡는 설교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장의사의 웅변을 미워한다. 삶에 대하여 설교해야지 죽음에 대하여 설교해서는 안된다. 희망을 던져 줘야지 공포를 일으키게 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인류의 참된 보물인 기쁨을 공동으로 길러내어야 한다. 이것이 현자의 비결이며, 이것이 내일의 광명일 것이다.

-미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스스로 다가오는 미래와, 손수 만들어 내는 미래가 그것이다. 그런데 진정한 미래는 이 양자로 되어 있다. 폭풍이나 일식 처럼 스스로 오는 미래에 대하여는 희망을 가져도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지상에 있어서 근면한 인간에 의해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이루어 졌는가!

-특히 신념이라는 것이 사실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인간계에 있어서는 자기의 신념을 계산에 넣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자기가 쓰러질 것 같다고 생각하면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희망에 배신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희망에 배신을 당하는 것이다. 이 점에 유의하라. 자기 스스로 날씨나 폭풍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선 자기의 내부에서, 그리고 자기의 주위에서, 다음에 인간세계에서, 우리는 부단히 그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

-행복이란 쇼위도 속의 물건처럼 우리가 선택하여 돈을 내고 집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행복은, 당신이 그것을 손에 갖고 있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 만일 당신이 이것을 외부에서 찾으려면 결코 아무것도 행복한 모습을 취하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행복에 대하여는 추리할 수도 예견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금 현재 갖고 있어야 한다. 행복이 미래 속에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에는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당신이 이미 행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갖는다는 것이 곧 행복을 의미한다.

-행복하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 대한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운 연후가 아니면 결코 패배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마도 가장 분명한 의무일 것이다. 특히 나에게 분명한 것은 행복해 지려고 원하지 않으면 행복해 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가 행복해 지려고 원하고 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행복하다는 것이 타인에 대한 의무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 만이 사랑받는다는 것은 지당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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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대숲님의 댓글

저 사진속 뒷편에서 흑인식구와 얘기하고 있는 분이 혹시 야마자끼씨가 아닌가요???

정해관님의 댓글

☯ 채근담67. 참 君子

君子는 변화에 닥쳐도 놀람이 없으나,
흥겨운 장소에 탐하지 않되 즐길 줄 알며,
약자를 도울 줄만 알뿐 강자를 도와 약자를 빠뜨리지 않으며,
선을 취하고 악을 두려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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